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주간모기영 204호

[정민호의 ‘극적인 다큐’] <성덕〉(2021)

2026.07.25 | 조회 103 |
0
|

[정민호의 ’극적인 다큐‘]

<성덕>(2021): 열렬히 좋아했던 가수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중학생 때부터 어느 프로야구팀의 팬이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일명 ‘범죄두’라고 불리는 바로 그 팀. 두산 베어스.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잘못이 있는 유명한 선수 중에 이 팀을 거쳐 간 선수들이 많아서 생긴, 조롱성, 불명예 칭호다. 아마도 이 말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건 선수들보다 두산팬들일 거다.

슬프게도 내가 처음으로 줄을 서서 사인받고 열렬히 응원했던 투수는 여러 사건으로 금지어가 되어 사라졌다. 출연하는 영상마다 놓치지 않고 찾아보고 아끼던 한 선수(오랫동안 팀의 주장이자 중심이었던)는 2년 전 마약 투약 사실이 밝혀져 징역이 확정되었다. 심지어 후배 선수들에게 마약 대리 처방을 지시해 다른 선수들의 선수 생활까지 망가뜨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 <성덕>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이 영화는 한때 가수 정준영의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불리며 한복까지 차려입고 팬사인회를 다니던 ‘네임드 팬’ 오세연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어느 날, 오랫동안 좋아했던 가수 정준영(이하 ‘그 사람’)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루아침에 ‘성덕’에서, 성공했었기에 더 비참해진 ‘실패한 덕후’가 되어버린 것이다.

감독은 그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처음으로 KTX 기차를 타봤다. 콘서트와 팬사인회를 가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는 열차를 타다가, 이제는 영화를 찍으며 법원에 가기 위해 KTX 열차를 탄다. 그 사람의 재판 현장을 보고 싶어서다. 막상 경직된 채 법원으로 들어서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감독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왜 저딴 놈을 좋아해서, 지금 법원에 와있는 걸까. 평생 감빵에서 썩어라, 잘 가라 나쁜 새끼야.’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감독은 자신처럼 누군가의 팬이었지만, 누군가가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이들, 실패한 팬이 되어버린 이들을 찾아 나선다. 승리의 팬, 강인의 팬, 최종훈의 팬…. 신기하게도 그의 지인 중에 그런 이들이 꽤 있었다. 팬이었던 이들은 모여서 굿즈 장례식을 한다. 아끼다 똥이 되어버린 그들의 앨범과 포토 카드 위에 초를 켜고 추억을 되짚는다. 한때는 좋아했지만, 그날 이후로 생긴 심경의 변화에 대해서.(참고로 이 영화는 팬들의 마음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사건의 성범죄적 정황과 진실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BBC 다큐멘터리 <버닝썬: K-POP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그 사람의 팬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왜곡이야 있겠지만, 어쨌든 그는 여성 팬들의 화력 덕분에 그만한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 그런데 그들이 여성 혐오 범죄를 저질렀다. 심지어 무슨 계보를 잇기라도 하듯, 단톡방 사건의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성폭행 사건, 지하철 몰카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법정과 언론에서는 해당 범죄의 피해자가 몇 명이라고 숫자를 들어 이야기하지만, 이건 숫자로 따질 수 없는 문제다. 사건 이후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퍼부었던 팬들도 그에게 사과받아야 한다. 그는 단 한 번도 팬들께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그런 말을 듣는다 해도 ‘죄송한 척하고 올게’(2016년 정준영 단톡방 내용 중 일부)라는 문장만 생각날 것 같다.”

 ―오세연, 『성덕일기』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이야기하다 보니, 그럼에도 사건을 저지른 연예인들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팬들은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사고를 친 사람을 왜 그렇게 두둔할까.’ ‘이미 자신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려서?’ ‘추억이 너무 많아서?’

감독은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학창 시절 자신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기도 하고, 탄핵 이후에도 서울역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감독은 마침내 깨닫는다. 그들이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 대상이 아니라, 그 사람을 열렬히 사랑했던 자기 자신과 시간, 시절이었다는 것을.

내가 주었던 사랑이 범죄의 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속았다는 배신감,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통째로 오염되어 버렸다는 허무함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열렬히 사랑했던 나까지 부정당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돌아선 팬심이 괴로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영화 후반부에는 팬들의 다른 모습이 나온다. 다시 누군가의 팬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승리의 팬은 어느새 다른 가수의 공연장에 가서 행복해한다. 클럽에서 여자 다리가 기둥인 줄 알고 만졌다는 모 연예인의 팬이었던 재원은 어느 뮤지컬 배우의 팬이 되어 감독과 함께 뮤지컬 공연 티케팅을 한다. 과연 우리는,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걸까.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성덕>(오세연, 2021)[출처: KMDB]

10년 전, 그러니까 2016년,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나. 아니면 싫어졌거나, 상처로 남아있나. 야구도, 힙합도, 연예인도, 심지어 내 옆에 있던 친구들까지도. 내가 다니던 교회와 믿음도…?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나락을 갔고), 내 곁을 떠나갔다(손절했다). 이렇게 청정하지 않은 세상에서 무언가를, 누군가를 꾸준하게 좋아하며 살아가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 야구팀을 좋아하고 있다. 조마조마하며 유니폼 등판에 선수들 이름을 새긴다.(다른 팀으로 가거나,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어서 마킹을 제거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 두 가지. 다른 팀 가지 마라. 너는 제발 사고 치지 마라….

영화를 보면서 ‘성공한 덕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좋아하는 스타를 직접 만나 사진을 찍는 게 성덕일지, 내가 좋아하는 그 대상이 탈 없이, 사고 안 치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잘 있어주어서, 먼 미래에도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게 되는 것이 성공한 덕질일지.

이 영화는 지나간 일들로 상처받은 이 세상 모든 덕후들에게 위로를 줄, 그들을 긍정하는 이야기다. 뜻하지 않게 괴로워진 우리를, 그때의 나를 너무 자책하지도, 부정하지도 말자고. 우리 다시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사랑할 용기를 잃지 말자고.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
▲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이미지 클릭]

 

 정민호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7월 25일 토요일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주간모기영

 


주간모기영에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 있으면
아래 버튼을 눌러 소중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

Copyright © 2023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 All rights reserved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주간모기영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6 주간모기영

모두를위한기독교영화제|Christian Film Festival For Everyone|혐오 대신 도모, 배제 대신 축제

메일리 로고

도움말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2-31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