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 11월 2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들어가며
2년마다 열리는 '미술계의 올림픽',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 지난 5월 개막해 11월 22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낙찰가나 판매 실적 같은 시장 지표는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이번 비엔날레의 규모와 구조, 본전시의 메시지와 주요 작가, 논쟁의 중심에 선 국가관들, 그리고 도시 전역에서 함께 열리는 주요 개인전을 짚어보고, 끝으로 이 모든 것이 미술사에 던지는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01 · Macro — 규모와 구조의 시선
죽음, 사퇴, 침묵 속에서 열린 축제
이번 비엔날레는 시작 전부터 이례적인 사건들로 얼룩졌습니다.
총감독이었던 카메룬 출신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는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에 임명된 인물이지만, 개막을 1년 앞둔 2025년 5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던 감독이 개막 전 사망한 것은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유족과 재단은 그녀가 생전에 완성해 둔 기획안과 작가 명단을 그대로 실행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완성된 것이 이번 본전시 《In Minor Keys》입니다.
개막을 앞두고는 또 다른 파장이 있었습니다. 황금사자상·은사자상 심사를 맡을 예정이었던 국제 심사위원단 5인(브라질 큐레이터 솔란주 파르카스를 위원장으로, 조이 버트·엘비라 댱가니 오세·마르타 쿠즈마·조반나 자페리로 구성)이 개막 열흘 전 전원 사퇴했습니다. 이들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된 지도자를 둔 국가의 작가와 국가관을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를 둘러싼 내부 논쟁 끝에 사임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명시적으로 국가명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ICC 수사 대상인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그 결과 이번 비엔날레는 기존의 심사위원 중심 시상 체계를 폐지하고, 관람객이 비엔날레 기간 내내 투표해 수상작을 정하는 '방문객 사자상(Visitor Lion)'을 새로 도입했습니다. 시상식도 개막 직후가 아닌 폐막일인 11월 22일로 미뤄졌습니다. 여기에 이란이 개막 직전 공식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이란 문화부 산하 비엔날레 추진위는 미국·이스라엘과 불확실한 휴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참가가 어렵다고 불참 사유를 밝혔습니다.
규모 면에서는 방향이 뚜렷합니다.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중심으로 99개 국가관과 31개 공식 병행전이 참여했고, 궁전과 교회, 재단, 거리까지 베네치아 도시 전체가 전시장으로 확장됐습니다. 반면 총감독이 직접 기획하는 본전시는 참여 작가가 111팀으로, 2024년 331팀의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양보다 깊이를 택했다는 것이 미술계의 대체적인 해석이며, 직전 두 회가 역사 속 작가를 재조명하는 데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참여 작가의 90% 이상이 생존 작가로 채워졌습니다.

02 · Art History — 본전시의 시선
《In Minor Keys》가 말하는 것
본전시의 주제 'In Minor Keys'는 음악의 단조(短調)를 뜻하는 동시에, 주류가 아닌 것·소수의 것을 가리킵니다. 코요 쿠오는 거대한 권력과 소음의 시대에 낮은 목소리, 관계, 감각, 존엄의 가능성을 탐색하겠다는 구상을 남겼습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오아시스'라 이름 붙인 쉼의 공간을 배치해 관람 속도 자체를 늦추려는 시도도 눈에 띕니다.
큐레이션 방식에서 특기할 점은 마르셀 뒤샹, 폴린 올리베로스 같은 미술사 속 역사적 인물의 작업을 동시대 작가들과 나란히 배치해 시간을 초월한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스펙터클보다 조용한 성찰을 택한 이번 큐레이션의 방향이 잘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참여 작가 중에서는 한국 작가 요이(Yo-E Ryou)가 이번 본전시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 국적 작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팬데믹 시기 번아웃을 겪고 뉴욕에서 제주로 이주한 그는, 숨을 참고 물질을 마친 해녀가 내쉬는 숨비소리를 소재로 한 영상 작업 〈숨 오케스트라〉를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선보입니다. 노동과 생존, 관계에 직결된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작업은 'In Minor Keys'라는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계 작가로는 마이클 주(Michael Joo)도 참여합니다. 생태·과학·역사적 서사를 결합한 개념적 설치 작업으로 알려진 그는 아르세날레에서 대규모 설치작 두 점을 공개했습니다. 콜롬비아계 한국계 미국인 작가 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 역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밖에 미국의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과 태미 응우옌(Tammy Nguyen), 프랑스의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 영국의 알바로 베링턴(Alvaro Barrington), 케냐 출신의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등 각국을 대표하는 동시대 작가들이 포함돼 국제적인 라인업을 구성했습니다.
03 · Pavilion — 국가관의 시선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의 정치극장
올해는 국가관 시스템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몇몇 파빌리온을 짚어보면 이 말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러시아관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불참해온 끝에 이번에 국가관 참여를 재개했습니다. 그러나 개막 이후 내부는 일반 관람객에게 폐쇄하고, 대신 외벽에서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으로 대체했습니다. 개막일에는 국제 여성단체 페멘(FEMEN)과 푸시 라이엇(Pussy Riot)이 러시아관 앞에서 분홍색 연막탄을 터뜨리며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스라엘관은 자르디니 내 상설 파빌리온이 아닌 외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개막일 이스라엘관 앞에서는 '예술은 학살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름의 연합이 200여 명 규모로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예술 참여의 방식 자체가 정치적 선택이 되어버린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오스트리아관은 안무가 겸 퍼포먼스 아티스트 플로렌티나 홀칭어(Florentina Holzinger)가 대표 작가로 나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 큐레이터 노라-스반티에 알메스가 기획한 신작 〈씨월드 베니스(SEAWORLD VENICE)〉는 '물'이라는 원소를 매개로, 자연과 기술이 충돌하는 급변하는 환경 속 인간의 신체를 탐구하는 대담한 학제적 커미션입니다. 파빌리온 내 상설 라이브 설치·퍼포먼스와 함께 베네치아 시내 곳곳으로 확장된 프로젝트로 구성됩니다.
한국관은 최빛나 예술감독이 기획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로 문을 열었습니다. 작가 최고은(서울)과 노혜리(뉴욕)가 참여했고, 창작자·활동가로 초청된 5인의 펠로우—소설가 한강, 농부이자 활동가 김후주, 작가 겸 가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가 함께 전시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정부 수립까지의 3년을 출발점으로, 6·25, 제주 4·3, 5·18, 그리고 2024년 12·3 비상계엄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격변을 관통하는 주제를 다룹니다. 최빛나 감독은 2024년 비상계엄 이후 시위 현장에서 이 전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제주 4·3 사건을 상징하는 설치 작품 〈더 퓨너럴〉을 선보여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04 · Off-Site — 병행전시의 시선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되는 여섯 달
국가관과 본전시 밖에서도 굵직한 개인전이 베네치아 전역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습니다.
원로 작가 이우환은 산마르코 광장 프로쿠라티에 위치한 SMAC 베니스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회화·조각과 함께 새로운 현장 설치작품을 공개했습니다. 탄생 90주년을 맞은 그의 예술 여정을 조망하는 전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조각가 심문섭 역시 1973년 파리 비엔날레 출품작부터 2025년 완성작에 이르는 조각·설치, 그리고 2002년 이후의 회화 28점을 아우르는 대형 회고전을 선보입니다.
인도 출신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는 팔라초 만프린에서 대형 설치와 건축 모형을 공개해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 별세한 '거꾸로 회화'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전시도 함께 열려 세계 미술계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밖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제니 사빌의 개인전도 비엔날레 기간과 맞물려 진행 중입니다.
카 트론(산 스타에)에서는 에밀리아 카바코프의 참여형 전시 《Venetian Diary》가 열립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 기념비적 프로젝트는, 2023년 세상을 떠난 남편 일리야 카바코프와 생전에 함께 구상한 것입니다. 알바로 베링턴은 본전시 참여와 별도로 자르디니 내 베네치아관에서도 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체크포인트 — 한국 컬렉터가 눈여겨볼 지점
- 한국 작가의 국제적 확장: 최재은은 일본관, 조국현은 탄자니아관, 홍은주는 대만관에 협업 작가로 참여했습니다. 로터스 강은 비엔날레 공식 파트너 불가리의 첫 초청 작가로 선정돼 장소 특정적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자국관을 넘어 타국관과 브랜드 파트너십 안에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 세대교체의 신호: 이우환·심문섭 같은 원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과, 요이·최고은·노혜리 같은 다음 세대 작가의 본전시·국가관 데뷔가 같은 시기에 겹쳐 있습니다. 두 세대를 함께 시야에 두고 볼 만한 시점입니다.
- 한국관의 서사: 한강 작가의 참여로 문학과 시각예술이 만나는 지점, 그리고 근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국가관의 서사 방식은 이후 국내 담론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컬렉터의 시선
이번 비엔날레를 지켜보며 저 스스로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단조(minor key)'로 조용히 사색하고자 했던 감독의 유작이, 정작 개막 전부터 사퇴와 불참, 시위와 연막탄이라는 가장 크고 시끄러운 정치적 소음 속에서 치러졌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아이러니 자체가 이번 비엔날레가 미술사에 남기는 가장 정직한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31년 역사 동안 국가관 시스템은 각국을 대표하는 예술적 제안의 무대였습니다. 그런데 전쟁 당사국의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심사위원단 전원이 사퇴하고, 파빌리온이 문을 걸어 잠그거나 자리를 옮기고, 시상 방식이 전문가 심사에서 대중 투표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면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국가를 단위로 예술을 대표하게 하는 이 오래된 틀이, 국가와 개인·예술가의 입장이 이렇게까지 어긋나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형식일까. 그리고 예술과 예술가를 판단하는 권위가 소수 전문가의 손에서 대중의 투표로 옮겨가는 이 변화는, 감독의 죽음으로 유작이 된 기획을 유족과 재단이 그대로 실현하기로 한 결정과 함께 놓고 보면, 결국 '누가, 무엇을 근거로 이 시대의 예술을 판단하고 기록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동시에 본전시 규모를 3분의 1로 줄이고 생존 작가 중심으로 재편한 선택은, 비엔날레가 모든 것을 나열하는 예술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의 논지를 가진 큐레이토리얼 발언이어야 한다는 방향 전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