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호의 ‘극적인 다큐]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2026): 당신에게 영화관은 어떤 의미인가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라는 다큐를 봤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창립자이자 전 집행위원장인 김동호 위원장이 서투른 솜씨로 캠코더를 들었는데요. 그는 극장이 위기라며 여러 나라에 있는 특별한 영화관들을 찾아다닙니다. 그가 봉준호, 이창동, 탕웨이, 임순례, 윤가은 등 세계적인 영화인들을 만나서 묻는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당신에게 영화관은 어떤 의미인가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김동호,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2432820075439.png)
거장들의 대답은 제각각 개인적이면서도 낭만적이고, 간증적(?)입니다. 영화관을 ‘햇빛을 볼 수 있는 동굴’이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종교적 영성이 아니라 ‘일상적 영성’의 장소라고 하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관이 자신을 길러낸 유일한 학교였다고 얘기합니다. 박정범 감독은 영화관이 피난처나 오아시스였다고 해요. 살면서 힘들 때 위안을 받고 구원을 받고, 회복했던 곳이라고요. 거창한 말들이 이어지는데, 저도 한편으로 공감이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영화관은 그런 곳이죠.
자연스럽게 제가 어린 시절에 갔던 극장들도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 마을시민회관에 가서 20세기 영화 〈용가리〉,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봤던 기억(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친구들과 영화관이 있는 옆동네까지 가서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보려고 기웃거린 적도 있고요.(결국 티켓을 사지 못하고 전체관람가 영화를 봤습니다.) 고등학생 땐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어요. 친구 셋이서 갔다가 저랑 한 친구는 상영관에서 졸기만 하다 나왔죠.(영화관에서 자는 꿈결같은 잠이 또 나름의 독특한 경험인 거 다들 아시죠?) 서른살이 되어서 다시 보게 된 그 영화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였어요. 다시 보니까 너무 좋은 영화라서 충격을 받았고요.
대학에 가서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자주 상영관에 가서 제 취향을 탐구하기도 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극장은 내 좁은 세계를 깨주고 다른 세계로, 다른 은하계로 데려다주는 우주선 같은 곳이었으니까요.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김동호,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2432844373044.png)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의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책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저자는 영화관에 가는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세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우리는 그것을 배우는가? 들뢰즈에 의하면, 그것은 (좋은) 영화를 통해서다. 말하자면 영화는 20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예배의 형식이다. 그것은 ‘인식’ 장치나 ‘오락’ 장치이기 이전에 ‘믿음’의 장치였다. 교회나 성당이 아닌 극장에서 수행되는 예배… 그래서일까? 엔딩 크레딧이 내려가고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극장을 나설 때, 우리는 언제나 약간의 현기증과 수치심을 느끼며, 금지된 종교를 숭배하고 온 자들처럼, 영화가 주던 기만적 현실감을 결코 압도하지 못하는 저 허약하고 구멍 뚫린 공허한 실제 세계로 어색하게 숨어들지 않던가?
『세계에 대한 믿음』
어쩌면 우리 모두 상영관에 앉아 있을 때 각자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인지도요. 생각해보면 역설적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내가 헐떡이는 현실을 살고 있다는 걸 매 순간 느끼며 살진 않잖아요. 그냥 내 앞에 놓인 밥을 먹고, 출근하고, 해가 지면 자고. 어쩌면 듬성듬성 유령처럼 일상을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인 영화관에 가만히 앉아 남이 만들어낸 허구를 볼 때, 오히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리얼한지 온몸으로 감각하게 됩니다. 가짜를 통해 진짜 현실을 상기하게 되는 셈이죠.
요즘은 거대한 이야기보다는 나의 하루, 소소하고 작은 귀여운 일상에 집중하는 시대잖아요. 물론 그것도 위안이 되지만, 영화관이라는 공간과 그곳의 영화들은 계속해서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같은, 평소라면 너무 진지해서 덮어두었을 근원적인 질문들을 기꺼이 마주하게 만들죠. 단순히 두 시간짜리 오락을 넘어서 사람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이 묵직함. 어쩌면 이게 사람들이 굳이 영화관으로 가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김동호, 2026), [출처: KMDB]](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6/1782432865418809.png)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요즘 저는 영화관에 잘 가지 않습니다. 매달 꼬박꼬박 OTT 구독료는 내는데요. 막상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영화를 보는 게 어쩐지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얼마든지 OTT로 영화를 볼 수 있는데도 잘 안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더 자극적이고 짧은 영상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죠. 김동호 위원장이 전 세계 상영관을 찾아다닌 것도 영화관이 위기라고 진단하고 새로운 길을 찾고 싶어서였겠지요. 저 같은 사람 때문에 상영관들이 힘들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씁쓸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스크린과 몰입감 넘치는 음향 시설 앞에서 꼼짝 않고 봐야만 진가를 알 수 있는 영화들이 대다수니까요. 집에서 노트북으로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영화관의 차분한 공기가 그리워졌어요.
마침 영화 예매 앱을 켜보니 정부에서 지원하는 쿠폰이 있더라고요. 가까운 거리에,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걸어두는 상영관이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오늘 저녁엔 먹을 것도 들고 상영관에 가서, 스크린이 비추는 또 다른 세계로 짧은 여행을 다녀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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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민호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6월 27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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