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 왜 지금인가

오는 10월 1일,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국외순회전이 막을 올립니다.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약 8만 명을 모았습니다. 그 박물관의 최근 5년 특별전 가운데 가장 많은 관람객입니다. 지난 7월 5일에는 시카고미술관에서 두 번째 일정을 마쳤고, 이제 마지막으로 유럽에 도착합니다.
그의 이름은 늘 '삼성 회장'으로 먼저 불립니다. 그런데 이번 호에서는 다른 호칭으로 부르려 합니다. 한국 미술사에서 전례가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규모의 수집을 완성한 한 명의 컬렉터로.
기업인 이건희에 대한 평가는 이 뉴스레터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여다보려는 건 하나입니다 — 그는 무엇을, 왜, 어떻게 모았고, 그 컬렉션은 어떻게 끝났는가.
01 · 안목의 형성 — 물려받은 눈, 넘어선 눈
수집은 가업이었습니다. 부친 이병철은 호암미술관을 세운 1세대 컬렉터였고, 아들은 그 곁에서 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 이종선의 회고에 따르면, 이병철이 값이 과한 작품에는 두 번 눈길을 주지 않는 신중한 수집가였다면, 이건희는 좋은 물건이라 판단하면 값을 따지지 않고 빠르게 결정하는 쪽이었습니다.
그의 수집을 관통하는 단어는 '명품주의'입니다. 좋은 것 여럿보다 특급 한 점. 30대부터 백자를 들여다보며 스스로 감정 안목을 길렀고, 국보급 문화재를 목표로 삼는 이른바 '국보 100점 프로젝트'로 최상급 문화재를 집약해 갔습니다.
일화 하나가 그 스타일을 압축합니다. 1980년대 후반, 조선 전기 화가 이암의 〈화조구자도〉가 일본에서 북한으로 넘어가 '김일성 컬렉션'이 될 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건희는 실물을 보지 못한 채 사진만 보고 구입을 결정해 이 작품을 국내로 들여왔습니다. 지금 이 그림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목은 고미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겸재와 백자에서 시작한 컬렉션은 이중섭과 박수근, 김환기를 지나 모네와 샤갈, 피카소까지 확장됩니다. 한 컬렉션 안에서 조선의 화조화와 20세기 서구 회화가 만나는 구성 — 이 폭이 훗날 기증의 파급력을 만들었습니다.
왜 모았는가, 그가 직접 남긴 말이 있습니다. 2004년 10월,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식 축사에서였습니다.

02 · 컬렉션의 해부 — 숫자로 읽기
2021년 4월 28일, 유족이 발표한 기증 내역은 이렇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 고미술 축의 정점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가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몫으로는 이중섭 〈황소〉,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 〈공기놀이〉 같은 한국 근대의 대표작들과 함께,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을 비롯한 샤갈·피카소·달리·미로·고갱 등 해외 거장의 작품이 들어갔습니다.
숫자 하나를 덧붙이자면, 국립현대미술관의 기증 점수는 발표 당시 1,488점이었다가 2023년 12월 목록집을 내면서 1,494점으로 정리됐습니다. 세트로 들어온 작품 일부를 작가·유족의 요청에 따라 개별 등록으로 분리한 결과입니다. 목록을 만드는 데만 2년 반이 걸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별지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기증분을 작가별로 세어 정리했습니다. 가장 많이 소장된 작가가 누구인지, 그 숫자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보면 이 컬렉션의 성격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03 · 기증 이후 5년 — 무엇이 달라졌나
관람의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기증 직후 열린 특별전들은 예매 전쟁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고, 서울을 떠나 전국 순회로 이어지며 '미술관에 처음 가본 사람'을 대거 만들었습니다. 국내 누적 관람객은 350만 명에 이릅니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그 숫자도 여기에 얹힙니다. 영국 아트뉴스페이퍼가 2026년 3월 말 발표한 2025년 집계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은 관람객 650만 7,483명으로 세계 3위에 올랐습니다. 루브르(904만 6천)와 바티칸(693만 3천) 다음, 영국박물관(644만)과 메트로폴리탄(598만)보다 앞선 자리입니다.
기증 문화가 움직였습니다. 발표가 있던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신규 기증 작품은 553점 — 같은 해 구입 작품(93점)의 여섯 배였습니다. 이후 개인 소장가들의 기증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컬렉션의 출구로 '기증'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그때 처음 실감한 셈입니다.
바깥에서도 확인됐습니다. 국외순회전은 도시마다 구성을 달리해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이건희 컬렉션의 생산 유발 효과를 2,468억 원으로 분석했습니다.
집이 지어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 송현동에 들어설 (가칭)이건희 기증관은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시간의 회복'을 바탕으로 2028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아직 첫 삽은 뜨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기증관이 함께 들어설 송현문화공원(2만 5,973㎡) 조성 공사를 올해 9월 착공하는 일정을 세워 두고 있습니다. 경복궁 옆, 소나무를 두른 세 채의 건물에 고미술과 근현대가 함께 놓이게 됩니다.
04 · 한국의 컬렉터 — 그래서, 우리는
이건희의 규모는 따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방식에서 옮겨올 수 있는 것은 있습니다.
- 수를 늘리기 전에 기준을 세운다. 그의 컬렉션이 강했던 건 2만 3천 점이라서가 아니라, 그 안에 기준 — 각 분야의 정점을 확인하고 모은다는 원칙 —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규모에서 그 기준은 '내가 왜 이 작품이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 눈은 사는 것보다 먼저 만든다. 그는 30대부터 백자를 들여다보며 감정 안목을 스스로 길렀습니다. 좋은 안목의 최소 조건은 많이 보는 것 — 지난 호에서 다룬 미술관 목록이 여기서 다시 쓸모를 얻습니다.
- 기록이 컬렉션을 완성한다. 국립현대미술관조차 1,488점의 목록을 확정하는 데 2년 반이 걸렸습니다. 스무 점을 모았더라도 구입 경로·상태·프로비넌스를 적어두는 일은 규모와 무관하게 오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출구를 생각해 본다. 팔거나, 물려주거나, 기증하거나. 어느 쪽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이 컬렉션이 결국 어디로 갔으면 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진 컬렉터와 그렇지 않은 컬렉터는, 오늘 사는 작품부터 달라집니다.
컬렉터의 시선
이번 호를 준비하며 가장 오래 남은 건 국보도 모네도 아니었습니다. 기증 발표가 있던 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쌓인 553점의 기증 목록이었습니다. 한 컬렉터의 마지막 결정이 다른 소장가들의 결정을 바꿨다는 것.
우리는 보통 컬렉션의 완성을 '더 이상 살 게 없는 상태'로 상상합니다. 그런데 이 컬렉션은 다른 답을 내놨습니다. 완성은 소유의 끝이 아니라, 작품이 저마다 가장 잘 읽히는 자리에 도착한 상태라는 것. 인왕제색도는 박물관으로, 황소는 미술관으로, 이중섭은 서귀포로 갔습니다.
2004년의 그 축사를 다시 봅니다. "모으고 보존하는 일"이라고 했지, "갖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호에 "사는 것보다 보는 것이 먼저"라고 썼습니다. 이번 호는 그 문장의 다음 구절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이겁니다. 오래 본 것은, 언젠가 나눌 방법까지 생각해 두자. 컬렉션의 크기는 벽의 크기가 아니라, 그 질문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가오는 일정
- 런던 영국박물관 — 2026.10.1 ~ 2027.1.31 (국외순회전 마지막 일정)
- (가칭)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 2028 개관 목표 / 송현문화공원 2026.9 착공 예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