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11 | 제9장 | 유료구독으로 후원하기💛
5월에는 유독 연휴가 많아서 그런지, 날씨가 유독 싱그러워 보이는데요. 계절에 맞춰 색이 변화하는 나무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나무 한 그루가 초록색이 될 때까지는 가을의 쌀쌀함과 겨울의 눈보라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삶의 이야기에도 진심이 무르익어 터져 나올 충분한 맥락이 필요하죠.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우리에게 ‘두괄식’과 ‘간결함’을 강요하곤 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뭐예요?", "요점만 짧게 말해줄래요?" 같은 말들로 우리의 복잡한 맥락을 싹둑 잘라내 버리죠.
오늘 여기, 자신의 화법에 대한 타인의 성급한 판단과 무례한 효율성 요구 앞에서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 상황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소통의 본질을 고민해 본 주인공의 기록을 꺼내어 봅니다. 🌻

기록 속 문장
“주디님은 두괄식으로 말씀하시면 더 좋겠네요.” 사실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매우 상했다.(…) 나에게 ‘두괄식으로 말하세요’는 조언이 아니라 마치 ‘알아듣기 힘들게 이야기를 한다’는 식으로 나를 ‘판단’하고 ‘정의’를 내린 것처럼 들렸다.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하려 했지만 상대방은 용어나 환경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생소함을 느낀 것 같았다. (…) 대화 중간, 이해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는 특유의 표정도 보였다. 그러니까, 내가 말을 두괄식으로 간결하게 못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 에세이 전문 읽기
ch2. 11화 [나 홀로 퇴사 여행기 - 프롤로그] 싫다고 다 나가진 않잖아요.
서사의 재발견
우리는 대화가 매끄럽지 않을 때면 습관적으로 나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으려 합니다. "조금 더 짧게 말했어야 했나?", "내 화법이 너무 두서없나?" 하며 스스로를 검열하곤 하죠. 하지만 이번 기록은 우리에게 소통의 책임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어쩌면 대화가 어긋나는 이유가 나의 말하기 기술 부족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담아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관점을 말이죠.
기록 속 주인공이 불편함을 느꼈던 건 상대방의 ‘찌푸린 표정’과 ‘단정 짓는 어투’ 때문이었습니다.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의 말을 경청하려는 표정과 제스처가 빠진 대화는 결코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만약 듣는 이가 이미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할 준비만 하고 있다면, 말하는 이가 아무리 완벽한 두괄식을 구사한들 그 대화는 이미 시작조차 되지 않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삶의 서사는 결코 한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희망과 답답함이 겹겹이 쌓여 아주 입체적인 층을 이루고 있죠. 그래서 세상에는 도저히 두괄식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참 많습니다. 에세이 속에서 마주한 "왜 퇴사했나요?", "회사가 싫었나요?", "누가 괴롭혔나요?"와 같은 물음들처럼 말이죠.
상대의 복잡한 맥락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는 요구는, 어쩌면 타인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게으른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간결하고 명확한 결론을 앞세운들, 그 바탕이 되는 맥락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이에게는 어떤 대답도 그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의 형식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서사를 기꺼이 읽어내려는 청자의 마음입니다.
결론부터 말해야 하는 세상에서, 여러분은 혹시 소중한 이야기를 억지로 줄여본 적 없으신가요? 누군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요약’하라며 인상을 찌푸린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표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담을 만큼 충분히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다정한 청중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에게 그런 다정한 청중이 되어주면 어떨까요? 💛
오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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