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독서는 눈보라가 어울리는 러시아의 작가들로 시작했어요.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각각 하나씩 읽었는데요 두 작품 다 분량이 많아 이번 달에 다른 책은 아예 엄두를 못 내서 아예 저 혼자 올 일월을 러시아 문학의 달로 지정했어요. 제 마음의 위안 외에는 다른 역할은 없는 테마 정하기지만 그렇게 명명하니 이만하면 괜찮은 독서를 한 한 달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무리하게 긴 작품 두 개를 읽다 보니 메일리도 하루 늦어졌어요. 저의 소중한 소수 정예 독자분들 생각이 나서 어제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두 작가 모두 우월을 가릴 수 없는 대 문호이지만 사람의 어두운 내면을 많이 다루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저는 어쩐지 좀 더 호감이 느껴져서 그의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작년에 죄와 벌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 작가에 대한 애정이 점점 깊어지는 중이에요.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1.11~1881.2.9) 어떤 작가인가요?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발표해 ‘잔인한 천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지하에서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현재까지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장단편 소설들로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병적이며 광폭한 심리상태를 깊이 있게 다루는 작가의 특징적인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품들이에요.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른 심경의 변화를 서술하는 그의 문장들은 문학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가능성을 소개하며 모더니즘의 지평을 열었으며 실존주의 문학 그리고 20세기 철학과 심리학의 형성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요. 작가의 어머니는 다정다감했으나, 그와 달리 아버지는 지독하게 엄격하며 무뚝뚝하고 고집 센 성격으로 군 외과의사로 퇴직 후 모스크바의 빈민을 위한 병원인 ‘마린스키 병원’에서 근무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이후 다시 언급하게 될 청년 시절 사형수로서의 큰 사건 이후 매우 종교적인 인물로 거듭나긴 하지만, 사실 어려서부터 독실한 부모님 아래 성장했고 이는 당시 무신론을 따르거나 회의주의적 성향을 지녔던 많은 상류층 사람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그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1828년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귀족 지위를 획득하고 영지도 구매하지만, 부모님 모두 작가가 아직 스무살이 되기 전 세상을 뜨게 되고 결국 그는 받은 유산을 순식간에 탕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은 거의 누리지 못했습니다. 가난하게 살았고 아버지가 근무하던 병원의 환자들과 대화하기를 즐기며 다른 빈민의 생활을 목격한 성장과정은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세계에 반영되었어요. 19세기 그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부유한 귀족 상류층 출신의 작가들,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와 달리 자신은 ‘잡계급’ 출신이었고, 이 신분의 격차를 그는 늘 의식하고 힘들어했다고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가 유명 작가가 되어서도 도박에 손을 대며 결국 일생 동안 해소되지 않아 그의 작품 활동 역시 일차적으로는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동기였다고 합니다.
작가로서의 그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의 개인적인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비교적 베일에 가려져 있는 편입니다. 어머니는 작가가 17살경에 사망했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망한 뒤 40여 년이 지나서야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 사망 몇 년 뒤 그의 농노들에게 살해당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어요.
12살까지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 이후에는 일반 학교와 기숙학교를 다녔다고 하네요. 사이가 좋았던 친형과 함께 문학에 일찌감치 빠져들었고, 월터 스콧 경, 앤 래드클리프, 프리드리히 쉴러, 니콜라이 카람진, 푸쉬킨등의 작가들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이후 생 페테르부르크의 공병학교에 진학해 1843년 학위과정을 끝내고 공병단 제도국에서 잠시 근무도 하지만 이 시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번역하여 발표한 것이 꽤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1844년 10월에 소위로 제대합니다. 발자크의 작품 번역은 그에게 소설 창작의 좋은 거름이 되었고 1845년 그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집필, 그 이듬해인 1846년 문예지에 발표합니다.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비평가 벨린스키가 이 작품을 극찬, 그는 재능 있는 신인으로 화려하게 주목받으며 등단합니다.
벨린스키와 교류를 하게 되었으나 당시 젊은이들 사이 유행과 같던 반체제 모임 중 하나인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 출입하기 시작하고, 벨린스키와는 사상적, 감정적 이유로 절연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848년 5월 벨린스키가 사망합니다. 작가는 1849년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서, 벨린스키가 고골에게 보내는 변절을 비난하는 반체제적인 내용의 편지를 낭독했고 이 사실이 당시 밀정을 통해 황제에게 보고되며 다른 페트라셰프스키 회원들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사형이 집행되는 날, 형장에 서서 총살을 당하기 바로 직전에 갑자기 사형을 취소하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낸다는 황제의 명령이 내려집니다. 이 극적인 상황은 사실 처음부터 계획된 것으로 반체제적인 민심을 억압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황제의 너그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잔인하고 비열한 촌극과 같은 것이었으나, 여하튼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이 사건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 다시 살아난 체험은 그를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으로 변화시켰어요.
사형은 취소되었으나 4년간의 시베리아의 유형생활 그리고 그 이후 군인으로서의 복역까지 총 8년의 형기를 채웠으며, 이후 이 기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간수들을 통해 인간의 잔혹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소설로 러시아의 수용소 문학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지금까지도 독자들에게 굉장히 강력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로, 톨스토이는 이를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고자 했고, ‘자유’라는 주제는 이후 그의 다른 작품세계에서도 꾸준히 다루게 됩니다.
유형생활 동안 작가가 읽을 수 있던 책은 성경이 유일했다고 하며 이 시기를 통해 예전과는 아주 다른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강요하는 오만한 지성인의 자세를 버리고 독실하며 민족주의 (슬라브주의)의 보수적인 사람으로 변모해요.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선의의 미덕을 높게 생각하며 스스로 그런 태도를 취하고자 합니다. 또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의 전통적인 문화와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보통 사람들의 종교인 러시아 정교를 믿고 따르게 됩니다. 비록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무신론적인 의심과 투쟁했으나 믿음에 대한 강렬한 갈망이 있어 심지어 한 편지에, 만약 누군가가 실제로 진실이란 것이 그리스도 밖에 있다고 증명한다면 자신은 진실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걸 택하겠다고 적기도 했어요.
유형기간 동안 간질병이 처음 발작하게 되며 건강상의 이런 문제는 그에게 심리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발병이 시작 되기 전 느껴지는 전조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고 이번에 제가 읽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비롯 몇몇 작품에서 간질병 환자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유형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도스토예프스키는 형의 협조를 받아 1861년부터 1865년, 형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소식지들을 발간, 자신의 작품을 다수 발표합니다. 정치적으로는 한동안은 온건주의 태도를 취했으나 결국 당시 지식인층으로 이루어진 과격파들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시작해요. 그들의 물질주의와 지극히 실용주의에 기반한 도덕관념,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사상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유형 기간 이후 그의 작품들은 당시 급진적인 다수파의 분개를 불러일으켰고, 정권으로부터도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하네요. 현재까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대부분 이 시기부터 말년까지 쓰인 작품들로, 대체적으로 그의 독실한 신앙과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드러냅니다.
작가로 등단한 이후 유형생활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생 동안 활발하게 글을 써 에세이, 칼럼, 장단편의 소설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1881년 폐동맥 파열로 예순의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2. 어떤 책인가요?
1879년 ‘러시아 통보’지를 통해 연재를 시작해 1880년 11월 완결한 그의 생에 마지막 작품입니다.
어느 소도시의 망나니 같은 지주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의 아들이 얽힌 치정과 패륜의 막장드라마의 모습이지만 지극히 종교적이면서도 다른 한편 신앙과 종교를 초월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하는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광기, 질투, 분노, 폭력, 증오, 그리고 치정, 살인 등 인간 심연의 어두운 모습들과 원색적인 사건들을 작가의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생동감 있고 입체적으로 다루며 신에 대한 믿음과 구원, 인간의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 작가와 책에 대한 내용은 책 뒤에 수록된 해설과 연보, 그리고 아래 링크들을 참고했습니다.
3. 분량과 난이도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제가 읽은 민음사 판본은 3권으로 나뉘어 총 1600여 페이지의 꽤 방대한 분량이지만 초반부터 지극히 세속적이며 밑바닥의 모습을 드러내는 카라마조프 가의 아버지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아들들의 각기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쉽게 몰입하게 합니다. 전반적으로는 자극적인 사건 사고들과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펼쳐져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나 몇몇 어려움도 느껴지던 작품이었어요.
여러 방식으로 다르게 불리는 인물들의 이름을 파악하는 것이 저는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인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광기 어린 사람들의 독백처럼 이어지는 문장들,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로 계속 진행되는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니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카라마조프 가의 세 형제들 중 둘째 이반은 극 중에서 굉장히 생각이 많고 똑똑하지만 신과 믿음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고민하는데, 그러다 보니 그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긴 독백과 같은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서 이 부분들을 따라갈 때 좀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어요.
4. 이 책의 매력 포인트
그의 작품에 어김없이 드러난다는 자유에 대한 고민, 신앙, 그리고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을 다 담아낸 대표작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스타일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마지막 4부가 이 작품의 백미라고 느꼈던 만큼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전개도 좋았고, 다양한 인물들을 묘사하며 자주 드러나는 위트도 매력적입니다.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끊임없이 감탄했는데 특히 인간의 모순성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대목들이 좋았습니다. 선과 악이 동시에 공존하며 잘해보자 결심했다가도 금세 포기하거나 갑자기 곤조를 부리는 등의 우리 모두가 지닌 다듬어지지 않은 내면의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모습들, 아무리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도 어딘가에 지니고 있는 선의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이 극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어요.
* 책의 상세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1월 30일에 발행됩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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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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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의 고전 읽기 (178)
이후에 석영중 교수님이 쓰신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라는 책을 보고 좀 더 작가 생애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흥미로웠어요. 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과소비를 했던 ㅎㅎ 그래서 이렇게 일반 서민들의 생활, 모순적인 감정, 가난에 시달리는 괴로움 등등을 잘 표현한건가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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