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LECTOR NOTES · No.5
게오르그 바젤리츠 Georg Baselitz (1938–2026)
거꾸로 매달린 채, 끝까지
2026년 8월

왜 지금인가
유작전과 회고전, 같은 계절
8월 13일, 세화미술관에서 바젤리츠 회고전이 문을 엽니다. 국내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린 지 약 20년 만이고, 지난 4월 30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세계에서 처음 열리는 미술관급 회고전입니다. 1960년대 초기작부터 2026년 마지막 작업까지 46점, 대부분 국내에 공개된 적 없는 작품들입니다. 슈퍼 얼리버드 티켓은 예매 시작 2분 만에 매진됐습니다.
같은 시기 베네치아에서는 그의 유작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섬 조르조 치니 재단의 《황금빛 영웅 Eroi d'Oro》.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맞춰 5월 6일 개막할 예정이었는데, 개막 엿새 전에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3~5미터에 이르는 황금빛 대작 16점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2년 동안 그린 것들이고, 전시장 한편에는 타계 열흘 전 촬영한 인터뷰 영상이 흐릅니다.
그 영상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는 돌이켜볼 긴 삶의 궤적이 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로 엄청난 수의 그림을 그려왔다는 뜻이다. 나의 예술 여정의 끝자락에 선 지금, 그간의 여정을 갈무리하는 일종의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이라 생각했다."
한 작가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려 한 마지막 작업과, 그 60년을 되짚는 회고전이 같은 계절에 나란히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호를 그에게 할애하는 이유입니다.
작품세계 — 무너진 질서 속에서 태어나다
1938년 동독 작센주의 작은 마을 도이치바젤리츠. 본명은 한스 게오르그 브루노 케른입니다. 일곱 살이던 1945년, 그는 드레스덴이 연합군 폭격으로 불타는 광경을 봤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무너진 질서, 무너진 풍경, 무너진 민족, 무너진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
이 문장이 그의 60년 작업 전체를 관통합니다. 동독 미술대학에서 '사회정치적 미성숙'을 이유로 제적당했고, 탄광 교화교육을 피해 서독으로 망명했습니다. 서베를린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1961년, 고향 마을 이름을 따 '바젤리츠'라는 이름을 자신의 예술가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분단된 나라에서 고향을 잃은 사람이 고향의 이름으로 살기로 한 셈입니다.
1963년 서베를린 첫 개인전은 전설이 됐습니다. 당시 세계 미술의 주류는 추상이었습니다. 폴록의 흩뿌린 물감, 로스코의 색면, 데 쿠닝의 붓질이 '진보적 미술'로 통하던 시절에 그는 정반대로 뒤틀린 구상화를 내놨습니다. 독일 당국은 〈배수구로 빠진 위대한 밤〉과 〈벌거벗은 남자〉를 외설 혐의로 압수했고, 전시는 강제로 폐쇄됐으며, 그는 벌금형까지 받았습니다.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네 개의 전환점 - 연작으로 읽는 60년
영웅 Heldenbilder / Heroes (1965~66)
압수 사건 2년 뒤 장학금을 받아 피렌체로 떠났고, 그곳에서 〈영웅〉 연작이 나왔습니다. 폐허 위에 어정쩡하게 선 거인, 너덜거리는 군복, 멍한 표정, 발치에 쓰러진 깃발. 제목은 영웅인데 그림 속 인물은 영웅과 가장 먼 모습입니다. 전쟁의 업보를 잊고 싶어 하던 독일 사회를 향해 "당신들이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저질렀는지 보라"고 말하는 그림들이었습니다.
컬렉터 노트: 그의 이름을 미술사에 새긴 초기 대표 연작. 시장에 나오는 빈도 자체가 낮아, 등장하면 그 자체로 사건이 됩니다.
역전 Inversion (1969~)
1969년, 그는 그림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60년 가까이 놓지 않은 방식입니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이었습니다. 형상에서 내용을 비워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관객이 "저건 나무다, 저건 사람이다"라고 읽어내는 순간 그림은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 뒤집어 놓으면 그 읽기가 한 박자 늦어집니다. 그 틈에서 물감과 붓질, 화면 자체가 먼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추상이냐 구상이냐를 두고 다투던 시대에 그는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그 사이를 걸어갔습니다. 관습적이라 여겨지던 회화라는 매체를 다시 문제적인 것으로 만든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컬렉터 노트: 대중에게 '바젤리츠'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방식. 시기와 소재에 따라 화면 성격이 크게 갈리므로, 연도와 연작명을 함께 보는 게 좋습니다.
리믹스 Remix (2005~)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는 자기 과거 작품을 다시 그리기 시작합니다. 초기 대표작을 더 가볍고 빠른 붓질로, 다른 색으로 옮겨 그린 연작입니다. 2006~07년 뮌헨 피나코텍 데어 모데르네와 빈 알베르티나에서 처음 대규모로 소개됐습니다. 자기 복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용의 대상으로 삼는 작업이었습니다.
컬렉터 노트: 초기작의 도상을 후기의 손으로 다시 만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 전체를 한 점 안에서 조망하고 싶은 컬렉터가 눈여겨보는 연작입니다.
엘케 초상 · 아비뇽 · 골드 페인팅 (2015~2026)
아내 엘케 크레치마르는 50년 넘게 그의 작업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말년으로 갈수록 그는 늙어가는 몸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업에 집중합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은 〈아비뇽〉 연작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 자리에 늙어가는 육체를 거꾸로 그려 넣었습니다.
마지막에 도달한 것이 《황금빛 영웅》의 골드 페인팅입니다. 황금빛 바탕 위에 가느다랗고 정교한 검은 선으로 인물의 윤곽을 새기고, 그 사이에 거친 붓질을 절제해 얹었습니다. 열여섯 점 중 한 점을 뺀 전부가 엘케입니다. 그는 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금은 주변 환경과 그림자, 그리고 공간감마저 흡수한다. 그 위, 마치 종이 위에 그려진 누드 드로잉처럼, 내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선들이 자리 잡는다."
이콘화를 닮은 이 마지막 화면들에서, 60년 전 폐허 위에 세웠던 '영웅'은 이제 황금 바탕 위에 매달린 한 사람의 몸이 되어 있습니다.
컬렉터 노트: 작가가 스스로 "결론"이라 부른 마지막 연작. 물량이 절대적으로 적고, 유작이라는 맥락이 이미 붙어 있습니다.

시장평가
미술사적 평가
전후 독일 미술의 정체성을 새로 세운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1980년대 이후 국제 미술계에 미친 영향은 안젤름 키퍼,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함께 논의됩니다.
기관의 인정도 이례적인 수준입니다. 2019년 프랑스 아카데미 데 보자르 회원으로 선출됐고, 같은 해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최초의 생존 작가로 기록됐습니다. 2021년 퐁피두센터 회고전 《Baselitz: The Retrospective》, 같은 해 메트로폴리탄미술관 《Pivotal Turn》, 2022년 모건 라이브러리 《Six Decades of Drawings》로 이어졌습니다. 메트로폴리탄, 퐁피두, 모건 라이브러리, 뭉크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그의 러시아 회화 연작이 소개된 적이 있고, 2021년 타데우스 로팍 서울점은 그의 신작전 《가르니 호텔》로 개관했습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일에서 우리는 동과 서,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한국이 여전히 그러하듯이."


대중 반응 · 시장 데이터
경매 최고가는 2022년 소더비 뉴욕에서 기록한 〈드레스덴의 여인들 — 프라하에서 온 방문 Dresdner Frauen – Besuch aus Prag〉(1990)의 1,124만 달러입니다. 같은 해 소더비 뉴욕 봄 경매에서만 다섯 점이 총 2,400만 달러 규모로 거래됐습니다.
이전 최고가는 2014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745만 달러에 팔린 〈브뤼케 합창단 Der Brückechor〉(1983)이었습니다. 2020년 필립스 런던에서는 1982년작 〈마지막 자화상 I〉이 500만 파운드에 낙찰돼 당시 기준 세 번째 높은 가격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때는 추정가 하한에도 미치지 못한 채 낙찰돼, 대형 유화라 해도 추정가 설정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최근 12개월 기준 회화 평균 낙찰가는 약 79만 달러, 종이 작업은 약 3만 2천 달러 선입니다. 회화와 지업(紙業)·판화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다는 것이 이 작가 시장의 특징입니다.
작고 이후 시장 반응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세화미술관 티켓이 2분 만에 매진된 것에서 보이듯 국내 대중의 관심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2차 시장 가격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올가을 이후 경매 결과를 지켜봐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컬렉터 조언
1. 취급 갤러리 가고시안, 타데우스 로팍, 화이트 큐브, 크리스테아 로버츠, 마이클 베르너, 컨템포러리 파인 아츠(베를린)가 오랫동안 그의 작업을 다뤄왔습니다. 이 중 타데우스 로팍은 서울에 상설 공간이 있어 국내에서 접근하기 가장 가까운 창구입니다. 판화·에디션은 크리스테아 로버츠가 강점을 가진 영역입니다.
2. 1차 시장 진입 난이도와 2차 시장 작고한 작가이므로 신작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유족과 재단, 갤러리가 관리하는 유작·미공개작이 1차 시장에 나올 수 있지만 물량과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고, 주요작은 기관과 장기 컬렉터에게 먼저 제안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적으로는 경매를 비롯한 2차 시장이 주된 접점이 됩니다. 소더비·크리스티·필립스의 전후 및 동시대 세일에 꾸준히 출품되고, 판화·드로잉은 유럽 중소 경매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3. 다가오는 일정과 모멘텀 지금 그의 이름 주변에는 일정이 겹쳐 있습니다. 세화미술관 회고전(8월 13일~12월 27일), 베네치아 조르조 치니 재단 《황금빛 영웅》(9월 27일까지), 화이트 큐브 버몬지 개인전 《Back Again》, 피렌체 무제오 노베첸토 《AVANTI!》(9월 13일까지, 판화 중심 약 170점). 작고 직후 이 정도 규모의 국제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은 통상 시장 관심을 끌어올립니다. 다만 이런 시기에는 출품 물량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관심이 곧 가격 상승으로 직결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4. 진입 층위 판화·에디션(그는 평생 판화를 진지한 매체로 다뤘고, 피렌체 전시가 이 점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 드로잉·수채 → 소형 회화·부조 → 대형 회화 순으로 층위가 형성됩니다. 판화 물량이 상대적으로 두터워 처음 접근하기 좋은 편이고, 회화로 갈수록 간극이 급격히 벌어집니다.
5. 확인할 것
- 에디션 확인: 판화 에디션 번호, 시험 인쇄본(Probedruck) 여부, 서명·연도 표기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그의 판화는 상태와 에디션에 따라 편차가 큽니다.
- 재료와 보존: 후기 대작은 두껍게 쌓아 올린 파스토조 기법이 많아 표면이 물리적으로 취약합니다. 운송·설치 이력을 확인하고, 대형작은 설치 공간의 층고와 하중을 먼저 계산해야 합니다. 골드 페인팅의 금색 안료는 조명 조건에 따라 인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 프로비넌스: 작고 직후는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이 함께 도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갤러리 이력과 이전 경매 기록이 명확히 연결되는지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 작품의 방향: 뒤집힌 그림은 걸이 방향 자체가 작품의 핵심입니다. 상하 표기와 설치 지침을 문서로 확보해두시길 권합니다.
컬렉터의 시선
이번 호를 정리하며 계속 머물렀던 장면이 있습니다. 조르조 치니 재단 전시장에서 흐르는 영상, 타계 열흘 전에 찍힌 여든여덟 살의 얼굴, 그리고 "이제 결론을 내야 할 시점"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평생 해온 일은 결국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스물다섯에는 추상이 지배하던 미술계에 구상화를 들이밀어 압수당했고, 서른하나에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통째로 뒤집었습니다. 예순 넘어서는 자기 대표작을 다시 그렸고, 여든 넘어서는 늙어가는 자기 몸을 거꾸로 매달았습니다. 뒤집을 대상이 바깥에서 안으로, 시대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왔을 뿐 방식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컬렉팅을 하다 보면 '완성된 작가'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바젤리츠를 따라가 보면 완성이라는 게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도달했다고 여겨질 때마다 스스로를 다시 뒤집는 일에 가까워 보입니다. 마지막 열여섯 점이 60년 전 〈영웅〉의 폐허가 아니라 황금빛 바탕이었다는 것도, 그가 끝까지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는 증거일 겁니다.
저 스스로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이겁니다. 오래 남는 작가는 한 가지를 잘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태도로 계속 다르게 한 사람이라는 것. 컬렉션을 볼 때도 '이 작가가 지금 무엇을 뒤집고 있는가'를 물어보려 합니다.
8월 13일부터 세화미술관에서 46점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거꾸로 걸린 그림 앞에 서면, 고개를 기울이고 싶어지는 충동이 먼저 옵니다. 그 충동을 참고 그냥 보는 것부터가 이 작가를 만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호에서도 애정을 담아 한 작가를 깊게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