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TO FACE #008

두 얼굴의 질문 : 비움과 채움에 대하여

2026.08.17 | 조회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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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

여덟 번째 월요일입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웃음과 야성을 오가는 호랑이 두 마리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한쪽은 덜어낼 수 있는 걸 다 덜어냈고, 다른 한쪽은 시야 끝까지 색으로 채운 얼굴을 보러 갑니다.

첨부 이미지

김정희, 〈세한도〉  /  마크 로스코, 〈Orange, Red, Yellow〉

 

왼쪽은 조선 후기의 문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린 문인화이고, 오른쪽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가 그린 색면 회화입니다. 두 사람 모두 극도로 밀어붙인 화면 앞에 우리는 섰습니다.

저는 이 두 얼굴에서 두 개의 단어를 떠올립니다.

austere

꾸밈없이 엄격한, 극도로 절제된

 

immersive

몰입하게 만드는, 감싸는

 

첫 번째 얼굴 — 김정희와 'austere'

1844년, 제주도에 유배된 김정희에게 제자인 역관 이상적은 청나라에서 구하기 힘든 귀한 책을 두 차례나 보내 주었습니다. 권세를 잃은 스승에게 변함없이 마음을 쓴 제자였습니다. 김정희는 그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 이상적의 인품을 겨울이 되어서야 알아볼 수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제목 '세한(歲寒)'도 논어의 그 구절,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에서 따온 것입니 다.

화면은 초가집 한 채와 나무 몇 그루,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여백입니다. 그는 먹을 최소한으로 아낀 '갈필(渴筆), 즉 마른 붓질을 썼습니다. 이 기법은 흔히 속됨을 벗어난 정신을 표현하는 데 쓰였다고 전해집니다.

austere의 어원은 그리스어 austeros, 본래 '혀를 마르게 하는' 떫은 맛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붓과 먹을 마르게 써서 절제에 이른 갈필과, 혀가 마를 만큼 떫은 맛에서 출발한 이 단어가 '절제'라는 같은 자리에서 만납니다.

이 그림은 이후로도 파란만장한 여정을 거쳤습니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들고 북경에 가서 청나라 문인 16명에게 보여주었고, 그들은 각자의 감상을 담은 글을 그림 뒤에 이어 붙였습니다. 20세기에는 일본인 수집가 후지쓰카 지카시의 손에 들어갔다가, 서예가 손재형이 간곡히 부탁해 되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도쿄 대공습으로 후지쓰카의 서재가 전부 불타버렸다고 전해지니, 〈세한도〉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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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얼굴 — 로스코와 'immersive'

1949년 무렵부터 로스코는 구체적인 형상을 지우고, 경계가 흐릿한 색의 직사각형만 남은 거대한 캔버스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관람자가 그림에서 45~60센티미터, 팔 하나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서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야 색이 시야 전체를 채우고, 그 안에 잠기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 비극과 환희와 파멸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immersive의 어원은 라틴어 immergere, '안으로 담그다'입니다. 원래는 액체에 몸을 담그는 동작을 가리키던 말이었습니다. 로스코가 원한 것이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색이라는 액체 속으로 잠기는 경험 말입니다.

흥미롭게도 그 역시 상업적 타협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1958년 뉴욕 포시즌스 레스토랑 벽화를 완성하고도, 그 공간의 분위기가 자신의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계약금을 돌려주고 그림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 연작은 훗날 런던 테이트미술관에 기증되었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당신의 통찰이 움트는 순간

austere와 immersive는 얼핏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두 단어 모두 '충분함'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한도는 덜어내고 덜어내서 도달하는 충만함을 보여주고, 로스코는 채우고 채워서 도달하는 충만함을 보여줍니다.

김정희는 가진 것을 다 걷어내고도 무너지지 않았고, 로스코는 색을 가득 채워 보는 사람을 그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하나는 언뜻 결핍처럼 보이지만 실은 선택된 절제이고, 다른 하나는 언뜻 과잉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제된 몰입입니다.

어쩌면 두 단어는 반대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인 같은 의지인지도 모릅니다.

 

#SCENE — 이사한 친구의 집에서

거의 다 비운 집을 보고 나누는 대화

A: "I've been slowly getting rid of everything I don't actually need. My place looks almost empty now."

필요 없는 건 거의 다 정리했어요. 이제 집이 거의 텅 빈 것 같아요.

 

B: "That sounds so austere. Doesn't it feel a little cold?"

꽤 절제된 느낌이네요. 좀 춥게 느껴지지 않아요?

 

A: "Not really — sitting here in the evening light, I feel completely immersed in the quiet. It fills the space more than furniture ever did."

아니요 — 저녁 햇빛 속에 이렇게 앉아 있으면, 그 고요함 안에 완전히 잠기는 느낌이에요.

가구보다 그게 더 이 공간을 채워요.

 

두 얼굴의 질문

당신은 지금 무언가를 덜어내는 중입니까, 아니면 채우는 중입니까?

 

세한도가 묻습니다.

당신 안에는, 아직 덜어내고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함이 있습니까?

Is there still an austere strength in you, even after everything is stripped away?

 

로스코의 색면이 또 묻습니다.

당신 안에는, 아직 무언가에 완전히 잠길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까?

Can you still let yourself be fully immersed in something greater than you?

 

오늘 당신에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비움으로 도달하는 충만함인가요, 채움으로 도달하는 충만함인가요?

어쩌면 가장 깊은 충만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채울지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귀로 듣는 두 얼굴

오늘의 두 얼굴과 함께, 에릭 사티〈Gymnopédie No. 1〉을 추천합니다. 몇 개의 음만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더할 나위 없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듣다 보면 그 반복되는 선율 안으로 서서히 잠기게 됩니다. 덜어냄과 잠김이 한 곡 안에서 만나는 음악입니다.

 

 

다음 호 얼굴 맞추기

다음 호에서 만나게 될 이미지의 일부를 공개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아시는 분은 댓글이나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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