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의 시네마 분더카머
스크린에 빛이 떨어지면 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서있습니다. 얼마쯤 지났을까요. 여자가 남자의 옆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리고 말해요. “미친 것 같애. 갑자기 오자고 한 사람도 그렇고. 따라온 나도 그렇고.” 둘은 여전히 관객에게 등 돌리고 서있습니다. 문득 두 사람이 끈질기게 바라보는 거대한 지도가 눈에 들어오네요. 군산시 관광안내도입니다. 이들은 관광하기 위해 군산에 온 걸까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저 두 사람의 여행은 즉흥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막상 군산에 와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찾는 것 같고요.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면 군산을 관광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의 발길이 닿는 곳은 관광지라고 할 법한 곳만은 아니었거든요. 그들은 그저 걷고, 먹고, 숙소에 머뭅니다.
관광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관광’이라는 것은 주역에 나온 단어로 ‘관국지광’(觀國之光)의 줄임말이라고 해요. 그 나라의 광휘(빛)를 본다는 건데요. 본래 이 뜻은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의 빛나는 업적을 세세하게 본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예컨대 휴가기간을 이용해 어느 나라에 간다면 그 나라의 랜드마크나 대체적으로 알려진 곳을 둘러보는 것이 관광이라 할 수 있겠죠.
군산에서 윤영과 송현은 ‘군산의 빛’이라고 할 법한 곳을 찾지 않습니다. 군산에서 윤영의 눈에 자주 들어온 것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흔적이었어요. 윤영은 걷다가 문득 거리를 따라 전시된 사진을 봅니다. 일본군에 온 몸이 포박된 채로 사진기를 노려보는 조선인, 잘린 목에서 솟구치는 누군가의 피. 그러고보니 윤영과 송현은 군산에서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 있었죠. ‘나 여기 예전에 본 것 같아.’ 라거나 (어떤 사람을 향해) ‘우리 언제 본 적 있지 않나요?’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기시감을 통해 떠올린 첫 번째 근원이미지가 무엇인지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아서 관객은 두 사람이 보고 느낀 것과 근원이 얼마나 닮았는지 가늠하지 못합니다. 다만 윤영과 송현은 그곳에서 본 것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연결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압니다.
상흔과 기시감. 두 사람의 시선에 담긴 것은 물론 손쉬운 위로와 치유에 있지 않습니다. 그저 볼 뿐이에요. 담담하게, 별다른 감정의 동요없이. 이 시선 자체가 그곳의 사람들을 구원해 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것 같군요. ‘당신의 아픔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당신의 아픔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군산의 한 숙소에서 윤영은 섬의 능선을 찍은 사진을 보고 송현의 쇄골에 손을 댑니다. 송현이 손을 뿌리치자 이후의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쇄골을 만져요. 그 섬과 닮았다는 듯이요.)
언젠가 읽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쓰기에 대하여』가 떠오릅니다. 이 책의 한 챕터에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미래 세대의 시인은 삶과 죽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예이츠의 말을 빌립니다. 왜 ‘차가운 눈’일까요? 그녀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감옥에서」의 마지막 두 연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 대답을 대신합니다.
정서적 연대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명징하게 바라보는 것. 내가 본 것을 명확하게 기록하려면 그 눈의 온도는 차가워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연민만으로 타인의 고통에 접속되었다고 믿는 누군가의 착각을 이 시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어떤 동정이나 연민을, 울음이나 슬픔도 앞세우지 않고 그보다 명징함을 가장 앞에 두는 태도. 이것이 시인적 ‘차가운 눈’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눈과 제 눈을 맞대어 봅니다. 이른바 ‘착한 기독교인’이라 착각하는 저는,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가벼운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요. 그 눈물에 연민이 전혀 없다 말할 순 없지만, 그럼으로써 저는 ‘선함’을 획득하면서 정서적 공감을 깔끔하게 완수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뜨겁기만 한 눈은 이토록 허약하고 때로는 위선적이기도 하네요. 여러분의 눈의 온도는 어떠신지요.
어쩌다보니 영화의 일면을 마치 영화의 전부인 것처럼 적었습니다. 여기에 적히지 않은, 제가 포착하지 않은 부분이 어쩌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도 이 영화의 빛을, 그러니까 (영화를) ‘관광’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제가 알고 있던 것, 제가 살고 있던 것을 접촉하게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영화와 저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선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 선은 마찬가지로 모기영과 여러분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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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이 믿음을 고스란히 건넵니다.
글 : 이정식, 강원중
편집 디자인 : 강원중
2023년 8월 26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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