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의 ‘그 영화 봤어요?’]
<호프>(2026):
희망은 누구에게 있을까
지난 7월 15일 개봉하자마자 각종 SNS와 온라인 페이지들을 뒤덮었던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진출해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죠.
![<호프>(나홍진,2026). [이미지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포지드필름스](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7/1785485322257042.jpeg)
대략 1980년대 초반인 것 같아요,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에 정체모를 괴물이 출몰해서 사람과 가축들이 희생되었다는 신고가 이어집니다. 시작은 길 한복판에 놓인 황소의 사체였어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호포 출장소의 고범석 소장(황정민)은 고성기(조인성)와 마을 사냥꾼 청년들과 함께 호랑이로 의심되는 공격자를 찾아 나섭니다. 성기와 사냥꾼들은 숲으로 가고, 범석은 마을로 향했죠. 인근에 산불이 나서 당장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곧이어 통신도 두절되고 고립된 마을에서 범석과 성기, 임성애 순경(정호연) 일행은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호프>(나홍진,2026). [이미지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포지드필름스](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7/1785485360680489.jpeg)
액션보다 캐릭터
<호프>는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입니다. 고난도의 초고속 액션으로 심장 쫄깃한 긴장이 그칠 새 없고 영화사에 남을 인상적인 장면들도 가득하죠. 다만 일상에서든 영화에서든 스릴을 그다지 즐길 줄 모르는 저로서는 오락영화의 끝판왕이라며 모두가 칭찬하는 액션과 추격씬에서 큰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저 속도라면, 지금쯤이면 틀림없이 괴물이 달리는 말을 덮치고도 남을 시간인데 이어지는 또 다른 질주 컷으로 절정의 순간이 자꾸 지연되는 것을 신경쓰느라 꽤 피로했다고나 할까요. 물론 영화의 관습과 문법에 집착하지 않는 나홍진 감독으로서는 대단한 성취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습니다. 시간 거리의 예측이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관객 편에서는 오히려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고, 개연성과 무관하게 꼼짝없이 스크린에 코를 박듯 붙들려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각기 개성이 분명한 인간과 비인간 군상들이 이야기하는 희망의 여러 모양입니다. 이게 바로 희망이다, 라고 규정하지 않지만 여러 각도에서 희망이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와 더불어 이 희망이 반드시 인간에게만 절박한 것은 아니라는 시선과 그 통찰을 표현한 방식도 참신하고 놀랍습니다.
![<호프>(나홍진,2026). [이미지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포지드필름스](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7/1785485409345089.jpeg)
신화적인 시공간에서 만난 혼돈: 희망은 누구에게?
낯설고 빈틈 많은 이야기의 얼개보다 이야기의 어느 시점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호프>의 인물들을 생각해보자면,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이름처럼 캐릭터들은 각기 표상하는 가치 또는 성격이 분명합니다.
정호연이 연기하는 성애가 어떤 상황에서도 명확한 선악의 기준을 갖고 있는(“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정의감(대문자 정의가 아니라 정의감입니다)’이라면 범석은 ‘연민’입니다. 성기는 ‘근성’ 즉, 집요한 ‘깡’와 ‘악바리 정신’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보건소장(황석정)은 과학적 ‘사실’을, 심마니 노인 박해술(임현식)은 ‘진실’(“해술 아저씨가 그랬으면 맞아.”)을 대표합니다. 자기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걸핏하면 “해술 아저씨가 그랬어”라고 말하는 사냥꾼들은 그렇다면 진실을 사칭하는 ‘미혹’에 해당하겠네요. 목수 청년 양배(음문석)는 그 와중에 경제적인 이익만을 챙기는 ‘탐욕’ 또는 ‘무지’이고요. 모두가 트럭을 타고 후줄근하게 나타나는 데 반해 번쩍이는 장신구를 달고 랜드로버와 함께 등장한 어촌계 남자들은 어쩌면 ‘권력’이겠지요. 후반부에 우리가 목소리와 언어를 확인하게 되는 외계인 중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믿음’을, 조르의 심복이며 게르투의 전사인 마베이요(마이클 파스빈더)는 ‘희생’을, 최초로 출몰한 외계인 바미기르는 ‘슬픔과 분노’를 대표하는 캐릭터였어요.
반공과 멸공을 앞세운 80년대 휴전선 근처이면서 빼곡한 숲의 기운이 살아있고 트럭과 경찰차와 함께 말탄 기수들이 트랜스포머에 필적하는 외계인과 싸우는, 어찌 보면 신화적이기도 한 이 무질서와 혼돈의 공간에서 그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의감? 연민? 분노? 진실을 사칭한 위안? 권력? 슬픔과 두려움? 차라리 무지? 진실? 눈에 보이는 사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 희생? 이 와중에 ‘진실(해술 아저씨)’은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파국의 흔적을 불구경하듯 지켜보고만 있고, 믿음의 대상은 눈앞에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죠. 망연자실한 현실 앞에서 인간과 비인간 캐릭터들이 놀라고 당황하고 슬퍼하고 어이없어하고 두려워하면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전작 <곡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길을 잃고 관객들을 혼돈과 미끼들 속에 방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호프>는 영화가 옹호하고 싶은 가치들에 비교적 확실한 무게를 실어두고 있는, 자신감과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호프>(나홍진,2026). [이미지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포지드필름스](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7/1785485443109508.jpeg)
모두에게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긴박한 액션에 이끌려 어찌어찌 끝까지 함께 달려오긴 했지만, 끝간 데 없는 당혹스러움을 수습해야 할 순간이 마침내 찾아오기는 할 텐데요. 그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던 외계인들의 말이 자막으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주인공이 갑자기 바뀌는 지점이 있습니다. 장르영화의 문법으로 보자면 어이없고 엉뚱한 이 전환은 역설적으로 나홍진 감독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인증하는 표식이 되었어요. 호포마을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학살 사건을 침입자의 시각에서 보게 만드는 순간이기 때문인데요, 따지고 보면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요. 호포마을 인근에서는 산불이 가장 다급한 위험이었던 것처럼요.
예의 캐릭터의 관점에서도 이 부분은 특별합니다. <호프>에서 괴물은 하나의 통일된 존재양식으로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그 자체로 크리처 장르의 집대성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머리를 풀어헤치고 삐쩍 마른 바미기르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빠른 좀비처럼 보이고, 흰 가운 입은 보건소장의 전기톱에 바미기르의 시체가 움찔거릴 때는 전기자극으로 금방이라도 살아날 것 같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생각납니다. 전사 마베이요는 네 발로 달리는 공룡이나 에이리언 병기 같은 모습에서 직립보행을 하고 마치 판도라 행성의 아바타처럼 배우의 얼굴을 식별가능하게 하는 모습까지 자유로 변신하는 초능력자 슈퍼히어로인가 하면, 게르투의 황비 조르는 빠르고 강하면서도 우아한 힘과 고양된 정신으로 위엄 있고 지적인 외계인이 되어 있어요. 작은 외계인인 칼리의 얼굴은 아기 보살과도 같은데요, 전체적인 외양은 힌두교의 발라 크리슈나의 통통하고 푸른 형상과 유사하네요. 우주선 내부의 지하동굴 속의 아기 외계인은 포켓몬 중 하나처럼 보이기도 했죠.
하여 겉으로 보면 나홍진 감독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서 자기 하고 싶은 장르를 이 영화 한 편에 죄다 욱여넣은 것처럼만 보일 수 있는데요, 결국 이를 통해 우리는 그 ‘크리처’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타자성,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간과의 동질성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들도 언어를 지니고 있고, 그들도 두렵고, 그들도 슬프고, 그들도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과 존재위기의 끝판에 내몰려 이 낯설고 잔인한 행성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일 테니까요.
비인간 세계에 대한 자각과 이해는 이처럼 영화 마지막에 뜬금없이 주인공 교체 또는 전환의 방식으로 훅 다가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인간과 비인간 세계의 공존과 상생, 나아가 구원이라는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그나마 유일한 가능성은 범석에게 있었다고 생각해요. 진실이 멀찍이서 구경만 하고 궁극의 신앙이 눈앞에서 폭파되어버린 와중에, 스스로도 민망하고 당황스러워하며 “어쩐지 마음이... 짠하고 이상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연민 말입니다.
![<호프>(나홍진,2026). [이미지제공]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포지드필름스](https://cdn.maily.so/du/cff4every1/202607/1785485473877893.jpeg)
나홍진 감독의 손에서 완전히 새로운 종의 영화가 탄생한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리하여 시청각적이고 촉각적인 자극의 의미에서나 정서와 사유의 자극에서나 영화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말 그대로 ‘괴물’ 같은 영화의 출몰이 반갑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호프>가 근 이십 년째 줄곧 몰락의 위기를 말해온 한국영화 극장가에 하나의 희망이 되었다고 말이지요.
덧. 그래서, 속편은 나오는 걸까요? 저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속편이 없는(혹은 지연된) 상태가, 그 자체로 희망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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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강도영, 권호경, 김미지, 김진선, 김철회, 김현주, 김현진, 문아영, 박성민, 박소원, 박준형, 박진숙, 박현홍, 심에스더, 서완실, 엄태미, 윤영석, 이강희, 이동은, 이범진, 이신석, 이유리, 이정식, 이청자, 이태훈, 장준호, 조하영, 지은실, 채두리, 최영익, 최재용, 최현, 한송희, 한유정, 김유선, 김대현, 김영준, 김희라, 양동복, 이호정, 홍태근, 강나루, 강원중, 권명희, 김동석, 김명관, 김소혜, 김지향, 남소영, 노석지, 박현선, 배재우, 송정훈, 유현, 윤나리, 장다나, 정민호, 최규창, 김혜영, 최은, 오늘교회, 김솔지, 신원균, 채송희, 대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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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은
편집디자인 모기영 편집부
2026년 8월 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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