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어파이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영화를 일별할까요. 레온(토마스 슈베르트)은 펠릭스(랭스턴 위벨)와 함께 여름을 맞아 펠릭스 가족이 소유한 별장에 옵니다. 이곳은 깊은 산속이지만 바다와도 가까워서 원한다면 산림욕과 해수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곳이죠. 그러나 레온과 펠릭스가 이곳을 찾은 목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작가 레온은 소설을 마무리 하기 위해, 예술대학에 진학하려는 펠릭스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주는 불길한 암시 때문에요.
레온과 펠릭스가 나란히 앉은 자동차가 산속의 협소한 도로를 달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함께 나오는 흥겨운 음악은 그들의 드라이빙에 리듬을 더합니다. 몇초에 불과하지만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던 영화는 갑자기 단절선을 긋습니다. 음악은 뚝 끊기고 자동차는 고장납니다. 인적도, 지나가는 자동차의 기척도 도무지 느끼기 어려운 이 곳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란 불가능한 일임을 모르지 않는 그들은 걸어가기로 합니다. 도로를 따라서가 아니라, 산속을 관통하는 방식으로요. 여기에서도 영화는 불길한 기운을 한번 더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불길함을 어떤 연출로 전하는지 영화를 직접 보시길 권합니다. 분명 흥미로우실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별장에 도착하자마자 둘은 놀랍니다. 비어있는 줄로만 알았던 그곳에서 누군가가 생활한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날 밤, 잠을 청하려 할 때에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저 누군가가 얇은 벽 너머에서 파트너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소리를 들을 뿐이었죠. 다음 날 아침, 밤잠을 설친 레온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부엌에 나오니, 마침 미지의 인물이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네요. 먼 거리일 뿐더러 여인도 등을 돌리고 있던 터라 아직 얼굴을 식별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퍼지는 산뜻한 휘파람 소리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여인의 얼굴은 멀리 두고, 휘파람 소리를 레온에게 가깝게 두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말하자면, 레온이 니디아를 최초로 인식한 방법은 시선이 아니라 청각(그녀의 소리)이었고, 이점은 이후 영화의 결말의 타당성을 보증해 주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형식이 있습니다. <어파이어>의 초점인물인 레온만이 영화의 시점숏을 거의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형식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과 물론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내내 자기 세계에 갇힌 운명을 불평합니다. ‘일 때문에 놀 수 없다’. ‘일 때문에 갈 수 없다’(푸른 바다를 보러 가자는 니디아의 권유에). 이런 식의 말은 그가 자신의 일을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넓게는 그가 자기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까지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 하나에 몰두하느라 삶의 다양하고 풍부한 세부들, 다채로운 결들을 놓치고 있고, 그렇게 상실한 것에 대해 그는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는 것.
영화의 후반부에서 니디아는 레온에게 감정적으로 쏘아붙이지만, 그 말 안에 담긴 내용은 차갑고 정확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책보다 더 어리석군요. (생략) 당신 주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겠어요?”. 숲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일 때문에 펠릭스와 데비트가 목숨을 잃은 후, 이제 레온과 니디아 둘은 서로를 견디거나 의지하며 사는가, 생각했지만 니디아는 의외의 선택을 내립니다. 레온과 그 숲으로부터 떠나기로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이전까지 들은 적 없던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레온과 계약을 맺은 출판사 편집장인 헬무트(마티아스 브란트)였습니다. 별장에서 레온의 이전 소설을 고치거나 어떤 문단을 삭제하면서 마음에 썩 들지 않음을 드러냈던 그는, 이제는 마음에 드는 듯 어떤 문장도 손대지 않고 낭독합니다. 그런데 그가 읽는 소설이 어딘가 기시감 있네요. 지금까지 관객이 봤던, 어쩌면 <어파이어>의 전체라고 할 만한 내용이 레온이 새롭게 쓴 소설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가 레온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며, 그의 시점숏을 자주 활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만으로 한정지어 생각하면, 시점숏은 레온이라는 한 인물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것일텐데요. 하지만 이 영화를 그 모든 사건을 통과한 다음에 쓴 그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레온은 자기 한계가 무엇인지 알고, 그 때문에 자신이 삶에서 무엇을 허망하게 놓쳐버렸는지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조금 더 깊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미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비비안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에 의하면 훌륭한 자기 서사의 문학 양식(에세이, 회고록)이라면 갖추고 있는 하나의 준칙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서술자, 그러니까 사건(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아의 위치가 확실해야 한다는 건데요. (비비안 고닉은 모든 글에서 ‘페르소나’가 창조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술자의 위치가 흔들리면 사건(세상)과 자아가 서로 주고받은 어떤 영향들, 세밀한 결들을 놓쳐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자아의 위치가 고정되어야만, 그때 그는 그 사건이 나에게 남긴 희미한 영향에 대해 적을 수 있고, 또 그로 인해 내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런 비비안 고닉의 통찰을 저는 영화 <어파이어>에 대입하고 싶어졌습니다. 감상적인 자기 연민이나 지나친 자기 과신에 빠지지 않고 그저 담담한 태도로 스스로를 성찰하는 영화. 사람의 깊이라는 것이 있다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5회 모기영 서포터즈 모집]
제5회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를 채워주실 서포터즈를 모집합니다 :)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부터 19일 일요일까지, 홍대 상상마당시네마/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서 열리는 제5회 모기영과 함께하실 분들을 찾습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고싶은 누구나!! 함께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지원팀 (10명) *영화제 자원봉사 경험자 우대
-영화상영시 문제가 없는지 모니터링
-관객 동선 안내 / 현장 발권관리
🔸 홍보팀(3명) *디자인, 홍보, 촬영 등에 관심이 있는 분 환영!
-영화제 현장 SNS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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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집기간
-2023년 9월 18일(월) ~ 10월 6일(금) 자정까지
🔸 활동기간
-2022년 11월 16일(목) ~ 19일(일) 4일간
🔸 모집일정
*1차 발표 : 10월 10일(화), 개별연락
*2차 온라인 면접 : 10월 11(수) ~ 12일(목)
-최종 합격자 발표 : 10월 13일(금), 개별연락(교육 일정)
-영화제 활동가 오리엔테이션 : 10월 14일(토), 오리엔테이션(발대식)
🔸 활동지원
- 소정의 활동비(식비) 제공
- 영화제 기념품 제공
- 영화제 상영작 티켓 증정
- 자원활동가 활동증명서 증정 (자체 발급)
많은 지원과 관심, 공유를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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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벌써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모기영의 영화제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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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정식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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