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고통은 선택의 영역입니다." Drop Box의 추락 그 이후 이야기

<원문: Behind the founder : Drew Houston | Lenny's Podcast>

2026.01.07 |
from.
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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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쿠키

비즈니스 대가들의 에세이와 인터뷰를 번역된 글로 받으실 수 있어요 :)

Editor: Sherpa

 

안녕하세요, 비즈쿠키입니다.

 

비즈쿠키는 비즈니스 대가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혁신적이고, 놀랍고, 압도적인 성과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죠.
그래서 이따금 그들이 겪은 실패와 고난은 성공의 후광에 휩싸여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성공은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와 봤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져 가장 깊이 떨어졌기에,
그만큼 처절하고 치열한 고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글은 다소 길기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솔직하고 구체적인 인터뷰였던 것 같은데요,
두 호흡 정도로 끊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글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저자 소개


첨부 이미지

드류 휴스턴(Drew Houston)은 MIT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2007년 드롭박스를 창업하여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스티브 잡스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배짱과 10조 원 가치의 기업을 일궈낸 실행력으로 유명하며, 창업 초기부터 제품의 본질적인 가치와 엔지니어링적 완결성을 최우선으로 여겨왔습니다. 페이스북(메타)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며 빅테크 생태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시에, 최근에는 '창업가 모드(Founder Mode)'를 직접 실천하며 드롭박스의 체질 개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DropBox 소개


<드롭 박스(Drop Box), 출처: Drop Box>
<드롭 박스(Drop Box), 출처: Drop Box>

드롭박스(DropBox)는 2007년 Y-Combinator를 통해 데뷔한 후 '세퀘이아 캐피털' 등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최초로 가입자 5억 명을 돌파하며 2018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단순함'과 '동기화 속도'라는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성장했으며, 최근에는 수많은 SaaS 도구 사이의 파편화된 정보를 한곳에 모아주는 AI 기반 통합 검색 엔진 '드롭박스 대시(Dash)'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Editor's Pick!


  •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를 죽인 게 아니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죽인 거지.” 그 말이 정답이었습니다. 드롭박스의 문제는 자멸적인 요소가 컸어요.
  • 저의 어떤 점이 회사를 망치고 있는지 뼈아프게 질문했습니다. CEO의 강점과 약점은 회사에 고스란히 증폭되어 나타나거든요.
  • 상황이 힘들 수는 있지만, 고통받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만들고, 회사를 원망하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성장 곡선이 회사의 성장 곡선보다 늘 앞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1년 뒤, 5년 뒤에 무엇을 알아야 할지 미리 리스트를 만들고 불편함을 향해 달려가세요. 
  •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기 쉬운데, 100%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가상 인터뷰

본 아티클은 유튜브 <Behind the founder : Drew Houston | Lenny's Podcast>의 내용을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Q. 드류, 인터뷰에 참여해 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드롭박스의 초기 성장은 잘 알지만, 그 뒷이야기는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드롭박스를 세 가지 시대로 나누어 보면, 첫 번째는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던 때입니다. 두 번째 시대는 모두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시기이고요. 그리고 현재인 세 번째 시대는 드롭박스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단계이고요. 이렇게 나누는 게 맞을까요?

 

, 정확합니다.

 

Q. 좋습니다. 그럼 첫 번째 시대부터 이야기해 보죠. 당신의 기억에 남는 중요한 순간들, 혹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순간들부터 시작해 볼까요?

 

저는 드롭박스를 순전히 개인적인 불만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뉴욕 여행을 가는 데 USB 드라이브를 깜빡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거든요. 거기에서부터 코딩을 시작하며 드롭박스를 구상했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 중에는 와이콤비네이터(YC) 활동을 하던 친구가 많았어요. 저 역시도 YC에 들어가기 위해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이 하루 종일 무엇을 할지 거꾸로 생각하며 가설을 세웠죠. 그도 저나 다른 사람들처럼 해커 뉴스에서 새로고침만 누르고 있을 거라는 가설이었죠.

<최고의 스타트업 엑셀레이터로 꼽히는 YC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 출처: Writing Routines>
<최고의 스타트업 엑셀레이터로 꼽히는 YC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 출처: Writing Routines>

 

Q. ‘폴 그레이엄이 하루 종일 무엇을 할까?’라니, 재밌네요.

 

, 그때가 21살이었죠. YC와 대학 입시의 공통점은 아주 좁은 문에 수많은 지원자가 몰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든 눈에 띄거나 남들이 모르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제가 읽었던 게릴라 마케팅이라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돈이 없을 때 마케팅하는 법을 다룬 책이었는데, 당시 저도 돈이 없고, 혼자였거든요. 아주 딱 맞았죠. 그래서 저는 드롭박스가 제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아주 솔직하게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해커 뉴스 1위에 이틀 동안 올라가 있었어요. 지금은 불가능한 일이죠.

 

아니나 다를까, 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뒤로 공동 창업자인 아라쉬를 찾았고, 우리는 승승장구했어요. 첫 장을 요약하자면, 어느 순간 저는 바다에서 작은 판자 하나를 타고 노를 젓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100피트 높이의 거대한 해일 위에 올라타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기분이었어요.

 

Q. 그런 승승장구하는 시기가 얼마나 지속되었나요?

 

처음 몇 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제가 24살이었던 2007년부터 2014년까지 첫 7년은 정말 미친 듯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YC를 마치고 데모 데이에서 첫 투자자들을 만났죠. 거기서 만난 엔젤 투자자 페즈만은 나중에 저희를 세퀘이아 케피털에 소개해 줬구요. 그렇게 2007년에 YC를 마치자마자 세퀘이아에서 시드 머니를 투자받았습니다.

<2007년 YC에서 찍은 드류, 출처: First Round Review>
<2007년 YC에서 찍은 드류, 출처: First Round Review>

초기에는 거의 코딩만 하고 고객들과 대화하는 게 전부였죠. 하지만 해야 할 일이 급격하게 많아졌습니다. 2007년에 첫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2008년 런칭을 했어요. 밈을 잔뜩 넣은 영상들을 DiggReddit에 올렸는데, 엄청 바이럴이 돼서 베타 대기자가 하룻밤 사이에 5,000명에서 무려 85,0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이후로도 추천 프로그램과 공유 폴더를 활용한 바이럴 메커니즘을 찾아냈고, 처음 몇 년 동안 드롭박스는 바이럴을 타고 확장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마케팅에만 신경 쓰진 않았습니다. 제품에도 엔지니어링적인 사고방식을 적용했어요. 소중한 사진이나 세금 신고서 같은 걸 넣어두는 드롭박스가 오작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기 전에 베타 기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이렇게 엔지니어링적 사고와 바이럴 방식이 먹혀서 처음 몇 년간은 매년 2, 10배씩 성장했습니다. 사용자 수를 종이에 뽑아서 벽에 붙여놨는데, 벽이 꽉 차서 천장에까지 10, 20, 50, 100, 1,000만 명 수치를 붙여야 했죠. 정말 짜릿하면서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받는 일이었어요. 2007년에 600~700만 달러였던 가치가 2008년에는 2,700만 달러, 2011년에는 40억 달러가 되었고 포브스 표지에도 실렸죠. 그 모든 경험이 비현실적이었습니다.

 

Q. 사용자 수치가 천장까지 말 그대로 천장까지 닿았군요. 당시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주네요. 그럼, 이제 두 번째 시대로 넘어가 보죠. 모든 게 잘 풀리고 계속 성장하고 있었지만 2015년은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결정적인 해였습니다. 맞나요?

 

, 드롭박스의 질풍노도의 청소년기가 시작된 시점이 아마 2013~14년쯤이었을 겁니다. 사실 그 전인 2011~12년부터 이미 거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애플, MS, 구글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경쟁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묘한 게, 저 멀리서 핵폭탄이 터져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게 보이는데 당장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2011년에 스티브 잡스가 무대 위에서 아이클라우드를 발표하며 드롭박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고 구시대의 유물이 될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는 구글이 구글 드라이브를 출시할 거라는 소문 속에서 늘 긴장하며 살았습니다. 언제 저 칼날이 우리에게 떨어질까 벌벌 떨면서 초기 몇 년을 보냈죠. 그런데 막상 제품들이 출시되어도 저희 지표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습니다. 언론은 경쟁을 마치 한 발의 총성처럼 묘사하더군요. 하지만 제가 배운 경쟁은 서서히 조여오는 보아뱀에 더 가까웠습니다.

<icloud를 설명하는 잡스,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icloud를 설명하는 잡스,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Q. ‘보아뱀이라니, 오히려 당장 피해가 보이지 않기에 더 치명적일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첫 장이 끝날 무렵 저희는 드롭박스가 모두를 위한 제품이라는 점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초기에는 드롭박스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설명하기가 어려웠어요. 마치 전화기가 무엇을 위한 건가요?”, “컴퓨터는 무엇을 위한 건가요?”라는 질문과 비슷했거든요. 기능이 명확했고, 범용성이 넓어서 뾰족하게 정체성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축복이었습니다. 누구든 드롭박스 같은 무언가가 필요로 했으니까 바이럴 루프가 정말 잘 작동했죠.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기 전에도 저희는 사람들이 우리를 주로 기기 백업이나 저장소, 사진 공유, 또는 직장 내 협업 공간으로 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즈케이스들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죠. 예를 들어 IT 관리자가 원하는 파일 서버 대체제와 일반 사용자가 원하는 사진 공유 앱의 이상적인 모습은 전혀 다르니까요. 또한 우리가 기기나 운영체제 자체와 경쟁하게 될 거라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폰을 처음 켰을 때 드롭박스 광고가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Q. 이미 드롭박스의 포지션을 인지하고, 미래의 경쟁도 어느 정도 예상했군요. 그렇다면 그 뒤에 행동으로 이어진 대처가 있었나요?

 

저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했습니다. 첫 번째로 IT 관리자들에게 사진 공유 기능이 왜 여기 있느냐는 불만을 잔뜩 들은 뒤에, 그 기능을 떼어내 캐러셀(Carousel)’이라는 별도의 앱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휴대폰의 물리적 저장 용량 한계를 극복하고, 클라우드에 모든 사진을 저장하되 마치 로컬에 있는 것처럼 빠르게 보여주는 게 핵심 가치였죠.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 드롭박스를 업무용으로 쓰는 걸 보고 인접한 워크플로우를 공략하기 위해 메일박스(Mailbox)’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했습니다. 엄청난 대기 명단으로 유명했던 팀이었죠. 저희는 이게 우리의 인스타그램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에 저는 무대 위에서 드롭박스가 당신의 인생을 기억하는 방식이자 새로운 모바일 생산성 도구가 될 것이라는 미래를 그렸습니다. 지표는 환상적이었어요. 사용자 수, 매출 모두 좋았고 런칭 1년 만에 우연히 현금 흐름도 흑자로 돌아섰죠. 하지만 보기에만 좋았을 뿐, 겨울이 오고 있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Q. 성과 지표는 매우 훌륭한데, 그렇게 느낀 이유가 있을까요?

 

2015년이 되자 회사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오랫동안 우리가 너무 많은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장소로는 기기 제조사. 사진으로는 페이스북, 스냅, 인스타그램, 구글, 애플. 생산성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과 경쟁하고 있었죠. 게다가 슬랙 같은 새로운 회사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무대에서 캐러셀과 메일박스가 회사의 미래라고 떠든 지 1년도 안 되어 구글 포토가 출시됐습니다. 구글 포토는 저희가 한 것과 거의 비슷하면서도 구글만의 강력한 가치를 제공했고, 결정적으로 평생 무료 무제한 용량 내세웠습니다.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까지도요. 저희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핵으로 날려버린 셈이죠.

<Google Photos, 출처: The Verge>
<Google Photos, 출처: The Verge>

 

이게 정말 뼈아팠던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큰 수치심을 느꼈어요. 어떻게 이걸 미리 대비하지 못했을까 싶었죠. 그때부터 드롭박스는 무엇을 해도 잘되는 회사에서 무엇을 해도 안 되는 회사로 전락했습니다.

 

구글 포토가 출시된 그해 여름, 저는 이 실수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어떻게 하면 경쟁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문제는 거물들이 우리 제품을 복제해서 자기네 플랫폼에 묶어버리고 수익 구조를 파괴한다는 거였어요. 구글 포토가 안드로이드에 탑재되어 무료로 풀린 것처럼요. 투자자들은 드롭박스가 차별점 없는 커모디티(Commodity, 범용 상품)’라고 비판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드롭박스 비즈니스 모델에 정말 치명적이었군요.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기업들은 이런 경쟁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때 AG 래플리와 로저 마틴이 쓴 승리의 선택(Playing to Win)’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범용 상품을 판다고 생각한다면, 진짜 종이 타월을 파는 P&G 같은 회사는 어떨지 생각했어요. 당시 P&G CEO였던 AG와 로저는 경쟁과 시장, 우위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뤘습니다.

 

요지는 어디서 싸울지(Where to play), 어떻게 이길지(How to win)를 아주 냉정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거였죠. 우리가 1등을 할 수 있는 시장만 골라내고, 우리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했습니다. 드롭박스는 하나의 제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시장에 걸쳐 있었고, 가장 큰 위험은 모든 시장에서 어중간한 2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AG와 로저, 출처: 1 Hour Guide>
<AG와 로저, 출처: 1 Hour Guide>

 

또 다른 큰 영감을 준 책은 앤디 그로브의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인텔이 겪은 비슷한 위기를 다루는데, 70년대에 인텔은 일본 경쟁사들이 더 빠르고 싸게 제품을 내놓으면서 큰 위기에 처했죠. 지표상으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예전에는 당연히 따냈던 계약들이 안 풀리는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블랙베리나 노키아도 아이폰 출시 이후에 역대 최고 매출을 찍었던 것처럼, 이런 변화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거든요. 앤디 그로브는 이를 전략적 변곡점이라고 불렀습니다. 드롭박스가 딱 그 상황이었죠.

 

당시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앤디와 고든 무어는 우리가 우리 회사의 컨설턴트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결론은 당시엔 주력이었던 메모리 사업을 접고 작고 불확실했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올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구글이 2010년에 검색 사업을 접고 유튜브에 올인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미친 소리로 들렸죠. 앤디 그로브는 전략적 변곡점에서는 옵션을 늘리거나 양다리를 걸치기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를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Q. 선택과 집중이군요. 하지만 이미 투자를 끝내고 직원들이 있는 상황에서 정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고통스럽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저는 74일 독립기념일 연휴에 가족들과 뉴햄프셔에 가서 그 책을 다시 읽고 돌아와 결단을 내렸습니다. 캐러셀과 메일박스를 종료하고 생산성 도구에 올인하기로요. 구독자의 80%가 업무용으로 쓰고 있었으니, 논리적으로는 쉬운 결정이었지만, 드롭박스의 상징과도 같았던 소비자용 서비스와 사진 공유 등을 포기하는 건 정말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한다고 바로 좋아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언론은 드롭박스가 첫 번째로 망한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이 될 것이라는 기사를 매주 쏟아냈죠. 기자들은 사무실 근처에 차를 대놓고 방금 해고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익명 제보가 사실인 양 실어 날랐죠.

 

채용 시장에서 저희는 완전히 얼어붙었습니다. 성공한 창업자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직원들이 회사 티셔츠를 부끄러워하고, 저 자신조차 그 옷을 입고 싶지 않을 만큼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 내부적으로도 엉망이었어요. 매출은 급격히 늘었는데 그에 맞는 인프라와 운영 능력을 갖추지 못해 다들 패닉 상태였죠. “드류, 캐러셀이랑 메일박스 안 하면 이제 뭐 해?”라고 묻는데, 솔직히 저도 당장 답을 알았다면 이미 하고 있었겠죠. 창업자이자 CEO로서 모두가 빠른 해결책을 원하며 저를 쳐다보고 있는데, 속으로는 대체 우리를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라고 원망하는 게 느껴지는 그 시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Q.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면, 화려하게 런칭해서 승승장구하며 여러 기회를 포착해 기업용, 개인용, 사진, 생산성 등 다양한 라인을 구축했는데, 거물들이 뛰어들면서 서너 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게 된 거군요. 애플의 런칭은 보이지 않는 구름 같았지만, 구글 포토는 명확한 위기였다고 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봤을 때 그때 다르게 해야 했을 일이 있었나요?

 

애플 때도 사실 패닉이긴 했습니다. 덜 공개적이었을 뿐 내부적으로는 난리가 났었죠. 그런데 오히려 구글 드라이브나 아이클라우드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 지표에 별 영향이 없는 걸 보고 놀라기도 했어요.

 

저는 넷스케이프나 마이스페이스 같은 사례들을 연구했는데,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넷스케이프를 무너뜨린 건 1.0이나 2.0 때가 아니라 4.0, 5.0쯤 되어 번들링이 강력해졌을 때였습니다. 제품 출시와 실제 타격 사이에는 큰 시차가 존재하거든요. 보아뱀처럼 매 순간 조금씩, 하지만 결국엔 숨을 못 쉬게 조여오는 방식이죠.

 

다행히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당시 그 회사들에 있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인 빌 캠벨에게 넷스케이프 시절 마이크로소프트의 번들링이 얼마나 불공정했는지 물었더니, 그는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우리를 죽인 게 아니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죽인 거지.” 그 말이 정답이었습니다. 드롭박스의 문제는 자멸적인 요소가 컸어요. 확장을 시도하느라 정작 드롭박스 본연의 제품은 정체되어 있었거든요.

<전설적인 실리콘밸리 코치 빌 캠벨, 출처: CNBC>
<전설적인 실리콘밸리 코치 빌 캠벨, 출처: CNBC>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뽑았지만, 회사로서 내리는 결정들은 어리석을 때가 많았습니다. 저도 이론적으로는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자만심에 빠져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며 안주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구글 포토 사태는 저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하와이에 집을 사서 잠시 도망치듯 가 있기도 했지만, 마음은 전혀 편치 않았습니다. 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저 자신이 완전히 다른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Q. 세 번째 시기의 시작이군요. 새로운 리더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그때 도움이 된 건 평정심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명상과 마음 챙김을 통해 저 자신과 회사를 분리하려고 노력했어요. 창업자가 성공하면 회사의 정체성과 자신의 정체성이 합쳐지기 쉬운데, 그러면 회사가 흔들릴 때 자신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게 되거든요. 그걸 분리해야 했습니다.

 

세상에 영원히 우상향만 하는 이지 버튼같은 건 없다는 걸 인정했죠. 제 영웅들도 다 광야에서 헤매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련이 결국 그들을 단련시킨 거니까요.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다. 이건 창업가로서 훈장을 다는 과정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출처: FATHERHOOD.ORG>
<출처: FATHERHOOD.ORG>

 

저는 20대 내내 학점 따고 좋은 대학 가고 YC 합격하고 투자받는 식으로 마치 비디오 게임의 업적을 깨듯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기업가치 100억 달러 같은 최종 보스까지 다 깨고 나니, 이제 드롭박스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 내가 세상에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목적의식을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숫자를 키우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어요. 영혼을 갈아 넣은 제품이 경쟁사에 짓밟히고 직원들을 고생시키는 것도 지긋지긋했고요. 결국 저는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불평 좀 그만해. 네가 원했던 가파른 학습 곡선이 바로 여기 있잖아. 수백만 명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멋진 동료들과 일하는 건 축복이야.” 일에 대해 피해 의식을 갖거나 원망하기 시작하면 그 독성이 모든 것을 망치게 되니까요.

 

Q. 그렇게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나요?

 

한두 번의 깨달음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가끔 회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생각 주간을 가졌던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매일 불을 끄느라 정작 어디를 조준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휴가 때나 하려던 고민을 업무의 우선순위로 끌어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빌 캠벨의 말처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라는 점을 인정하고, 저의 어떤 점이 회사를 망치고 있는지 뼈아프게 질문했습니다. CEO의 강점과 약점은 회사에 고스란히 증폭되어 나타나거든요. 저의 개인적인 사각지대가 문화적 결함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에니어그램(Enneagram)’이라는 성격 유형 지표가 큰 도움이 됐어요.

<애니어그램은 9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성격 검사이다, 출처: Kortivity>
<애니어그램은 9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성격 검사이다, 출처: Kortivity>

 

저는 7번 유형인 열정가였는데, 코치가 제 강점으로 창의성, 사람에 대한 애정, 혼돈 속의 회복탄력성을 꼽았다면, 약점으로는 루틴에 대한 지루함, 무질서, 그리고 갈등 회피를 꼽더군요. 이 두 면을 합쳐보면 명확해집니다. 저는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그들에게 듣기 싫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그 결과 회사는 갈등을 피하며 예측 가능한 실수들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무질서한 성격이 직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었고요. 제 성격적 결함이 회사를 침몰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Q.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에서부터 탐색하기 시작했군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성공한 창업자와 회사는 닮아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서야 제가 직접 고치거나, 혹은 그런 약점이 없는 사람들을 고용해서 회사가 제 개인적인 역기능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비즈니스 이슈부터 해결했어요. 돈을 낭비하는 무리한 확장보다는 수익성을 챙기기로 했죠. 2016년에 현금 흐름 흑자를 달성했고, 이는 2017년 매출 10억 달러 달성과 2018년 상장으로 이어지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비전과 미션도 세웠고요. 또한 제가 CEO라는 직업을 계속 즐길 수 있도록 2016~17년에는 머신러닝을 공부하며 지루한 행정 업무들을 자동화하기도 했습니다. CEO20~30대에 정점을 찍는 스포츠 선수와 달리 평생 배워도 마스터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숫자를 쫓기보다는 위대한 CEO가 되는 장인 정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Q. 말씀하신 많은 내용이 창업가 모드(Founder Mode)’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시장의 변화를 읽는 건 창업자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해결책이었다는 점도 그렇고요. 당신이 생각하는 창업가 모드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게 창업가 모드란 일종의 진화 과정입니다. 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 모든 디테일에 관여하죠. 그러다 벤 호로비츠가 말한 제품 CEO의 역설에 빠집니다. 첫 번째 죽음은 창업자가 권한 위임을 못 해서 발생하죠. 그래서 권한을 넘기고 추상화된 수준에서 일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죽음은 창업자가 현장과 너무 멀어질 때 발생합니다. 제가 겪었던 혼란이 바로 그 때문이었어요. 제가 너무 멀어지니 방향 설정이 안 되고 조직은 혼란에 빠졌죠. 창업가 모드로의 전환은 이건 내가 원하는 회사가 아니야. 내가 더 깊숙이 관여해야겠어라고 결심하는 순간입니다. 타협하고 사과하는 걸 멈추고 주도권을 되찾는 거죠.

 

이 과정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도 광야에서 헤매던 시절을 거치며 자신들의 해로운 본능을 깎아내고 강력한 직관과 확신을 얻었거든요. CEO는 자신보다 해당 분야를 더 잘 아는 임원들을 고용하지만, 그들에게 너무 맡겨버리면 방향성을 잃게 됩니다. 창업가 모드는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 확신을 가지고 회사를 이끄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 출처: Medium>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 출처: Medium>

 

Q. 좋습니다. 이 시점이 현재 당신의 이야기로 돌아오는 데 좋은 연결고리가 될 것 같네요. 드류, 당신은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팀, 비즈니스, 제품을 모두 재부팅하고 있죠. 새로운 드롭박스의 시작은 어떠한가요?

 

드롭박스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남들이 10분 뒤면 다 따라 할 일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 진짜 문제를 찾았죠. 그건 바로 우리가 온종일 회의와 이메일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중요한 창의적인 일은 하나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너무 바쁘지만 생산적이지는 않은, 뇌과학적으로 봐도 행복과 생산성의 핵심인 몰입(Flow)’집중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죠.

 

코로나 이후 우리는 사무실이 아닌 스크린 속으로 이사했지만, 그 스크린은 끊임없는 알림과 방해 요소로 가득한 지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게 도구의 문제라고 봤습니다. 도구는 원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장치여야 하는데, 어느 순간 우리를 억누르는 방해꾼이 되었거든요. 슬랙 같은 도구들은 하루를 조각조각 내고 우리를 인지적 당뇨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롭박스의 새로운 미션을 더 깨달음이 있는 업무 방식을 설계한다로 정했습니다.

<출처: Drop Box blog>
<출처: Drop Box blog>

 

저희는 먼저 우리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세상을 다르게 일할 거대한 기회로 봤죠. 저희는 버추얼 퍼스트(Virtual First)’ 모델을 도입해 90% 원격 근무를 실시하고, 분산 근무를 위한 새로운 제품 스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격 근무에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게 맥락입니다. 그걸 슬랙이나 줌으로 때우려니 비효율이 극에 달하죠.

 

해결책은 더 철저한 문서화인데, 그러다 보면 문서가 너무 많아집니다. 왜 집에서는 구글 하나로 모든 걸 찾는데, 회사에서는 10개의 검색창을 뒤져야 할까요? 그래서 저는 2018년에 직접 개인용 검색 엔진을 하나 코딩해 봤습니다. 파일 제목이 계획이어도 전략이라고 검색하면 찾아주는 검색 기능을 넣었더니 정말 잘 작동하더라고요.

 

이후에 저희는 유니버설 검색 기술을 가진 캔디(Candi)’라는 회사를 인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드롭박스 대시(Dropbox Dash)’라는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대시는 모든 앱을 연결해 통합 검색을 제공합니다. GPT와 달리 당신의 실제 데이터에 연결되어 있어서 작년 제품 런칭 때 썼던 그 슬라이드 어디 있어?” 같은 개인화된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출처: MultiCloud>
<출처: MultiCloud>

 

사실 이건 드롭박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풀고자 했던 내 물건을 찾고, 정리하고, 공유하고, 보호하기 어렵다라는 문제를 클라우드 시대에 맞게 재정의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기기 간의 흩어짐이었다면 이제는 브라우저 탭과 수많은 SaaS 툴 사이의 흩어짐이 문제인 거죠. 제가 오늘 드롭박스를 새로 만든다면 내놓았을 모습입니다.

 

Q. 비즈니스 조직 측면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많은 SaaS 기업이 겪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Slump)’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첫 제품은 대박 났지만, 다음 히트작을 내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거든요. 조직 구조를 기능 중심에서 제품 중심의 사업부(BU) 체제로 바꿨습니다. 그래야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고 여러 제품을 동시에 잘 키울 수 있으니까요.

 

또한 성공의 덫에 빠진 문화를 뜯어고쳐야 했습니다. 성공하면 절실함이 사라지고 고객보다는 다른 부수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저는 직원들에게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고객에게 준 유일한 변화는 가격 인상뿐이었다. 대체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라며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장인 정신을 회복하고, 남 탓하지 않는 하이 에이전시(High Agency : 높은 주도성을 강조하는)’ 문화를 강조하며 임원진도 전부 교체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시니어리티 갭(Seniority Gap)’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정체되면 유능한 인재들이 떠나고, 그 빈자리를 내부 승진으로 메우게 되는데 이게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경험 없는 리더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직의 속도를 늦추거든요. 빵빵한 연봉을 제시하는 빅테크들과의 인재 전쟁 속에서 억지로 직급을 높여 채용하는 방식도 결국 조직의 역량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지금은 경험 있는 시니어와 잠재력 있는 주니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창업가들에게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네요. 마지막으로,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상황이 힘들 수는 있지만, 고통받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만들고, 회사를 원망하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개인의 성장 곡선이 회사의 성장 곡선보다 늘 앞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독서를 통해 이를 실천합니다. 넷스케이프나 P&G의 역사에서 배우고, 같은 단계나 혹은 더 앞서간 동료 창업자 커뮤니티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내가 1년 뒤, 5년 뒤에 무엇을 알아야 할지 미리 리스트를 만들고 불편함을 향해 달려가세요.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하기 쉬운데, 100%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드류 휴스턴, 출처: Tim FerrisS>
<드류 휴스턴, 출처: Tim Ferr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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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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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환의 프로필 이미지

    정환

    0
    11 days 전

    이번 글 좋았습니다. 드롭박스의 위기와 그것을 극복한 방법. 특히 '개인의 성장 곡선이 회사의 성장 곡선보다 늘 앞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현재 저의 상황에는 다른 글보다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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