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7 | 제11장 | 유료구독으로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주디입니다.
‘자기 서사의 재발견을 돕는 뉴스레터’ 자기서재 시즌2, 열 한 번째 편지입니다. 🙂
오늘은 <플랜더스의 개>를 읽고 성찰한 슬픔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오늘의 문장
그대로 죽고 싶었지만 참고 걸었다. 넬로가 아직 살아 있었고 자신을 필요로 하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 파트라슈의 마음 속 대사, <플랜더스의 개>中
<플랜더스의 개〉가 슬픈 이야기라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명작 동화 전집을 통해 <플랜더스의 개>를 읽었으니까요.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의 죽음, 넬로와 파트라슈의 쓸쓸하고 비극적인 마지막 정도야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손에 집힌<플랜더스의 개>를 다시 읽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슬픈 이야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렇게까지 슬픈 이야기였다고?
사무실에서 읽는데 혼자 눈물콧물을 질질 짰습니다. 이야기의 슬픔은 결말 하나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필이면 플랜더스 지방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가난한 아이와 늙어가는 개. 힘든 노동.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의 죽음. 가난한 이들을 쉽게 의심하고 밀어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끝까지 붙잡고 있던 넬로의 ‘화가’가 되겠다는 꿈.
넬로는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희망마저 사라진 날, 넬로는 월세가 밀렸다며 파트라슈와 함께 집에서도 쫓겨납니다. 할아버지의 돌아가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극적인 사건들이 휘몰아치죠.
그렇게 추운 밤길을 걷던 중 넬로와 파트라슈는 눈밭에 쓰러졌다가 돈주머니를 줍게 됩니다. 마을에서 자신을 제일 무시하던 부자의 전재산이 든 지갑이었습니다. 넬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눈보라를 뚫고 부잣집에 그 지갑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파트라슈를 그 집에 맡기려 합니다. 자신은 더 버틸 힘이 없지만, 파트라슈만은 따뜻한 곳에서 먹고 자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파트라슈를 두고 떠난 넬로. 파트라슈는 먹을 것도 있고, 몸을 녹일 수도 있는 곳에 남았지만 넬로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눈은 계속 내리고, 넬로의 발자국은 희미해지고, 냄새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래도 파트라슈는 넬로를 찾습니다. 배고프고, 춥고, 늙고, 지쳤지만 넬로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 하나로 걷습니다.
<플랜더스의 개>가 유독 더 슬프게 다가왔던 이유는 이 둘 사이의 가혹한 상황에서 피어나고 견고한 우정 때문입니다. 둘을 향한 세계는 너무 차가웠습니다. 가난한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은 제때 도착하지 않았고, 늙은 개의 지친 몸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추운 밤. 따뜻하고 환해야 할 날을 앞두고, 넬로와 파트라슈는 가장 추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추운 예배당에서 두 존재는 서로 꼭 껴안았습니다. 이튿날, 크리스마스가 되자 넬로를 제자로 삼고 싶다는 화가가 등장합니다. 지갑을 찾아준 보답을 하겠다는 어른도 나타납니다. 너무 손길이 늦었습니다. 이 어긋난 타이밍과 대비가 이야기를 더 아프게 합니다.
저는 슬픈 이야기를 잘 찾아보는 편은 아닙니다. 마음이 무거워질 걸 아니까요.
뉴스도, 영화도, 책도 너무 아플 것 같으면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미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왜 일부러 슬픈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일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데 도움받지 못하는 사람. 곁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존재. 자기 몫의 추위를 조용히 견디는 사람. 그런 존재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어쩌면 슬픈 이야기를 읽는 일은 굳이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심히 지나치던 주변을 다시 보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넬로와 파트라슈를 늦게 발견해서 안타까워했던 사람처럼 되지는 말자.
이 이야기를 일긍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전부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너무 쉽게 외면하지는 않는 사람. 불쌍하다고 말만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도움이라도 실제로 건네볼 수 있는 사람. 멀리 있는 큰 비극 앞에서는 무력하더라도, 가까이에 있는 한 사람의 추위에는 조금 더 민감한 사람. 그 정도의 사람은 되어보고 싶습니다.
한 번 더 물어보는 것.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는 것.
필요한 도움을 제때 건네는 것.
상대가 혼자 버티고 있다고 느끼지 않게 하는 것.
그런 작은 관심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온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오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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