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7 vol.27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안녕하세요, 작가 정재경입니다. 지난주엔 베스트셀러 『슈퍼 유튜버』의 공저자이자 '죽은 유튜브도 살린다'는 도발적인 유튜브 컨설팅 채널 닥터튜브를 운영하는 주힘찬님을 만났습니다. <정재경의 초록생활> 유튜브 컨설팅을 받고, 관련된 콘텐츠 촬영을 함께하며 나눈 대화 속에서 요즘 은둔형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마트폰 속 SNS 채널에는 각 분야의 완성형만 보입니다. 인스타그램 속에선 팔뚝을 걷어붙이고 턱걸이를 열 개도 넘게 하는 여성이 피드에 뜹니다. 요리도, 공부도, 영어도, 운동도, 그림도, 춤도 다들 너무 잘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수준을 비교하면 내가 시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칩니다. 밖으로 나갈 용기를 잃어버리게 되어요.
지난 4월, EBS 뉴스에 소개된 한 사례입니다. 대인기피 성향이 있는 고립 청년들을 위해 만들어진 '곰손 카페'라는 시범 일자리가 있습니다. 작은 구멍으로 손만 내밀어 음료를 건네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입니다. 단 5명을 모집하는 데 175명이 몰렸습니다.
오랫동안 방문을 닫고 지내던 청년들에게 필요했던 건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작은 성취입니다.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해온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제로 갑자기 고립 청년이 두 배로 늘어난 게 아니에요. 예전부터 있었던 문제인데, 최근엔 1~3년 차에 스스로 자각하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뿐입니다."
지금 한국에는 이렇게 방문을 닫아건 청년이 전국적으로 54만 명, 서울에서만 2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기준). 3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87퍼센트는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답했지만, 현실은 다시 고립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흔히 실패, 낙오, 도피로 해석합니다. 본인조차 스스로를 그렇게 다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식물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씨앗도, 나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반드시 거칩니다. 그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계산된 준비 과정입니다.
씨앗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전쟁
씨앗은 겉보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두 개의 호르몬이 팽팽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발아를 억제하는 호르몬 ABA(앱시스산, abscisic acid)와, 발아를 촉진하는 호르몬 GA(지베렐린, gibberellin)입니다. 이 두 호르몬은 서로를 억제하는 관계에 있으며, ABA 농도가 높을 때는 GA의 작용이 억제되어 씨앗은 휴면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러다 온도, 수분, 빛 같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ABA는 분해되고 GA 농도가 임계치를 넘으며, 씨앗은 껍질을 깨고 발아를 시작합니다. 씨앗의 멈춤은 무기력이 아니라, 정교하게 조율된 생리적 판단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신호를 스스로 읽고, 에너지를 아끼고 있는 것입니다.

2천 년을 기다린 씨앗
이 휴면의 힘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2005년, 이스라엘 마사다 유적지의 곡물 저장고에서 대추야자 씨앗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곡물 창고는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1,990년 전, 로마군의 침공 시기(서기 66~7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씨앗을 따뜻한 물에 불리고 해조류 성분의 비료를 주는 등 특별한 처리를 했습니다. 6주 동안은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씨앗은 싹을 틔웠습니다. 이 나무에는 '므두셀라(Methuselah)'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후 연구진은 유대 사막 곳곳에서 발굴된 고대 씨앗들을 추가로 발아시켜, 이미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유대 대추야자 품종의 게놈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암나무 '한나(Hannah)'는 므두셀라의 꽃가루로 수분된 뒤, 2020년 마침내 첫 열매 111개를 맺었습니다. 일반 대추야자보다 3년이나 더 걸린 결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되살아난 고대 나무는 므두셀라, 한나를 포함해 총 7그루에 불과합니다.
아직 상업적으로 대량 재배되는 단계는 아니고, 이스라엘 아라바 지역의 한 연구소에서 소중하게 돌보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2천 년 동안 멈춰 있던 유전자가 다시 열매로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발견입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9년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조사에서 나온 씨앗으로, 국내 최초로 약 1,200년 전 고려시대 연꽃 씨앗의 발아를 복원한 사례입니다. 꽃을 피우기까지 대추야자는 2천 년, 연꽃은 1,20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씨앗은 죽은 것도, 포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건이 맞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물론 씨앗의 휴면은 생존을 위한 자동적 생리 반응이고, 사람의 고립은 감정과 의지가 얽힌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두 가지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멈춰 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원리만큼은, 식물에게서 빌려올 수 있지 않을까요.
휴면은 계산된 전략이다
이 기다림은 우연이 아니라 정교한 생존 전략입니다.
과수 농업 연구에서는 이를 '저온요구도(Chilling Unit)'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사과나무는 500~800시간, 배나무는 1,000~1,200시간, 복숭아나무는 800~1,000시간 정도의 저온을 축적해야 비로소 휴면이 풀리고 꽃눈이 열립니다. 이 저온 축적이 충분하지 않으면 봄이 와도 발아와 개화가 지연되거나 부실해져, 결국 그 해 수확량 자체가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 나무는 봄이 왔다고 무작정 반응하지 않습니다. 겨울을 충분히 통과했는지를 내부적으로 '계산'한 뒤에야 움직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꽃을 피우면, 그 결과는 오히려 부실한 성장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숨고 싶다면 싹을 틔우기 위해,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겨울입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세요. 자책은 나를 공격하는 독이 됩니다.

지금 멈춰 있다면
'곰손 카페'에 175명이 몰렸던 이유는, 조건이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크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은, 지금 상태 그대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조건이요. 혹시 지금, 아무것도 시작할 힘이 없다고 느끼신다면, 그 시간을 스스로 잘라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건 멈춘 시간이 아니라, ABA와 GA가 조용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 시간일 수도 있으니까요.
때가 되면, 씨앗은 반드시 압니다. 그리고 조건이 맞으면, 다시 시작할 자리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스스로를 믿으세요. 나를 믿는 마음, 자신감은 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세요. 사랑은 식물에게 주는 물처럼 나를 키웁니다.
"스스로를 믿으세요."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작은 화분 하나를 창가에 놓아보세요. 물을 주는 그 30초의 행동이, ABA와 GA가 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당신 안의 리듬을 다시 맞춰줄 겁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씨앗 이야기를 나눈 김에, 이번 하반기엔 저도 전국 도서관에서 더 많은 분들과 이 '기다림의 힘'을 나눌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시면 아래 일정을 살펴봐 주세요.
초록생활 소식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산 스승, 식물에게 배우는 시간
식물은 서두르지 않아도 자라고, 흔들려도 뿌리를 놓지 않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신을 다시 정비합니다. 이 '식물적 삶의 태도'를 우리 일상에 들여온다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마음을 담아 준비한, 식물적 세계관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가도록 관점과 의식을 전환하는 식물 인문학 프로그램. 올 하반기에도 길 위의 인문학 및 전국 도서관 강의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은 분들의 정성과 노력 끝에 스케줄이 확정되었어요. 강연 신청 링크 업데이트되는대로 제 SNS 채널 및 초록편지로 공유 드리겠습니다.
| 지역 | 도서관 | 주제 | 일시 | 횟수 |
|---|---|---|---|---|
| 경상남도 | 창원도서관 | 번아웃에서 회복하는 마음의 기술 | 7월 18일 토요일 오후 2시 | 1회 |
| 경기도 | 양평도서관 | 식물의 위로, 한 그릇의 철학! 몸과 마음의 웰니스 | 8/6~9/3 목요일 오전 10시 | 5회 |
| 서울특별시 | 천호도서관 | 기르는 시간의 인문 | 8/12, 8/19 수요일 오전 10시 | 2회 |
| 충청남도 | 서산도서관 | 초록에서 단풍까지, 인문학 산책 | 8/28, 9/4 금요일 오전 10시 | 2회 |
| 서울특별시 | 거마도서관 | 화(花)답: 꽃으로 묻고 인문학으로 답하다 | 9/10~10/8 목요일 오전 10시 | 4회 |
| 경기도 | 부천별빛마루도서관 | 마음의 色, 자연의 色: 자연과 예술로 그리는 치유의 色 | 10/2~11/6 금요일 오전 10시 | 5회 |
| 충청남도 | 배방월천도서관 | 식물로 읽는 우리의 삶: 자연에서 배우는 인문학 | 10/6~11/3 화요일 오전 10시 | 5회 |
| 경기도 양주시 | 덕계도서관 | 우리 동네 식물 인문학: 초록의 안부 | 10/15~11/12 목요일 오전 10시 | 5회 |
| 전라남도 장성 | 장성도서관 | 번아웃에서 회복하는 마음의 기술 | 10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 1회 |
🌱 정재경 작가와 협업하기
정재경 작가와 함께 식물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치유와 회복, 협업을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 주세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환영합니다.
👉 문의하기 https://www.crsh.kr/inqu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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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생활연구소에서는 개인을 위한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해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의 나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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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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