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약속했던 연재 날짜가 많이 지나버려 민망하고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은 채 읽은척 하는 고전이라는, 조지 오웰의 1984를 소개합니다.
1. 조지 오웰 (George Orwell, 1903.06.25 ~ 1950.01.21), 어떤 작가인가요?
본명은 아서 블레어 (Arthur Blair)이며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중 한 명으로 장단편 소설과 수많은 산문을 남겼습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등이 있던 전 세계적인 혼돈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했던 작가였어요. 전체주의와 당시 영국 내 러시아 정치에 대한 환상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했고 정치적인 시대에 살기 때문에 소재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했지만, 정치 선전을 위한 도구로 글을 쓰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언제나 인간 아서 블레어와 작가 조지 오웰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고 그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인도 주재 영국 공관의 공무원 (영국령 인도행정부 아편국 소속)으로 근무했기에 인도 벵골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그 이듬해에 어머니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오웰과 누나를 데리고 영국으로 귀국합니다. 8살에 장학생으로 석세스 지역의 부유층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 예비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는데 학업성적은 우수했으나 다수의 상류층 아이들과 크게 대비되는 부와 신분의 격차로 학교장 부부로부터 심한 차별을 겪었다고 해요. 무뚝뚝하고 뚱한 학생으로 지냈으며 아주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고 11살에 쓴 시가 이미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 합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훗날 발표한 에세이 정말 정말 좋았지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하네요.
1917년, 14세에 우수한 성적으로 올더스 헉슬리가 교사로 있던 이튼 칼리지에 국왕 장학생으로 입학하지만, 이 시기에는 학업보다는 교내 문예지 활동을 비롯 문학에 집중하게 되었고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렀어요. 당시 이튼 칼리지의 상류층 학생들과 달리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동양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있었기에 대부분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동창들과는 다르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 경찰로 지원합니다. 1922년 10월부터 버마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되나 정작 인도에 가서 제국주의의 현실을 목격, 자신이 그 일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환멸을 느꼈다고 해요. 결국 5년 복무 후 1927년 영국으로 귀국한 뒤 사직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해요. 버마에서 당시 백인이며 제국 경찰이라는 자신의 위치적 한계로 버마 현지인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유럽의 빈민과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 20대 중반을 보내며 글쓰기에 몰두했어요.
1928년, 당시 세계 문인들의 교류가 활발하던 파리로 떠났습니다. 외할아버지가 프랑스인이었고, 여전히 파리에는 이모가 거주 중이었으며 오웰은 이미 유창하게 불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심적으로 친근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프랑스 물가는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많이 저렴했고 이런 경제적인 조건이 영미문학인과 예술인들이 파리를 많이 찾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고 하니 오웰에게 파리는 작가로서 출발하기에 매력적인 장소이자 그곳으로 떠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식당이나 호텔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을 했고 글쓰기에 대부분 몰두했으며 전업작가로서 첫 글도 파리에서 발표합니다. 영국의 검열 La censure en Angleterre이라는 제목의 불어로 쓴 글로 1928년 프랑스의 문예지 ‘르 몽드 Le Monde’에 게재되었어요. (같은 제목의 일간 신문이 잘 알려져 있으나, 프랑스 문학가 앙리 바르뷔스가 편집장이었던 문예지 ‘르 몽드’를 뜻함)
파리에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여전히 값싼 숙소에서 노동자들 및 거지들과 지내기도 하고, 홉 수확 시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켄트 지방으로의 대이동에 함께 따라가기도 하며 서점, 초등학교 교사 생활로 생계를 유지하며 부지런히 작가의 커리어를 이어갑니다.
버마에서 지낸 시절의 경험을 반영한 단편 소설 교수형 The hanging을 1931년에 발표했고, 1933년 첫 소설을 출간해요. 파리와 런던의 바닥 생활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이라는 자전적 소설로 런던과 파리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이 시기부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필명 조지 오웰을 사용했는데, 가장 영국적인 이름 조지 George 와 본가 근처에 있던 강 이름 Owell 을 조합한 것이라고 하네요.
1934년에는 버마에서 제국경찰로 지내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버마 시절’을 발표, 문단에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목사의 딸 A Clergyman's Daughter (1935)은 교사였던 경험을 반영했고 엽란을 날려라 Keep the Aspidistra Flying (1936)는 서점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1936)는 버마 근무 시절 경험을 소재로 쓴 작품이에요. 같은 해 발표한 대표작 중에는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The Road to Wigan pier (1936) 도 있습니다.
1936년 12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파시즘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스페인 정부를 지지하고자 자원입대했으나 막상 그곳에서 직접 목격한 상황은 자신의 신념이나 희망, 기대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해요. 군대의 물자, 군인들 모두 거의 오합지졸에 가까웠고 같은 이념을 가진 정당들 사이에서도 심한 알력이 있는 상태였는데 바르셀로나 전선에서 목에 총상을 입고 후방으로 옮겨진 시점에 조지 오웰이 속했던 당과 관련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해 아내와 가까스로 스페인을 탈출해 프랑스로 건너갔어요. 이때 느꼈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와 환멸을 담은 카탈로니아 찬가 Homage to Catalonia를 1938년 발표합니다.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한동안 모로코에서 요양을 하며 글쓰기를 중단한 시간이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군대를 자원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입대 불가 판정을 받아 비교적 복무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민방위대에 자원해 근무했고, 1941년 인도의 BBC에서 정치선전 방송을 담당하게 됩니다. 1943년 BBC를 떠나 트리뷴지의 문학 부분 편집자로 일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 전통적인 문학 비평부터 정치적인 의견이 담긴 글까지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어요.
스탈린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을 우화적인 소설 동물농장 Aminal Farm은 1944년에 완성했지만 한동안 출판사를 찾지 못해 1945년이 되어서야 발표하게 됩니다. 출간과 함께 큰 호응을 얻어 세계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얻게 되었어요. 작가로서 드디어 유례없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실 이 즈음부터 작가의 개인적인 삶은 꽤 고난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동물농장이 출간되기 전 해에 자궁 암으로 수술 중 사망했고, 자신도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1946년에는 스코틀랜드의 주라 섬으로 들어갔어요. 그의 마지막 작품 1984는 이 시기 병마와 싸워가며 집필한 작품으로 1948년 완성, 1949년 그가 병상에 있을 때 출간되고, 1950년 4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2. 어떤 책인가요?
작가가 집필한 가장 마지막 작품으로 가장 큰 유명세를 안겨주었습니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에서 소재를 얻은 소설로 전체주의가 지속된 가상의 미래를 그렸으며 이 책을 완성한 해 1948의 뒤 두 자리를 바꾸어 1984로 제목을 정했다고 해요. 사회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거의 신격화된 ‘빅 브라더’가 등장하며, 사상의 자유를 차단하는 제도, 개인 생활의 감시, 생각을 조정하기 위한 언어의 통제, 역사의 왜곡, 국민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 등 다양한 사회 지배의 수단이 묘사됩니다. 당시 영국에서 호응을 얻고 있던 러시아 스탈린 체제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로 집필했으나, 상황이 많이 달라진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 구조와 사상의 자유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에요.
발표하자마자 큰 반응을 얻어 출간 후 1년 새 영국과 미국에서 이미 40만 부가 팔렸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3 분량과 난이도
저는 민음사에서 2020년 11월 발간한 1984와 단편 소설 및 산문들이 함께 수록된 ‘조지 오웰 디 에센셜’ 판본으로 읽었습니다. 1984는 약 500여 페이지로 적지 않지만 꽤 눈에 피로도가 덜한 활자 크기와 자간을 감안하면 장편 소설에 적당한 분량이라고 느꼈어요. 짧고 간결한 문장,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필요시 적절히 등장하는 서스펜스와 서정적인 장면들이 어우러져 늘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히 난해한 부분도 없어 읽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입니다. 혹시라도 당시 정치적인 상황이나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게 아닐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책은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쓰인 이야기긴 하지만 오히려 가상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상과학 소설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 시대상과 따로 떨어뜨려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책에 수록된 작가에 대한 설명, 연보 및 아래 링크들을 참조했습니다.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28445&cid=40942&categoryId=34424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275&cid=59014&categoryId=59014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95315&cid=42073&categoryId=42073
>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George-Orwell
> https://www.francetoday.com/travel/paris/on-the-trail-of-george-orwell-in-paris/
> http://www.bbc.co.uk/history/historic_figures/orwell_george.shtml
> https://www.bbc.co.uk/historyofthebbc/100-voices/people-nation-empire/literary-india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1984가 읽지 않았으면서 읽은 척하는 책 1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어쩌면 나름의 통계에 따라 맞는 말일 수도 있고 그저 마케팅을 위해 유머러스하게 뽑은 과장된 문구일 수도 있겠으나 저에게는 실제로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상당히 진입장벽 높았던 작품이었어요.
이미 ‘빅 브라더’라는 용어는 널리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고, 개인의 감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다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룬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어떤 방식이던지 너무 방향성이나 주제가 확실한 책은 잘 안 보게 되는 경향이 있는 데다가 사실 정치나 세계정세, 역사는 더더욱 제 관심 분야가 아니다 보니 솔직히 저에게 너무 무겁고 어려운 책이 아닐까 싶어 되도록이면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막연하게 옛날에 상상한 미래 이야기가 지금 읽었을 때 얼마나 설득력 있고 와닿을까 의심하기도 했고요.
분명히 저 같은 분들이 또 있을 듯해서 이 책의 매력은 앞서 언급한 작품 자체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조지 오웰이라는 작가가 쓰는 작품의 본질에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작품은 맞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이 고전으로 계속 회자되는 것은 사회상의 반영보다는 문학적인 면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읽어도 전혀 지장 없이 큰 울림을 주고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책이었어요.
생각의 자유를 억압당할 때 개인들이 보이는 다양한 양상,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은 결국 곧 대중, 즉 사람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이다 보니 권력을 쥔 사람들의 태도와 권력자 아래 놓인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심지어 고문을 행하는 사람과 피 고문자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조지 오웰의 인간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드러납니다. 개인을 통제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양상, 단체와 조직 속에서의 사람들에 대해 보여주며 획일화된 사회의 모습을 조망하지만 그 이면 여전히 느껴지는 개개인의 개성과 각자의 인생을 통해 결국 어떤 상황 어떤 시대에도 변함없는 인간 심리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또한 아름다운 사랑부터 인간의 자유, 소통, 내면의 고민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감정들을 조지 오웰 특유의 군더더기 전혀 없는 극도로 간결한 문체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5. 그 외 – ‘조지 오웰 디 에센셜’
늘 숙제처럼 미뤄왔던 1984를 읽게 된 건 사실 지인들의 추천이 큰 영향을 끼쳤어요. 누군가는 평소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더 즐겨 읽는 편인데 1984를 읽고 문학작품을 읽는 것에 대한 큰 기쁨을 느꼈다고 했고, 어떤 이는 조지 오웰이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 그의 작품이 더욱 좋다고 했고, 또 다른 지인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가 오히려 소설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얘기도 해줬어요. 마침 이 모든 추천을 다 아우를 만한 민음사의 ‘디 에센셜’ 시리즈 중 조지 오웰 편이 출간되어 구매하게 되었는데, 세심하게 기획하고 편집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1984 뒤에는 조지 오웰의 대표 단편 소설과 에세이들 총 7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편과 에세이들을 통해 조지 오웰이 버마 시절 느꼈던 감정을 엿볼 수 있기도 하며 그가 글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항들과 정치적 시대에 글을 쓰며 지향했던 지점에 대해서도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고 문학과 정치, 언어에 대한 에세이들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던 작가로서의 고민과 1984라는 소설을 쓰게 된 그의 동기, 소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중요한 요소들을 살펴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보통 고전문학작품의 경우 대부분은 책 뒤에 역자나 전문가의 작품 해설과 연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상당히 상세한 설명이 함께하는 연보만 있고 별도의 1984에 대한 해설은 없습니다. 하지만 7편의 단편과 에세이들 앞에 각각 두세 줄로 간략히 작가가 어떤 상황에 집필했으며 어떤 내용인지 요약을 해두었고, 이 7편의 짧은 글들이 모여 1984 작품 해설을 대체한다고 느낄 정도로 작가의 생각을 조목조목 살펴보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책의 상세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며칠내로 발송 예정입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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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
조지 오웰에 대해서 궁금했었는데 많은 걸 알게 되었네요 ㅎㅎ 가난하게 살면서 끊임없이 작가로 활동하다 마지막 죽기전에 쓴 책들이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조금 마음아 프긴하네요 .. 한편으로는 그 삶 자체가 문학에 녹아있다고 하시니 꽃을 피우는 과정이기에 필연적인게 아니였나 싶네요 ㅠㅠ 저도 내일 책 사러 가려고 합니다 😆 좋은 레터 감사합니다
안느의 고전 읽기 (178)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다보니 어느정도 내향적인 성격이었던듯 한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실천에 옮기고, 글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것 같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세이들도 꼭 함께 봐보시기를 거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꼼꼼히 읽어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좋은 주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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