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K-pop 앨범 판매량은 9,837만 장으로 전년보다 17.4% 줄었다. 2025년에도 약 9,350만 장에 그치며 상징적인 1억 장 기준점을 2년 연속 밑돌았다.
반면 같은 시기 K-Culture는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 따르면 2025년 기준 K-콘텐츠 수출액은 전년 대비 성장한 약 149억 582만 달러를 기록했다.
K-드라마와 영화가 OTT 알고리즘을 타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그 화제성이 K-푸드와 K-뷰티 수출액까지 동반 견인하며 대중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한국 콘텐츠를 가볍게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케이팝 앨범을 사는 사람은 정작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왜 케이컬처와 케이팝은 역방향으로 향하는가?
질문부터 쪼개보자
"케이컬처는 뜨고 케이팝은 진다"는 서로 다른 지표가 섞인 문장이다.
드라마, 영화, 뷰티는 진입 장벽이 낮아 팬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쉽게 닿는다. 반면 케이팝은 팬덤 밖으로 번져나가는 대중적 확장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케이팝의 코어 팬덤은 전체 팬덤 인원의 약 27%에 불과하지만, 연간 소비액의 64%를 책임진다. 1인당 연간 소비액은 코어가 약 104만 원, 일반 팬덤이 약 20만 원으로 5배나 차이 난다.

즉, 케이팝 산업은 소수의 '27% 코어 팬'에게 철저히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핵심 질문은 "왜 케이팝이 인기 없나"가 아니다. "왜 케이팝은 대중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잃고, 팬덤 안에서만 끝없이 깊어지는 구조가 됐나"를 물어야 한다.
수익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획사 입장에서 그게 가장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케이팝 앨범은 음악 감상용이 아니다. 포토카드, 응모권, 팬사인회 추첨권이 붙은 '굿즈 패키지'다. 원하는 포토카드를 얻거나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똑같은 앨범을 수십 장씩 반복 구매한다.

새로운 대중 100만 명을 힘들게 모으는 것보다, 이미 확보한 충성스러운 코어 팬 10만 명의 지갑을 여러 번 여는 것이 훨씬 싸고 확실한 수익 모델이다. 대중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대중성보다 팬덤 심화가 더 돈이 되는 합리적인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여기에 진입 장벽이 대중의 유입을 더욱 차단한다. 드라마는 무심코 첫 화 또는 관련 숏츠를 클릭하면 그만이지만, 케이팝은 자체 세계관과 방대한 서사, 맴버들을 공부해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걸그룹이 더 유명한데 돈을 덜 버는 역설
이러한 기형적인 수익 구조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척도가 바로 남녀 아이돌의 '수익 역전' 현상이다. 대중적인 인지도를 묻는다면 단연 걸그룹이 압도적이다. 음원 차트를 장악하고 대중적인 예능과 광고판을 휩쓰는 건 걸그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TOP 400 누적 앨범 판매량의 남녀 비율을 보면 남자가 약 74.5%, 여자가 약 25.0%로 앨범 시장의 4분의 3을 보이그룹이 차지한다. 블랙핑크처럼 대형 글로벌 투어로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최상위 티어가 아니라면, 중간 티어에서는 대중성이 아무리 넓어도 그것이 앨범 판매 같은 거대 매출로 직결되지 않는다.

반면 보이그룹은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도 코어 팬덤의 강력한 반복 구매로 막대한 매출을 올린다. 지금의 케이팝은 대중의 '넓이'가 아니라 팬덤의 '결집도'에만 보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산업은 어떻게 풀고 있나
열성 팬이 매출을 견인하고 대중이 판을 깔아주는 생태계는 케이팝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구조적 한계를 겪고 있는 케이팝의 돌파구를 야구, 게임, 팝이라는 세 가지 산업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다.
첫째, 한국 프로야구(KBO)는 '낮은 입구'를 설계했다.
프로야구는 2025년 1,200만 관중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규칙을 외우고 선수를 공부하지 않아도, 치맥과 응원가가 있는 탁 트인 야구장에 놀러가 '경험' 자체를 즐기며 무심코 입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트 팬이 야구장에 놀러 왔다가 코어 팬으로 스며드는 훌륭한 유입 경로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구단 자체는 적자이며, 이 대중 접점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모기업이 '마케팅 비용'으로 대신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철저히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케이팝 기획사에서는 대중성을 위한 이 적자 비용을 누가 대신 낼 수 있을까? 이것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다.
둘째, 게임 산업은 무과금 유저(무료층)를 생태계의 주역으로 대접한다.
게임 역시 매출의 80~90%를 상위 극소수 고래 유저가 책임지지만, 기꺼이 판을 깔아주고 밈을 생성하는 무과금 유저가 없으면 생태계가 붕괴한다. 케이팝 역시 유튜브와 스트리밍(무료층)과 앨범/팬사인회(코어 유료층)라는 이중 구조를 가졌다.
진짜 문제는 대중이 가볍게 돈을 쓰며 팬덤으로 넘어오게 만드는 게임의 '월 정액 패스'나 '스몰 굿즈' 같은 '중간 계단(소과금 상품)'이 케이팝에는 텅 비어 있다는 점이다.
셋째, 팝 시장은 팬덤과 대중성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는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최상위 성공 방정식은 "대중성을 위해 앨범 수익을 포기한다"가 아니다. 2025년 신보를 27종의 실물 앨범으로 발매해 팬덤의 폭발적인 구매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첫 주 글로벌 스트리밍 15억 회를 기록하며 대중의 고막까지 지배했다. 최상위 아티스트는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코어 팬덤의 수익 구조와 대중적 스케일을 양쪽 다 거대하게 키워낸다.
5세대는 이걸 시도하고 있다
지난 3.5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오며 케이팝은 코어 팬덤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점점 더 어둡고 강렬한 퍼포먼스, 복잡하고 난해한 세계관에 집착해 왔다. 진입 장벽이 가장 높았던 시기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5세대 보이그룹들은 이 공식을 깨며 대중성 회복이라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무거운 서사를 버리고 누구나 편하게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청량함'과 '이지리스닝'으로 무장한 것이다.

코르티스 같은 팀이 데뷔 미니 1집으로 더블 밀리언셀러에 오르고, 데뷔 1년도 안 돼 대학 축제에서 떼창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인 신호다. 코어 팬덤에 갇혀 있던 기차의 방향타를 다시 대중을 향해 틀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구조를 뒤트는 시나리오
이지리스닝 트렌드나 명품 앰버서더, 투어 확대 같은 전략은 이미 모든 기획사가 채택한 기본 매뉴얼일 뿐이다. 판을 완전히 바꾸려면 기획사가 쥐고 있는 통제권을 내려놓고 수익 구조 자체를 비틀어야 한다.
팬덤의 '주주화' (소비자에서 투자자로)
앨범을 수백 장씩 반복 구매하게 만드는 소모적인 수익 모델을 넘어서야 한다. 기계적인 지출에 지친 팬들에게, 제작 펀딩에 직접 참여하거나 음원 수익을 나누게 만들어 '공동 제작자'로서의 지위와 보상을 부여하는 방향이다. 코어 팬들을 끝없이 쥐어짜야 하는 현금창출원이 아니라, IP의 성장에 베팅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파트너로 격상시켜 팬덤 수익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시도다.
완벽함의 파괴와 보편적 캐릭터화
모든 멤버가 억지로 예능감을 뽐낼 필요는 없다. 핵심은 코어 팬덤을 묶어두던 '각 잡힌 신비주의'와 '유사 연애'의 좁은 틀을 깨는 것이다.
최근 유료 소통 앱(버블)을 시작한 배우 이광수가 개설 열흘 만에 구독자 2만 명을 돌파하고, 온라인 실시간 트렌드 1위와 앱스토어 무료 앱 순위 정상까지 휩쓸며 대중적인 화제를 모은 현상을 봐야 한다.

그룹의 방대한 서사를 전혀 몰라도, 그 인물의 일상적인 소통 방식 자체가 보편적이고 유쾌한 엔터테인먼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흠결 없는 우상이 되기를 포기하는 대신, 대중의 일상 밈에 기꺼이 소비되며 친숙하게 다가가야 한다. 예능, 게임, 웹툰 같은 캐주얼한 접점을 만들어 팬이 아닌 사람도 들어올 수 있는 입구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IP의 완전한 오픈소스화
게임 산업이 무료 유저의 2차 창작을 장려하여 판을 키우듯, 대중에게 케이팝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기획사가 저작권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대신, 음원 스템(Stem) 파일이나 안무 데이터를 대중에게 풀어버리는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발적으로 리믹스하고 숏폼을 쏟아내도록 유도하면, 막대한 마케팅 자본 없이도 대중적인 유입을 끌어내는 폭발적인 역주행과 바이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수익은 팬에게, 친숙한 이미지는 대중에게, 창작권은 외부 생태계에 나누는 것. 기획사들이 독점하던 통제권을 기꺼이 쪼개어 분산시키는 이 낯선 과정이, 케이팝이 팬덤이라는 좁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넥스트 스텝이다.
넥스트 케이팝에게 던지는 질문
케이컬처가 글로벌 대중의 보편적인 라이프스타일로 뻗어나가는 동안, 케이팝은 소수의 코어 팬덤을 가장 효율적으로 쥐어짜는 '고과금 게임'이 되기를 택했다. 그 지독한 효율성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대중이 들어올 넓은 입구를 막아버렸다.
방탄소년단이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메가 IP는 예외다. 문제는 이 생태계를 떠받치는 수많은 기획사와 중간 티어 그룹들이다.
이들에게 "대중성을 위해 팬덤 모델을 버릴 것인가?"라고 묻는 것은 순진한 이분법이다. '티어별로 적당한 수익 비율을 찾자'는 모호한 타협점도 정답이 될 수 없다.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케이팝이 풀어야 할 진짜 질문은 기형적으로 끊어진 '수익의 계단'을 다시 잇는 것이다.
"0원(무료 시청) 아니면 수십~백만 원(랜덤 포카/팬사인회)만 남은 이 극단적인 판에서, 가벼운 호감을 가진 대중이 기꺼이 지갑을 열 만한 케이팝만의 '월 9,900원짜리 배틀패스(중간 계단)'는 무엇이 될 것인가?"
"코어 팬덤에게 잔인하게 청구해 온 대중성 유지 비용을, 어떻게 수백만 무과금 유저(대중)가 만들어내는 자발적인 2차 창작과 생태계 가치로 대체할 것인가?"
이제 팬덤의 지갑을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털어먹을지 고민하는 시대는 끝났다. 텅 비어있는 중간 계단을 설계하고 기획사의 통제권을 대중에게 기꺼이 나눠주는 자가, 넥스트 케이팝의 룰을 다시 쓰게 될 것이다.
다음 편 예고: K-pop의 글로벌 레이블 확장, 어떤 모델이 장기적으로 살아남는가? - 국내 엔터사의 해외 레이블 모델의 진화와 지속가능성
이번 뉴스레터에서 다룬 IP 자산화에 대해 더 깊이 다룬 리포트를 bizkit.ai.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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