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프로의 이책저책] “위대한 유산”
위대한 유산, 위대한 기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원제는 Great Expectations입니다. Great Legacy나 Great Inheritance가 아닌, ‘위대한 기대’인 것이죠. 다만 그 기대란, 일단 유산에 대한 기대였으므로, ‘막대한 유산’ ‘엄청난 기대’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주인공 핍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사나운 누나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누나는 늘 핍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던 반면 매형인 대장장이 조는 핍을 우정과 신뢰로 대해준 좋은 친구였죠. 핍은 필시 조의 도제로 대장장이가 될 운명이었으나, 어느 날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적이 찾아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핍을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로 지정했다며, 최고의 교육과 생활비를 지원한다고 알려왔어요. 핍은 그 자산가가 마을의 큰 부자 미스 해비샴이라고 믿었습니다. 미스 해비샴의 양녀 에스텔라는 유산에 ‘딸려’오는 조건 같은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니 차갑고 까다롭고 도도한 에스텔라에게 어울리는 신사가 되기 위해 핍은 최선을 다합니다. 미스 해비샴의 저택에서 처음 에스텔라를 만난 이후 핍은 줄곧 에스텔라를 흠모하고 있었거든요. 핍의 ‘위대한 기대’ 두 가지는 따라서 해비샴의 유산과 에스텔라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장장이 출신 하층민에게 ‘위대한 유산’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비웃기라도 하듯, 19세기 사실주의 작가인 디킨스는 결국 핍으로부터 이 모든 기대와 유산을 박탈하고 맙니다. 유산을 남긴 자가 귀족 부인이 아니라 종신형을 받은 살인마 죄수인 것도 모자라, 죄수의 재산을 몰수하는 법을 동원해 상속을 무효로 만들어버린 거죠. 이런 방식으로 에스텔라를 통해 세상과 남자들에게 복수하려고 했던 미스 해비샴의 기대(유산)도, 어린 핍을 신사로 만들어 가혹한 세상에 복수하려고 했던 살인범 매그위치의 기대(유산)도 모두 허망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핍은 빈털터리가 되어 불행해졌을까요?
그럴리가요. 이 신랄한 창작자 디킨스는 하루아침에 가난뱅이가 벼락부자가 되고 대장장이가 귀족이 되는 일은 믿지 않았을망정, 인간의 선행이 보답 받는 세상에 대한 ‘위대한’ 기대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핍이 유산을 약속받고 흥청망청 살던 시절에 친구 허버트의 꿈을 위해 사업자금을 비밀리에 대주었던 것이 일종의 ‘투자’가 되어 핍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죄수 매그위치의 유산도 탈옥했던 그를 돌본 핍의 선행에 대한 보답이었죠.
저에게 디킨스가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인간의 사악함과 현실의 모순과 한계 많은 사회구조를 냉정하고 날카롭게 서술하되 부정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는 상상력과 혜안,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입담’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세상 잔인하고 악한 살인범에게도 가난한 소년의 작은 선행을 기억하고 목숨과 전 재산을 걸어 보답하는 선함을 부여하고, 제 이름자 겨우 읽을 줄 아는 까막눈 대장장이에게도 어떤 젠틀맨보다 사려 깊은 지혜를 선사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박하고 절실하게 요구되는 ‘믿음’이 아닐까 싶었어요. 누군가 앞장서서 큰 소리로 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한 의지는 반드시 보답 받아요,
세상은 냉혹하고 요행이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위대한 유산>(1998)은 19세기 영국의 풍경을 20세기 미국으로 옮겨온 작품입니다. 핀(에단 호크)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핍은 대장장이 출신 런던 신사가 되는 대신 뉴욕에 진출해서 어부출신 화가가 되는 것으로 ‘유산’의 가치를 증명해 보입니다. 다시 보아도 기네스 펠트로 버전의 에스텔라는 여전히 매혹적이고, 로버트 드니로 뿐 아니라 뱃사람 조를 맡은 크리스 쿠퍼의 ‘신사다움’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네요.
에단 호크요?
언제나 최고죠. :)
장프로의 <거인>(2014)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스스로
그룹홈을 찾아 들어간 소년 영재의 이야기입니다.
그룹홈을 나와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영재는 어떻게든 그 곳에 남고 싶어서 애를 씁니다.
4회 모기영 결산중입니다
클라우드 펀딩에 참여해주신 후원자님들께
굿즈를 발송하고 모디언즈(자원활동가) 해단식으로 모이고
스태프들의 평가모임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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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와 총각김치
두어 달 전 생애 최초로 열무김치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생협 마트에 갔다가 매대에 딱 두 단 남은 연초록의 어린 잎 열무가 “너무 예뻐서” 저지른 일이었어요. 세상에, 채소가 예뻐서 김치를 담기로 한 것도 웃기지만 그걸 저녁 무렵 집에 들고 와 한밤중까지 씻고 소금에 재우고 찹쌀풀을 만들고 기다렸다가 냉동 냉장실을 훑어 각종 양념재료들을 갈아 넣으면서 내가 이 밤에 무슨 짓인가, 한참을 꿍시렁거리던 제 모습은 더 웃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는 안할 것 같던 그 웃긴 짓을 저는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총각무 김치였죠. 사실은 서툴러서 양 조절에 실패한 열무김치 양념 한통이 냉동실에 잠자고 있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던 건데요, 그러니까, 그 매장 같은 자리에 딱 한 단 남아 있는 알타리무 다발이 또 그렇게 이쁘더랍니다.(‘어차피 냉동실도 비워야 하잖아...?!’)
힘들어서 다시는 안할 것 같던 일을 어쩌다 또 하게 되는 그런 일이 혹시 있다면 그건 그 ‘맛’ 때문일 거라고 마침 알맞게 맛이 든 총각무김치를 라면가락과 함께 베어 물며 생각합니다.
작지만 손이 많이 가는 영화제를 또 한 번 마쳤어요. 생협 매장의 어린 열무 두 단, 마지막 한 단 남은 알타리무처럼 여러분에게 ‘예쁘게’ 가 닿기를, 그래서 누군가 모기영과 손잡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소식 한 자락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간모기영, 또 한편 고이 날려보냅니다.
늘 고맙습니다.
2022년 11월 19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글: 최은 수석프로그래머
손글씨&디자인: 지향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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