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침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
여러분에게 침대는 어떤 존재인가요? 아니 침실은 어떤 공간인가요?라는 질문이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또 다른 분께는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으로, 아니면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인식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침실 공간의 주인공은 역시 사람이지만, 사람이 빠진 자리의 주인공은 단연 침대이겠죠.
이렇게 편안하고 안정된 휴식과 수면을 위해 우리 일상에 반드시 필요한 침대는 최소 5년 이상, 길게는 평생을 쓰는 제품입니다.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혼수이기도 하고요. 침대는 매트리스만 해도 고급 가전의 몇 배를 뛰어넘는 가격을 자랑하는 브랜드가 있을 정도의 프리미엄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제품입니다.
저 또한 신혼 때 ‘가전하면 LG’, ‘침대하면 에이스’라는 언제 제 머리 속에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 공식에 따라 침대를 에이스 침대로 구입했었습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는지 고민 없이 구입했지만, 비교 대상이 별로 없다 보니 좋은지 나쁜지는 체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메모리폼 침대로 바꾸고 지금껏 쓰고 있는데, 익숙해지니 에이스 침대의 스프링도, 지금 쓰는 무명 브랜드의 메모리폼도 수면의 질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흐른 후 시몬스라는 브랜드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코엑스 사거리를 지나가다 본 옥외 광고 영상 때문이었는데요.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현란한 색채와 어떤 메시지도 없이 느릿느릿하게 반복되는 움직임의 광고는 각종 메시지와 정보가 넘치는 온오프라인 세상에서 하나의 휴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인도에 서서 멍하니 그 광고를 찬바람 맞으며 바라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똑같은 배에서 나온 다른 브랜드 -
이렇게 에이스와 시몬스라는 브랜드가 제 마음 속에 모두 들어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브랜드가 사실은 한 아버지에게서 나온 형제 브랜드라는 사실, 이 두 브랜드가 침대 매트리스 시장에서 우리나라 절반의 점유율을 차지한다는 것은 나중에 브랜드 조사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줄곧 선두였던 에이스 침대가 2024년에 따라잡혔다, 그렇지 않다는 논쟁이 일어난 시점이 딱 제가 코엑스 앞에서 시몬스 광고를 본지 딱 2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에이스 침대가 오랜 시간 동안 국내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와 짧은 시간 동안 두 브랜드의 격차가 좁혀진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에이스와 시몬스 모두 같은 아버지가 만들어 기반을 닦아 두었던 회사인 만큼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기술력, 품질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거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어떤 차이가 두 브랜드 파워의 간격을 좁게 만들었을까요?
먼저 에이스 침대가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19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해왔던 제품 표준화와 품질관리,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믿고 구입할만큼 보장된 품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5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국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기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에이스 침대의 시장 선점효과가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침대 문화가 막 도입되고 각 도시마다 아파트들이 생겨나던 1970대에 에이스 침대는 미리 준비된 좋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고, 괜찮은 품질로 인정받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침대는 일반 가구라고 하기에는 소재나 기술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죠. 일반적인 가구를 만든 기술력보다 훨씬 복잡한 고도의 기술력이 다른 브랜드들이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이었을 것입니다. 그 건 여전히 유효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다가 굉장히 고가이고 사용 시간도 보통 5년 이상입니다. 그러니 전통이 있고 여러 사람들에게 이미 검증을 마친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침대를 집안의 인테리어 소재 정도로 생각했다면 취향대로 각자가 다양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크겠지만, 앞서 나열한 이유들 때문에 1등 브랜드인 에이스에 대한 선호가 시간이 갈수록 굳건해지는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노하우는 다시 고스란히 형제 브랜드인 시몬스에게 전수가 됐을 것이구요.
두 브랜드의 메시지 차이 -
두 브랜드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전달해왔던 메시지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먼저 에이스 침대의 캠페인은 굉장히 유명하죠.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는 광고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역작이죠. 처음 이 광고 카피를 TV에서 처음 봤을 때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깨트리는 통쾌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침대는 가구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과학적 지식과 기술력이 숨어 있다는 메시지는 마치 침대를 최첨단 기술의 작품처럼 느끼게 만들었고요. 그만큼 프리미엄한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한거죠. 매트리스 하나만 해도 몇백만 원 하는, 웬만한 대형 가전보다 훨씬 비싼 제품이라면 이런 새롭고 인상적인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스토리는 브랜드를 새롭게 인식시키는데 있어서 굉장히 좋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다’에 우리 각자의 브랜드에 대입해보면서 ‘우리 브랜드는 OO이 아니라, OOO이다’라고 정의해보는 건 지금도 여전히 브랜드에 대한 신선한 시선을 가져다줍니다.
시몬스의 메시지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캠페인은 침대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침대의 본질은 잠을 자는 곳이고, 그냥 잠이 아니라 편안하고 좋은 잠이어야 하겠죠. 그렇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고 항상 그대로여야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볼링공을 떨어뜨리는 실험 장면과 반대편 함께 누워있던 사람이 천정까지 튀어 오르는 코믹한 장면으로 침대의 편안함을 표현했습니다. 결국 그런 편안함의 요인은 좋은 스프링에 있고 그 스프링을 만드는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논리로 연결시킨 광고 캠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이스의 메시지가 가지는 강력함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고, 파급력도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회사 브랜딩 활동의 극명한 차이 -
그러다가 몇 년 전 제가 코엑스 사거리에서 봤던 시몬스의 Oddly Satisfying Video(반복적이고 정돈된 시각적·청각적 자극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는 콘텐츠를 뜻함) 광고를 보고 이 브랜드 캠페인은 시몬스가 확실히 더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에이스 침대는 30년 전 카피를 그대로 가져와 빅모델인 박보검까지 써가면서 대항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등이 펼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30년 전의 혁신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몬스는 공장이 있는 이천에 있는 대규모 홍보 문화복합 공간인 ‘시몬스 테라스’을 만들었습니다. 침대 회사에서 만들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테마와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온 가족이 좋아할 만한 공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간의 구석구석에는 알뜰하게 시몬스 침대의 기술력과 역사를 자연스럽게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전체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서 좋았습니다. 여기저기 볼거리, 관심 가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계속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열리니 그곳에서 파는 굿즈도 예뻐 보이고 내가 알던 시몬스의 이미지도 바뀌게 되더군요. 전통이 있고 고급스럽지만 다소 무겁고 비싸 보이기만했던 브랜드 이미지가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와 철학이 담겨있는 브랜드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곳에 함께 갔던 아이들도 크게 인상에 남았는지, 침대를 교체하면서 1순위로 시몬스를 샀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곳을 방문하고 2년이나 흘렀지만 그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침대를 바꿀 때 쯤에 자연스럽게 집에서 가까운 시몬스 매장에 방문하게됐습니다. 매장에서도 이천에서 느꼈던 좋은 분위기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보니 구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자연스럽게 구매로 연결시키는 기술은 시몬스가 이제 에이스를 앞서가는 듯합니다. 2024년 5월 기준, 시몬스 침대의 국내 주요 특급호텔 침대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한다고 합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서울신라호텔, 포시즌스 호텔 서울, 시그니엘 서울, 해비치 리조트 제주 등 유명 호텔들이 시몬스 침대를 비치하고 있다고 하네요. 까다로운 특급호텔의 사랑을 받으면서 시몬스는 프리미엄이라는 인식도 더 강력해졌습니다. 특히 호캉스 문화로 2030세대를 중심으로 호텔 투숙 경험이 늘어나면서 호텔 침대의 사용 경험은 다시 구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몬스는 내 집 같은 편안함보다는 호텔 같은 럭셔리한 휴식이 있는 그런 특별한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로고가 나타내는 상징성의 차이 -
에이스 침대는 옛날부터 써왔던 알록달록한 문자 로고와 심벌의 결합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요소들도 많아서 산만해 보입니다. 심벌에도 ‘ACE’, 로고에도 ‘ACE’가 중복되어 쓰인 상황은 시각적 미감이 훌륭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70, 80년대식 그래픽 표현으로 그 때 그 시절의 일류 기업의 이미지가 나는 이 레트로풍 로고를 보고 있으면 에이스 침대의 제품도 딱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침대라는 제품에만 집중하고 힘을 쏟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시각적 요소 하나 하나가 모여 결국 브랜드의 이미지와 감각을 형성하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시대 감각에 맞게 개선 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에 비해 시몬스는 로고의 헤리티지를 헤치지 않은 선에서 적절하게 현대화된 형태를 잘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매체 광고나 각종 홍보물에 적용된 상황도 시몬스의 디자인이 브랜드 정체성을 일관되게 잘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매장 공간 외관의 차이에서 극명한 대비 -
에이스는 한글과 전통 로고를 배치해 오랜 시간 지켜온 그들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한글 로고타입을 매장 전면에 쓰며 대중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색의 현대적이고 좀 더 부담 없는 느낌의 외관을 가졌습니다. 반면 시몬스는 영문 위주의 로고로 브랜드의 뿌리인 150년 전 최초로 창업한 미국 회사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영문 위주의 로고를 쓰고 있습니다. 매장의 외관 색상은 진한 브라운 계열로 고풍스럽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로 채색하고 있습니다.명품 매장이나 고급 호텔같은 느낌이 들어 막상 들어서기가 망설여지는 느낌을 줍니다. 전국에 퍼져있는 매장의 외관 모습이 시몬스는 대체로 수평으로 안정된 모습인 반면 에이스 침대는 4,5층의 구성으로 수직으로 높이 올라간 모습을 한 것도 다른 점이었습니다.
체험과 경험의 차이를 인식한 침대 회사들 -
침대는 더 이상 스프링의 차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TV를 고를 때 더 이상 화질을 표현하는 픽셀만으로 고르지 않듯이, 냉장고의 냉장·냉동 성능만으로 고르지 않듯이, 세탁기의 회전력만으로 평가하지 않듯이 보다 상위의 가치들인 정서적 만족감, 충족감, 자아 실현감 등이 선택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품의 기능과 성능, 재료와 성분, 기술력의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브랜드 제품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와 문화적 취향을 잘 맞춘 브랜드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입니다.
결국 이 침대라는 사업도 스프링 사업이 아니라 브랜드 사업입니다. 편안함만으로 승부하는 것은 부족하고 특별함을 담아야합니다. 품질을 넘어,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독창적으로 인식시키고 소비자의 마음에 각인시키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들 두 라이벌 브랜드가 또 어떤 브랜딩 활동으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메시지를 전달할지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둘 중 어떤 브랜드가 더 마음을 사로잡으시나요? 그런 생각과 함께 자신의 브랜드와 현재 라이벌인 브랜드를 떠올려 보시면서, 그렇다면 우리 브랜드는 어떤 브랜딩 전략으로 라이벌 브랜드가 하지 못할 브랜딩 활동들을 펼쳐 나갈 것인지를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5년 새해 첫 리포트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바라시는 일 모두 이루시는 한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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