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rnertable : 오늘도 정말 잘하셨어요

🎼  Brad Mehldau 「Don't be sad」, 2010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한 주 잘 지내셨나요?

세 번째 레터를 보낸 후, 후기 메시지를 이런저런 루트로 받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넣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더욱더 ‘답장’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요. 답장다운 답장을 받은 게 기뻤습니다.

저도 정성이 가득 들어간 뉴스레터를 받아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놓치지 않고 챙겨보기도 하고, 알림 설정을 해놓고 기다리는 유튜버도 있는데요. 그들에게 답신하거나 감사를 표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보내주신 답장 덕분에, 애정을 표하는데 유달리 인색한 점을 반성하며 한 주를 보냈어요. 나는 누구에게 답신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저는 한 주 이렇게 살았습니다.

🏋️‍♀️ 2월 넷째 주의 일: 운전 연수

2010년도 초반에 운전면허를 땄어요. 딱히 면허 같은 건 필요하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곧 면허 취득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기사를 보고 급하게 학원에 등록했던 기억이 나요. 얼떨결에 자격을 얻고 나선 운전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필요를 느끼고도 여러 핑계를 대며 ‘운전’이라는 숙제를 한없이 미뤘는데요.

작년 가을, 한가롭던 어느 주말에 우연히 대리점에 들렀다가 덜컥 차 계약을 했어요. 요즘엔 차가 나오는 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려서 지금 계약해도 한참 후에나 받을 수 있는 데다, 나올 때쯤에 마음이 바뀌면 취소해도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참 구슬리는 말을 듣다가 홀린 것 같아요.

그렇게 차를 계약했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 얼마 전 이사 준비로 정신없는 시점에 딜러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차가 나왔다고 했어요. 눈치도 없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언젠가의 미션을 미뤄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해야 할 일을 마침내 끝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이제 잘 아니까요. 그냥 차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새 차는 시동 한 번 걸리지 않은 채 2주 가까이 주차장에 조용히 머물렀습니다.

이사가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이번 주부터 연수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연수를 맡아주신 선생님은 전날 미리 다정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연수를 앞두고 걱정이 많을 텐데 컨디션이 중요한 만큼 푹 쉬라고. 긴장하지 말라고요.

승모근을 한껏 올린 채 하루에 2시간씩 운전을 하다 보니 정말 피곤했는데요. 선생님은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앞차의 꽁무니만 따라가다 빨간 신호를 못 보거나, 눈치 게임에 실패해서 차선 변경을 못 하거나, 선생님과의 수다에 심취해서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무시해도, 선생님은 언제나 침착하셨는데요. 목숨을 걸고 초보운전자의 옆자리에 앉는 일을 매일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다가, 또 잘못된 길에 들었고요.

“저, 다음 주부터 혼자 운전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선생님은 “그럼요. 오늘도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답하셨어요.

내일은 마지막으로 주차 연습을 합니다.
선생님의 남은 인내심을 끌어다 쓰는 날입니다.

☕ 2월 넷째 주의 장소 : 숲으로 된 성벽

구독자 님은 본인의 이름에 만족하시나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나요?

작명소에 가는 이들은 모두 겁쟁이 같아요. 혹여나 내가 아기의 이름을 잘못 지을까 봐 걱정이 되는 거죠. 아마 제 부모님과 조부모님 역시 겁쟁이였던 것 같아요. 제 이름은 엄마와 아빠가 고민해서 짓는 대신 작명소에서 왔다고 했어요. 당연히 그 작명소는 어디인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결국 내 이름이 어디에서 온 지 모르는 것인데요. 아무래도 이런 이름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출처를 모르는 이름.

저는 제 이름을 좋아했던 적이 없었어요. 이름에는 숨구멍이 있어야 좋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초성, 중성, 종성이 빽빽한 세 글자라서 제 이름을 보면 숨이 막힐 때가 많았어요. 특히 저는 학창 시절 내내 한글서예를 배웠는데요. 글을 다 쓰면 낙관으로 마무리하거든요. 낙관은 이 글을 누가 썼는지 표시하기 위해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 것인데요. 가빈이나 미리 같은 이름 대신 성은을 적을 때마다 꽉 찬 이름을 원망하곤 했어요.

구독자 님은 내가 조그마한 가게 문을 열게 된다면, 하고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가게 간판을 달기 전, 어떤 이름을 지을지도 고민해보셨나요?

드디어 어떤 이름을 직접 지을 기회가 제게도 생겼어요. 2017년, 작은 책방을 열게 되던 때인데요. 저는 한 소설에서 만난 글귀를 떠올리고, 얌체처럼 그대로 가져다 썼어요.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이름을 짓기엔 부족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이름 짓는 일은 연륜이나 내공 같은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륜이나 내공이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엄마아빠도 작명소에 갔을까요?

지난 주말에 저는 김해에 있는 한 서점에 다녀왔는데요. 
서점 이름이 ‘숲으로 된 성벽’이었어요.
기형도 시인의 시를 딴 이름이었는데요.

책방에 관해 말하자면 그곳의 분위기와, 서가와, 오가는 사람들과, 위치와, 조도와, 가구까지.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그 이름을 함께 더듬어보고 싶어요.

아래 시를 천천히 읽어주셔도 좋겠어요.

<숲으로 된 성벽>

기형도

저녁 노을이 지면

신들의 상점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성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성

어느 골동품 상인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이번 주는 내내 외주 원고를 쓰느라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편지가 조금 짧지요?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서. 다가오는 편지에는 마감 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구독자 님은 한 주 어떻게 보내셨나요?
도로 위에서 운전하던 시간이 있었는지,
이름에 대해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오셨는지,
최근에 시는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주 레터는 좀 더 길게 가져올 수 있도록, 바삐 지내볼게요.
건강하세요!

2022.02.28.
부산에서, 성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