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메일은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대표작 '안나 카레니나' 감상문입니다. 이 소설은 제목부터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안나 카레니나를 전면에 내세우긴 하지만 오로지 그녀만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마치 약간의 볼거리를 구경하려 만화경 렌즈에 슬쩍 눈을 대보듯 책을 펼쳤다가, 또 다른 하나의 평행 세계, 거대한 우주를 목격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지배계층 귀족들의 사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그렇게 모두가 맞물려 유기적으로 형성된 사회 속에서 비극적인 인생을 짧게 살고 떠난 한 여인, 안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 대작을 통해 당시 러시아 사회의 모습들을 알아가며 놀라고 감탄하고 신기해하면서 끊임없이 자극을 받았고, 특히 마지막 8부의 내용 때문에 제목이 왜 굳이 ‘안나 카레니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완독 후 계속 가장 기억속에 강하게 남아있는 건 결국 안나의 인생이네요. 그리고, 사회가 온통 세르비아 전쟁에 몰두해있는 모습을 묘사한 8부 때문에 안나의 비극이 완결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숨 막히게 좁고 다른 한편으로는 허망할 만큼 한 명의 개인은 그 누구도 개의치 않는듯한 거대한 세상 속, 한때 사회 전체가 들썩거릴 만큼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잊히고 사라진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안나에 대해 조금 더 적어봅니다.
작가 레프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스포일러 없는 간략 소개는 ↓
1. 선택과 책임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
비극적이고 모순적이며 그래서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인물, 안나. 그녀는 주인공답게 그 어떤 등장인물들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소설 전반에 걸쳐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줍니다. 사실 ‘변한다’는 건 정확한 표현이지는 않겠네요. 극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급기야는 표출되지 않으면 좋았을 어두운 바닥까지 드러냅니다.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독립심 강한 그녀는, 행복을 추구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랑을 포기하고는 살아갈 수 없었기에 자신의 이성과 종교적인 신념에 반하는 사랑을 결국 받아들였어요. 이 사랑으로 자신의 삶이 불행해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랑 앞에선 속수무책 이끌려가는 것이죠.
남편은 그 선택을 철회하라고 요청하고, 브론스키는 이 사랑을 택하라고 종용합니다.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자신이 선택이란 걸 할 수 있다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것, 불장난 같은 사랑놀이에 빠지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것’ 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결정하기 힘든 시기에 인생이 흔들리는 강한 경험을 하면 갑자기 모든 복잡했던 것들이 단순해지고 선택이 쉬워지기도 하지요. 브론스키의 낙마 사고, 본인의 생명이 오락가락하던 둘째의 난산 이후 그녀는 선택이란 것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는 게 그녀의 선택이었고 두 번째는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녀의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인생의 비극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삶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게 선명해지며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고 느껴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인정하고 공표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곧 죽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삶의 끝을 앞둔 채 남편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예상과 달리 자신의 목숨은 길기만 했어요.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무런 선택지가 없어진 상황에 처합니다. 안나 입장에선 이미 자신이 적극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한 것 같은데, 그 선택으로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되지도, 진전되지도 않았어요. 그저 예전과 다름없이 하지만 이제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집에서 얼굴만 봐도 힘든 남편과 덫에 걸린 쥐처럼 지낼 뿐입니다.
정말 힘들게 선택이란 걸 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기력함, 혼란스러움, 길 잃은 듯한 좌절감에 빠졌을 때 브론스키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까지 듣죠.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합니다. 남편도 브론스키도, 그리고 자기 자신도 더 이상 자극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역시나 인생은 계속해서 알아서 흘러갑니다. 그렇게 안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더 이상 적극적인 행동 없이 마치 등 떠밀리듯 운명의 흐름에 이끌려 브론스키와 새로운 삶을 향해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소설의 후반부, 안나는 자신이 처음부터 예상한 것처럼 점차 불행을 향해 나아가요. 계속해서 커지는 불안감, 괴로워하며 오락가락하는 안나의 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이 이미 비극으로 결론지은 시나리오의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건 아닌지,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피엔딩을 자신도 모르게 미리부터 제한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생 자체가 언제나 우연과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긴 하지만, 한 번씩 크게 내가 감당하기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 지나치게 예외적인 순간들을 맞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안나가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 호감을 느낀 뒤 밀어내려 했으나 결국 무장해제돼버린 것처럼, 부정하거나 거부도 해보고 나름의 방법을 취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노력이나 마음고생은 다 소용없이 결국 다른 단계로 진입하게 되는 상황이죠. 내 마음이 내 뜻대로 안된 건지, 사실 마음 깊숙이 본심은 이런 전개를 원한 건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거예요.
안나는 브론스키와는 그저 평범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머지, 그가 그녀를 더욱 사랑해야 하고 자신을 늘 갈구해야 하고, 그래서 아무런 의심과 두려움을 가질 틈 없이, 평범한 부부와는 다르게 둘 사이의 균열이 생길 겨를이 없어야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그와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 자체에 너무 큰 무게를 실은 나머지 그 이후의 삶은 그저 따라와 주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점차 현실적인 동반자로서 안정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게 정상적인 과정이지만, 안나는 처음부터 그와의 관계는 불행을 자초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 확신이 필요했을 것도 같아요. 어쩌면 그녀는 브론스키를 마음 깊이 사랑은 했으나, 이 관계는 잘 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에 단 한순간도 그와 안정적으로 평범하게 백년해로하는 광경을 그려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어요. 그렇게 자신이 이미 써 둔 시나리오대로 불행이라는 결말을 향해 가면서 브론스키가 자신을 끌어당겨 그 행로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나를 보며, 나는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조바심에 허둥댄 일들이 생각났고, 인생에서 내가 선택하며 그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너무 크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깨달음도 다시 상기해봤습니다. 살다 보면 내 계획에 전혀 없던, 혹은 결코 내가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닥치기도 하죠. 내가 잘못해 이런 상황을 초래한 건지, 사실 내가 원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뿐인 지 판단하기도 힘들고, 이미 판도가 바뀐 시점에는 지금 이 상황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규정을 할 수 있다 한들 더 이상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두려움으로 스스로 미리 확고하게 만든 선로를 달려가며 어찌할 바를 몰라 결국 나가떨어진 경험이 떠올랐어요. 그저 지금의 현재를 받아들이고 겪어 내기만 해도 충분할 텐데 준비가 안된 이 상황이 불안하고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다 보니, 스스로 연막을 치며 주변의 모든 것이 예외적으로 훌륭해야만 상황이 좋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자꾸 했던 것 같네요.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너무 강한 나머지, 불가해하고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을 겪어내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간과할 때가 있죠. 의지를 가지고 행한다고 다 '선택'인건 아니겠죠. 단지 조바심일 수도, 허둥댐 일 수도 있고, 또는 그저 두려움의 표출일 수도 있으니까요.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미래에는 좀 다르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2. 브론스키, 레빈
안나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뒤 그의 파트너였던 브론스키를 평가하자면 당연히 그가 잘 한 것보단 못한 걸 비난하는 쪽이 쉬울 듯합니다. 하지만 이성보다는 마음에 따라 움직이고 가식 없고 거짓으로 살지 않는 그의 매력은 부인할 수 없어요. 밉지만 애정이 가는 인물이죠. 특히 마지막 8부, 안나를 잃고 자기혐오에 빠진 채 참전하러 가는 그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애처로웠습니다. 그에게는 전쟁이 구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자기도 현재의 고통 외에 몰두할 다른 것이 생겼으니까요.
마지막에 안나의 복수심에 탄 모습이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힘들어하는 대목은 비통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안나처럼 죽음으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에 연인 사이에는 아름다운 이별이 없다는 걸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지 싶어요.
이 작품에서 안나 못지않은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레빈은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도 할만 합니다. 심지어 마지막 대미를 안나가 아닌 레빈이 장식하죠. 그를 통해 순수한 사랑, 실패한 관계에서 오는 좌절, 농업과 농민에 대한 애정, 소박한 일상의 아름다움, 진심이 움직이게 하는 마음, 행동하는 신념, 사랑의 힘, 종교와 신의 존재 등 한 인간의 내면을 통해 다양한 면면을 광범위하게 살펴볼 수 있었어요. 내면 성장의 과정이 확연히 눈에 보이는 인물이고, ‘선하고 좋은 남자, 훌륭한 남편’의 미덕을 두루 갖춘 훈남이기도 합니다.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레빈이 마지막에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목이 어쩐지 서운했지만, 결혼을 위해 꼬박꼬박 성당에 나간 뒤 신부의 질문에 선뜻 거짓으로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아내가 산통으로 괴로워할 때 주저 없이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양가적인 그의 모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3. 글을 닫으며
이 책에는 사회 전반의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정치와 사회 개혁, 여권 신장, 노사 문제 등 대의적인 사회 문제부터, 직업, 종교와 복수심, 미신에 의지하는 마음 등 개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는 것이 없었어요. 당시 러시아 사회의 세세한 풍습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유난히 불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당시 귀족들이 불어를 그저 잘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시기에는 모국어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불어가 유창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였고요. 품위 유지를 위해 빚을 내는 귀족도 꽤 많았던 듯하고, 한쪽에서는 ‘요즘 사람들 결혼은 예전 같지 않고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면서,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도 사랑만으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냐’고 하는 의견도 있었다는 것, 이러나저러나 딸 가진 엄마는 언제나 안절부절 전전긍긍하는 모습들도 흥미로웠습니다.
안나의 내면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이 책을 읽는 동안 뭔가에 홀린 듯 정신이 없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도 많았는데, 해외 여행이 무기한 중단된 지금 시기에 활자를 통한 여행을 제대로 경험하게 한 책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마무리는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스틸컷들입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러시아에 가고 싶어지네요.
오늘은 밤과 낮 길이가 같다고 한 춘분이네요. 낮에 외출할 일이 있어 올림픽 대로를 지나는데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사이로 서서히 피기 시작하는 목련과 벚꽃이 보이더군요. 세상이 어수선해도 봄은 또 이렇게 찾아오네요. 일상의 작은 행복과 유쾌함 즐기시는 주말을 기원합니다.
다음 메일은 3월 25일 발송 예정입니다. 새로운 책으로 또 찾아올게요!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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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Ah Lee
잘 읽었습니다. 왠지 단숨에 읽었어요. 안나까레니나는 영화로만 봤던것 같아요. 한번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
안느의 고전 읽기 (178)
은아님, 댓글 고맙습니다. 단숨에 읽었다는 코멘트도 괜히 기분이 좋네요. 저는 조만간 영화를 한번 찾아보려 생각중입니다.^^ 편안한 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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