10편. 발효란 무엇인가?
출처. Petr Kratochvil's 'Beer fermentation' CC0 Public Domain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은 어떤 술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맥주와 막걸리 같은 곡물주, 와인과 사이다 같은 과일주, 혹은 위스키, 데킬라, 보드카와 같은 증류주 중 어떤 것이든, 각 술마다 나름의 매력과 이야기가 담겨 있죠.
술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뿐만 아니라, 그 맛과 향의 복합성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 복합성의 비밀은 바로 '발효' 라는 자연의 마법에 있죠.
발효는 단순히 재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인류와 함께해 온 문화적, 과학적 여정의 한 부분입니다. 미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변화는 맥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식과 음료에 독특한 풍미를 불어넣어 우리의 미각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죠.
‘끓다, 거품이 일다, 분노하다, 삶다, 빛나다.’
위에 표현들은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요?
바로 ‘발효(Ferment)’ 라는 단어가 파생된 라틴어 동사 ‘fervere’ 를 의미합니다.
효모가 발효하는 동안 거품이 일고 열이 발생하는 모습이 마치 물이 끓는 것과 유사하여 과거 사람들은 이를 ‘fervere(끓다)’로 표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든다.’ 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양조사가 정성스럽게 만든 맥즙을 ‘효모가 발효한다.’ 가 맞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재료와 레시피로 만들어진 맥즙도 효모가 제대로 발효시키지 않으면 좋은 맥주로 탄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맥아(싹을 틔운 보리)는 맥주가 되고, 포도는 포도주로, 우유는 치즈가 되는 마법.
이 놀라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발효’ 입니다.
[ '발효'란 무엇일까요? ]
식품 분야에서 발효란, 미생물의 화학 반응을 통해 유기물을 생활에 유용한 음식이나 음료로 전환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맥즙이 효모의 작용으로 맛있는 맥주로 변하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발효는 미생물의 활동 덕분에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 식품 보존 관점 - 미생물을 이용해 식품을 보존하는 전통적 방법
- 주류 및 발효 유제품 생산 관점 – 술이나 산성 유제품을 만드는 과정
- 대규모 미생물 공정 관점 – 산소 유무에 관계없이 진행되는 산업적 발효
- 혐기성 에너지 대사 관점 –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대사 과정
- 심화된 대사 관점 – 당이나 기타 유기물로부터 에너지를 생성하는 과정으로, 산소(O₂)나 전자전달계를 사용하지 않고 최종 전자 수용체로 유기물을 사용하는 과정
[맥주의 역사]
비록 발효의 원리가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전이었지만, 인류는 신석기 시대부터 발효를 활용해 술을 만들어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 중국: 기원전 7,000~6,600년
- 조지아: 기원전 6,000년
- 인도: 기원전 5,000년
- 고대 이집트: 기원전 3,150년
- 바빌론: 기원전 3,000년
- 멕시코: 기원전 2,000년
- 수단: 기원전 1,500년
그 중에서 맥주는 인류가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농경생활과 함께 탄생한 음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며, 그들은 곡물로 만든 빵을 분쇄한 후 맥아를 첨가하고 물을 부어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맥주를 제조했다고 합니다.
*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소개된 것은 1883년으로, 당시 맥주는 “우아(友兒: 벗 우, 아이 아)”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영어 발음 Beer를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Sanjai B R 1840722,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테오도르 슈반(Theodor Schwann)과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등 여러 과학자들이 발효 과정에 미생물이 관여한다는 개념을 제시하며, 미생물과 발효의 관계가 점차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독일 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Eduard Buechner)는 효모로부터 유기 화합물인 효소를 분리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 효소가 설탕 용액에서도 효모와 유사하게 발효를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발효가 미생물이 생성하는 효소에 의해 촉진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이 연구로 19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주류 발효는 산소가 없는 혐기성 조건에서 진행되며 효모가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효소를 생성하는 복잡한 생화학적 과정을 포함합니다. 먼저, 효모는 포도당을 당분해(glycolysis)를 통해 피루브산으로 분해하고, 이 과정에서 소량의 ATP(에너지)를 생산합니다. 이어서 피루브산은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와 알코올 탈수소효소의 작용을 받아 에탄올로 전환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부산물로 방출됩니다.
이러한 발효 과정은 맥주, 와인, 빵 등 다양한 발효 식품과 음료 제조의 핵심 원리로 활용되며 인류의 식품 보존 및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발효 과정은 효모의 생존과 증식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동시에, 특정 환경 하에서 유기물 분해를 촉진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현대의 바이오 연료 생산 및 기타 산업 공정에도 응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류 발효는 단순한 음료 제조 과정을 넘어 생명체의 에너지 대사 및 산업적 활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과학적, 기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죠.
포도당[C6H12O6(aq)] → 2에탄올[2C2H5OH(l)] + 2이산화탄소[2CO2(g)]
맥주와 와인에서는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에탄올이 보리와 포도의 풍미를 살려 훌륭한 술로 만들어주고, 빵의 경우 이산화탄소가 반죽을 부풀게 하여 부드러운 식감을 선사합니다. 오븐의 열로 인해 발효 중 생성된 에탄올은 증발하게 됩니다.
일상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효.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하는 마법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Yeasty Letter에서는 '발효와 부패의 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Written by. SB
참고 문헌.
1. 네이버 지식백과 '발효' (링크 주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827662&cid=62802&categoryId=62802)
2. 위키백과 '맥주' (링크 주소: https://ko.wikipedia.org/wiki/%EB%A7%A5%EC%A3%BC)
3. Stewart, G.G.; Russell, I. An Introduction to Brewing Science and Technology: Series III: Brewer’s Yeast, 2nd ed.; Institute of Brewing and Distilling: London, UK, 2009.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