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 대한 오해와 진실, 두려움의 실체를 벗겨내다
편견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높은 유병률에 비해 외면받는 정신건강
한국 사회는 짧은 시간 동안 유례없는 경제 성장을 이루며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화려한 경제 지표의 이면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학구열과 그로 인해 파생된 치열한 무한 경쟁의 굴레, 성과 중심, 그리고 서로에게 매우 밀접한 관심을 주고받는 집단주의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 높은 자살률과 우울증 유병률이라는 서글픈 지표는 머문 지 오래다.
특히 코로나19 유행 이후 정신질환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더욱 증가하였다. 특히 우울증의 유병률은 6.8%에서 21.8%로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국내에서도 최근 정신장애의 평생 유병률이 27.8%에 이르고 있다[1]고 한다. 국민의 4명 중 1명 이상이 일생의 한 번은 정신건강 문제를 겪으며, 치료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 수를 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정신적 안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지만, 본인 또는 타인의 정신건강을 살피거나 이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기회는 오랫동안 사치로 여겨져 왔다.
최근 들어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고착된 편견은 여전히 단단하다. 앞선 연구에서 나타난 국내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12.1%에 불과하며 이는 캐나다(46.5%), 미국(43.1%)과 비교해 턱없이 낮다. 이러한 낮은 이용률은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기인[2]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시선과 편견은 당사자들이 치료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 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정신건강을 이야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층 개방되었다고는 하나 정작 본인의 문제를 인식하고, 정신과를 찾거나 상담을 받는 것이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내과, 뼈를 다쳤을 때는 정형외과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우리가 정작 본인의 정신건강을 다루는 데 있어 타인의 시선과 기록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두려움은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기록에 남을까 두려워요" : 기록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실제 포털사이트에 '정신과 진료 기록'이라 간략하게 검색만 해도 많은 이들의 질문과 답변이 있다. "기업 채용 시, 불이익이 있나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제 진료 기록을 볼 수 있나요?", "제 가족이 진료 기록이나 처방 내용을 알 수 있나요?" 등 이러한 여러 질문들에 대해서는 그 내용과 출처가 불분명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응답을 하며 근거 없는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아마 열람이 가능한 것으로 압니다.", "채용 시 해당 기록이 불이익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의 두려움은 단순한 기우일까, 아니면 정말 현실일까? 이러한 질문들의 대한 답변은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자주묻는 질문' 페이지에 자세히, 그리고 명료히 정리되어 있다.
하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남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진료기록은 남지만 본인 동의 없이 차트를 공개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의사는 처벌을 받습니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공개나 조회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열람할 수가 없다.
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에, 정신과 진료기록을 사기업이 볼 수 없으며, 공무원 임용고시에서도 이 기록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불이익이 있으리라는 것은 사회에 널리 퍼진 오해에 불과하다. 또한 서천석 정책위원장은 "사기업이 개인의 질병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 회사는 법적 처벌은 물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까지 서술되어 있다.[3]
의료계 전문가들은 정신과 진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치료를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경고한다. 감기 치료를 미루지 않고 즉각적으로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방치하였다 폐렴과 같은 더 큰 중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함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발병 초기에 의료 전문가를 찾아 적절한 약물 치료나 행동 치료를 병행하면 그 예후가 좋은 질환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치료를 피함으로써 얻는 알량한 안도감은 잠시일 뿐, 증상과 병을 방치함으로써 잃게 되는 삶의 파괴가 훨씬 더 장기적이고 치명적이며, 거대한 것이다.
주홍글씨를 지우고 '치료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
'정신과 진료는 주홍글씨다'는 폭력적인 사회 공식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에 더불어 병원에 방문하는 개인의 용기를 칭찬하고 북돋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신과 치료로 인한 실질적 불이익을 근절하는 제도적 안전망과 그 인식을 전환하는 데에 범국가적인 인식 개선 캠페인을 지속하는 등 국가와 사회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현재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통해 정신건강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하지만, 지원 대상이나 프로그램의 종류가 한정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정신건강서비스와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나아가 치료의 접근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안으로 대두되는 비약물통합치료센터나 병원이 아닌 복지센터 차원에서의 치료는 개개인의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인적 치료를 제공[4]해주는 방법의 적극적 도입과 전환 등 다각적인 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기록에 남지는 않을까, 그 기록이 내 삶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는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방조해 온 편견과 차별, 부정적인 인식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이제 정신건강은 개인의 몫을 넘어 보편적 복지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아픔이, 그러한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록이 평생의 약점이 되지 않는 사회, 아프면 언제든 안전하게 치료 받을, 그리고 그 치료의 기록과 내용이 철저히 보호받는다는 ‘치료받을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로 도약하기 위해 이제는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응답해야 할 때다.
참고 문헌
이한성, 「정신건강 서비스 향상을 위한 통합치료센터의 설립과도입: 해외 사례와 국내 적용 전략」,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24.10.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자주묻는 질문, https://www.amc.seoul.kr/asan/depts/psy/K/content.do?menuId=3472
각주
- [1] 이한성, 「정신건강 서비스 향상을 위한 통합치료센터의 설립과도입: 해외 사례와 국내 적용 전략」,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24.10.
- [2] 이한성, 「정신건강 서비스 향상을 위한 통합치료센터의 설립과도입: 해외 사례와 국내 적용 전략」,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24.10.
- [3]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자주묻는 질문, https://www.amc.seoul.kr/asan/depts/psy/K/content.do?menuId=3472
- [4] 이한성, 「정신건강 서비스 향상을 위한 통합치료센터의 설립과도입: 해외 사례와 국내 적용 전략」,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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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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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실뉴스
진료 기록 열람에 대한 두려움 역시 차별받을지도 모른다는 사회적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또한 말씀처럼 단순한 시설과 프로그램 확충을 넘어, 개개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해 보이는 거 같습니다! 통찰력 있는 내용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리 많관부 🙈) - 복실학회 부학회장 김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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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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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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