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 북유럽 영화의 매력

Issue 5. 북유럽 영화의 매력 (스웨덴 영화편)

북유럽 영화는 스웨덴 영화와 덴마크 영화가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어요. 이름이 알려진 작품들은 대부분 예술 영화라 장르도 많이 타는 편입니다. 스웨덴 영화 시장은 스칸디나비아반도 시장 중에서는 가장 크지만, 동아시아 영화 시장보다도 작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유럽 대륙 본토와 달리 영화 전래가 늦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 산업이 예술영화 위주로 발전하면서 국민들의 영화 소비도 적은 편이고요. 스웨덴 영화의 중심지는 예테보리로 매년 1월 <예테보리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근교에 영화 스튜디오 ‘필름 이 베스트(Film I Väst)’가 있습니다. 북유럽 대부분의 영화 제작 및 후반 작업이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해요. 예테보리는 스웨덴 서부에 위치한 항만 도시이자 제2의 도시인데 한국에서 부산이 매년 영화제를 개최하고, 촬영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영화의 도시로 불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스웨덴에는 1963년 정부에서 설립한 스웨덴 영화 연구소(Swedish Film Institute, 이하 SFI)가 있는데요. 자국 내 영화 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영상물 제작 및 보존을 담당하는 준정부기관으로서 스웨덴 영화시장의 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기획 및 개발, 제작 지원, 영화 배급 및 수출, 필름 아카이빙과 디지털화 업무까지 두루 관여하고 있어요. SFI 설립 후 예술영화 위주의 산업 기조가 형성되면서 유수의 영화제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세계에 스웨덴 영화의 존재감을 알리게 됩니다. 스웨덴 영화가 예술영화의 기조를 띄는 이유는 SFI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창의적인 영화가 만들어지려면 영화를 산업에 앞서 예술로 바라봐야 하고, 이 관점을 견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영화제작 여건을 만들어야만 자국의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상업영화지만, 영화의 시작점이자 본질은 ‘제7의 예술’로 불리는 예술의 한 영역이기에 SFI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공감이 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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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웨덴 영화가 예술 영화에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스티그 라르손의 원작을 영화화한 <밀레니엄 3부작>이나 뱀파이어 성장 무비로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은 <렛미인>과 같은 영화들은 스웨덴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제가 처음 북유럽 영화를 접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많고요.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영역일 수 있어요. 자막이 있지만 들리는 언어부터 생소하게 느껴지니까요. 영화의 본질은 예술이지만 영화 감상에 취미가 없는 분들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코미디나 액션 등 쉬운 장르부터 천천히 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도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영화에서 시작해 조금씩 취향을 넓혀 나갔고 지금도 넓혀가는 중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스웨덴 영화 입문작 2편은 가볍지만, 또 너무 가볍지 만은 않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오베라는 남자>입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플렉스 할그렌, 2014년 개봉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제목 그대로 100세 생일날 요양원 창문을 넘어 도망친 알란이 우연히 돈 가방을 손에 넣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입니다. 그리고 알란이 과거를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2차대전 전후의 근현대사가 담겨있습니다. 주인공 알란 칼슨은 100세 생일날 요양원 창문을 타 넘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릅니다. 직원들이 생일 케이크에 100개나 되는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방문을 열었는데 알란은 이미 창문 너머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돈 가방을 손에 넣게 되고 여러 사람과 조우하며 알란에게는 유쾌한 모험 길이지만 돈 가방을 쫓는 갱단들에게는 추격 길이 될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영화는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작가는 기자와 PD로 일하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데뷔했는데요.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만 100만 부, 전 세계적으로 500만 부 이상 팔리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2013년 영화화되었어요. 영화와 소설의 큰 줄기는 같지만,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알란의 진취적인 면모보다 우연과 운명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원작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관객들이 단시간에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해요. 말도 안 되는 우연과 과장된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코믹함 뒤에 가려진 첨예한 이념 갈등과 과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의도치 않게 중심에 있던 알란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은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하는 가볍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작품이에요.

영화는 돈 가방을 놓고 벌어지는 소동극과 알란의 과거사 이야기 투트랙 형태로 진행되는데요. 돈 가방은 일종의 맥거핀 (MacGuffin,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입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그의 과거사에 있어요. 과거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알란이 있고, 자유주의와 공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념 갈등 속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판단을 거부하는 인물이 알란 입니다. 알란의 관심은 맛있는 음식과 술, 신나는 음악과 춤뿐이죠. 모든 것이 이념에 의해 움직이던 냉전 시대에 정치적 견해는 배제하고 그때그때 본인의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알란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매사를 정치적 시각에서 접근하면서 가장 중요한 ‘인간’을 배제하는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장치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알란의 모습은 이념 갈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이념에만 목매는 사람들의 태도를 에둘러 비판하는 셈이죠.

영화 속 알란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많이 과장되긴 했지만) 근현대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어요. 영화 감상과 역사 공부를 동시에 하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근현대사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서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던 부분을 제대로 공부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레터를 준비하면서 관련 기사를 읽고 다시 보니 소설도 영화도 마냥 가볍기만 한 작품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서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영화나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읽어보고 감상하길 추천합니다.

알란의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자 알란의 삶의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항상 마음에 새기려고 하지만 예민한 성격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말이라 더 기억에 남았던 대사입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시도나 모험을 하게 된다면 영화 속 대사를 떠올리려 합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걱정한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요.

<오베라는 남자>,  하네스 홀름, 2016년 개봉

그의 DNA에는 융통성이란 것이 존재할까 싶을 만큼 고집불통인 할아버지 오베.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 당하고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던 아내 소냐까지 세상을 떠난 후, 그에게 남은 삶의 목적은 소냐를 따라가는 것뿐입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오베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만 마지막 순간마다 새로 이사 온 파르바네 가족부터 볼보를 탄 순간 철천지원수가 되어버린 루네와 그의 아내, 죽은 소냐의 제자까지. 이웃들이 거침없이 끼어들며 방해합니다. 과연 까칠한 할아버지 오베는 자신의 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5년에 영화화 되어 제89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어요.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미국 버전 <오토라는 남자 (A Man Called Otto)>가 개봉 예정에 있습니다! 소냐의 죽음 이후로 오베의 관심은 오로지 소냐를 뒤따라가는 일뿐이지만 오베의 주변 사람들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그의 삶에 끼어듭니다. 그들이 귀찮고 짜증 나지만 아이러니한 건 이웃들의 부름에 투덜거리면서도 응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이 실패할 때마다 오베는 소냐의 무덤에 찾아가 꽃을 놓아두며 이렇게 말하죠. “어떻게 된 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힘들어!”

사실 오베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고로 죽고,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세상은 결코 그에게 다정하지 않았죠. 누가 다가오는 것도 싫고, 다가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오베에게 무뚝뚝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다정함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온 사람이 소냐입니다. 어쩌면 소냐는 오베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을 거예요. 그리고 소냐의 죽음과 함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오베의 마음의 문이 영원히 닫혀버린 거죠. 영화 속 오베와 소냐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난 레터에서 소개한 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업>의 칼과 엘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베는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는 성격의 인물로 그려집니다. 매일 아침 마을을 순찰하고, 만일에 사고에 대비해야만 하는, 자신의 규칙에 집착하는 그의 성격은 타고난 것보다 지나온 삶과 환경이 큰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은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겪지 않으려 합니다. 오베가 가장 지키고 싶었던 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오베가 안전한 환경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건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모두 잃어보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오베의 고집스럽고 까탈스러운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와 오베라는 인물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데에는 ‘그가 가진 고집과 외로움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으니까요. 아마도 오베의 고집 뒤에 감춰진 아픔과 외로움을 알아보았기에 소설도 영화도 많은 사랑을 받은 거겠죠?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을 겪지 않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결코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닥쳤을까 원망하고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기보다 기꺼이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의 삶도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베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요.

벽을 세워두고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는 오베에게 딸처럼 살갑게 대했던 이웃 파르바네가 날린 일침과도 같은 한 마디예요. 그리고 오베가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었던 한마디이기도 합니다. 구독자분들은 그런 적 있으신가요? 상처로 남은 기억이나 경험 때문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도움을 주지도 받고 싶지도 않다고 느낀 적이요. 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류로 돌아가는 곳이기에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아 본 적 있는 이들에게 사람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파르바네의 말처럼 세상은 결코 혼자 섬처럼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봐 주고, 기꺼이 마음을 나누려는 태도만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pilogue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처음으로 본 스웨덴 코미디 영화였고, <오베라는 남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웨덴 영화입니다. 두 영화의 무드와 주제는 다르지만, 굳이 찾아낸 공통점이 있다면 스웨덴 할배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에요. 레터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감상했는데 스웨덴 할배들은 다들 알란과 오베처럼 괴짜 같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더라고요. 두 작품 모두 120분 내외의 적당한 러닝 타임으로 부담 없이 입문하기 좋은 스웨덴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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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은 모두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어요. 다독가는 아니지만 저만의 소설 선택 방식이 있는데요. 그중 하나가 인상 깊게 본 영화의 원작을 읽어보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를 볼 때마다 모든 원작을 읽어보진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책으로도 읽어보고 싶다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 있더라고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오베라는 남자>는 모두 책으로 읽어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인 감상평을 덧붙이자면 두 작품 모두 소설이 훨씬 더 재미있었답니다! 영화와는 다른 나만의 이미지로 작품 속 배경과 인물들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컸어요. 두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셨다면 책으로도 한번 읽어보고, 영화와 책이 어떤 점이 더 좋았는지 비교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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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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