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 말테의 수기, R.M.릴케

시어로 가득한 소설 / 작가 및 책 소개

2021.05.23 | 조회 1.4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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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변치 않는 가치를 지닌 고전 문학 이야기

 

 

독문학의 대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쓴 유일한 소설 '말테의 수기'를 소개합니다. 

저는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는데  책세상 번역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절판이지만 중고로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민음사 판본으로 읽었는데  책세상 번역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절판이지만 중고로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1.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 1875.12.04 ~ 1926.12.29), 어떤 작가인가요?

 

독일 시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나'를 탐구 대상으로 하여 시를 쓴 시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현재는 체코에 해당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 독일어권 태생으로 독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 탐구에 대한 시를 쓴 시인으로 평가됩니다.

가끔 접하게 되는 릴케의 시어가 섬세하기도 하거니와 작가의 이름도 성별이 모호한, 사실은 제 선입견으로는 오히려 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예전 언젠가 남성 작가라는 걸 알고 조금 의외라고 느꼈던 기억이 났어요. 이번 기회에 작가에 대해 자료를 찾다 보니 어릴 때 일찍 죽은 자신의 누이를 잊지 못한 어머니가 릴케를 유년시절 여섯 살까지 딸처럼 키웠다는 것과 그런 성장과정과는 모순적이게도 중고등학교 모두 군사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군인으로서 사회적인 성취를 아들이 해내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권유로 군사학교에 입학하지만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기였다고 하네요. 심지어 어머니는 유년 군사학교에 들어갈 당시 레이스 달린 속옷을 싸주었다고 하며 그걸 본 학우들의 태도가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자아와 괴리감이 컸던 학교생활을 견뎌내기 힘들었고 결국 건강상의 이유로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겪게 된 이러한 경험이 그가 자아를 고민하고 작품에 담아낸 근간이 되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이미 릴케가 10살경에 부모님은 별거한 상태였고 학교를 떠난 릴케는 다행스럽게도 삼촌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합격, 20살에 프라하 대학에 진학합니다. 독문학과 예술사, 그리고 가족의 기대를 고려해 법학 수업도 들었다고 하네요. 이 시기 이미 작가로의 열망이 강했던 그는 대학 입학하기 전 해인 1894년 시집도 한 권 출판하기도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시는 아직 무르익기 전이었다고 해요.

 
 

 

독일 작가, 루 살로메 역시 릴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그에게 아주 중요한 인연이죠. 1896년 프라하 대학에서 2년 정도 공부한 뒤 당시 예술과 문학적인 분위기로 유명했던 뮌헨으로 옮기게 되고 이때부터 릴케의 본격적인 성숙의 시기이자 방랑자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1897년 뮌헨의 소설가 야콥 비서만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루 살로메를 만나게 되고 이미 당시 매력적인 여성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녀의 팬으로 익명의 팬 레터를 보낸 적이 있던 릴케는 이 만남을 통해 금세 루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페테르 부르크 출신의 루는 릴케에게 러시아를 소개했고, 이는 릴케의 작품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녀는 릴케와 함께 1899년 처음 러시아를 방문, 1900년에 한 번 더 방문했고 톨스토이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어요. 그곳의 종교적인 문화와 분위기에서 큰 영감을 받았고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며 그의 진지한 시적 세계를 이 시기에 비로소 시작하게 됩니다. 1899년, 1901년, 1903년 긴 시간 동안 세 번에 걸쳐 집필한 시를 모은 ‘기도서 Das Stunden-Buch'를 1905년 발표했으며 자신의 시 창작이 신을 향한 것임을 드러낸 이 시집을 통해  평단과 대중에게 큰 인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러시아 시기인 1899년에 쓴 장시 ‘코르넷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 Die Weise von Liebe und Tod des Cornets Christoph Rilke’는 1906년 수정하여 발표, 1912년 재출판 후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루 살로메와 릴케. 사실 루 살로메가 니체와 함께 있는 사진, 혹은 셋이 함께 있는 사진이 쉽게 검색이 되던데 이번만큼은 릴케를 위한 페이지이니 그 사진은 가져오지 않았어요. 근데 둘이 14살 차이인데 루 살로메 정말 동안이고 매력 최고네요. 
 루 살로메와 릴케. 사실 루 살로메가 니체와 함께 있는 사진, 혹은 셋이 함께 있는 사진이 쉽게 검색이 되던데 이번만큼은 릴케를 위한 페이지이니 그 사진은 가져오지 않았어요. 근데 둘이 14살 차이인데 루 살로메 정말 동안이고 매력 최고네요. 

 

 

독일의 한 출판사로부터 조각가 로댕에 대한 책을 써줄 것을 요청받아 작가는 1902년 파리에 가게 됩니다. 일을 위해 만나게 된 로댕과는 친구로 또 일의 조력자로서 지내며 약 4년 정도 관계를 이어갔어요. 릴케는 일단 그를 통해 끝없는 작업과 인내라는 예술가의 자세를 배웠고, 로댕은 조각가로서 자신이 작업하는 방식을 통해 릴케에게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법, 파리의 유적들과 도시를 좀 더 깊은 통찰력으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로댕의 영향은 그의 작품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쳐 ‘사물시’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스타일의 시 창작을 하게 되죠. 시각적인 예술을 창의적인 언어로 표현해 내는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자 했으며, 화려한 파리에서 목격한 어두운 면면들과 자신에 대한 탐구를 담아낸 그의 유일한 소설 '말테의 수기'도 이 시기 발표한 작품입니다.  파리에 처음 발을 디딘 후 약 12년 동안 파리를 제2의 고향처럼 주요 거처로 삼으며 유럽 내 다양한 곳을 다니게 됩니다. 이태리의 여러 도시, 스웨덴, 카프리, 스페인, 튀니지, 이집트까지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고독과 내면 탐구에 대한 시 창작을 고민했으며 1922년 그의 역작, 장편으로 된 두 편의 연작시 ‘두이노의 비가 Duineser Elegien’ 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Sonette an Orpheus’를 완성합니다.

루 살로메와의 연인 관계는 몇 년 후 끝나지만 릴케에게 루는 일생 동안 문학과 인생의 조력자, 정신적 지지자이자 절친으로 남게 되었어요. 루의 자유롭던 연예만큼이나 릴케 역시 인생에 여인들과의 다양한 관계가 많았습니다만 이는 릴케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으나 당시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다고 하네요. 파리 시기 직전 만난 조각가 클라라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낳았지만 로댕을 만나게 된 파리 시기 이후 계속 따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릴케의 서정적인 시어들과 함께 여자친구를 위해 장미를 꺾다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과장되어 알려지며 낭만적인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지만 생애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니 자신의 내면 속으로 깊게 침잠하고 평생을 고독과 함께 살았던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리에서 지낸 후 7년 동안 스위스에서 지냈으며 약 4년간 앓던 백혈병으로 1926년 51세의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장미 가시에 찔린 것은 맞으나 그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고 하고, 미리 유언으로 작성해둔 자신의 묘비에 새길 싯구 때문에 좀 더 과장되게 소문이 난 것이라 추측한다고 하네요.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릴케 묘비에 새겨진 싯구

 

보들레르에게 문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대표 시집으로는 위에 언급된 ‘코르넷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노래’, ‘형상시집’, ‘신시집’,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 등이 있습니다. 이 중 형상시집에 수록된 1902년 작, 시인으로서의 고민이 담긴 ‘가을날’이라는 시가 많이 알려져 있어 옮겨둡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태양 시계 위에 던져 주시고,

들판에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도록 명해 주시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나날을 베풀어 주소서,

열매들이 무르익도록 재촉해 주시고,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감미로움이 깃들이게 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지금 홀로인 사람은 오래오래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서, 책을 읽고, 길고 긴 편지를 쓰고,

나뭇잎이 굴러갈 때면, 불안스레

가로수길을 이리저리 소요할 것입니다.

- 릴케, 형상시집 (민음사 / 구기성 옮김)

 

 

2. 어떤 책인가요?

시인으로 알려진 릴케가 쓴 유일한 소설로 1910년 발표했습니다. 덴마크 귀족 출신 청년이자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말테가 파리에서 지내며 느낀 점을 메모로 풀어나가는 작품으로 특별히 중심이 되는 서사 없이 단락별로 다양한 단상을 기록한 형식입니다. 릴케가 파리에서 지내며 목격한 대도시의 이면, 거기서 느낀 자신의 고독감, 우울 등이 영감이 되었으며 시인으로서의 태도, 죽음에 대한 생각, 신에 대한 고민까지 한 개인의 심연을 낱낱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술합니다. 수년에 걸쳐 정리했다고 하며 소설이긴 하지만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반영된 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작가와 책에 대한 설명은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13955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7244&cid=59014&categoryId=59014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77229&cid=44546&categoryId=44546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91688&cid=40942&categoryId=33457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Rainer-Maria-Rilke

https://en.wikipedia.org/wiki/The_Love_and_Death_of_Cornet_Christopher_Rilke

 

 

3. 분량과 난이도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은 29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 방대하지 않은 길이입니다. 하지만 서사 중심의 이야기가 아닌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이야기라 저는 처음에는 읽기 많이 힘들다고 느꼈어요. 사실 힘든정도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장소 불문하고 이 책만 펼치면 하도 졸아서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을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문장들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 포기할 수는 없다 생각해 결국 재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훨씬 수월하게 읽었고, 덕분에 릴케의 아름다운 문장을 한발 늦게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서사 구조에 익숙한 분들은 릴케의 문장이 편해지기 전까지는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반대로 시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오히려 감각적이고 시적인 표현들 덕분에 아주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시인이 쓴 소설답게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표현이 가득합니다. 사고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단순한 문장이 아닌 시어와 같은 문장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책을 어떤 자세로 이해해야 하는지 감이 잘 안 잡히기도 했고 감각적인 표현들이 제 수용력의 한계를 넘어버리는 것 같아 처음 읽을 때는 장시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꾸역꾸역 한 번을 읽고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알게 된 후 재독할 때에야 서사나 개연성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작가가 써 내려간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제야 작가의 표현들이 좀 더 잘 와닿았고 매 단락이 독립된 시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표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빨리 넘기려 하지 않고 천천히 문장들을 음미하는 자세로 읽기에 좀 더 적합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혹시 이미 릴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그가 일생 동안 품었던 시인으로서의 고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겠습니다.

 

 

거리는 너무나도 텅 비어 있었다. 그 공허가 지루해하며 내 발밑에서 걸음을 빼앗아다가 나막신을 신듯이 이리저리 딸가닥거리며 돌아다녔다.

릴케, 말테의 수기 (민음사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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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한결같은 빛을 발하는 고전 문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작가의 작품,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것 같지만 사실 들춰본 적도 없는 책, 어릴 때 아동용 요약본만 읽었던 책들, 그런 고전들 위주로 읽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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