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비범한 인생

원문: <BBQ | Musings of life>

2026.07.08 |
from.
비즈쿠키

Editor: Alex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마츠 스틴이라는 노르웨이 소년입니다. 그는 근육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병, 듀센 근이영양증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몸이 불편해질수록 마츠는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두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벨린이라는 이름으로, 두 다리로 세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2014년, 마츠는 스물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을 보내며 부모님이 가장 마음 아파한 것은, 마츠가 우정도 사랑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도 끝내 하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의 부고를 마츠가 오랜 시간을 머물던 인터넷에 올립니다. 그러자 뜻밖의 일이 일어납니다. 함께 게임을 하던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중 많은 이들이 마츠에게서, 정확히는 그의 캐릭터 이벨린에게서 마음의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츠는 게임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조용히 곁을 지켜준 진짜 친구였습니다. 그의 조언 덕분에 소원했던 아들과 다시 가까워진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남들의 눈에 마츠는 방에 갇힌 환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그는 기꺼이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동료였고, 잊지 못할 친구였습니다. 세상이 그를 어떻게 보았든, 마츠는 자기 자리에서 누구보다 비범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마츠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매일 어떤 싸움을 치렀는지, 그리고 무엇으로 그 하루하루를 버텨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벨린과 마츠, 출처: ny times>
<이벨린과 마츠, 출처: ny times>

에세이

본 아티클은 <BBQ | Musings of life>의 내용을 번역 및 편집한 글임을 밝힙니다.


가끔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왜 어떤 아이들은 죽는 걸까? 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살지 못할까? 나는 왜 하필 이런 몸을 갖고 태어났을까? 이 우주의 모든 일이 정말 누군가의 말대로 순전히 우연일까? 아니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러니까 운명에 이끌려 사는 걸까? 솔직히 나는 그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태어났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해본다. 그때 다른 난자가 선택됐더라면 어땠을까? 그 아이는 평범한 사내아이로 자랐을까? 그랬을지도 모르지. 부질없는 생각이다. 또 그 생각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24년째 이 자리를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머물 생각이다. 운명이 허락해준다면 말이다.

 

삼촌이 가족 바비큐 파티에 나를 불렀다. 삼촌 집은 너른 평지에 자리 잡은 데다 전부 단층이다.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집이다. 할아버지도 오셨는데, 이제 여든다섯쯤 되셨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나를 보러 오시질 못한다.

 

시간이란 참 얄궂다. 뵐 때마다 할아버지는 부쩍 늙어 계신다. 할아버지는 짧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셨다. 지팡이에 몸을 맡긴 채 허리를 굽혀 나를 꼭 안아주시는데, 그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 손자가 그리우셨던 거다. 할아버지가 눈물 보이시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다. 전직 경찰관답게 평생 강단 있게 사신 분이니까.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서, 나도 따라 울어야 하나 할아버지를 다독여드려야 하나 갈팡질팡했다. 결국 후자를 택했지만, 두고두고 뭉클한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를 유치원이며 학교며 차로 데려다주셨고,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나와 여동생을 도맡아 돌봐주셨다. 내가 존경과 감사를 다 바쳐도 모자란 분이다. 물론 별난 구석도 만만치 않다. 세상 엉뚱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시니까.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그런 돌발 발언에 번번이 질색하시지만, 나는 그저 웃어넘긴다. 연세도 지긋하신데, 괴짜로 사시겠다면 그러시라지 뭐.

 

이번 바비큐에는 나를 돌봐주시는 활동 보조사 한 분을 모시고 갔는데, 할아버지가 그분을 보더니 대뜸 이러셨다. "내 손자하고 나 사이엔 약속이 하나 있어. 이 녀석이 먼저 가면 내가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고, 내가 먼저 가면 이 녀석이 내 추도사를 읽기로." 벌써 10년 가까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지만, 나는 이 약속을 꼭 지킬 참이다. 할아버지를 평생 잊지 않을 테니, 그분을 기리는 말은 내가 하겠다.

 

파티에는 다른 식구들도 여럿 모였다. 할머니에 사촌들까지 죄다. 여동생은 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둘이 아주 깨가 쏟아졌다. 저녁이 무르익자 놀 시간이 돌아왔다. 우리는 정원에서 크로케(역주: 미니 골프와 비슷한 마당 스포츠)를 쳤는데, 웃음이 그칠 새가 없었다. 특히 어머니가 나서셨을 때는 아주 배꼽을 잡았다! 어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손에 꼽게 웃긴 분이라, 기분만 좋으시면 주변까지 즐거워진다. 나는 어머니와 한편이었고, 지긴 했어도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나, 이거 하나만큼은 마음이 통할 거다. 재미있게 놀았다면 굳이 이길 필요가 없다는 것.

 

잠깐이지만 전형적인 미국 동네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푸짐한 바비큐, 화기애애한 분위기, 정원에서 벌어지는 게임들, 그리고 시야 끄트머리로 휙휙 날아다니는 미식축구공까지. 사촌들이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딱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장면 그대로. 신기하기도 하고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미군이 주둔하는 기지 옆에 살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물이 들게 마련인가 보다. 사촌네는 독일의 미군 기지에서 몇 년을 살았다.

 

물론 나는 호흡기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새 기계를 챙겨 나선 첫 나들이다운 나들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단단히 채비를 했다! 틈날 때마다 충전을 챙겼고, 내가 먹을 음식도 따로 싸 갔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얘기했지만, 나는 뭐든 미리미리 계획하고 대비해야 하는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가 아차 하고 놀라셨다. 내 음식 기계를 두고 온 것이다. 그냥 그렇게 부르련다. 사실상 펌프인데, 유동식을 급식 튜브로 흘려 넣어주는 장치다. 씹는 것만으로도 금세 지치는 나에게는 여간 요긴한 물건이 아니다. 이 기계 덕에 내 삶이 달라졌다. 한때는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갔고, 몸은 뼈에 가죽만 겨우 붙은 꼴이었다. 지금은 한결 튼튼해졌고, 제 몫을 하며 살 만큼 살도 붙었다. 하기야 이런 나라(노르웨이)에서 굶어 죽는다면 그것도 참 우스운 노릇 아닌가. 아무튼 우리는 기계를 다시 챙겨 곧장 집으로 향했다. 동네 주유소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고서.

 

나에게 가족은 두말할 것 없이 소중한 존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늘 내 뒤를 지켜준 사람들이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건 그들에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준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모두. 그들 덕에 내 삶이 이만큼 풍성해졌고,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 조금 감상에 젖어버렸지만, 한 마디 한 마디 다 진심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기댈 곳이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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