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호의 ‘극적인 다큐]
<남태령>(2026):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날의 기록
**이 글은 영화 <남태령>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튜버는 아니지만, 가끔 영상을 찍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영상 만들기를 즐겨온 터라 기획물, 브이로그, 홍보 영상, 인터뷰 등 다양한 작업물들을 만들어왔어요.(일관성이 없어서 꾸준히 지속하지도 채널을 키우지도 못합니다만…) 비록 본업은 매달 글만 쓰고 편집하는 월간지 에디터지만요.
그래도 가끔 영상을 만드는 제가 새로운 걸 구상할 때면 참고하는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른 김장하>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수많은 이들의 어른이자 선생님이었던 김장하라는 인물을 취재한 이야기죠.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그를 두고, 그의 제자들과 주변인들의 증언을 엮어 한 사람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뚜렷한 서사 안에서 어려운 연출을 해낸 기획과 접근을 감탄하면서 보기도 했고요. 막연하지만 “나도 언젠가 저런 영상을, 저런 기사를 만들고 싶다”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른 김장하>(김현지, 2023),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49862830288.jpeg)
그러던 중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김현지 감독의 신작 개봉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목은 <남태령>. 무려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이 영화를 맨 먼저 보겠다는 마음으로 폐막식 날 기차를 타고 전주로 향했습니다.
![<남태령>(김현지,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49903332346.jpeg)
영화 <남태령>은 윤석열 정권의 내란 직후였던 2024년 12월 어느 토요일, 훗날 ‘남태령 대첩’이라 불리게 된 그날의 기록입니다. 김현지 감독은 전작 <어른 김장하>가 진주라는 도시를 다정하게 돌본 한 어른의 이야기였다면, <남태령>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돌봄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남태령이라는 광장에서 다 같이 만난 이야기’라고 소개했어요.
내란 사태 이후 12월은 정말 무섭기도 하고, 정신없는 나날이었습니다. 시민들은 하루빨리 정권이 탄핵되고 그가 구속되기를 기다렸죠. 그리고 12월 21일 동짓날 밤, 남태령 고개에서 누구도 준비하고 계획하지 않은 광장이 열립니다. 이 영화는 그날 현장에 가지 못해 다음날 뉴스로만, 또는 저처럼 이제야 뒷북을 치며 자세한 소식을 접한 분들에게 그날 밤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가 왜 그날을 기억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말해줍니다.
![<남태령>(김현지,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49954476729.jpeg)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농민들의 트랙터는 남태령 고개에서 경찰 차벽에 꽉 막혀버렸습니다. WTO, 한미 FTA, 그리고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까지…. 기나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시원한 승리를 거둬본 적 없는 이들에게 경찰의 저지와 연행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죠. 이번에도 “잡혀가더라도 어떻게 잡혀갈까” 고민하며 트랙터를 몰았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농민들이 고립되었다는 소식이 X(트위터)를 타고 빠르게 번지자, 여의도에서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려던 시민들이 고속버스와 열차 예매를 취소하고 남태령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오후 4시엔 몇 명뿐이던 인파가 6시가 되자 고개를 꽉 메웠습니다. 언제 길이 열릴지 모르고 갇혀 있던 농민들 앞에 응원봉을 든 수천 명의 시민들이 나타났을 때, 농민들은 트랙터 안에서 오열을 했다고 합니다.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오랜 세월 투쟁해온 농민들이 생전 처음 받아본 시민들의 다정한 지지였습니다.
![<남태령>(김현지,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49988587949.jpeg)
막차를 포기한 시민들은 차가운 고갯길에서 잊을 수 없는 밤을 보냅니다. 사방이 통제되어 고립된 새벽 1시, 어디선가 음식 배달 후원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토스트 40개를, 누군가는 유자차 99잔을 보냈고, 퀵서비스로 어묵 500인분과 피자, 김밥, 닭죽이 끊임없이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농민분들 먼저 드시라”며 양보를 연호했고요. 성경 속 오병이어가 남태령 고개에서 재현된 겁니다. 몇 시간 만에 제대로 된 첫 끼를 마주한 사람들은, 예수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였는지를 그곳에서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말합니다.
흔히들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되고 인정이 메말라간다고 탄식합니다. 저도 우리 사회가 점점 시니컬하고 야박해지는 줄만 알았는데요. 그날 남태령을 보니까 절박하고도 따뜻한, 다정한 연대는 우리 안에 살아있었습니다. 그것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온 곳, 경찰 차벽에 가로막혀 아비규환이 된 도로 위, 한 번도 제대로 모여본 적 없는 낯선 이들이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그곳에서요. 이게 만약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 시나리오였다면 “현실성이 없다”,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했겠죠.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니, 그때 그곳 시민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헤아리게 될 뿐입니다.
스크린을 채우는 투박한 앵글들도 그래서 좋았습니다. 비록 화질은 거칠지만, 현장을 중계했던 유튜브 라이브와 1인 미디어 기록자들의 시선, ‘X’의 타임라인 등 날것의 자료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기록이 됩니다.
![<남태령>(김현지,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50027212534.jpeg)
영화의 후반부는 그날 밤 동지가 되어 서로를 구했던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어떻게 그 연대를 확장하는지 보여줍니다. 평생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농민들이 여성의날 행사에 참석합니다. 금속노조 하청지회의 고공농성 현장으로, 세종호텔과 옵티칼 투쟁 현장으로 2030 여성들이 연대하러 갑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평등과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던 이들이 마침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겁니다.
![<남태령>(김현지,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5/1779950067825380.jpeg)
물론 영화에서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이슬기 기자의 당부처럼, 우리는 남태령을 유토피아처럼 너무 미화해서는 안 되겠죠. 그래도 그 긴박했던 남태령 한복판에서 기꺼이 서로의 곁을 내어주었던 사건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도 위기의 순간에 우리 사회 곳곳을 변화시킬 경험이 되겠지요.
비록 그날 남태령 현장에 가지 못한 저에게는 별다른 기억이나 경험은 없지만, 스크린을 통해 뒤늦게라도 그날의 일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벅차고 흥분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연대하여 서로를 지켜낸 눈부신 날이 있었다는 것. 낯선 이들이라도 서로의 존재를 온몸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따뜻한 광장이 있었다는 것. 이 영화가 제게 보여준, 우리 곁 시민들의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이런 영상을, 기사를 만들고 싶습니다(ㅠㅠ)
글 정민호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5월 30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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