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34. 장르가 곧 팀 버튼

장르가 곧 팀 버튼

팀 버튼은 B급 감성에 동화적인 색채를 가미해 본인만의 독보적인 장르를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불립니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 전공 후 디즈니에 입사했는데 어린이들의 꿈과 환상을 책임지는 디즈니와는 정반대의 결을 가진 탓에 일찍 그만두었다고 해요. 그러나 디즈니를 나온 후 워너브라더스와 함께 작업한 영화(<피위의 대모험>, <비틀쥬스>, <배트맨> 등)가 연달아 성공하면서 암울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지닌 팀 버튼 만의 스타일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유일무이한 개성을 지닌 감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후에도 <가위손>, <크리스마스의 악몽>, <에드우드>, <화성침공>, <혹성 탈출>,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장시켜 나가며 ‘팀 버튼만의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독보적인 감독으로 꼽힙니다.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몽환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 독보적인 캐릭터, 독특한 분장, 현실과 비현실 세계를 오묘하게 섞어놓은 배경  등은 ‘Burtonesque’라고 불리며 팀 버튼 만의 독보적인 장르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작품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주인공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기도 합니다. 실제로 팀 버튼 감독은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에 호러 영화를 즐겨보고 그림만 그리는 괴짜였다고 해요.

팀 버튼의 주인공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이 혹은 어른아이. 단순히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아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거나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등 보편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비현실적인 세계에 가까이 닿아 있는 아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팀 버튼의 세계 속 아이들은 독특한 외형이나 기이한 능력 때문에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러한 모습을 통해 감독은 보편적인 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향한 오해와 편견을 작품 속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깨부숩니다.

<빅 피쉬 (Big Fish)>, 팀 버튼, 2003년 개봉

<빅 피쉬>는 일생을 허풍으로 보낸 아버지(에드워드)와 그를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험담을 따라가는 아들(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팀 버튼 영화 중 가장 몽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꼽히는데요. 영화를 촬영할 당시 팀 버튼이 아버지를 떠나보냄과 동시에 아이가 태어나 아버지가 되면서 윌의 처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팀 버튼은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영화는 팀 버튼이 스스로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동안의 팀 버튼 작품과 달리 기괴한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로 꼽기도 하는데요. 특히 에드워드의 러브스토리 속 1만 송이 수선화 장면은 SNS상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며 두고두고 회자되는데 이는 실제 꽃밭을 만들어서 촬영한 장면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에 가까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3백여 명의 제작진, 7천여 명의 엑스트라, 150여 마리의 동물이 촬영에 동원되었다고 해요. 영화 후반부 나무 위에 차가 걸려 있는 장면 역시 내부 부속품을 모두 제거하고 실제 나무 위에 차를 걸어 놓고 촬영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에드워드는 아이부터 소년, 청년, 노년까지 모두 네 사람이 연기했는데요. 청년 에드워드와 노년 에드워드의 캐스팅에는 비하인드가 숨어 있습니다. 당시 노년 에드워드가 공석인 상황에서 청년 에드워드로 이완 맥그리거가 캐스팅되었는데요. 캐스팅 디렉터가 한 잡지에서 노년 에드워드를 연기한 엘버트 피니의 젊은 시절 사진과 이완 맥그리거의 사진이 나란히 놓여있는데 두 사람이 굉장히 닮은 것을 보고 노년 에드워드 캐스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아들 윌에게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버지 에드워드. 윌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허구임을 자각하는 나이가 된 후에도 끊임없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윌은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향하는데요.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허풍 가득한 무용담을 들려주고 윌은 그런 아버지에게 환멸을 느끼면서도 처음으로 그 이야기 속에 진실 또한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팀 버튼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적인 세계를 또렷이 구분해 왔습니다. <빅 피쉬>는 두 세계 간의 화해를 시도하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에드워드와 윌은 어떤 면에서는 둘 다 이야기꾼입니다. (극 중 윌의 직업은 기자거든요.)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는 환상을 믿는 이야기꾼, 아들은 지극히 현실 지향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점이죠. 서로 양립하던 두 세계는 아버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때로는 환상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가족들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거죠. 에드워드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미안함에서 출발하는데요. 출장이 잦아 아들이 탄생을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탄생에 얽힌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합니다. 에드워드는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모든 순간에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함께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요.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순간은 사후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머무는 것처럼 에드워드의 모험담은 가족들 안에서 에드워드 그 자체로 영원히 함께 하는 거죠.

<빅 피쉬>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아들을 보여주며 사랑하는 이의 상실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동화 같은 판타지로 그려냈는데요. 이야기가 단순히 허구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온 팀 버튼 감독 이야말로 ‘이야기가 가진 힘’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란 생각이 듭니다.

<빅 아이즈 (Big Eyes)>, 팀 버튼, 2014년 개봉

<빅 아이즈>는 화가 마가렛 킨의 실화를 다룬 전기 영화로 팀 버튼의 색채가 거의 가미되지 않은 작품입니다. 의외로 감독이 마가렛 킨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을 계기로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해요. 팀 버튼 감독의 두 번째 전기 영화이기도 한데요. 첫 번째는 실제로는 저평가받았으나 팀 버튼에게는 가장 큰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영화감독 ‘에드워드 우드 주니어’를 다룬 <에드워드>입니다.

마가렛 킨은 1950-6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작품 ‘빅 아이즈’의 원작자인데요. 그녀의 남편 월터 킨을 통해 작품이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마가렛이 남편을 고소하기 전까지는 원작자가 월터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1986년 마가렛이 저작권을 되찾기 위해 남편을 고소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어요. 월터 킨은 일평생 화가를 꿈꾸었던 좋게 포장하면 허풍쟁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사기꾼입니다. 그래도 영업 감각(?) 만큼은 뛰어났는지 그림뿐만 아니라 빅 아이즈를 활용한 포스터와 같은 아트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일종의 대중 미술 상업화를 이끌어내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사기꾼…)

영화는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몰입도가 뛰어납니다. 특히 월터 킨을 맡은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가 어마어마한데요. 너무 얄미워서 한대 콱 쥐어박고 싶은 연기를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 마가렛을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는 <빅 아이즈>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팀 버튼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카터가 출연하지 않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서인지 작품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마가렛은 우연히 만난 월터 킨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월터는 마가렛이 그린 독특한 그림 ‘빅 아이즈’를 미술계에 팔기 시작하고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습니다. 마가렛은 월터 덕분에 부와 작품에 대한 명성을 얻지만 사람들과 자신의 딸 앞에서까지 ‘빅 아이즈’의 화가 행세를 하는 윌터를 보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러나 남편의 위협과 여성 화가가 설 자리가 없다는 두려움으로 오랜 세월 대리 화가로 숨어 지내던 마가렛은 ‘빅 아이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을 보고 그동안 숨겨왔던 모든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합니다.

<빅 아이즈>는 여성이 설 자리가 많지 않았던 1950년대 여류화가 마가렛 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가렛이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데에는 작품의 대한 권리보다 딸에 대한 사랑이 가장 컸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녀는 작품의 영감이자 누구보다 가까웠던 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팀 버튼은 이러한 마가렛을 예술가이자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바라보며 그녀의 삶을 그려냅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대량 생산되어 소비되는 예술을 진정한 예술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됩니다. 월터는 미술계의 홀대에 반감을 품고 대중들의 인기에 집착하는데요. 성공에 도취된 월터는 마가렛에게 박람회를 위한 그림을 강제로 그리게 하고 영혼 없이 완성된 작품은 ‘빅 아이즈’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평론가로부터 조롱을 받습니다. 월터는 “사람들이 빅 아이즈를 좋아한다고 자동으로 나쁜 것이 되는 것이냐 ” 따져 묻고 평론가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되는 것도 아니고예술은 끌어올려야지 낮춰서 맞추는 것이 아니다 ”라고 답하는데요. 저는 해당 지점을 통해 예술의 가치는 대중성보다 창작의 본질에 따라 나뉜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가렛과 월터가 ‘빅 아이즈’를 대하는 가장 큰 차이는 월터는 ‘팔아야 하는 대상’, 마가렛은 ‘자신의 일부’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마가렛은 남편의 요구와 대중들의 소비량을 따라가기 위해 반복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거예요. 그래서 박람회 출품작은 같은 사람이 그렸지만 소위 말하는 ‘영혼 없는 그림’이 되어버린 거죠.

<빅 아이즈>는 마가렛 킨의 실화를 통해 1950년대 여류화가로서 겪어야 했던 사회적 제약, 딸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대량생산이라는 화두와 맞물려 있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로 고민해 볼 지점을 제시하는 꽤 철학적인 영화이기도 한 것 같아요.

Epilogue

 📺 함께보면 좋은 추천 콘텐츠: <웬즈데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웬즈데이>는 <아담스 패밀리>의 장녀 ‘웬즈데이 아담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일종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팀 버튼이 제작과 함께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했는데요. 호불호가 크게 갈렸던 최근작 중 가장 호평이 많았던 작품으로 꼽힙니다. ‘웬즈데이’를 연기한 제나 오르테가가 크게 주목받으면서 작품이 더욱 흥행하게 되었는데요. (저도 쇼츠 영상으로 돌아다니던 웬즈데이의 춤을 보고 드라마를 보게 되었어요.😅) 팀 버튼 작품답게 독특한 캐릭터와 기괴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 돋보입니다. 여기에 추리극의 요소를 가미해 시리즈 후반부까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렸는데요. 흥행에 힘입어 시즌2도 제작 중입니다.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함께 보기 좋은 콘텐츠로 추천드립니다.

🔖 Reference (씨네아카이브 참고자료 출처 표기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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