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해외 요리책 트렌드를 뉴스레터로 소개하는 요리 전문 번역가 정연주입니다.
이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분들 중에는 물론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 많으시겠죠?
지난 주말, 그러니까 바로 어제, 2025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수상작이 발표되었습니다.
지난 달에 노미네이트 발표에 강민구 셰프님을 비롯해 제가 알고 있던 책, 궁금하던 책, 이 뉴스레터에서 소개했던 책들이 들어가 있어 꽤 결과를 두근거리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강민구 셰프님의 『장: The Soul of Korean Cooking』이 단일 주제 요리책 부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셰프님의 수상 소감은 제가 메티즌에 발행한 칼럼에 실려 있으니 궁금하시면 링크를 확인해보세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는 전체 출판 분야에서 요리와 식문화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것, 그리고 요식업계의 공신력 있는 어워드 중에서 요리책을 비중 있게 다루고 심사하는 드문 케이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어워드입니다.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는 주로 미국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지칭되곤 합니다.
셰프와 레스토랑뿐 아니라 요리책, 저널리즘, 방송, 디자인, 푸드 시스템 전반의 성과를 기리는 시상식인데요, 단순히 요리 실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는 다양성,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까지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요리책이 포함된 미디어 부문의 수상작을 보면 늘 그 해의 미국 요리문화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해외 요리책 트렌드 뉴스레터의 1호에서 2024년의 요리책 트렌드를 전체적으로 짚어봤었죠. 그때 제가 느낀 트렌드가 이번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수상작에도 반영되고 있는 듯 합니다.
특히 저자와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가에 대해 다양성이 확장되고 있어요.
과거처럼 대형 레스토랑 셰프나 백인 남성 중심이 아니라, 여성·유색인종·이민자·성소수자 저자들이 적극 수상하고 있고요.
단순한 레시피북을 넘어서 역사와 문화, 사회적 이슈를 탐구하는 요리책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형 출판사뿐만 아니라 독립출판, 그리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기반으로 시작한 새로운 세대의 저자들이 주요 상을 수상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굉장히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양성과 공정성 면에서 일찍부터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가 공신력을 얻고 회자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럼 전부 2024년 출판 도서인 올해의 수상작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몇 권을 선정했으니, 같이 살펴볼까요?
흥미로운 2025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수상작!
Baking and Desserts 제빵과 디저트 부문
Sift: The Elements of Great Baking
저자: Nicola Lamb
제빵과 디저트 부문의 수상작입니다. 사실 2024년 주목 받는 요리책 리스트에 빠짐없이 오르던 책 중 하나이기는 했어요. 베이킹 책은... 나 이제 그만 사야해... 하면서 지나치다 결정적으로 한 방 맞은 기분이네요.
기본부터 꼼꼼하게 다루고 있는데다 레시피의 신뢰도가 아주 높고, 30분만에 만들 수 있는 레시피부터 1일 소요 레시피, 주말에 여유롭게 만드는 레시피까지 독자가 파악하기 쉽게 분류해놓았다고 해요. 사실 가루 재료 체 치기는 아주 중요한 과정인데 그게 타이틀이라는 점에서부터 기본부터 충실한 책일 것 같죠.
이미지를 찾아보니 완성품도 아름답고 독특하네요. 이렇게 베이킹 책도 계속 구입하게 됩니다.
Beverage with Recipes 레시피가 실린 음료 부문
The Bartender’s Pantry: A Beverage Handbook for the Universal Bar
저자: Emma Janzen, Jim Meehan, and Bart Sasso (Ten Speed Press)
칵테일과 술, 리큐어를 다루는 책도 자주 번역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굉장히 독특한 매력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의미이냐면, 술을 잘 안 마시는 사람도 왠지 소장하고 싶어지는 특별한 비밀을 기록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발효와 증류 등의 과정을 거친 술, 그리고 믹싱과 셰이킹을 거치는 칵테일은 자연과 사람과 과학의 아름다운 합작 예술 같습니다.
이 책은 뉴욕의 페구 클럽 등 유명 바에서 선구적인 바텐더로 근무한 짐 미한의 바텐더를 위한 전문 가이드북입니다.
책 설명을 보면요, 설탕, 향신료, 유제품, 곡물과 견과류, 과일, 채소, 꽃과 허브, 커피, 차, 탄산수와 미네랄 워터, 발효 식품 등 10개 카테고리에서 역사와 인기 조리법, 유통 및 서비스 관련 팁 등을 소개한다고 합니다. 식품 공급망에서 바텐더의 팬트리로 이동하는 과정의 도전 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요. 레시피도 실려 있고요.
솔직히,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예측이 안 되어서 정말 너무 궁금합니다!!
Food Issues and Advocacy 식품 관련 사회적 이슈 부문
Ruin Their Crops on the Ground: The Politics of Food in the United States, from the Trail of Tears to School Lunch
저자: Andrea Freeman (Metropolitan Books)
식품에 관련된 사회적 이슈와 공익 활동 등을 주로 다루는 부문의 수상작입니다.
음식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정치의 도구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해 온 역사를 안고 있지요. 이 책은 조지 워싱턴이 원주민의 작물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던 장면에서부터 미국 정부가 원주민, 흑인 노예, 이민자, 소수 인종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어떻게 음식을 통제 수단으로 삼아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산물 잉여를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교 급식, 원주민 보호구역에 배급된 식품, 우유가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활용된 사례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구조적 억압의 역사를 짚어갑니다. ‘음식 억압(food oppression)’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키는 책이예요. 소화하기 어렵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일 듯 합니다.
Literary Writing 음식 문학 에세이 부문
Frostbite: How Refrigeration Changed Our Food, Our Planet, and Ourselves
저자: Nicola Twilley (Penguin Press)
문학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선정하는 부문의 수상작입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이 있는 탐구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작품에 주어집니다.
저는 '냉장고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일본 에세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냉장고 속 신선한 식재료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냉장 기술은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지요. 이 책은 인류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꾼 냉장 기술의 역사와 그 이면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치즈가 저장되는 지하 동굴, 바나나 숙성실, 오렌지 주스 보관탱크 등 전 세계 냉장 시스템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면서 현대 식품 유통의 숨겨진 구조를 보여줍니다. 미국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70% 이상이 냉장 유통망을 거친다고 하니, 오늘날 식량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냉장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됩니다.
냉장은 식품과의 관계를 바꿨지만 이제는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냉장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책이 출간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오늘 교보문고에 <냉장의 세계>라는 타이틀로 예약판매가 올라왔어요. 바로 읽어볼 생각입니다.
Reference, History, and Scholarship / Visuals 참고서·역사·학술 부문과 비주얼 부문
McAtlas: A Global Guide to the Golden Arches
저자: Gary He (독립출판)
이번에는 요리·식문화 참고서와 역사·학술 부문, 그리고 사진·디자인 등 비주얼 완성도 부문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무려 독립출판 저서입니다. 그런데 또 사진을 찾아보니 그럴 만 하다 싶기도 해요.
세계 최대의 레스토랑 체인인 맥도날드를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취재하고 촬영한 독립 출판물입니다. 각 나라의 입맛과 문화에 맞춰 조금씩 달라진 메뉴, 매장 디자인, 서비스 방식 등을 사진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 브랜드가 어떻게 각 지역에 스며들어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일종의 글로벌 맥도날드 인류학입니다. 다시 보면 표지도 빅맥 빵의 윗면을 담았죠.
보는 재미도 크고, 요즘 요리책 중에서는 보기 드문 비주얼 중심의 시도라는 점에서 특히 눈에 띄는 수상작입니다.
U.S. Foodways 미국의 식문화 부문
Our South: Black Food Through My Lens
저자: Ashleigh Shanti (Union Square & Co.)
미국 음식문화를 심층적으로 다룬 미국 음식문화와 전통 부문 수상작입니다. 이 부문에는 이민, 지역 전통, 사회 변화 속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미국 음식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선정됩니다.
표지를 보시면 흑인 음식 문화의 대표적인 식재료 중 하나인 오크라가 있죠.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흑인 음식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 애슐리 샨티는 퀴어 흑인 여성 셰프라고 해요. 자신이 자라난 애팔래치아 지역을 시작으로 남부 각 지역을 따라가며 그곳만의 요리 전통을 풀어냅니다. 이번 수상작들 가운데서도 특히 ‘지금 이 시대의 미국 음식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요리와 식문화라는 주제를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다룰 수 있는지, 바로 그 부분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것이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일년에 한 번, 제가 덕질하는 분야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이렇게 요리책을 잔뜩 모아서 상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요.
올해 남은 반년 동안에도 멋진 책이 많이 쏟아지겠죠. 또 내년의 수상작도 점쳐볼 것이 기대되고요. 매달 신작과 함께 요리책 트렌드를 소개하며 돌아오겠습니다. 다음 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요리 전문 번역가 정연주
번역 문의: dksro47@naver.com (영한, 한영, 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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