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월요일입니다. 지난 두호 동안 상처와 회복, 그리고 사랑의 얼굴들을 보셨으니, 오늘은 잠시 사람의 얼굴을 떠나 산과 안개의 얼굴 앞에 서보려 합니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보는 두 가지 다른 표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7년경
왼쪽은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76세에 그린 인왕산의 풍경이고, 오른쪽은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가 그린 안개 낀 산의 풍경입니다. 한 그림에서는 긴 비가 걷힌 뒤 인왕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른 그림에서는 안개가 산과 골짜기를 여전히 가린 채, 그 너머를 알 수 없게 만듭니다. 같은 산을 그렸지만, 한 화면은 맑아지고 다른 화면은 끝내 다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두 풍경은 두 개의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serene
고요한, 평온하고 맑은
sublime
숭고한, 장엄한, 매우 뛰어난
첫 번째 얼굴 — 정선과 'serene'
1751년 윤5월, 76세의 정선은 인왕산 일대를 오랫동안 삶 가까이에 두고 그려 온 노화가였습니다. 정선은 자신이 오랫동안 익숙하게 보아 온 인왕산의 실제 산세를 바탕으로, 비 갠 순간의 인상을 화면에 재구성했습니다. 짙은 먹으로 거대한 바위를 힘차게 내리긋고, 그 아래로 옅은 안개와 수목을 배치했습니다.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관찰한 산을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입니다.
오랜 비가 그친 윤5월 하순 무렵, 정선의 오랜 벗 이병연은 병세가 위중했습니다. 일부 연구는 정선이 친구의 회복을 바라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해석합니다. 이병연은 같은 달 말 세상을 떠났지만, 작품의 정확한 제작일과 그림 속 집의 주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제목 자체에 있습니다. '제색(霽色)'은 비가 갠 뒤의 풍경과 빛깔을 뜻합니다. serene의 어원인 라틴어 serenus 역시 '맑고 구름 없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비가 갠 풍경을 뜻하는 '제색'과, 맑게 열린 하늘을 뜻하던 serenus가 한 화면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정선에게 인왕산은 오랫동안 삶 가까이에 있던 익숙한 산이었습니다.
두 번째 얼굴 — 프리드리히와 'sublime'
1817년경, 독일 낭만주의 화가 프리드리히는 한 남자가 바위 절벽 위에 서서 안개로 뒤덮인 산맥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그가 여러 곳을 다니며 그린 스케치들을 조합해 재구성한 상상의 산입니다. 인물은 관람자에게 등을 보인 채(뤼켄피구어, Rückenfigur — 독일어로 '등을 보이는 인물'이라는 뜻의 미술 용어) 서 있어, 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 우리는 그의 뒷모습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방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얼굴도, 시선이 향한 정확한 곳도,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가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 익명성 때문에 관람자는 그의 자리에 자신의 감정을 겹쳐 놓게 됩니다.
sublime은 라틴어 sublimis, '높이 들린, 고귀한'에서 왔습니다. 일부 어원 설명은 이를 sub(~까지)와 limen(문지방·문턱)의 결합으로 보지만, 정확한 형성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그 어원을 떠올리게 하듯, 프리드리히의 남자는 안개 너머의 미지를 향한 경계 위에 서 있는 듯합니다. 그는 산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앞에서 자신의 작음을 느끼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당신의 통찰이 움트는 순간
serene과 sublime은 모두 자연 앞에서 생기는 감정이지만, 같은 감정은 아닙니다. 정선의 산은 긴 비가걷힌 뒤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랫동안 삶 가까이에 있던 산이므로, 그 장엄함 속에도 익숙함과 평정이 있습니다. 프리드리히의 산은 안개 속에서 일부만 보입니다. 방랑자는 풍경을 정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다 헤아릴 수 없는 광활함 앞에 선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관람자는 그의 등에 자신의 경외와 불안을 겹쳐 놓습니다.
serene은 익숙한 세계가 다시 맑아질 때 찾아오는 평온이고,
sublime은 아직 다 알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느끼는 떨림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크기를 넓힙니다.
SCENE #— 여행에서 돌아와 나누는 대화
산행을 다녀온 두 친구가 각자의 경험을 나누는 상황
A: "After the storm passed, the whole valley just went completely serene. I've never felt that kind of stillness before."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까 계곡 전체가 완전히 고요해지더라. 그런 정적은 처음 느껴봤어.
B: "When we reached the summit and saw the clouds stretching out forever, the view felt sublime — I felt so small, but I couldn't look away."
정상에 올라서 구름이 끝없이 펼쳐진 걸 봤을 때는 거의 숭고하다는 느낌이었어.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더라.
두 얼굴의 질문
당신은 지금 자연 앞에서, 혹은 삶의 어떤 광경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폭풍이 지나간 뒤의 익숙한 평온입니까, 아니면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 것 앞에서의 떨림입니까?
당신 안에는, 두려울 만큼 큰 것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고요가 있습니까?
Is there still a stillness in you that doesn't shake, even before something too vast to fully understand?
어쩌면 가장 깊은 평화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두려울 만큼 큰 것 앞에서도 눈을 거두지 않는 고요인지도 모릅니다.
귀로 듣는 두 얼굴
오늘의 두 풍경과 함께 에드바르 그리그의 〈아침의 기분(Morning Mood)〉을 추천합니다. 많은 사람 이 곡에서 노르웨이의 산과 안개를 떠올리지만, 원래는 《페르귄트》 속 북아프리카 사막의 일출을 위해 쓰였습니다. 실제 장소를 넘어 각자의 마음 속 풍경을 만들어 내는 이 음악은, 실경을 새롭게 구성한 정선과 여러 스케치를 하나의 상상 풍경으로 엮은 프리드리히를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https://youtu.be/7lKo6TYDXCQ?si=GiKghepHaTMiHOXB
다음 호 얼굴 맞추기
다음 호에서 만나게 될 이미지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아시는 분은 댓글이나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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