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직업이 아니라 모험입니다." 오라클 창업자의 삶과 철학

원문: <Larry Ellison's commencement address at the USC>

2025.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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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Alex

 

안녕하세요, 비즈쿠키입니다.

 

오늘은 오라클(Oracle)의 창업자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산과 바다를 좋아했던 20대 청년이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여정을 다루는데요.

 

뻔한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결국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읽으시는 분들께서도 제가 느낀 울림을 함께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물 소개


<래리 엘리슨, 출처: Bloomberg.com>
<래리 엘리슨, 출처: Bloomberg.com>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은 미국의 클라우드 기업 오라클(Oracle)의 창업자이자 전 CEO입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특이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는데요. 

 

20대에 명문대 의대를 중퇴한 그는 환경 운동가, 암벽 등반 강사, 개발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프로그래밍에 재능을 보인 앨리슨은 이후 오라클을 공동 창업하고 세계 최초의 상업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했습니다.

 

이후에도 기술적 혁신을 거듭하며 오라클을 세계 최고의 테크 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죠. 

 

요약


- 흥미 없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할 수가 없더군요. 저는 그들이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결국 노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미 해군 광고에 "단순한 직업이 아닌, 모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해온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제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모험. 어떤 모험이든 그렇듯, 저는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요.

 

- 여러분 각자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닌, 여러분이 누구인지 발견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닌, 여러분의 꿈을 살 기회를 가졌습니다.

 

가상 인터뷰

본 아티클은 <Larry Ellison's commencement address at the USC> 내용을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Q. 어린시절 꿈이 의사셨다고요? 

제 꿈은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된 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시카고 남부의 평범한 동네에서 자란 저에게 의사는 최고의 직업이었죠.

 

가족, 선생님, 여자친구 등 제 인생의 모든 중요한 사람들이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꿈은 제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결국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Q. 의대 생활은 어땠나요?

의예과 학생으로 몇 년간 힘들고 불행한 시간을 보낸 후, 제가 배우는 과목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특히 해부학 수업은 해부 실습 때문에 정말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고문처럼 느껴졌습니다.

 

흥미 없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할 수가 없더군요. 그때는 제가 의지가 부족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저는 그들이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결국 노력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앨리슨이 다닌 의과대학, 출처: university of illinois>
<앨리슨이 다닌 의과대학, 출처: university of illinois>

Q. 이후에 캘리포니아로 떠나셨다고요?

스물한 살에 저는 대학을 그만두고, 가진 거라곤 청바지, 티셔츠, 가죽 재킷, 기타뿐이었지만, 이 모든 것을 차에 싣고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떠났습니다.

 

1960년대 버클리는 반전, 자유 연설, 인권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20대 청년이 자신과 정의로운 목표, 그리고 사랑하는 직업을 찾기 시작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곳이었죠. 그곳에서 저는 산과 요세미티 계곡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푹 빠졌습니다.

 

Q. 그곳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자연을 사랑했고, 이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에라 클럽에 가입해 환경 운동가가 되었죠. 캘리포니아의 봄과 여름 내내 저는 요세미티 계곡의 높은 시에라 지역에서 강 투어 가이드와 암벽 등반 강사로 일했습니다.

 

이 일들을 정말 좋아했지만, 아쉽게도 돈벌이가 시원찮았습니다. 그래서 버클리로 돌아와 일주일에 며칠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도 일했죠. 프로그래밍은 대학에서 배웠는데,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고 소질도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소명도 찾았고, 사랑하는 일 몇 가지와 재미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가졌으니까요. 제 삶에 상당히 만족했죠.

<요세미티 공원, 출처: Frommers >
<요세미티 공원, 출처: Frommers >

Q. 그곳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내셨군요?

네. 하지만 제 아내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녀 눈에는 제가 산에서 쓸데없는 짓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학 중퇴자로 보였을 겁니다. 그녀는 제가 전업 프로그래머로 일하거나 대학으로 돌아가 학위를 마치길 원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타협을 했죠.

 

저는 UC 버클리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수업을 들었는데,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건 버클리 마리나에서 진행된 항해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과 사랑에 빠졌죠. 수업이 끝나자 배를 사고 싶어졌습니다.


아내는 이 얘기가 평생 들어본 아이디어 중 가장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저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했고, 야망이 부족하다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녀는 저를 집에서 내쫓았고,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Q. 그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가족들은 제가 의대에 가지 않은 것에 여전히 화가 나 있었고, 이제 아내는 야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예전과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한번 저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바라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제 꿈은 달랐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 둘을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시에라, 요세미티, 태평양. 이 아름다운 자연은 저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주었고, 남은 평생 그럴 것입니다.

 

당시 저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과 생활에 필요한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으니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거대한 두려움의 짐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정말 기뻤죠.

 

저는 배를 사서 버클리 마리나의 배 위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았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의 소설가)가 쓴 문구처럼, 저는 "외롭고, 젊고, 제멋대로였지만, 행복했고 삶의 거친 심장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버클리 마리나, 출처: 트리플 >
<버클리 마리나, 출처: 트리플 >

Q. 실리콘밸리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되셨나요? 

20대 내내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자전거와 보트 경주를 하고, 직장을 자주 옮겼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스탠퍼드 대학교 남쪽과 산호세 북쪽에 있는 회사에 가장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죠. 실리콘밸리가 막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인 Amdahl에서 일했습니다. 우리는 IBM보다도 빠른, 세계에서 가장 빠른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개발했습니다. 다음은 Ampex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데이터 저장 시스템을 만들었죠. 그리고 Precision Instruments로 옮겨 소프트웨어 개발 부사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Q. 창업은 왜 하셨나요?

저는 대체로 제 일을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배를 타는 것만큼 사랑할 수 있는 직업은 찾을 수 없었죠. 그래서 제 회사를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가 아는 가장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을 고용해서 가장 흥미롭고 도전적인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제 목표는 제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직업을 만드는 것이었으니 회사가 50명 이상으로 성장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때는 야망이나 비전이 부족했는지도 모릅니다.

 <오라클, 출처: esi.edu.sa>
 <오라클, 출처: esi.edu.sa>

Q. 오라클에서 세계 최초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만드셨죠?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목표했던 대로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뛰어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고용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래머들로 팀을 꾸렸죠. 이 팀과 하나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거대 기업을 탄생시켰습니다. 제가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시 모두가 제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세계 최초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이론 논문이 이미 몇 편 발표되었고, IBM은 연구소에서 시제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 전문가들의 통념은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는 있어도 충분히 빠르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문가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모든 전문가들이 틀렸다고 말하면, 처음에는 거만하다고, 그다음에는 미쳤다는 얘기를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걸 기억하세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미쳤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여러분이 진짜 미쳤을 수도 있겠죠.

 

다행히도 그때는 전문가들이 틀렸습니다.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는 정보 시대에 핵심적인 기술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몇몇 친구들이 일할 수 있는 편안하고 작은 회사를 만들려던 제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죠.

 <오라클 관계형 DB, 출처: crossjoin.pt>
 <오라클 관계형 DB, 출처: crossjoin.pt>

Q. 창업을 후회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했고, 새롭고 흥미로운 가능성과 기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라클은 10년 동안 매년 두 배씩 성장했습니다. 저는 저를 위한 완벽한 프로그래밍 직업을 만들려 했지만, 결국 회사를 경영해야 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래밍을 멈추게 되었죠.

 

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천 명의 직원과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회사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허리케인 속에서 항해하는 것 같았죠. 그리고 우리는 상장했습니다. 이때 생각했죠 '차라리 의사가 되는게 나을걸 그랬나..?'.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매일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저는 늘 일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 일을 사랑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너무 지쳐서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의대에 가지 않은 것을 마침내 용서했고, 아무도 다시는 저에게 야망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우리 모두는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해내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두 가지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과 일.​​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는 사랑과 일이 같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일에 열정적입니다. 일은 제게 큰 만족감과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줍니다. 하지만 열정과 사랑은 다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저는 제 가족, 몇몇 소중한 친구들, 네 마리의 고양이, 두 마리의 개, 일본의 벚꽃, 태평양 섬의 해변, 그리고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사랑합니다.


일에 대한 제 감정은 매우 강렬하지만, 사랑과는 다릅니다. 미 해군 광고에 "단순한 직업이 아닌, 모험이다(It's not a job it's an adventur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해온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입니다.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제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모험. 어떤 모험이든 그렇듯, 저는 그것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요. 저의 모험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여러분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위대한 모험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세대는 모든 세대가 그랬듯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할 것입니다. 불가능은 가능성으로 변하고, 예상치 못한 기회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배우고 성장하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동안, 여러분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 또한 여러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도전할 때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의견에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 각자는 여러분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닌, 여러분이 누구인지 발견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닌, 여러분의 꿈을 살 기회를 가졌습니다. 곧 많은 분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여러분의 흥미를 끌고, 도전 의식을 주고, 목적 의식과 만족감을 주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찾으세요. 분명히 존재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지만, 저처럼 열정에 불을 지피는 직업을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세요. 아니, 저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찾기를 바랍니다.

<미 해군 포스터, 출처: Click Americana >
<미 해군 포스터, 출처: Click America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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