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야간 비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단어 하나하나 아름다운 작품

2021.01.15 | 조회 2.3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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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어느덧 첫 달의 중순이네요, 맙소사. 다들 작심삼일 다섯 번 정도 반복하며 꾸준히 하고 계시죠? 저는 신년에 읽어야지 했던 책의 진도가 이미 뒤로 자꾸 밀리고 있고 운동도 생각보다 적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원래 결심이란 좌절해가며 끙끙대야 맛이죠. 신년 한두해 맞아보는 것도 아니고, 뭐 이쯤이야.

와중에 메일리 연재를 날짜 어기지 않고 해내고 있는 것만으로 일단 큰 만족 중입니다. 틈틈이 제 메일 읽어주시는 소수 정예 구독자분들, 진심으로 고마워요. 제 일상을 버티게 하는 빛과 소금입니다. (이왕이면 댓글도 좀…)  

그동안 계속 영미문학을 소개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불문학 작품을 들고 왔어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어린 왕자’의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다른 대표작, 인간의 대지야간 비행을 소개합니다.

표지가 유난히 아름답죠. 시공사 판본에는 두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표지가 유난히 아름답죠. 시공사 판본에는 두 작품이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ery, 1900.6.29 ~ 1944.7.31), 어떤 작가인가요?

 

생텍쥐페리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인간과 인간성, 세계 혹은 우주 내에서의 인간의 위상을 파악하고자 하며, 대자연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의 대지, 야간 비행 해설 - 김윤진 (번역가)

 

프랑스 태생의 비행사이자 작가로, 그의 출생지인 리옹의 공항과 기차역 모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고, 유로 통합 전 프랑스의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있을 정도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항공 조종사로 일하며 겪은 특별한 경험들 속에서 얻은 성찰을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 속에 담아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현대 고전 문학으로 여겨지며 현재까지 전 세계 수십 종의 번역본이 출간되고 있어요.

1921년, 스물한 살에 의무 군 복무를 위해 입대한 뒤 공군에 배치되어 항공 조종기술을 습득, 민간 조종사 면허와 전투 조종사 자격 등을 취득합니다. 이후 비행기와 항공에 대한 그의 애정은 평생 지속되지요. 1926년, 현재 에어 프랑스의 전신인 민간 항공사 아에로포스탈 (Aéropostale)에 입사하여 얼마간의 정비 업무 이후 우편 운송기 조종사로 근무를 하게 되는데, 당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의 프랑스 통치 지역과 프랑스를 항공로로 잇고자 하는 창업주 라테코에르 (Pierre-Georges Latécoère)의 야심에 따라, 1929년부터 생텍쥐페리는 항공로 개척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르헨티나 지부의 개발 책임직을 맡으며 파타고니아 노선 개척을 담당하기도 하여, 1930년에는 민간 조종사의 자격으로는 드물게 항공로 개척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프랑스 국가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종전 이후에도 생의 마지막까지 조종사로서 정찰 임무를 맡아 수행하며 프랑스 십자 무공 훈장을 두 차례 받기도 했어요.

10대 때부터 다양한 문학작품을 읽고 시를 짓기도 하며 작가의 소질을 보였던 그는 20대 중반 정도부터는 앙드레 지드나 장 프레보와 같은 작가들과 교류를 하게 되고, 1926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비행에 대한 애정을 담은 단편 ‘비행사’를 잡지에 발표하며 작가의 삶을 시작합니다. 아에로포스탈 항공사에서 근무하며 집필한 ‘야간 비행’을 1931년 출간, 프랑스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 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인정과 인지도를 확실히 얻게 되지요. 언제나 끊임없이 메모하고 글을 쓰던 충실하고 성실한 작가였으며, 글을 쓰는 행위는 비행기 조종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의 일부였습니다.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던 유럽의 하늘, 낯선 산과 강, 바다와 계곡 위를 다니는 항공 조종사는 자칫 잘못하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수 있는 큰 위험 부담을 늘 안고 있었고, 실제로 생텍쥐페리도 위험에 빠져 가까스로 구조되거나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험을 수차례 겪기도 했으며, 동료들의 죽음과 실종 등을 접하곤 했습니다. 이런 비행사로서의 특수한 경험과 함께 그 속에서 느낀 인간과 인류, 삶에 대한 근본적이면서도 초월적인 다양한 사색의 결과가 담긴 독보적인 작품들을 남겼어요. 대표작으로는 남방 우편기 (1929), 야간 비행(1931), 인간의 대지(1939), 전투 조종사(1942), 어린 왕자(1943)가 있습니다.

1944년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실종되었고, 당시 마찬가지로 정찰 임무 수행 중이던 독일 항공기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아직까지 유해는 찾지 못했으나 1988년 프랑스 마르세유 동남쪽 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가 자신의 그물에 딸려온 그의 팔찌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2005년 두 명의 잠수부에 의해 그가 마지막 조종했던 항공기의 잔해를 찾게 됩니다.

 비행이 삶의 일부였던 작가의 모습
 비행이 삶의 일부였던 작가의 모습

 

 

2. 어떤 책인가요?

이 아름다운 책, 이 용감한 책, 이 혼돈스런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

뉴욕타임스

 

시공사에서 출판된 ‘인간의 대지’에는 두 가지 장편 작품인 ‘인간의 대지’‘야간 비행’이 수록되어 있어요. 두 작품 모두 조종사로서의 경험과 동료들의 에피소드들을 바탕으로 적은 글로, 비행사로서의 고뇌와 불안, 어려움 등뿐 아니라 유한한 인간의 삶과 그 속에서 꽃피우는 인간의 문명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인간의 존재 의미와 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번 메일에서는 두 작품을 간단히 다루지만, 다음 독후감에서는 ‘야간 비행’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적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대지 』

1938년 집필을 시작해 그 이듬해인 1939년 출간한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자전적이 내용이 담긴 글이에요.

전체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항공 노선’ ‘비행기와 지구’, ‘오아시스’ 등, 주제를 나타내는 소제목 아래 작가 자신의 경험과 사색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기록했습니다. 비행사로서 첫 시작하는 순간을 비롯, 잊기 힘든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과 함께, 동료들 각각의 비행의 여정과 그들과의 느슨한 듯 끈끈한 우정, 항공로 개척을 위한 비행을 하며 겪은 아찔한 불시착과 생사를 오가던 경험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출간 후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발표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장르상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해 프랑스 문학상 중 하나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합니다.

*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 프랑스 최고 지성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 단체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주최하는 문학상 중 하나로 매년, 그 해에 최고라고 여겨지는 소설에 시상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0018&cid=43667&categoryId=43667

http://www.academie-francaise.fr/

 

삶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 우리는 풍요로웠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그 작업을 해체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그런 시기가 온다. 동료들은 하나씩 우리에게서 자신의 그늘을 걷어낸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에는 늙어간다는 말 못 할 회한이 서린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시공사 p.41)

 

 


 

야간 비행』

아에로포스탈 항공사에서 아르헨티나 지역으로 발령받아 지내던 시기인 1929년에 집필했으며 자신의 상사였던 항공 노선 책임자인 디디에 도라를 모델로 한 장편 소설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야간 비행이 그때는 겨우 시작된 시기였고, 그만큼 큰 위험 부담,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반대를 묵묵히 헤쳐나가며 노선을 정립하고 야간 비행 스케줄을 확립해가는 노선 책임자 리비에르와 깜깜한 밤 미지의 하늘을 비행하던 조종사들의 이야기입니다. 1931년 출간과 함께 평단과 대중의 즉각적인 호응을 얻고, 그해 프랑스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 상을 수상하며 그가 작가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에요.

* 페미나 상 : 1904년 제정된 문학상으로, 12명의 여성들로만 구성된 심사위원이 매해 프랑스어로 된 픽션 문학작품 중 선정하여 수상한다. https://www.larousse.fr/encyclopedie/divers/prix_Femina/119245

 

그녀는 한 시간 후면 한 도시의 운명과도 같은 거창한 것을 책임지고 유럽행 우편 항공기의 운명을 짊어질 그의 탄탄한 팔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불안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 중에서 저 사람은 그 기묘한 희생을 떠맡을 단 한 명의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슬펐다. 그가 그처럼 자신의 애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음식을 해먹이고, 그를 보살피고, 어루만졌던 것은 그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를 데려갈 이 밤을 위해서였다. 그녀로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 싸움과 불안과 승리를 위해서였다.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시공사, p266)

 

 

*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책에 수록된 설명 및 해설, 작가 연보와 아래 링크들을 참조했습니다.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106&cid=59014&categoryId=59014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33856&cid=47317&categoryId=47317

>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ntoine-de-Saint-Exupery

> https://mentourpilot.com/pioneers-saint-exupery/

> http://www.frenchbanknotes.com/articles/stexupery.php#

> https://www.antoinedesaintexupery.com/ouvrage/vol-de-nuit-1931/

> https://www.antoinedesaintexupery.com/ouvrage/terre-des-hommes-1939/

 

 

3. 분량과 난이도

인간의 대지는 약 260여 페이지, 야간비행은 약 110여 페이지로 두 편 다 꽤 적은 분량이에요. 사용하는 언어나 문장이 난해하지 않으나, 특히 ‘인간의 대지’의 경우는 사색적인 내용이 많아 천천히 소화해가며 읽어야 잘 따라갈 수 있어요. 비행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배경이 있긴 하지만 8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에 따른, 어찌 보면 서로 다른 독립된 짤막한 단편 모음과 같아서, 글 전체를 한꺼번에 읽어내려는 욕심을 부리기 보다, 각 장을 읽고 쉬어가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 좋을 듯해요.

반면 ‘야간비행’은 전체 길이가 더 짧기도 하지만, 글 전체를 관통하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어 그 전개를 따라갈 수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생사 갈림길을 다니는 조종사, 운명 공동체로 묶여있는 무선기사, 그렇게 자기 팀원을 내보내야 하는 책임자 등 고독과 도전 속에서 나누는 타인들과의 교류, 동지애,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람들의 존재 방식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생각과 진심, 영혼이 가득 담긴 일기장을 만난 느낌이에요. 아름다우면서도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자연 풍경과 기상 조건, 비행하는 순간의 감상이 무수히 오랜 시간 쌓였을 사색의 결과와 함께 시적인 언어로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 삶을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이루고 싶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요? 저 위에서 바라보면 그저 빛나는 불빛, 혹은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 작은 점에 불과한 이 모든 것들은 그럼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요? 두 편 모두 유한한 삶 속에서 미지의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는 인간의 존엄에 바치는 찬가라고 느꼈어요. 유한하고 모든 것이 사라질 걸 알지만, 또는 결국 나는 먼지로 돌아가고 그 이후 뭐가 남던 그렇게 나와는 어느 순간 관계없는 것이 될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 인류를 위해 혹은 자신의 존엄을 위해 멈추지 않는 도전을 보며 묵직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지인이 ‘아름답다’는 말과 함께 이 책을 추천하던데, 저 역시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아름답다’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생각합니다.

 

* 책의 상세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1월 20일에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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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한달에 두세편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 작품당 두편의 뉴스레터가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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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3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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