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나 대상같은 식품회사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종류가 너무 많아 그 기세에 질릴 정도다. 그런데 모기업 산하의 개별 브랜드만 400백여개를 보유한 다국적 소비재 브랜드인 유니레버에 비하면, 그들 또한 단촐하다. 유니레버의 브랜드 맵을 보다보면, 도대체 이 많은 브랜드를 어떻게 관리할까라는 생각도 들고, 이 기업의 브랜드 매니저들은 얼마나 머리가 복잡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반대로 생각하면 만일 이런 ‘브랜드'마저 없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브랜드’와 ‘제품’을 구분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과 맞먹을 정도는 아니라도 굉장히 복잡한 브랜드 구조를 가진 곳이 있으니 바로 ‘연예 기획사들’이다. 인수합병 등을 통해 기획사 산하에 수십개의 새끼 기획사(레이블)을 두고 있고, 최근에는 2차 저작물 판매등을 하는 사업을 위한 자회사까지 거느리고 있다. 그 아래에는 수백명의 개별 브랜드인 가수, 연기자, 모델, 크리에이터까지 포괄하고 있으니 이 곳 또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로만 보면 어떤 대기업보다 많은 양이라고 하겠다.
최근 이 기획사 중 원탑이 된 빅히트가 사명을 바꿨다.
BigHit에서 HYBE로 바꾼 이유를 브랜딩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려고 한다. 우선 당연한 변화처럼 보인다. 앞서 말한 기획사들의 브랜드 포트폴리의 구조와 미래 사업 비전을 담아내기에는 BigHit라는 그릇은 턱없이 작아 보인다. 더구나 ‘히트’ 그룹이나 가수 발굴, 제조사가 아니라,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보니 SM, YG, JYP가 이니셜로 사명을 쓴 이유가 처음엔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해가 간다. 더구나 3분 창업자들 모두 현직 ‘가수’로써 하나의 ‘브랜드’이기도 했으니까. 'SM, YG, JYP’ 창업자들의 이니셜을 썻지만 이름 자체로는 특별한 이미지나 의미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대표성과 포괄성이 있는 이름들이다. 그 아래 어떤 이름들이 있더라도 가볍게 품어 낼 수 있는 브랜드로써의 역할이 가능하다.
SM, YG, JYP로 사명을 지었을 때 이런 것까지 어느 정도 염두해 두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에 비해 BigHit의 이름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산하의 레이블이 이렇게나 많아지고 사업 영역도 전세계를 상대로 할지 상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이름 때문인지 ‘빅히트’한 그룹이 나온 건 성공적인 브랜딩이다.
BigHit보다 더 상위의 브랜드인 HYBE 하이브라는 이름은 개인적으로 좋아보인다. Hi !는 안녕이라는 인사처럼 들리기도 하고, High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가 느껴진다. 빅히트 hit의 H와의 연계성도 염두해 둔 것 같기도 하다. 하이파이브, 라이브, 바이브, 빌리브, 다이브 등의 뉘앙스를 떠올리게 하는 소프트한 발음은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에도 이미지에도 잘 어울린다.
표기에 있어서 hibe로 표기하지 않고, HYBE로 쓴 건 위에서 언급했던 '더 큰그릇’에 어울리는 형식이다. 땅에 무게를 딱 잡고 당당하게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발음은 ‘하, 이, 브’인데, 모두 종성의 받침이 없어 한결 가볍다. 기분 좋게 날아가는 느낌이 입술 끝에서 감돈다.
하이브의 상징마크인 H의 가운데를 가늘게 이은 선은 연결을 의미한다. 음악과 청자를 연결하고 뮤지션과 세상, 즐거움과 공감을 연결해 여러 가치와 가치의 연결을 통해 즐거움이 만나고 (Hi~!) 행복감을 드높이(high)는 집단의 목표를 표현하는 듯 하다. 라인의 느낌들이 마치 오선 중의 하나로 기타의 선이나 건반의 느낌으로도 다가온다.
발음상 hive[하이브] 벌집이라는 사전적 뜻과 함께 중심지나 북새통을 이루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 '하이브’라는 이름을 쓰는 스타트업들의 로고 표현은 그런 의미를 담아 대부분 ‘육각’을 표현했는데, 빅히트의 ‘하이브’는 그런 이미지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있다. 주로 게임, 웹, 블럭체인, 암호화폐 등의 회사들인데, 빅히트의 ‘하이브’가 앞으로 지향하고자하는
미래 사업들과 연관성이 있어 흥미롭다.
HYBE를 응원한다. 더 차원이 높고 드 넓은 세계를 품는 브랜드가 되어 대한민국 문화 예술을 알렸으면 좋겠다. 문화 강국으로써의 위상을 높이는 회사로 더욱 더 커갔으면 좋겠다.
| 매거진 브랜디
글. 우현수 @woohyunsoo
브랜드 컨셉 빌더 [브릭] BRIK.co.kr을 설립해 브랜드 스토리와 스타일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저서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을 실천하며 더 나은 미래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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