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의 ‘ 그 영화 봤어요?’]
<군체>(2026): 소통의 불완전함?
아니, ‘완전한 소통이라는 환상’에 대하여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 끝이 났습니다. 내란의 동조자이자 국가분열의 주범으로, ‘고지’를 받고 ‘시연’을 앞둔 것처럼 보였던 인물들이 패키지로 국회에 입성하고 자치단체장이 되어 웃는 것을 보며 <지옥2: 부활자>(2024)가 생각났어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죠. 또는 그들의 존재와 귀환 자체가 세상이 이미 지옥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겠고요. 연상호 감독은 혹시 천재인 걸까요.
마침 그의 새 좀비 영화 <군체>가 개봉 2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연일 화제입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되었고, <암살>(2015)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전지현과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구교환이 출연해 큰 관심을 모았고요, 장르영화의 미학으로는 이른바 ‘K-좀비’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호평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군체>(연상호, 2026) [이미지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0706800531768.jpeg)
전남편 한규성(고수)의 소개로 바이오 회사의 커퍼런스에 참여한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은 우연히 주최측 사무실로 들어가는 테러범 서영철(구교환)을 목격하는데요, 최초 감염자인 회사 대표에게 물어 뜯겨 건물 내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하얀 점액을 내뿜는 좀비가 되어갑니다. 이후 영화는 집단으로 움직이는 좀비 감염자들과 생존자 그룹으로 나뉘어 폐쇄된 고층건물에서 쫓고 쫓기는 ‘서바이벌 게임’을 시연하죠. 권세정과 한규성, 대 테러팀 형사,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피해자 여학생, 건물 보안직원 최현석(지창욱)과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그의 누나 최현희(김신록)가 생존자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처음엔 기어다니고 미끄러지며 마네킹이든 광고판이든 닥치는 대로 덤벼들던 감염자들이 점차 걷고 뛰고 특정인을 식별하기까지에 이르는 것이 압권입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우두머리와 소통하며 서로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진화하고 있었던 거예요. 세정은 규성의 아내인 공설희(신현빈)와 휴대전화로 소통하면서 이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번식하는 점균류처럼 점액질로 의사소통을 하고 개미와 같이 군집형태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군체>(연상호, 2026) [이미지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0706877533316.jpeg)
‘사적 복수’가 아니다
연상호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AI 시대 집단지성이 보편성을 지닌 정보로 인식되고 소수의견을 억압하게 되는 현상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지요. 매체와 기술의 발달로 어느 때보다 활발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으나 알고리즘에 갇혀 오히려 고착된 정보와 규정된 의미 속에서 헤매기 쉬운 것이 냉정한 현실입니다. 자칫하면 사유는커녕 죄책감마저 없이 폭력적인 집단행동에 돌입하게 되는 오늘날 사회 분위기와 이 영화의 좀비집단이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세정이 받은 컨퍼런스 초대장에는 “불완전한 의사소통으로 발생한 모든 비극”이라는 문구가 손글씨로 쓰여 있었어요. 후에 우리는 이 구절이 세정의 과거 행적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나에 대한 복수인가?” 묻는 세정에게 영철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모든 개체가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똘똘 뭉쳐 다같이 움직이는 사회, 그래서 오해도 없고 그로 인한 피해도 없는 사회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연상호의 세계에서 인간이 대안이라고 만들어놓은 조직이나 종교, 이상화된 원칙 또는 개별적 행위들은 모두 실패했지요. <지옥>(2021-2024)의 새진리회와 화살촉, <정이>(2023)의 뇌이식 전문 기업 크로노이드, <계시록>의 개척교회 목사(류준열)의 경우에서처럼 말이죠. 감독의 전작 중 <지옥> 시리즈를 최고로 꼽는 저로서는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 이래 그가 늘 그랬듯이 <군체>에서도 개인의 원한과 사적인 복수가 우리사회의 고통에 대한 궁극적 원인도 해법도 될 수 없다는 관점을 고수한 것이 가장 반가웠습니다. 악인에게 개인적인 사연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문제는 구조악이며, 개인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의 매커니즘이라고 그의 영화들은 일관되게 말해요.
연상호 감독은 지금 시대 그 악의 구조가 어떤 매개체(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작동하고 확산되는지 세심하게 관찰하고 매 작품에서 업데이트된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늘날 가장 발 빠른 예술가 중 하나입니다. 예컨대 <지옥>에서는 새진리회 정진수가 악용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한편에 화살촉의 기반인 유튜브 라이브 방송과 댓글이 있었죠. 여기서는 의미 자체보다는 해석을 독점한 인물이 우두머리로서 악의 축입니다. 반면 <군체>에서는 AI와 집단지성에 대한 은유로서 좀비들의 정보교환과 의미축적의 과정이 중요한데요, 정보를 취합하고 업데이트하는 통제자의 역할이 병원균의 개발자이자 우두머리인 서영철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군체>(연상호, 2026) [이미지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0706947612556.jpeg)
AI에 대응하는 CCTV, 모성에 기반하지 않은 여성들의 활약
<군체>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것은 여성들의 활약입니다. 서영철은 감염자들의 뇌조직과 연결되어 그들이 보고 듣는 것을 기계장치 없이 곧바로 보고 듣는 데 반해 그에 맞서는 생존자 그룹의 세정에게는 건물통제실의 CCTV와 휴대폰 문자메시지라는 비교적 ‘올드’한 미디어가 주어져 있습니다. 더욱이 세정은 다른 두 여성의 눈을 통해야만 이 ‘서바이벌 게임’에 도전할 수 있었죠. 이를테면 동생을 포함한 생존자들을 먼저 탈출시키기 위해 현희는 혼자 통제실의 CCTV 수많은 모니터들을 주시하며 탈출로를 안내합니다. 가까스로 건물을 빠져나온 세정은 교통상황실 CCTV를 통해 길을 안내하는 설희 덕분에 영철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게 되고요. 그들은 문자메시지와 휴대전화를 통해 소통하면서 다급하면서도 침착하게 생존자 그룹과 세정에게 목적지를 안내합니다.
재임용에 탈락한 여성과학자인 전처와 남편을 잃은 현재처의 연대도 특별하지만, 자신을 업고 다니며 발이 되어 준 동생과 생존자 무리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장애인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좀비집단의 경우 유일하게 보고 듣고 지시하는 역할이 그들의 창조주이자 권력자 한 사람에게 집약되어 있다면, 살아있는 인간들 가운데 그 역할과 능력은 여성과 약자의 몫으로 되어 있어요. 게다가 그들은 이전의 한국 범죄스릴러들에서는 물론이고 <정이> 같은 연상호 자신의 전작과도 달리, 모성 또는 유사 모녀관계를 동기로 움직이는 여성영웅들도 아니었습니다.
![<군체>(연상호, 2026) [이미지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0707012194582.png)
AI와 최첨단의 생명공학으로 탄생한 새로운 생명체의 대항마가 여러 개의 모니터로 조각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재래식 CCTV와 그것을 취합하는 해독능력이었고, 불완전하게나마 서로의 눈과 발이 되어주는 인간들의 공조 시스템이었다는 것에서 적잖은 위로를 받습니다. 누군가는 소통의 실패라고 명할 수 있을, 작은 불의도 참지 못하는 세정의 유난한 의협심이 이 시대에는 부적격한 것으로 완전히 부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요. 하여 소통의 불완전함을 폭력적인 수단으로 극복하려던 서영철과 좀비들이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연상호 감독은 완전한 소통이라는 판타지를 해체하고 동시대 관객과 한국사회를 향해 더 적극적인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냈다 하겠습니다.
소중한 후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2026년 5월
권호경, 김미지, 김철회, 김현주, 김현진, 박성민, 박재우, 박진숙, 박현홍, 서완실, 심에스더, 윤영석, 이강희,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정식, 이청자, 이태훈, 장준호, 지은실, 채두리, 한송희, 한유정, 문아영, 강도영, 박소원, 박준형, 엄태미, 이동은, 조하영, 최영익, 최재용, 최헌, 김대현, 김영준, 김희라, 양동복, 이호정, 강나루, 강원중, 권명희, 김동석, 김소혜, 김지향, 남소영, 노석지, 박현선, 배재우, 송정훈, 윤나리, 장다나, 정민호, 최규창, 김진선, 최은, 김혜영, 신원균, 채송희, 대지교회
* 2026 주간모기영은 매주 토요일 오전 11:00시에 발송됩니다.
글 최은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6월 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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