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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己敍齋] 자기서재

자기서재 제6장: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사건’ 뒤에 쌓인 맥락

관계, 갈등, 자기표현, 신뢰, 소통, 자기이해, 관계의맥락, 독서에세이, 물리학, 박권 교수

2026.06.22 | 조회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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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펄펄

2026.06.22 | 제6장 | 유료구독으로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주디입니다.
‘자기 서사의 재발견을 돕는 뉴스레터’ 자기서재 시즌2, 여섯 번째 편지입니다. 🙂

살다 보면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전쟁이나 사고 같은 거대한 사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뜻밖의 행동으로 주변을 놀라게 하거나, 평소의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일. 잘 지내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크게 다투거나,  아무 문제 없어 보였던 관계가 어느 날 예고 없이 끝나버리는 일.

그럴 때 우리는 말합니다.
“아니, 어떻게 갑자기 그럴 수가 있어?”
과거의 저도 한 선배와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장면

주디: “아니, 어떻게 갑자기 그래요? 진짜…….”

선배: “주디야. 뭐든지 갑작스러운 건 없는 거야.”

주디: “그런가요?”

 

첨부 이미지

 

굉장히 짧은 대화였는데 ‘뭐든지 갑작스러운 건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던 선배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는 이 말을 듣고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제 눈앞에 나타난 사건은 분명 갑작스럽게 일어났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아주 조금씩 위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갑작스럽게 밖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그 사건을 만들어낸 감정과 경험, 조건까지는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요.
누군가에게는 느닷없는 폭발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래 참아온 감정이 마침내 밖으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갑작스러운 이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수없이 망설이고 준비한 끝에 내린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순간과 그 사건을 마주한 사람의 맥락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글을 쓰며, 이론물리학자 박권 교수의 책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도 떠올렸습니다. 이 책은 양자역학과 저자의 경험, 영화와 소설 등 여러 사례를 통해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같은 철학적 질문을 과학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책의 내용을 제가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책의 제목인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문장은 제 안에 오래 남아 여러 방향의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가 각인된 또 다른 장면

과거 회사원 시절, 어떤 이슈로 자책하고 있던 제게, 한 동료가 이런 말을 해준 적도 있습니다.

“주디 님, 저는 언젠가부터 어차피 일어날 일은 저와 무관하게 터진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계속하는 건 오히려 자의식 과잉 같더라고요.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까지 모두 제 탓으로 돌려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으니까요. 이슈가 생기면 그냥 해결하면 되죠.”

지나가다 안부를 나누며 들은 짧은 말이었지만, 당시 자책하고 있던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조금 더 잘했다고 해서 반드시 막을 수 있었던 일도 아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원인을 끝없이 내 안에서만 찾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결해보면 된다." 저 역시 다른 친구가 비슷한 일로 힘들어할 때 위의 말을 전해준 적이 있습니다.

첨부 이미지

그런데 최근 이 문장을 또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의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입니다. 아직 제 사업의 시스템을 충분히 만들지 못해 아등바등하는 단계이지만, 작고 구체적인 부분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사람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태도를 마주하면 쉽게 화가 납니다.

  • 작고 사소한 일이라며 넘겨버리는 사람.
  • 인사를 하는둥 마는중 하는 사람.
  •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
  • 고객의 입장보다 자신이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

심지어 문의에 답이 없거나 조치가 늦어질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해야 할 일을 건성으로 처리하는 것 같다.’
‘이래서야 계속 돈을 내고 이용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또 이 불만을 일일이 말하기에는 사소하고 쪼잔한 것들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쌓아두었습니다. 머리로는 이런 일에 감정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 같아서는 관계나 계약을 끊어버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끝내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 제가 정말 원하는 결말은 상대가 문제를 누군가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개선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제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습니다.

필요한 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전 문의에 대한 회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언제까지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치가 늦어질 경우, 현재 진행 상황이라도 공유해주셨으면 합니다.”
“문의에 대한 답변이 없을 때,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꺼내는 일조차 때로는 너무 사소하고 구차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것까지 내가 말해야 하나?’
‘원래 알아서 해야 하는 일 아닌가?’
‘그냥 내가 나가고 말지.’

그렇게 속으로 꿍한 마음을 쌓아두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한꺼번에 모두 쏟아낼까.
한 번 제대로 따져볼까.
다시는 만나지 않을 각오로 관계를 끝내버릴까.

그런데 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불평을 쏟아내거나 관계를 끊는다면, 상대에게는 그것이 아주 갑작스러운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왜냐하면 상대는 제 안에서 이런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테니까요.)

저에게는 오래 쌓인 무성의와 실망의 결과지만, 상대는 제가 그동안 별문제 없이 지내는 줄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선배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뭐든지 갑작스러운 건 없는 거야.”

 

사건 자체는 갑자기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것을 갑작스럽다고 느끼는 정도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한 사람은 오래 쌓인 맥락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눈앞에 드러난 결과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각자는 서로 다른 경험과 정보, 기대를 가지고 같은 사건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관계의 표면만 보고 “갑자기 왜 저래?”라고 단정하는 일은 어쩌면 한 사람에게 쌓여온 시간을 통째로 놓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눈치 채기를 바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서만 관계를 끝내고 있지는 않았는가.
  •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기준을 상대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 말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고, 혼자 결론을 내리고 떠날 준비부터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박권 교수의 책에는 게임이론의 전략인 ‘응용 팃포탯’도 등장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처럼 복수엔 복수로, 선의엔 선의로 맞대응하며 상대의 이전 행동을 바탕으로 우리팀의 행동을 선택하되 용서와 아량에 있어 조금 더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위 전략이 게임이론들 중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응용 팃포탯’의 전략 중 하나에는 이런 원칙이 있습니다.

선량함: 절대로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지금의 저에게 적용하면 어떤 해석이 가능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 상대가 나를 실망시켜도 먼저 무례해지지 않는 것.
  • 내가 맡은 역할과 약속을 먼저 저버리지 않는 것.
  • 상대의 행동을 곧바로 악의로 단정하지 않는 것.
  • 무엇보다 내가 먼저 내 삶과 내가 마주한 사건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를 끝까지 지키는 일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내가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좋은 결과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요청을 구체적으로 전달해도 상대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설명해도 관계를 끝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나는 필요한 말을 해보았다.
  • 상대를 함부로 단정하지 않았다.
  • 내 역할을 먼저 저버리지 않았다.
  • 그리고 그 이후에 내린 결정은 충동적인 폭발이 아니라, 내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론이었다.

제게 ‘절대로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 이런 의미입니다.

일어날 일을 무조건 막아내려 애쓰기보다,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어떤 태도를 지킬 것인지 정하는 것.
모든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리지는 않되,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행동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관계를 끝내기 전에 전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면, 작고 구차하게 느껴지더라도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것.

그러고 나면 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고, 결국 끝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갑자기 닥친 결말만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맥락 위에서 맞이한 결과일 테니까요. 그때에는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시 저 자신에게 집중하며 제가 해야 할 일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질문

💬 [댓글 달기]를 통해 여러분의 답변을 들려주세요!
요즘 여러분에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었나요? 

 

펄펄

제가 너무 같은 일화를 반복해서 쓰는 것 같아 좀 마음에 걸리지만, 생각없이 시작한 반려동물의 SNS 채널에 제가 아는 브랜드에서 광고 문의가 들어온 일이 저에겐 "긍정적으로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그저 내 고양이 자랑을 위한 게시글 속에서 고양이를 아끼는 마음과 맥락을 알아차려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협업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주디

최근 제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은, '블로그가 이토록 힘이 있었나?' 하는 것입니다. 신규 교육 문의가 계속 인입이 되고, 서로 이웃 추가 신청이 늘고 웹상에서 비밀글로의 개인적인 응원, 안부, 인사, 근황까지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의 연결감과 소통, 커뮤니티와 소속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통한 갑작스럽지만 제가 처음 마주하는 현상, 사람들과의 연결이 신기하고 재밌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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