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 시장은 줄었는데, 프리즈는 남았습니다
2022년 가을, 프리즈 서울 1회는 "한국 미술시장 사상 첫 1조 원 돌파"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열렸습니다. 그 뒤로 시장은 5분의 1이 줄었습니다. 중복을 걷어낸 거래액으로 세면 2022년 8,065억 원이던 시장이 2025년 6,382억 원입니다.
그런데 지난겨울, 프리즈는 서울에 5년을 더 남기로 했습니다. 시장이 줄었는데 왜 남았을까요. 이번 호는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올여름, 그 회사가 두 도시에서 공지를 냈습니다.
8월 14일 서울. 프리즈 서울이 내년부터 코엑스를 떠나 동대문 DDP로 옮긴다고 발표했습니다. 코엑스가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면서 전시장의 상당 부분을 쓸 수 없게 된 탓입니다. 5년간 한 지붕 아래 열리던 키아프와 프리즈는 일단 갈라섭니다 — 키아프는 코엑스에 남고, 프리즈는 강북으로 갑니다.
8월 27일 아부다비. 프리즈가 11월에 여는 첫 중동 페어의 참가 갤러리 84곳을 공개했습니다. 가고시안, 페이스, 페로탕, 로팍 — 그리고 부산의 조현화랑과 서울의 학고재가 명단에 있습니다.
하나는 이사 공지이고, 하나는 개업 공지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공지가 나온 날짜를 다시 봐야 합니다. 중동은 지금 전쟁 중입니다. 2월 말 시작된 이란 전쟁이 반년을 넘겼고,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은 카타르와 UAE에도 떨어졌습니다. 8월 들어 공격은 잦아들었지만 휴전 합의는 없고,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막혀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페어는 예정대로 문을 엽니다.
전쟁 중에도 새 페어를 여는 회사와, 시장이 줄어든 도시에 재계약을 하고도 짐을 싸는 페어.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답이 보입니다.

01 · 빈 의자 — 2026년 아시아 페어 지도
먼저 올해의 숫자들입니다.

홍콩과 서울의 격차는 여전히 두 배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이 표에서 정말 봐야 할 숫자는 240도 133도 아닙니다. 0입니다.
타이베이 당다이는 2019년 UBS 후원으로 화려하게 출범한 페어였습니다. 첫해 90개가 넘던 갤러리가 2025년에는 50여 개로 줄었고 — 가고시안,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워너가 모두 발을 뺐습니다 — 지난해 7월 주최 측은 "모델과 시기, 규모와 형식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며 2026년 개최를 접었습니다. 아시아 페어 지도에서 도시 하나가 실제로 지워진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ART SG도 같은 방향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2023년 첫 회에 150개가 넘던 갤러리가 110개, 105개를 거쳐 올해 100개 남짓까지 내려왔습니다. 두 페어를 같은 회사가 운영합니다 — 싱가포르·도쿄·타이베이를 한꺼번에 굴리던 회사가, 성적이 가장 나쁜 자리부터 접은 것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결론이 나옵니다. '허브'는 한번 얻으면 유지되는 지위가 아닙니다. 페어는 도시에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장사가 안 되면 짐을 싸고, 장사의 기준은 미술이 아니라 판매입니다.
홍콩의 240이라는 숫자에도 단서를 달아야 합니다. 홍콩의 힘은 페어가 아니라 구조에서 나옵니다 — 미술품에 수입 관세가 없고, 판매세도 부가세도 없고, 자본이득에도 세금이 붙지 않는 자유항.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가 모두 아시아 본부를 홍콩에 둔 이유입니다(세 곳 모두 2022~24년 사이 홍콩 본부를 새로 짓거나 확장했습니다). 페어는 옮길 수 있어도 세제는 옮기기 어렵습니다. 서울이 넘어야 할 것은 컨벤션센터의 크기가 아니라 이 구조입니다.
다만 홍콩도 예전 그대로는 아닙니다. 규모는 240개로 전년과 같은 수준을 지켰지만, 참가 갤러리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태평양에 근거지를 둔 곳이고, 서구의 큰 갤러리들은 하나둘 빠지고 있습니다. 규모는 그대로인데 구성이 바뀌는 중입니다.

02 · 딜러의 시선 — 페어는 돈을 따라간다
프리즈가 서울에 온 시점을 되짚어 보면 이 말이 선명해집니다. 2022년 한국 미술시장은 사상 처음 연 1조 원을 넘겼고(당시 발표 기준 1조 377억 원, 전년 대비 37% 증가), MZ 컬렉터가 쏟아져 들어오고 아트테크라는 말이 유행하던 바로 그해 9월 프리즈 서울 1회가 열렸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페어는 시장이 뜨거워진 곳으로 옵니다 — 돈이 먼저 움직이고, 페어가 뒤따릅니다.
2025년에는 이 이야기가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할리우드 에이전시 제국을 이끌던 아리 이매뉴얼이 지주회사 마리(Mari)를 세워 엔데버로부터 프리즈를 사들였는데(10월 8일 거래 종결, 조달 자본 약 20억 달러), 그 투자자 명단에 아부다비의 미디어그룹 IMI가 있습니다. IMI는 자사 홈페이지에 직접 이 투자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프리즈는 아부다비 진출을 발표했습니다. 아부다비 정부의 문화관광부(DCT)와 손잡고, 17년 역사의 기존 아부다비 아트 페어를 이어받는 방식으로.

아트바젤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 카타르와 손잡고 올해 2월 도하에서 첫 페어를 열었습니다. 세계 양대 페어 그룹이 같은 시기에 걸프로 간 이유는 취향이 아니라 주주 명단과 파트너십에 있습니다.
딜러의 눈으로 보면 이 지도는 더 실감납니다. 갤러리에게 페어 참가는 광고가 아니라 물류 투자입니다 — 부스비, 운송비, 보험료, 인건비. 그 돈을 어느 도시에 쓸지가 한 해 성적을 좌우합니다. 그래서 갤러리들의 이동은 가장 정직한 시장 예보입니다. 부산 조현화랑과 서울 학고재가 11월 아부다비 첫 회에 부스를 낸다는 것 — 한국 갤러리도 이미 다음 돈이 있는 곳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명단을 한 줄씩 세어보면 서울이 어디쯤 있는지도 드러납니다. 아부다비에 부스를 내는 84곳 가운데 서울에 지점을 둔 갤러리가 다섯입니다 — 조현화랑과 학고재, 그리고 서울에 상설 공간을 운영하는 페이스·페로탕·타데우스 로팍.
이 숫자를 세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페어 참가는 일주일치 부스비를 걸고 시장을 떠보는 일이지만, 지점은 1년 내내 임대료와 인건비를 대는 일입니다. 결정의 무게가 다릅니다. 걸프라는 새 시장으로 짐을 싸는 갤러리 가운데 셋이 이미 서울에 1년치 비용을 대고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서울은 페어 주간에만 들르는 도시가 아니라 상주할 값이 있다고 판단된 도시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세면 홍콩이 다섯, 도쿄가 둘입니다 — 세는 방법과 그 한계는 별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면, 좋은 소식과 시험대가 함께 있습니다. 좋은 소식: 지난해 12월 한국화랑협회 임시총회에서 프리즈와의 파트너십을 5년 더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한 회원 화랑 가운데 기권 한 곳을 빼고 전원이 찬성했습니다. 프리즈는 서울을 떠나지 않습니다. 시험대: 내년 DDP 개최는 코엑스보다 좁은 공간에서 치러집니다. 프리즈 서울 디렉터 패트릭 리는 DDP의 "더 응축된 공간 구성"이 갤러리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준다고 했지만, 뒤집으면 갤러리와 작품을 더 엄선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축소가 아니라 시험입니다 — 서울이라는 시장이 규모가 아니라 밀도로도 통하는지, 프리즈 본사가 지켜보는 시험.
코엑스에서 치른 마지막 해의 성적표

코엑스에서 치른 마지막 해의 성적표는 이랬습니다. 프리즈 서울 2026에는 30개국 133개 갤러리가 나왔고, 나흘 동안 7만 명이 다녀갔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54개국에서 관람객이 왔고, 미술관·재단 178곳의 관계자가 부스를 돌았습니다. 최고가는 국제갤러리가 판 유영국의 1971년작 〈Work〉, 22억~25억 원 — 프리즈 서울에서 팔린 한국 작가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값입니다. 그런데 10억이 넘는 초고가 거래는 예년보다 줄었고, 그 대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가 활발히 팔렸습니다. 포커스 섹션에서는 70달러부터 시작하는 스펀지 블록 작업(dpgp78)이 500점 중 400점 넘게 나갔고, 주최 측은 처음 그림을 사는 젊은 컬렉터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70달러부터 25억까지, 넓고 낮게 퍼진 분포 — 국가도 국부펀드도 없는 도시의 시장이 어떤 모양인지가 이 분포에 담겨 있습니다.

03 · 전쟁이 갈라놓은 세 종류의 돈
이제 전쟁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2월 28일 시작된 이란 전쟁은 걸프의 미술 일정표를 그대로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한 방향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호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 여기입니다.
멈춘 쪽. 아트두바이는 20주년 행사를 4월에서 5월로 미뤘고, 규모가 반 토막 넘게 줄었습니다. 지난해 120곳이 넘던 참가 갤러리가 50곳으로 내려앉았습니다 — 연기 발표 후 75개 갤러리가 참가를 철회했기 때문입니다. 도하의 디자인 비엔날레도 4월 개막을 11월로 미뤘습니다.
밀어붙인 쪽. 프리즈 아부다비는 전쟁 6개월째에 84개 갤러리 명단을 공개하고 11월 19~22일 개막을 확정했습니다. 참가 명단에는 테헤란에 근거지를 둔 갤러리도 들어 있습니다. 도하의 아트바젤 첫 회는 이란 미사일이 카타르에 떨어지기 3주 전에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 관람객 1만 7천 명, 미술관·재단 85곳 이상 참석.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7월 28일, 아부다비 문화관광부가 구겐하임 아부다비의 개관일을 12월 11일로 못 박았습니다. 2011년 착공 후 열다섯 해를 끌어온 프랭크 게리의 미술관이, 하필 전쟁 중에 날짜를 확정한 것입니다. 3월에 미사일 공격으로 잠시 문을 닫았던 루브르 아부다비는 이미 정상 운영으로 돌아와 다음 시즌 전시 일정까지 발표했습니다.
같은 전쟁, 같은 걸프인데 왜 이렇게 갈릴까요. 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바이의 페어는 상업 시장에 기대어 섭니다. 아부다비의 프리즈와 도하의 아트바젤은 국가 문화전략의 한 조각입니다. 사디야트 문화지구에 루브르와 구겐하임 분관을 세워온 아부다비에게 페어와 미술관은 장사가 아니라 국가 브랜딩이고, 국가는 흔들릴 때일수록 건재를 증명하려 합니다. 실제로 걸프 국부펀드들의 투자 규모는 전쟁 중에도 줄지 않았습니다(다만 이건 금융투자 이야기이고, 문화 예산이 국방으로 밀릴 수 있다는 반대 전망도 함께 나옵니다). 중동 자본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떤 돈인지가 드러났을 뿐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아시아 허브 경쟁의 실체가 보입니다. 세 도시가 가진 돈이 서로 다른 종류입니다.

그 개인들이 어디서 사는지도 숫자로 남아 있습니다. 2025년 한국 미술시장에서 아트페어에서 일어난 거래가 3,600억 원, 갤러리 매출이 3,528억 원이었습니다(공식 조사는 갤러리를 '화랑'으로 씁니다). 2022년에는 갤러리 5,022억 대 페어 3,020억으로 갤러리가 훨씬 앞섰는데, 세 해 만에 순서가 뒤집혔습니다.
다만 두 숫자는 겹칩니다. 갤러리가 페어 부스에서 판 돈은 양쪽에 모두 잡히고, 페어 쪽에는 프리즈 서울에 온 외국 갤러리의 판매까지 들어갑니다. 그래서 "페어가 갤러리를 이겼다"로 읽을 숫자는 아닙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 한국의 컬렉터가 지갑을 여는 자리가 갤러리 전시장에서 페어 부스 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DDP 이전은 가벼운 소식이 아닙니다. 페어가 가장 큰 창구가 된 나라에서 페어의 좌석이 줄어드는 일이니까요.

서울의 약점이자 유일한 차별점이 여기 있습니다. 국가의 돈은 명령으로 움직이고 제도의 돈은 법으로 움직이지만, 개인의 돈은 안목으로 움직입니다. 셋 중 가장 변덕스럽고 — 그래서 가장 정직한 돈입니다.

04 · 한국의 컬렉터 — 그래서, 우리는
- 허브에 사는 값을 계산해 봅니다. 페어 주간의 진짜 가치는 사는 데 있지 않고 보는 데 있습니다. 평소라면 운송과 보험과 통관을 거쳐야 만날 세계 갤러리의 재고를, 서울에 앉아 실물로 확인하는 일주일. 올해 프리즈 서울에 미술관·재단 178곳의 관계자가 온 이유도 같습니다 — 그들도 보러 옵니다. Vol.9에서 이야기한 미술관 심사의 체크리스트(출처가 깨끗한가, 상태 기록이 있는가, 그 작가의 대표 시기인가)를 부스에서 직접 돌려보는 일은 허브 도시에 사는 컬렉터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권은 서울이 허브인 동안까지입니다.
- '응축된 프리즈'를 나쁜 소식으로 읽지 않습니다. DDP의 공간이 좁아지면 갤러리 심사는 깐깐해집니다. 문이 좁아질수록 그 문을 통과한 명단의 밀도는 올라갑니다 — Vol.9에서 본 '좁은 문'의 논리가 페어에도 그대로 통합니다. 내년 DDP 명단이 나오면 올해의 133곳과 대조해 보세요. 누가 남고 누가 빠졌는지가, 프리즈가 서울 시장을 어떻게 채점했는지 보여주는 성적표입니다. 대조하는 법은 별지에 정리했습니다.
- 아부다비 첫 회 결과를 읽습니다. 11월 페어는 새로 등장한 자본이 무엇을 고르는지 기록되는 첫 장입니다. 어떤 갤러리가 어떤 한국 작가를 걸프로 가져가는지, 무엇이 팔리는지 — Vol.9 별지에서 연습한 목록 읽기를, 미술관 신소장품이 아니라 신생 페어에 적용해 보는 실전입니다. 조현화랑과 학고재가 무엇을 들고 갔고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가 첫 데이터가 됩니다. 중동 기관이 사들이는 한국 이름이 나온다면, 여러 기관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름(Vol.9의 신호 ②)을 볼 때 변수가 하나 늘어납니다.
- 서울의 재계약 조건이 무엇인지 압니다. 화랑협회와 프리즈의 계약은 5년 더 이어졌지만, 타이베이가 보여줬듯 페어는 성적이 나쁘면 언제든 떠나거나 쪼그라듭니다. 시장이 5분의 1 줄어든 뒤에도 프리즈가 남은 이유는 이 도시에 그림을 사는 사람이 넓게 퍼져 있어서입니다 — 초고가는 줄어도 70달러부터 수억 원까지 팔리는 시장. 도시의 구매력은 결국 개인 구매의 합입니다. 애국 소비를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 기준 없이 사는 것은 시장을 거품으로 만들고, 사지 않는 것은 시장을 지도에서 지웁니다. 기준을 갖고 꾸준히 사는 것, 그것이 허브에 사는 사람의 몫입니다.
컬렉터의 시선
이번 호를 정리하며 머리에 남은 그림은 지도였습니다. 해마다 다시 그려지는 페어 지도 — 타이베이가 지워지고, 아부다비가 새로 그려지고, 서울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표기가 옮겨지는 지도.
그 지도를 그리는 펜은 언제나 돈이 쥐고 있었습니다. 2022년 서울을 그려 넣은 것도, 2026년 아부다비를 그려 넣은 것도 같은 펜입니다. 전쟁조차 그 펜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다만 서울 칸에 들어 있는 돈은 국고도 국부펀드도 아닌, 개인들의 지갑입니다. 그 지갑의 주인들이 얼마나 좋은 눈으로, 얼마나 꾸준히 사느냐 — 서울이라는 글자의 크기는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세 호 전 이건희에서 시작해 루벨을 지나 미술관의 예산까지 왔고, 매번 결론은 예산이 아니라 기준이었습니다. 도시도 다르지 않습니다.
허브는 선언해서 얻는 자리가 아닙니다. 빌려 쓰는 자리입니다. 그 임대료는 페어가 아니라, 그 도시에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냅니다.
프리즈가 세는 것은 서울의 컬렉터 수가 아니라, 기준을 갖고 사는 컬렉터의 수입니다. 그리고 프리즈와 서울의 다음 5년 계약서 서명란에는, 사실 우리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