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오후에 보낸 메일에서 오타와 문단 나누기를 하지 않은 부분을 발견해서 다시 보내드립니다. 조금 더 신중히 살펴보고 보내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자유일꾼의 영감 매일 메일'이라는 뉴스레터를 무려 133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보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유료 뉴스레터'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아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딱 한 가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영감이 와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쓴 후에야 영감이 온다.
매일 의무적으로 뭔가를 쓰거나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버겁기도 했지만 뭔가 꺼낼 거리가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요. 막상 시작하고 보니, 오히려 뭐라도 보내야 하니까 나도 몰랐던 내 안의 뭔가가 튀어나왔습니다. 어떨 때는 소설이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일러스트가 나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렇게 어설프게 떠오른 것을 휘리릭 담아 발송을 누르고 나면 바로 후회가 밀려왔어요. 젠장, 좀 더 제대로 된 걸 보내야 하는데... 너무 설익은 생각 아니었나...
하지만 발송한 뉴스레터는 엎질러진 물이죠. 신기하게도 물을 엎지르고 나면 엉망이 된 물 텀벙을 보면서 그 다음으로 해볼 것이 생각났어요. 물을 엎지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전개였죠. 저는 저의 물 텀벙을 보내며 창작의 자유를 더해가고 제 물 텀벙을 받아 보는 분들도 새로운 영감의 실마리를 얻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직접 물을 엎지르는 자세로 유료 뉴스레터를 운영해볼까 합니다. 대신 매일 매일이라는 컨셉은 빼고 구독자들의 피드백을 적당히 반영해 테마가 있는 뉴스레터로 만들어가 보려고요.
개편 내용이 확정되는 대로 홍보 메일 보내겠습니다. (당당한 홍보 예고!)
요즘 책덕과 후추롱상사는 책을 만드느라 분주합니다. 바로 영빈 님의 책 <Savemyself09!>, 줄여서 저희끼리는 "셉마셆"라고 부릅니다. (사실 아직 입에 안 붙어서 강제로 붙이는 중ㅎㅎ)
어느덧 책의 꼴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서 내일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두근두근!) 이번 프로젝트는 후추롱상사 동료들의 의견도 많이 반영되었고, 특히 담당 편집자인 하영 님과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만들어왔습니다. 자유일꾼으로 만들어진 조직, 팀 작업이 가능할까? 그런 걸 실험하는 의미에서 후추롱상사를 상상해봤다고 예전에 유튜브로 밝힌 적이 있는데요.
혼자 일하는 게 마음은 편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있거든요. 그리고 저는 권력이 더 많은 쪽에 자리하는 일을 불편해하는데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매번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욕하며 불평불만만 하다가 세상을 뜨기보다는 권력을 가진 쪽에서 그걸 인정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어떤 과정인지, 나 또한 자유일꾼이라면서 위계를 무시하고 평등한 척하는 인간이 되고 말 것인지 알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을 만드는 과정은 저에게도 큰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쥐똥만 한 권력도 권력이고 X소기업에도 위계는 존재하니까요. 특히나 저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10년의 경력이 하영 님에게는 크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래도 하영 님은 단단한 사람이라 제가 생각한 것에 많은 반론을 똑부러지게 해주었습니다. ㅎㅎ
지난 주에는 텀블벅에 거의 다 올린 표지에 관해서 하영 님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손을 떨면서 저에게 신중하게 작성한 글을 보냈습니다. 저도 예전에 윗사람에게 제 의견을 말하며 후들후들 떤 적이 있기에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이제는 제가 그 자리에 같이 있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뭐 그렇게 권위적이지도 않은데 편하게 얘기하지. 근데 이미 이렇게 하기로 했고 지금 변경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거나 진지하게 하영 님의 우려를 대면하고 과연 지금 결정이 최선인지 되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주말 내내 고민하여 하영 님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하영 님의 동의를 구하고 우리 두 사람의 의견 교환 글을 공유해 봅니다.
우리의 셉마셆에 대한 부족한 편집자의 의견 by 하영
민희님 안 그래도 이것저것 고민이 많으실 텐데 자꾸 옆에서 혼란을 드리는 것 같아 말씀드리기 망설여지지만 최종결정하기 전, 한번은 더 소통할 시간이 필요하다 싶어 적습니다. (꾸벅)
아시다시피 요즘 에세이 분야에 우울증인 사람이 썼거나 우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 많은데 저는 우리 책이 위치하는 점이 좀더 뾰족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민희님께서 저번에 보내주신 소슬기획의도는 그 점을 확.실.하.게 충족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표지에서는 그런 느낌을 저는 아직 받지 못하겠더라고요. 제가 혹시 캐치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직 표지에 확신이 없는 이유는 첫째,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세련됐습니다. 민희님이 사진을 너무 잘 찍어서..너무나 감성 있고 멋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세련된 사진을 표지로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얼굴, 저자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말이죠..(저자라는 사실은 외부에 아예 밝히지 않는 것인지 아닌지 아직 모르겠지만요)
물론 민희님께서 텀블벅에 적은 표지얘기를 들으면 또 납득이 갑니다. 백번!! 영빈님의 단정한 모습과 같은 겉표지 그리고 그것과 달리 알맹이 표지에서의 반전. 저에겐 설득이 됩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혹시나요 저와 민희님은 영빈님을 지켜봐왔고, 첫인상을 기억하고, 지금의 영빈님을 잘 알기 때문은 아닐까요?무엇보다 저는 영빈님이 이 책을 내는 일이 권력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기를 책으로 낼 수 있는 기회라니 누군가에게는 굉장한 특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독립출판물스러운 책을 만들고 싶어했던 저희의 원래 방향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이 듭니다. 상업출판사에서 하지 못하는 것들로 승부를 보고자 했었는데 너무나 프로 같은 민희님의 사진 실력에 다른 상업출판사에서 내는 에세이표지들과 어떤 차별화를 가져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너무나 매끄러운 저 사진이 책덕만의 감성과는 어울리는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제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민희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만약 반드시 저 표지여야 하는 이유가 민희님께 있다면 저는 민희님의 결정을 백프로 지지할 것입니다. 민희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신 결정들에 다 설득되었듯 말입니다.
둘째, 표지에 얼굴이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저번에도 말했듯 느끼해서 그렇습니다. 인스타 작가들에 대해 거부감이 드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이런 글을 쓰는 나’에 취한 듯한 너낌.. 특히나 이 글은 무려 일기인데 일기에 본인 사진이 똭 들어간다니 자칫하면 자아가 매우 비대한 사람 같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리고 일기에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더 그렇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전시하는 느낌은 최소한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언컷본이라는 특수한 제본방식을 함께 생각해보면 더 그렇습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내밀하고 조심스럽지만 용기내서 출간을 결정했다는 애티튜드가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다 저의 편협한 취향이 들어간 의견인지라 다른 분들은 저의 이런 의견이 어떠신지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실 영빈님 가족분들과 용크님께서는 모두 흡족해하시는데 왜 나만 아직 이 표지 결정에 아직도 골똘하는지 저도 괴롭습니다. 투박하더라도 작은 출판사다운 무언가를 기대했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디자인도 못하는 제가 계속 이런 말을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 책을 서점 매대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받았으면 하는 바/컨셉은 우선 제목에서의 호기심. 의미심장한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들고 책장을 넘겼을 때, 누군가의 일기를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발견하고 읽는 느낌입니다. 다 읽고 나서도 나중에 이 표지를 보면 ‘아 이거 어떤 사람의 일기장’하고 직관적으로 느꼈으면 싶었습니다. 물론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좀 더 이른 의견 공유 하지 못해 (표지발주서도 늦게 드리고..)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소통해야 프로젝트가 다 끝나고 아쉬움이 들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꼭 표지를 바꾸자!는 아닙니다. 지금도 충분히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같은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까지 설득할지 저희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텀블벅 프로젝트와 도서전에 나가고 싶습니다.
하영 님에게 by 민희
글을 올리고 손이 떨렸다고 하는 하영 님을 보면서 제가 편집자 초창기에 사장님에게 제 의견을 말 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대던 때가 떠올랐어요. 말하고 나서 괜히 나섰나 싶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안 한 적도 꽤 있고요. '괜히 말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수십 번도 더 했을텐데 그래도 말하기로 용기를 낸 하영 님께 먼저 칭찬을 보냅니다.
내 의견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모두가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잘 되기를 소망하는 하영 님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저도 다급하게 준비하던 프로젝트를 잠시 멈춰서 둘러볼 여유도 가지게 되었어요. 주말 동안 틈틈이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하영 님에게 답변하기 전에 저부터 설득을 해야 했어요.
제가 지금 표지에 100% 자신감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시원하게 답할 수 없습니다. 책을 만들 때마다 100%의 확신을 가지고 낸 적은 한번도 없거든요. 그래도 저 자신을 나름대로 설득한 답변을 적어볼게요.
1 사진과 얼굴
영빈 님의 사진을 넣기로 한 것은 제가 영빈 님을 알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르는 사람에게 이 일기를 쓴 사람이 실체가 있는, 아주 독자적인 사람임을 명료하게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영빈 님이 책을 내는 것이 권력으로 보일까봐 우려를 해주셨는데,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무명 저자의 일기를 출판하는 일 자체가 매우 실험적인 시도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독립출판의 확장으로 요즘은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냥 독립출판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이 책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은 독립출판물과 상업출판물 경계에 있는 책이고 몇 번의 출판 경험을 쌓은 김민희가 디자인하는 책이고 김하영이라는 편집자가 편집하고 윤영빈 님이라는 특정한 사람이 쓴 책이다. 사진을 쓸 수 있는 것은 저에게 '권력'이라기보다는 '증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 얼굴 대신 흉터와 목
초반에 얼굴 사진으로 표지를 만들었을 때 하영 님의 '느끼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거나 작가 자체를 드러내는 사진이 아닌 이미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때 영빈 님 얼굴에서 흉터를 발견했고 그와 이어지는 목이라는 신체 부위가 '약점을 드러낸다'는 일기장의 컨셉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에필로그 글에서 영빈 님이 묘사한 장면과 연결하다면, '드러난 목'+Savemyself09!라는 암호 같은 제목+'윤영빈'이라는 실명이 조합되었을 때의 이미지가 이 책의 자켓 표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이 저자인지 아닌지는 굳이 밝힐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물어보거나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풀어놓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표지를 봤을 때의 첫인상인데, 그때 이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지면서 나는 효과가 저는 '내밀하고 조심스럽지만 용기내어 출간을 결정했다'는 지점에 다가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표지가 아니고서 그런 효과를 낼 만한 디자인이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저의 한계이기도 하죠)도 다른 안을 생각하지 못하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서점 매대, 인터넷 서점 썸네일, 작은 책방, SNS 등에서 독자들을 만날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독자의 연령대나 폭을 표지에서부터 좁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어요. 예전에 제가 '미란다처럼'을 낸 후에 초등학교 저학년 남학생이 재밌게 읽는 것을 본 후부터 독자를 내가 한정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물론 컨셉을 뾰족하게 하는 건 중요한데, 사실 알 수 없는 독자로부터 출발해 디자인 방향성을 잡는 건 실패할 확률도 높은 것 같아요. 어떤 책이 유행하면 아류 디자인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사실 아류는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실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어떤 경향성을 우리 책에 뭍히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만 가진 것을 조화롭게 표현하면 자연스럽게 그걸 알아챌 독자들이 생길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정리하자면 제가 이 표지를 선택한 것은 제목, 저자 실명, 흉터와 목 사진이 한 레이아웃에 잡히며 내는 효과가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눈길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이 책이 서점 매대에 놓였을 때 독립출판물이든 상업출판물이든 그 어떤 출판물과도 구분될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책을 집어들었을 때 자켓을 들추고 안을 들여다 본다면 우리가 만나고 싶어하는 독자는 분명 알아챌 만한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안쪽 표지가 드러난 상태라면 그 효과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 설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말했다시피 저도 100%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적은 없고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이기도 하니까요. 결과는 시장에 나가봐야 확인할 수 있겠죠. 갑작스러웠을 편집 제안을 받아들여주고 진심으로 함께해주어서 하영 님께 언제나 감사합니다. 혹시 설명이 불충분하다면 그 부분도 같이 얘기 나눠보아요.
셉마셆은 (별 일 없다면) 내일 책덕 다용도실에서 함께 모여서 프로젝트 오픈을 할 예정입니다. 아직 열리지 않겠지만 프로젝트 주소를 먼저 보내드려요.
https://tumblbug.com/savemyself
그리고 언제나 진지하게 원고를 대하며 자신의 의견을 정중하게 피력하는 하영 님은 고밤이라는 닉네임으로 인스타그램에 편집 과정에서의 생각을 쓰고 있답니다.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분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여 인스타그램을 공유합니다.
글 뭉치가 책이 되는 조건, 궁금하신가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편집자 헬북 님이 드디어 책덕 다용도실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엽니다. 이름하여 '책이 되지 안 되겠냐 클럽'입니다. 함께 모여 편집회의 하고 책 만드는 상상을 구체화하는 재미난 시간이 될 거예요. 5월 14일 수요일부터 시작입니다! 혼자 쌓아둔 글 더미가 있다면 잘 뭉치는 데 힘이 될 것이고, 꽤 완성된 기획안이 있다면 더 단단한 책이 되도록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TMI. 저도 들을까 고민 중)
신청은 https://bookduck.kr/?idx=80 에서 하면 됩니다.
곧 또 자유일꾼다운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다들 4월의 끝자락을 잘 다려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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