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Insight

IP를 판매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IP로 경제권을 만든다

요시모토흥업·코단샤·카도카와가 증명한 콘텐츠 자산화의 다음 단계

2026.06.29 | 조회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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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IP 비즈니스의 오래된 공식은 단순했다.

좋은 작품을 만든다 → 판권을 판다 → 수익을 회수한다.

이 흐름에서 IP 보유자는 언제나 '공급자' 위치였다. 넷플릭스에 팔든, 굿즈 업체에 팔든, 게임사에 팔든. 수익의 방향은 항상 IP 밖으로 흘러나갔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전, 일본 콘텐츠 업계에서 이 공식에 균열을 내는 장면들이 동시다발로 포착됐다.

2025년 12월, 연예 기획사 요시모토흥업이 자사 팬덤을 겨냥한 금융 서비스를 론칭했다.

2026년 3월, 출판사 코단샤의 총자산이 3,632억 엔을 돌파했다는 결산이 공식 발표됐다.

그리고 2024년 12월에는 출판사 카도카와가 소니와 500억 엔 규모의 자본 제휴를 체결하며 글로벌 IP 유통 구조를 통째로 재설계했다.

각각 다른 방식이지만, '지금 막 시작된 거대한 흐름'의 신호들이다.

시장의 승자가 완벽히 굳어지기 전, 판도가 뒤바뀌는 바로 지금이 이 전략의 설계도를 읽어야 할 골든타임이다. 우리 콘텐츠 기업들도 이 타이밍을 포착하고 움직여야 한다. 


IP를 팔면 수익은 한 번이다. IP를 락인하면 수익은 계속된다.

먼저 전제를 짚고 가야 한다.

왜 IP를 '판다'는 행위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리한가. (최근 들려온 Jxxx와 그 제작 레이블 Sxx의 위기 소식이 이를 증명한다. 현재 재무적 한계에 부딪힌 이들은 당장의 적자를 메우고 버티기 위해 <왕x x xx>, <레xx xx> 등 핵심 IP들의 해외 판권을 시장에 매각하려고 한다. 아직 단물 안 빠진 IP의 해외 판권을 단발성 현금과 맞바꾸며 체력을 깎아 버티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판권 판매는 본질적으로 미래 수익을 일회성 현금으로 교환하는 행위다. IP 보유자는 지금 당장 유동성을 얻는 대신, 이후 발생하는 모든 파생 가치를 포기한다. 작품이 흥행할수록, 그 업사이드는 온전히 구매자의 것이 된다.

이전 아티클에서 다뤘던 넷플릭스-한국 드라마 구조와 정확히 같은 문제다. Cost Plus 모델로 제작비 110~120%를 선지급받는 대신, 글로벌 흥행 수익은 넷플릭스로 귀속된다. IP가 강할수록 팔아넘긴 미래 가치도 커지는 역설이다.

요시모토와 코단샤는 이 구조를 거부했다. IP를 파는 게 아니라, IP를 중심으로 팬의 소비 행동 전체를 자사 생태계 안으로 끌어당기는 전략을 택했다.


01. 요시모토흥업: 팬덤을 금융 서비스로 끌어들이다

요시모토흥업은 일본판 하이브·SM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다만 아이돌이 아닌 개그맨이 중심이다. 일본 예능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 절반 이상이 이 회사 소속이고, 전국에 전용 극장을 직접 운영한다.

요시모토의 고민도 우리와 같았다. 방송사나 플랫폼에 소속 연예인을 출연시키고 받는 출연료, 티켓 매출은 결국 일회성 수익이었다. 이들이 선택한 돌파구는 파격적이었다.

2025년 12월 22일, 자회사 FANY가 주신SBI넷은행(住信SBIネット銀行)과 손잡고 금융 서비스 'FANY BANK'를 정식 론칭했다. 주신SBI넷은행의 BaaS(Banking as a Service) 인프라를 활용한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 모델이다. 요시모토는 은행 시스템을 빌리고, 자사 브랜드와 팬덤을 얹었다. JAL, 다카시마야 백화점이 같은 구조로 이미 운영 중인 방식이다.

일본에서 가장 장난기(위트) 있는 은행. 혜택 많고 편리한 은행 서비스뿐만 아니라, 일상이 더욱 즐거워지는
일본에서 가장 장난기(위트) 있는 은행. 혜택 많고 편리한 은행 서비스뿐만 아니라, 일상이 더욱 즐거워지는 "장난기(위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차이는 리워드 설계에 있다.

일반 임베디드 금융이 포인트나 캐시백으로 유저를 묶는다면, FANY BANK는 IP를 직접 리워드로 연결했다. 급여 이체를 12개월 연속 설정하면 FANY 오리지널 굿즈와 극장 티켓이 온다. 주택담보대출 실행 시에는 소속 아티스트 연계 혜택을 제공하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설계되어 있다. 이자 대신 '덕질 혜택'을 주는 구조다.

FANY Ticket. 매월 5일 대상 공연의 선행 추첨 응모 시 티켓 반값(50% 할인)!
FANY Ticket. 매월 5일 대상 공연의 선행 추첨 응모 시 티켓 반값(50% 할인)!

이게 그냥 재미있는 마케팅처럼 보인다면, 구조를 다시 읽어야 한다.

요시모토가 설계한 건 팬덤의 일상 금융을 자사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락인 구조다. 팬이 FANY BANK 계좌를 개설하면, 월급이 FANY 생태계를 통해 들어온다. 그 계좌로 티켓을 사고, 굿즈를 사고, 클라우드펀딩을 지원한다. 금융 행동 전반이 요시모토 경제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단순히 팬에게 물건을 파는 게 아니다. 팬의 지갑 자체를 자사 플랫폼으로 이전시키는 전략이다.

팬덤 기반 임베디드 금융이 실제로 유의미한 규모의 금융 거래로 이어질지, 아니면 '기발한 마케팅'에 그칠지는 2026년 하반기 이후에야 수치로 증명될 것이다. 지금은 전략의 설계도를 읽는 시점이다.


02. 코단샤: 창고에 잠든 만화책을 3조 원짜리 자산으로

코단샤는 한국으로 치면 역사 깊은 대형 출판사다. 〈진격의 거인〉, 〈세일러문〉, 〈도쿄 리벤저스〉가 모두 이 회사 IP다. 종이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산 3조 원을 넘긴 회사가 무엇을 했는지가 이 사례의 핵심이다.

컴투스-코단샤, 가치아쿠타 등 코단샤 IP 게임화를 추진하고 있다.
컴투스-코단샤, 가치아쿠타 등 코단샤 IP 게임화를 추진하고 있다.

2026년 3월, 코단샤 제87기 결산(2024년 12월~2025년 11월)이 공식 발표됐다. 총자산 3,632억 엔, 전년 대비 328억 엔 증가. 일본 주요 출판사 중에서도 눈에 띄는 수치다.

일본 회계 기준에서 자체 창출 IP를 무형 자산으로 직접 계상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자산 증가의 실제 원인은 디지털 사업 매출 확대에 따른 현금 및 투자 자산 증가에 있다. "IP 자산화 혁명"이라기보다, IP를 수익으로 전환하는 구조를 바꾼 결과가 재무제표에 반영된 것이다.

코단샤가 실행한 전략은 세 축으로 분해된다.

첫째, 디지털 전환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했다. 종이책 판매 중심에서 전자서적 과금 모델로 전환했다. 일본 내수용 앱 '마가포케(マガポケ)'를 통해 창고에 쌓여 있던 과거 작품들까지 매달 구독료가 발생하는 수익원으로 바꿨다. 전체 수입의 60% 이상이 디지털에서 나오는 구조다. 한때 인쇄 부수로만 평가받던 백카탈로그가 지속적 현금흐름을 만드는 자산이 된 것이다.

  일본 내수용 앱 '마가포케(マガポケ)'  
  일본 내수용 앱 '마가포케(マガポケ)'  

둘째, 팬 커뮤니티 데이터를 B2B 솔루션으로 전환했다. 패션지 ViVi의 SNS 팔로워 800만 명을 단순 구독 지표로 보지 않는다. 브랜드 캠페인을 위한 데이터 자산으로 본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 대상 라이츠·마케팅 솔루션 비즈니스를 구성했다. 콘텐츠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팬덤 데이터를 운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포지셔닝을 바꾼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유통 파이프라인을 직접 구축하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유통사나 현지 플랫폼에 판권을 넘겨 수수료만 받았다. 코단샤는 이 구조를 세 방향에서 동시에 바꾸고 있다.

우선 플랫폼이다. 2023년 북미 시장을 겨냥해 론칭한 글로벌 전용 디지털 망가 플랫폼 K MANGA를 통해 자사 IP를 직접 유통하고, 최신 연재분과 주요 타이틀을 자사 채널로 락인하려 한다.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 중인 K MANGA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 중인 K MANGA

다음은 현지 인프라다. 인도에서는 대일본인쇄(DNP), IJ Kakehashi Services와 함께 현지 합작법인 Kodansha India를 설립해 현지 제작·출판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 중이다(2026년 7월 설립, 같은 해 가을 출판 개시 예정).

마지막은 영상 제작의 직접 진입이다. 2025년 11월에는 헐리우드에 영상 제작 자회사 Kodansha Studios를 설립하고, 영화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한 클로에 자오(Chloe Zhao) 감독을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로 영입했다.

Nomadland filmmaker Zhao will serve as Chief Creative Officer, while Gonda is President and Chief Operations Officer
Nomadland filmmaker Zhao will serve as Chief Creative Officer, while Gonda is President and Chief Operations Officer

코단샤 사장 노마 요시노부는 발표 당시 "지금까지는 원작권을 해외에 넘겨 그쪽에서 알아서 하도록 맡겨왔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기획 회사를 세우고 일본의 IP와 크리에이터를 세계로 넓혀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로열티를 받고 판권을 넘기는 방식의 공식적인 종료 선언이었다.

해외 유통을 단순 위탁하는 대신, 플랫폼·현지 법인·제작 자회사를 통해 유통망 자체를 자산화하려는 전략이다. 한국 작품이 글로벌 OTT의 유통망에 의존하는 동안, 코단샤는 자본을 투입해 자기 파이프라인을 먼저 깔고 있는 것이다.

K MANGA가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들과의 경쟁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지, Kodansha Studios가 출판사 출신 헐리우드 스튜디오로서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2026년 이후의 성적표가 말해줄 것이다.


추가로, 카도카와-소니가 보여주는 또 다른 공식

현재 국내 중소형 제작사들이 코단샤처럼 글로벌 유통망과 헐리우드 스튜디오를 직접 다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코단샤가 '자체 파이프라인 구축'이라면, 카도카와(KADOKAWA) 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 강력한 IP 창고와 글로벌 유통망을 가진 상대를 찾아 자본으로 묶는 방식이다.

〈리제로〉, 〈최애의 아이〉, 〈소드 아트 온라인〉이 모두 카도카와의 IP다. 코단샤, 쇼가쿠칸, 슈에이샤와 함께 일본 4대 출판사로 꼽히며, 일찌감치 출판 외에 게임·애니메이션·이벤트 사업까지 흡수 합병해 'IP 종합 플랫폼 기업'을 선언한 곳이다.

2024년 12월, 카도카와와 소니가 전략적 자본·업무 제휴를 발표했다. 소니가 약 500억 엔(약 4,600억 원) 규모의 카도카와 신주를 인수해 지분 약 10%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프로젝트 단위의 단발성 협업이 아니라, 상시 파이프라인 형태의 구조적 연결이다.

소니, 카도카와 최대 주주 등극
소니, 카도카와 최대 주주 등극

그림은 단순하다. 카도카와의 IP 창고와 소니의 글로벌 유통망을 자본으로 묶어, IP가 생산되는 순간부터 글로벌 유통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만든다. 소니 산하 크런치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배급망이다.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는 실사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카도카와 IP가 이 파이프라인 위에 얹히면, 판권을 외부에 파는 구조 없이 글로벌 수익을 직접 회수할 수 있다.

이 구조가 코단샤의 '자체 스튜디오 설립'과 다른 점은 속도와 리스크 분산이다. 코단샤가 처음부터 직접 제작·유통 인프라를 쌓는 방식이라면, 카도카와는 이미 구축된 글로벌 인프라를 자본 제휴로 즉시 연결했다. 두 전략 모두 지금 이 순간 실험 중이다.


세 전략의 공통 문법

구분요시모토흥업 (FANY BANK)코단샤 (IP 디지털 자산화)카도카와 (소니 자본 제휴)
핵심 IP인적 IP (개그맨/아티스트), 극장 인프라저작권 IP (만화/웹툰), 글로벌 팬 데이터망가·애니메이션·게임 IP (연간 6,430점 창출)
자산화 방식임베디드 금융(BaaS) → 팬덤 자금을 자사 생태계로 유입백카탈로그 디지털화 → K MANGA 직유통 + Kodansha Studios·Kodansha India로 파이프라인 자산화소니 500억 엔 자본 제휴 → 크런치롤·소니픽처스 글로벌 유통망과 IP 창고를 구조적으로 연결
현재 단계2025년 12월 론칭, 검증 진행 중내수 디지털 전환 성과 확인, 글로벌 직진출 실험 중2024년 12월 제휴 발표, 협업 구조 가동 중
핵심 시사점플랫폼 의존 없이 팬덤을 자사 금융 생태계로 락인유통망 위탁 대신 플랫폼·현지 법인·자체 스튜디오로 파이프라인 직접 소유자체 구축 대신 자본으로 글로벌 인프라를 즉시 연결

접근 방식은 달랐지만, 세 전략의 근저에 있는 문법은 동일하다.

IP를 파는 순간, 수익의 귀속지는 바뀐다.

그렇다면 팔지 말고, IP를 인프라 삼아 팬의 돈이 자사 생태계 안에서 순환하게 만들어야 한다. 요시모토는 금융으로, 코단샤는 자체 파이프라인으로, 카도카와는 자본 제휴로 각자의 방식을 찾았다. 디즈니가 디즈니+로 DTC 전환을 선택하고, 게임사들이 자체 플랫폼을 고집하는 이유와 정확히 같은 논리다.


그래서, 국내 콘텐츠 기업이 읽어야 할 것

요시모토와 코단샤의 사례가 꽂히는 건, 한국 콘텐츠 산업이 정확히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IP는 드라마화·게임화·영화화를 위해 외부로 팔려나간다. 제작비 조달을 위해 OTT에 IP 권리를 통째로 넘긴다. 흥행 이후 자산 가치가 폭등해도, 그 업사이드는 IP를 사간 쪽에 귀속된다.

요시모토와 코단샤의 전략이 성공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FANY BANK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섰고, Kodansha Studios는 첫 작품도 내놓지 않았으며, 카도카와-소니 제휴는 구조를 짠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던진 질문 자체는 이미 유효하다.

플랫폼이 짠 판에서 판권료 몇 푼에 IP를 넘기지 말고, IP가 가진 힘으로 직접 자본을 움직여라.

이들이 던진 질문은 이미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으며, 먼저 생태계를 구축하는 자가 독식하는 '타이밍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이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이라는 화려한 취기에 취해 있을 시간은 없다. 판권 판매라는 과거의 공식에 안주하다간, 눈앞에서 자본의 주권을 영영 빼앗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지독한 속도전에 당장 올라타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 콘텐츠 기업들이 이 질문에 답을 내놓는 시점이 언제일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뉴스레터에서 다룬 IP 자산화에 대해 더 깊이 다룬 리포트를 bizkit.ai.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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