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의 새 길을 묻다: 박혜진 대표가 말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모든 것
박혜진(Summer) 대표

- 주식회사 바이야드 대표이사
- 심산 벤처스(Simsan Ventures) 투자 총괄 파트너
- 서강대학교 AI 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 저서: <스테이블코인 머니 리셋>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던 정치철학도가 있었다. 그는 인위적인 국경이 갈등의 씨앗이라 생각했고, 국경을 허물 방법을 고민했다. 2017년, 그는 비트코인을 만났다. 돈의 흐름이 자유로워지면 국가 간 의존도가 높아져 강제적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혔다.
이 이야기는 박혜진(Summer) 대표가 블록체인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학계(서강대 교수), 산업(블록체인 기업 바이야드 창업), 그리고 금융(VC 투자 총괄)을 넘나들며 대한민국 기술 생태계의 글로벌 확장을 위해 달려온 그는 이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한 핵심 의제로 제시한다. CDFi가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1부: 길을 찾아서 - 정치철학에서 블록체인까지
Q1. 정치철학에서 시작해 블록체인과 금융 전문가가 되기까지, 독특한 이력입니다. 어떤 계기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이었어요. 세계 평화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돈’의 가능성을 봤죠. 하지만 막상 기술을 파고드니, 정치철학도의 언어와 개발자의 언어는 너무 달랐습니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하며 이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한 가지 확신이 생겼습니다.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와 연결될 새로운 ‘레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한에 막혀 물리적 확장이 어려운 우리에게 그 레일은 곧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이 될 수밖에 없죠.
Q2. 학문적 관심이 어떻게 구체적인 산업 활동으로 이어졌나요? 한국의 초기 블록체인 환경은 어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희귀한 경험이 '글로벌 B2C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기업들은 ICO(초기코인공개)를 통해 좋든 싫든 글로벌 고객과 직접 부딪히며 체력을 길러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2018년 ICO를 전면 금지하면서 그 기회를 박탈당했죠. "블록체인 산업은 진흥하되, 코인은 없앤다"는 모순적인 기조 아래, 정상적인 기업들은 성장할 수 없었고 오히려 이상한 방식으로 자금을 모으는 사기꾼들만 득세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제대로 된 생태계를 만들고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2부: 현실 진단 - 가로막힌 길, 기로에 선 대한민국
Q3. 현재 한국의 스테이블 코인 논의, 그 현주소를 구체적으로 짚어주신다면? 어떤 지점에서 가장 큰 이견이 발생하고 있나요?
한마디로 ‘쓸데없는 논의’에 발목이 잡힌 상황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할까, 말까’를 두고 싸우고 있지만, 이건 사실 ‘어떻게 잘할까’를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초기에는 발행사의 자본금 규모 같은 지엽적인 문제로 다퉜습니다. 처음 법안 제안은 자본금 50억원을 요구했는데, 그러면 스타트업은 참여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민병덕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 기본법에서는 이를 5억원으로 낮추었습니다. 저도 그 논의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요. 스테이블코인은 100% 준비금 기반이라 자본금 규모보다 투명한 준비금 관리가 핵심입니다. 이제는 ‘은행이 준비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니 은행만이 발행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논점이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투명한 준비금 관리'라는 목표에 대한 편협한 해결책에 불과합니다.
Q4. 대표님께서는 '금피아(금융 마피아)'의 저항을 언급하셨습니다. 기득권의 논리와 혁신을 추구하는 측의 논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있습니다. 기득권, 특히 한국은행 등은 '안정성'을 명분으로 은행 중심의 시스템을 고수하려 합니다. 은행이 가장 잘 관리할 수 있으니 은행이 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죠. 하지만 혁신은 늘 기존 시스템 밖에서 나왔습니다. 국내 은행들은 예대마진으로 쉽게 70%가 넘는 수익을 내는 구조에 안주해왔습니다. 과연 이들이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리스크를 감수하며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 동기가 있을까요? 혁신을 주장하는 측은 '민간과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뛰어놀 환경을 열어주되, 이들이 은행 수준의 안정성을 갖추도록 어떻게 제도를 설계할 것인가'를 논의하자고 말합니다. 방향을 먼저 정하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자꾸만 현재의 이익 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논리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3부: 미래를 향한 제언 - RWA, AI 그리고 K-콘텐츠
Q5. 스테이블 코인이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RWA(실물자산연계토큰) 시장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스테이블 코인은 RWA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RWA는 단순히 부동산 같은 자산을 조각 투자하는 것을 넘어, 이전에는 ‘자산’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K팝 아티스트의 IP, 웹툰, 영화 같은 무형의 콘텐츠 자산을 토큰화해 전 세계 팬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시장이 열리는 거죠. 자원 없이 아이디어와 콘텐츠로 승부해야 하는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입니다. 최근 해외에서 K-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후배' 같은 한국 단어가 그대로 쓰이고, 심지어 외국인들이 '영원히'라는 단어의 발음을 영어로 표기해 그 뜻(meaning)을 검색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문화적 영향력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바로 RWA와 스테이블 코인입니다.
Q6. 더 나아가 AI 에이전트 시대의 금융 인프라로서 스테이블 코인의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신 건가요?
AI 에이전트의 시대를 상상해봐야 합니다. 미래의 AI 비서는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쿠팡에서 장을 보는 등 금융 권한을 필요로 하게 될 겁니다. 현재의 전통 금융 시스템은 AI에게 계좌를 열어줄 수 없지만, 크립토 월렛은 가능합니다. 또 AI 에이전트끼리 주고받을 수많은 초단위 거래(micro-transaction)를 처리하려면 현재의 금융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죠. 스테이블코인은 바로 이 새로운 디지털 경제를 움직이는 인프라, 혈맥이 될 것입니다.
4부: 글로벌 무대 위 한국의 자리
Q7. 이미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시장을 장악했는데,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달러를 제외하면 유로화나 엔화 스테이블코인조차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즉, 2등 싸움에서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죠. 국제 무역에서 원화가 쓰이는 비중은 2-6%대에 불과합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원화의 위상을 걱정할 게 아니라, 새로운 판에서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콘텐츠와 기술력으로 승부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Q8. 최근 국내 대기업들도 스테이블 코인 관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카카오나 라인의 '카이아(Kaia)' 같은 프로젝트는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십니까?
카이아와 라인은 동남아, 특히 대만 시장에서 굉장히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라인이라는 강력한 메신저 네트워크를 활용한 덕분이죠.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과거 클레이튼 사태 등으로 인해 부정적 인식이 강하고,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이아는 한국을 기반으로는 하는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글로벌 단위에서 퍼블릭 블록체인을 운영하고 유저들을 직접 상대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와 원화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대한민국이 글로벌과 직접 연결되어야 하는 지금, 카이아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그 속에서 쌓인 경험치와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카이아가 최근 테더 등과 함께 글로벌 해커톤을 여는 등 한국 생태계에 다시 기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5부: 나아가야 할 길
Q9. 만약 지금 당장 단 하나의 제도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2018년에 금지된 ICO, 즉 디지털 자산을 투기와 사기로 치부하고 관련 산업의 시작점을 제거해버렸던 의사결정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물론 코인의 성격에 따라 규제의 수준은 달라져야겠죠. 스테이블코인처럼 금융 안정성과 직결된 자산은 엄격한 요건을 적용하되, 코인의 성격과 목적, 그리고 운영 방식 등에 따라 자유로운 혁신을 지원해줘야 하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코인의 발행을 무조건적으로 막음으로써 기업들은 글로벌 B2C 경험을 쌓을 기회를 잃었고, 생태계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블록체인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내부에서 정책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에서 성공하는 사례를 직접 만들어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아무리 후퇴해도, 뛰어난 기업들이 해외에서 성공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역으로 국내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압력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진 우리 스타트업들을 해외 투자와 연결하고, 글로벌 네트워크 위에서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바이야드도 더 열심히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도전할 것이고요.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길을 얼마나 빨리, 똑똑하게 만들어 가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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