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0 | 제10장 | 유료구독으로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주디입니다.
‘자기 서사의 재발견을 돕는 뉴스레터’ 자기서재 시즌2, 열 번째 편지입니다. 🙂
오늘은 교육대학원 수업에서 읽은 책〈Engaging Minds: 표준화 교육에서 복잡성 교육으로〉를 바탕으로, ‘잘한다’는 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문장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어떤 능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 <Engaging Minds: 표준화 교육에서 복잡성 교육으로>
이 문장은, 우리에게 이런 익숙하지만 낯선 질문은 떠올리게 합니다.
‘잘한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쉽고, 흔하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일을 잘해.”
“저 친구는 공부를 잘해.”
“저 사람은 똑똑해.”
“나는 저런 건 잘 못해.”
물론 어떤 영역에서는 분명히 실력의 차이가 보입니다.
빠르게 이해하는 사람,
적은 설명으로도 금방 해내는 사람,
결과물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
남들이 오래 걸리는 일을 짧은 시간 안에 처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 ‘잘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교육학’을 공부하다 보면, ‘알다’와 ‘잘 한다’라는 말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책 〈Engaging Minds〉는 지능, 앎, 학습을 하나의 고정된 능력이나 정답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지능은 한 가지 능력으로 환원될 수 없고, 사람이 처한 환경과 조건, 경험에 따라 다르게 드러납니다.
또 ‘안다’는 것 역시 단순히 정답을 빨리 말하는 일이 아니라, 경험과 맥락 속에서 계속 구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잘한다’는 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였는데 결과가 좋으면 잘하는 사람일까요? 남들이 못 하는 일을 해내면 잘하는 사람일까요? 시험 점수가 높으면 잘하는 사람일까요?
물론, 위의 질문 모두가 ‘잘 한다’에 해당될 수 있지만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천천히 곱씹으며 지긋하게 생각하는 사람.
계속 의심하고 질문하는 사람.
오래 붙잡고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생생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말은 많지 않지만 개념을 빠르게 이해하고 조용히 성취를 쌓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잘하고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야학에서 도덕 교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연세가 있으신 다양한 성인 학습자 분들을 만나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정말 잘하십니다. 말씀을 듣다 보면 그 분야에 대한 애정과 관점이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어떤 분은 표현은 많지 않지만, 개념을 빠르게 이해하고 학업 성취도가 높은 분도 계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은 다르지만, 각자에게 분명한 힘이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각계각층 다양한 참여자들을 만날수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열정적인 분야 하나쯤은 가지고 있구나. 다만 그것이 잘 드러나는 환경을 만났는지, 그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났는지, 그것을 표현할 기회를 얻었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고요.
대학원 팀과제를 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저는 판을 깔고, 일정을 세우고, 역할을 나누고, 전체 흐름을 잡는 일을 비교적 잘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함께하는 동료 선생님들은 제가 못하는 또 다른 잘함으로 팀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어떤 선생님은 제가 놓친 디테일을 꼼꼼하게 챙겨주십니다. 어떤 선생님은 팀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서로를 계속 격려해줍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필요한 자료를 빠르게 찾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히 정리해줍니다.
각자가 저도 모르게 잘하는 방식으로 작은 공동체에 힘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방향을 잡고, 누군가는 빈틈을 메우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살리고, 누군가는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럴 때 저는 다시 느낍니다. 잘 한다는 것은 하나의 얼굴만 가진 말이 아니구나. 사람마다 공동체에 기여하는 방식이 다르고, 배움에 참여하는 방식도 다르구나.
그래서 누군가를 너무 빨리 “잘한다”, “못한다”로 나누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교육의 자리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사람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생각보다 늦게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어떤 능력은 특정한 환경에서만 살아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쟁 속에서 힘을 내고, 어떤 사람은 안전한 관계 안에서 비로소 말문이 트입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결과를 내고, 어떤 사람은 오래 생각한 뒤 깊은 답을 내놓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속도만으로, 말의 유창함만으로, 당장의 성취만으로 사람의 가능성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책을 천천히 읽는 이유도 조금은 이와 닿아 있습니다. 저는 책을 빠르게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문장마다 생각이 옆으로 뻗고, 질문이 생기고, 제 경험과 연결해보느라 자주 멈춥니다.
예전에는 이것이 비효율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읽지 못할까. 왜 읽는 속도보다 떠오르는 생각이 더 많을까. 그런데 요즘은 이것도 저의 학습하는 방식일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빠르게 많이 읽는 사람이라기보다, 읽은 것을 제 삶과 일에 연결해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문장을 많이 수집하기보다, 한 문장에서 시작된 질문을 오래 굴려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제 강의와 글, 코칭의 언어가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배움의 속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누군가는 빠르게 이해하고, 누군가는 오래 곱씹고, 누군가는 말하면서 배우고, 누군가는 조용히 쓰면서 배웁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스스로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배울 때 가장 살아나는 사람인지 아는 것.
내가 어떤 환경에서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표현하고, 더 잘 성장하는지 알아가는 것. 그것이 자기이해와 학습이 만나는 지점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능력이 있을지, 어떤 상황에서 그 능력이 드러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대할 때 조금은 더 섬세하게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은 못한다가 아니라, 아직 맞는 방식과 환경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나는 못한다가 아니라, 내가 잘 배우는 방식이 따로 있을 수 있다고. 그리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너무 빨리 닫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질문이 많더라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배워가더라도, 그 안에 나만의 배움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습니다.
오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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