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학 | 식물인문학 기반 웰니스

우리가 오래 쓰지 않은 여덟 번째 지능

2026.04.07 | 조회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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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편지

2026.04.07 vol.15 | view more | SUBSCRIBE

  CRSH : 이야기  

 

요즘 꽃 구경 누리셨나요?

저는 이번 주, 산책로에 진입하다 멈칫했습니다. 동네 운중천 길에 벚꽃이 가득 피어 있었거든요. 극장 매점에서 갓 받아 든 팝콘 팩처럼, 터질 듯 가득 찬 포만감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꽃향기가 공기를 타고 너울거리는 느낌. 더 깊이 들이마시고 싶어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달리기를 시작하며 7번의 봄을 맞이하는 데도, 해마다 봄이 오면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감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뒤,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밤사이 다 떨어졌겠구나, 싶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길에, 꽃들은 미처 피우지 못 했던 봉우리의 꽃까지 모두 틔워 더욱 풍성했습니다. 자연은 늘 예측을 빗나갑니다. 벚꽃이 아름답다, 생각하는 순간 이미 지기꽃잎이 휘날리기 시작하고, 다음 봄을 기약해야 합니다. 아쉽지만 꽃이 피고, 지고, 준비하고, 떠나고. 그 모든 것이 '생명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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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부터 준비한 것들

 

사실 이 꽃들은 잎이 진 가을부터 다음 봄을 준비해왔습니다.

겨우내 운중천 들판을 달리면서, 저는 그 나무들 곁을 여러 번 지나쳤습니다. 잎 하나 없이 앙상하게 서서, 차가운 삭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나무들이었어요. 잎도 꽃도 없이, 가지만 남은 모양새는 생명력을 상실한 무생물에 가까웠습니다. 그 옆을 지나치면서도 그저 몇 킬로미터 달렸나 생각하고 있었고요.

어느 해 겨울, 가지 끝에 달린 작은 꽃봉오리를 발견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긴 시간 동안,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벚나무한테서 배웠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달리는 동안 자연에게서 배운 것들이, 그동안 책과 강의와 사람들 사이에서 배운 것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요. 하기 싫은 마음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사라져 있고, 11월에도 피는 철쭉을 보며 계절의 규칙보다 넓은 무언가가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자연은 제가 미처 질문하지 못한 것들에 먼저 답을 주고 있었던 것 같아요.


🌱 배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

 

오랫동안 자연을 늘 그 자리에 있는 가로등이나 다리처럼 대해왔습니다. 달리는 동안에도 자연은 그저 배경이었지, 함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경치는 좋다고 느꼈지만, 그건 배경이 예쁘다는 뜻이었지 자연이 살아있다는 감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겨울 내내 버티고 있던 나무들이 봄에 꽃을 피우는 장면을, 달리면서 반복해서 목격하고 나서야 조금 달라졌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날, 나뭇잎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햇빛의 각도에 따라 반짝거리는 빗방울을 보았을 때도 그랬어요.

씩씩하게 흐르는 운중천의 유량이 지난주보다 확연히 달라진 걸 알아챘을 때도요. 달리는 내내 쉬지 않고 오감을 자극하는 실로폰 같다고 느꼈던 건, 배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다음부터였습니다.

자연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계절을 견디고, 준비하고, 때를 맞춰 피어나는 — 감각을 열면,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감각에 이름이 있습니다

 

6호에서 '자연결핍 증후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기억하시나요? 자연과 멀어지면서 우리가 감각을, 인지를,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잃어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더 나아가, 그 잃어버린 감각에 이름을 붙여보려 합니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지능이 단 하나의 숫자로 측정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다중지능이론에는 언어, 논리수학, 음악, 공간,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성찰, 그리고 자연탐구 지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8가지 지능을 저마다 다른 비율로 지니고 있어요.

자연탐구 지능은 자연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변 환경에서 패턴을 읽어내며 그것과 교감하는 능력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 날씨의 냄새를 맡는 것, 달리는 길 위에서 나뭇가지의 상태를 눈으로 읽는 것 — 이 모두가 자연탐구 지능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우리 사회는 언어와 논리수학 지능만을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감각은 어느 순간부터 녹슬어갑니다. 6호에서 리처드 루브가 경고한 것처럼, 자연결핍은 집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자연탐구 지능이 무뎌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봄이 온다는 건 그 감각을 다시 꺼낼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이제 잎이 납니다. 그것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다만 그걸 알아채는 ‘감각’이 살아 있어야 보입니다.

이번 주, 자연에 한 번만 더 시선을 주어 보시겠어요? 배경이 아니라, 가을부터 무언가를 준비해온 살아 있는 존재로요. 그 잠깐의 시선이, 오래 녹슬어 있던 자연탐구 감각을 조금씩 깨울지도 모릅니다.


초록생활 추천 

백남준 아트센터 〈TV 정원〉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는 〈TV 정원(TV Garden)〉. 백남준이 1974년 뉴욕 보니노 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우거진 열대 수풀 속 바닥에 텔레비전들을 심어 놓은 설치 작품입니다. 화면에는 영상 작품 〈글로벌 그루브〉(1973)가 흐르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춤을 춥니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화면이 꽃처럼 느껴지고, TV는 어느새 생태계의 일부가 됩니다.

자연 속을 거니는 일이 꼭 진지할 필요만 있을까요? 때로는 춤추듯 발랄해도 좋지 않냐고 되묻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백남준 서거 20주기를 맞아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자연을 대하는 그의 시선이 궁금하다면, 지금 이 계절에 한번 찾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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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정보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기간: 상설 전시 |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 (마지막 입장 오후 5시)
관람료: 무료


초록생활 소식 

4월 한 달,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 아리랑TV 라디오 컬처 크런치(Culture Crunch)에서 저를 만나실 수 있어요. 주제는 마인드 가드닝(Mind Gardening) 입니다. 식물을 가꾸듯 마음도 가꿀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첫 번째 수업은 '식물 킬러 탈출! 첫 반려식물 찾기'로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식물을 죽여왔다는 분들,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을 함께 떼어봤습니다. 

실내에서도 식물과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는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매주 월요일 챙겨 주세요. 놓치셨더라도 유튜브에서 다시 보기가 가능합니다.

식물인문학자 정재경과 함께 하는 <마인드 가드닝> 프로그램

✍️ 5월부터 시작하는 모닝페이지 클래스, 함께 해요.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9년 동안 기록하고 있는 정재경 작가가 직접 코칭합니다. 

👉 신청하기  https://forms.gle/DGb5r1qfSqbWDrsq5

 

📚 함께 성장하는 인문학 북클럽 초록서원. 책을 함께 읽고 생각과 개인의 서사를 나누는 모임이 필요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 신청하기  https://forms.gle/22C77Xn48pDLqQvS7

 

초록생활연구소의 식물인문학 기반 웰니스 컨설팅, 정재경 작가의 강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로 편하게 연락 주세요. 🌿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정재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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