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숴의 재즈레터 #15 | 왜 떠나냐고? 돌아오는 길이 좋기 때문이야.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음악

2022.05.03 | 조회 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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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를이로부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재미있는 음악레터, 그리고 요즘 여행소설.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성이숴입니다.

좋은 저녁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창밖 테라스에 드는 햇살을 보며 재즈레터를 쓰고 있었답니다. 오늘은 좀 감상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음악감상을 하는데 꼭 필요한 건 어떻게 보면 이 '감성' 아니겠어요. 

곡 제목부터 말씀드리고 시작하죠. 

Once we were young우리가 젊었을 때.

오늘의 앨범 : The Complete Free Wheeling Sessions 
축제같던 날들.
축제같던 날들.

곡의 시작, 피아노가 오래전 보았던 낯익은 골목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느슨하면서도 또렷한 기억의 돌담길. 그곳에 보고싶었던 풍경이 야트막한 담 뒤로 펼쳐져 있습니다. 흐릿한 안개를 걷어내려 미간에 힘을 줄수록 그것들은 더욱 또렷해 지기도 하고, 반대로 아주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듯도 합니다. 잡을 수 없어 슬펐던 시간들.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건만, 어째서 더욱 오랜 기억들은 진작에 사라지지 않은 걸까요?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환상입니다. 그건 미지로의 모험이 아니라 가장 잘 아는 곳으로 돌아가는 정겨운 귀향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매일 모르는 시간으로 성큼 나아가야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나를 가장 잘 아는 동네로 돌아가는 여행 후의 안락한 귀향만큼 정겨운 설렘이 또 있을까요.

오랜 여행을 끝내고,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그리운 나의 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우리들.
우리들.

앨범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오래된 기억들을 부드럽게 꺼내 보여 줍니다. 하도 많이 써서 조금만 힘을 줘도 열리는 부드러운 서랍에서 아껴 두었던 줄도 몰랐던 편지들을 발견하는 기분이죠. 거기엔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했던 눈물진 편지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버리지 못한 바스라진 기억들이 남아 있습니다. 바스라졌다 해도 여전히 생생한 기억들이죠.

앨범은 대체적으로 매우 밝은 분위기로 가득 차 있지만, 중간중간 느슨한 리듬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곡이 있습니다. Once we were young 이 딱 그런 곡이고, 그 다음 곡인 Fooling my self 도 그렇죠. 이 두 곡 이후로 다시 밝고 경쾌한 곡이 계속 되다가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 All the things you are 이 다시 부드럽게 시작됩니다. 

재즈를 듣는 재미는 나의 취향을 매우 천천히 알아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흩어진, 한때는 가장 영롱했던 추억의 조각들을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모으는 일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오늘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호숫가의 나무 한 그루가 푸른 잎을 그토록 많이 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나, 집 앞 주차장을 매일 아침 치우고 계셨던 정겨운 이웃의 손길을 발견한 감동 같은 거죠. 나는 몰랐지만 우리의 매일을 채워 주었던 고마운 감정을, 그래서 앞으로도 미지의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작은 희망들 말입니다. 매일 발견하진 못했어도 세상은 생각보다 더 많은 감동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는 안도. 내가 몰랐던 재즈 앨범을 발견할 때마다 저는 그런 기쁨을 누립니다.

취향이란 중요하다니까요.
취향이란 중요하다니까요.

내가 아직 철이 없어 비뚤어진 시선으로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을 때. 이 연주자들은 우리가 언젠가는 발견할 편지를 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 편지들을 발견하고 싶어, 오늘도 오래된 재즈 서랍을 열어 봅니다.

 

  • Once we were young - Art Pepper, Ted Brown, Warne Marsh 

 

  • Foolin myself - Art Pepper, Ted Brown, Warne Marsh 

 

오늘도 같이 들으니 좋군요!

좋은 한 주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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