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거리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었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4월입니다. 어쩌면 벚꽃의 아름다움은 금세 사라지기에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꽃이 진 자리에 돋아나는 연한 초록 잎들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겨우내 품어왔던 생각들이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는 계절입니다. 분주했던 꽃구경 인파를 뒤로하고, 이제는 조금 차분해진 공기 속에서 책장을 넘겨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책숲이 준비한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봄날에 향기로운 책갈피가 되길 바랍니다.
📖 4월 책숲 운영진이 추천하는 책 : 『의미들』& 『슬픈 호랑이』
이번 주인공은 뉴스레터를 항상 쓰고 있는 저, 아름의 추천 책과 장소입니다 :) 재밌게 읽어주세요 ㅎㅎ
한때 문학의 유용성에 대해 골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내 삶이 어떻게 바뀌나’라는 질문이 제 고민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접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되어주었습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줘요. 상대방의 마음이나 영혼에 들어가는 아주 직접적인 방법이에요. 네, 정말 큰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아의 경계가 유연해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더욱 개방적이고 성숙해질 수 있어요. 문학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짚은 두 권의 책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한 권은 삶과 책을 가로지르며 문학 속 “미친 여자”의 이미지를 탐색하는 『의미들』이고, 다른 한 권은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을 회고하며 실험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슬픈 호랑이』입니다.

수잰 스캔런의 『의미들』을 읽게 된 계기는 조금 독특합니다. 좋아하는 번역가의 번역한 책을 찾다 그 책을 낸 출판사가 꾸준히 좋은 책을 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그 출판사의 출간목록을 훑어보다 부제가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부제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입니다. 이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정신질환을 앓으며 ‘미쳤다’는 낙인 속에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학작품과 작가들의 삶을 따라가며 “미친 여자”들의 이미지를 탐색합니다.
제목 그대로, 문학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병이 지닌 “의미들”을 형상화해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한강이 말한 문학의 유용성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모습이 깊이 있게 다가왔고, 언젠가 저 역시 도달해보고 싶은 글쓰기의 한 지점처럼 느껴졌습니다. 영문학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스와 같은 여성 작가들이 등장하는 지점도 흥미롭게 읽힐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책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성폭력을 다루고 있는 『슬픈 호랑이』입니다. 이 책은 매우 실험적인 문체로 자신의 삶을 회고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The Tyger」에서 제목을 차용했으며, 어린 시절 성폭력 피해 경험을 문학적 장치를 통해 비틀어 서술한 자전적 소설이자 에세이입니다. 『의미들』이 『연인』을 참조하듯, 이 작품 또한 『롤리타』를 끌어와 과거를 재구성합니다.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 ‘겪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의 고통이 문장 속에서 그대로 전달되며, 그 아픔을 끝내 언어로 끌어올린 용기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소개해드린 두 권의 책은 선뜻 ‘가볍게 읽어보세요’라고 권하기는 어려운 작품들입니다. 그럼에도 문학의 유용성을 이야기할 때, 이보다 더 직접적인 사례가 있을까 싶습니다. 정신적 고통과 폭력이라는 삶의 균열 앞에서도 끝내 ‘의미’를 길어 올리려 했던 이들의 태도에 조용히 박수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 4월 운영진이 애정하는 장소 : 마산 315 해양누리공원
제가 좋아하는 장소는 마산 3·15 해양누리공원입니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어, 머리가 복잡할 때 생각을 정리하러 자주 찾는 곳입니다. 특별히 달리기를 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걸으며 상념을 정리하곤 합니다. 저에게는 가장 애정하는 산책 장소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한달음에 내려가면 산책로 입구에 닿습니다. 그곳에서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섬도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한강에 뒤지지 않는 경치를 자랑하는 그곳을 걷다 보면, 바다라고 부르기도, 강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풍경 속에서 자연스레 마음이 정리됩니다.
공원 곳곳에서는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게이트볼을 즐기는 어르신들, 농구를 하는 학생들, 분수대 주변에서 뛰노는 아이들까지—세대가 어우러진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한가로운 주말이면 버스킹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연을 날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문득 머릿속이 복잡할 때, 이곳의 조용하고 차분한 풍경을 마주하고 나면 마음도 덩달아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이곳은, 특별한 말 없이도 충분한 위로를 건네는 장소가 됩니다.
주차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먼 곳에서 방문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한 번쯤 꼭 걸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은, 정말 좋은 산책 장소입니다 :)
📖 다가오는 모임들

[5월 모임 일정]
참여하실 분들은 링크를 타고 가셔서 참석 의사를 표시하는 댓글 달아주세요 😀
📖 지난 모임 이야기: 4월 18일 운영진픽『새의 선물』

12살 소녀 강진희의 시선을 통해 어른들의 세계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성장소설 『새의 선물』 운영진 픽 독서모임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아이다운 천진난만함이 없어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는 분도 계시고, 오히려 아픔을 덜 느낄 수 있어서 조숙한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60년대 말의 따듯한 이웃들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소설이었음과 동시에,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의 슬픔에 대해서 공감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상동 님의 후기글과 함께 그날의 기억을 복기하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
🎤 회원 인터뷰 : 건영님, 고요한 골방을 넘어 드넓은 대지로
때로는 날카로운 지성으로, 때로는 넉넉한 유머로 우리 곁을 지켜주시는 건영 님. 그가 처음 그랜드문고의 책 냄새를 맡으며 설레던 순간부터, '겸손'과 '존중'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가슴에 새기게 된 사연까지 정성껏 담았습니다.
1. 건영님은 책숲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처음 책숲을 알게 되었을 때의 장면이나, 그날의 분위기가 기억나신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네, 그 날이 생각납니다. 작년, 2025년 더위가 시작되려던 6월의 마지막주 토요일이었거든요. 그랜드문고 계단으로 내려갈 때의 향기, 카펫, 책…. 그랜드문고를 갈 때면 그 냄새가 정말 좋아요. 피톤치드랑 비슷한데, 아닌 거 같기도 하고 …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첫 모임에서는 유시민 작가의 『청춘의 독서』로 진행했는데, 열댓 분이 오셨습니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오랜만에 참석하는 책 모임이라 떨렸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한때 지식소매상으로 존경하는 작가이기도 했기에 드센 얘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책숲은 지금 운영진으로 있는 아름 님의 소개로 오게 되었습니다. 나잇살 먹고 가야 하나 고민도 많이 되었지만, 책숲은 골방에서 홀로 책 읽던 저를 드넓은 대지로 이끌어줬다 할까요.
2. 책숲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여긴 나랑 잘 맞는다”고 느끼게 된 순간도 있었을까요?
홀로 읽는 것을 즐기지만 책숲 모임에 가면서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아요. 모임을 갖다 보면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말들이 오가고, 시야도 넓어지더라고요.
오픈채팅방에서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도 올라오고, 재밌게 놀기도 하고, 멤버들끼리 챙겨주기도 하고, 위로도 해주고… 함께하는 모든 것이 좋네요.
3. 어느새 운영진으로 함께하고 계신데요, 건영 님에게 책숲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 곳인지 궁금해요.
책숲에서는 매주 다양한 컨텐츠로 다가간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코로나 이전에 독서모임을 운영했었거든요. 그땐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거나 영화를 보는 식의 문화활동을 가지는 것이 전부였어요. 그 정도면 할만큼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책숲에 오니까 영어모임, 벽돌책, 같이 읽기, 고전 읽기, 정기모임, 여기에 수시로 열리는 문화활동까지… 모임을 꾸리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구나 하고 그저 감탄했어요.
이 정도 살아 보니 세상이 우습게 보였는데, 책숲 회원분들과 함께 하면서 ‘겸손’과 ‘존중’의 의미를 다시 깨달았습니다.
4. 글쓰기 챌린지에서 보여주신 글들이 참 인상 깊었어요. 건영 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순간에 가까운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누군가 제게 마감기한과 소정의 원고료를 던져준다면 채찍을 맞으며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글을 쓸 수 있을 겁니다. 낭중치주(囊中之錐). 세상은 넓고 글 잘 쓰는 사람은 워낙 많으니까요. 좌절하며 현실의 벽을 깨닫고 글을 안 쓰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하게 됐고, 마감기한이 주어지니까 쓰게 되더라고요. 거짓과 가식 없이 쓴 글이 남에겐 좋은 평가를 받는 법인데, 그러려고 애썼습니다. 최근에 17년 차 출판 편집자인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가 “문과대 졸업생인 우리가 유일하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은, 다름 아닌 책이니까”라고 말한 걸 신문에서 읽었어요. 집중해서 글을 쓰는 순간, 경험하게 되는 몰입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한 달이었습니다.
5. 책을 읽는 시간도 건영 님만의 리듬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시간,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훈 작가가 오래전 썼던 칼럼 중 일부를 소개할게요.
"그러므로 사람들아, 책을 읽더라도 너무 책, 책 하지 마라. 잠자리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좋다. 고요히 누워서 정신을 회음에 집중하고 몸이 텅 빔으로 충만할 때 경건한 마음으로 잠을 모셔라."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아요. 학창 시절부터 20대 혹은 30대, 사회진출하기 전까지 읽은 책들이 가치관을 형성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어른들은 책에 집중하기 쉽지 않아요. 각자 감내해야 할 현업의 숙제가 많달까요.
도서관은 책 읽기 좋은 장소에요. 도서관은 고요하고, 책 냄새도 좋고… 장소가 주는 무게감이 있어요. 식당에 가면 밥을 먹어야 하고, 병원에 가면 안 아픈 곳도 의사에게 말하고 싶은… 그래서 2주마다 퇴근 후 도서관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고르고 옵니다.
6. 오래전 읽었거나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유난히 오래 마음에 머물렀던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장진 희곡집은 본인이 쓴 극대본을 묶어서 낸 작품집이에요. 스무살 때, 처음 본 연극이 <택시 드리벌>이었어요. 학교 극예술 연구회 동아리에서 올린 작품인데, 관객은 저 포함 서너 명뿐이었어요. 휑한 공연장에서 연출이 ‘연출의 변’을 설명하고 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인공인 장덕배와 화이, 그리고 앙상블 배우들. 배우들이 내뿜은 에너지에 공연이 끝나고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혼났네요. 입장료는 3천 원이었구요, 지금의 저라면 3만 원이라도 냈을 텐데,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값어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주말엔 산사』는 작년 9월에 나온 비교적 신간도서입니다. 윤설희 작가가 주말마다 산사들을 다니며 그 중 인상 깊었던 여섯 곳을 소개하고 그린 책이에요. 순천 선암사, 영주 부석사 등 불교에 대한 지식과 산사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추천드려요.
7. 책숲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도 있을까요?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매끈한 문장을 가장 잘 쓰는 소설가입니다. 감미로운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작가죠. 그래서인지 김연수 작가님의 책들은 알록달록 디자인이 예뻐요. 김연수 작가의 장편은 잘 집어들지 않게 되고(장편은 석·박사 논문을 편철해서 내놓은 느낌이랄까요.) 단편은 발표될 때마다 챙겨 읽어요. 이 소설집 중에선 「모두에게 복된새해 - 레이먼드 카버에게」를 추천드려요.
8. 책숲에서 보낸 시간들 중 조용히 오래 남아 있는 장면이나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모임 정리를 남기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제가 남긴 모임정리를 정리해 보고 몇 개를 적어 볼게요. 우선 1월 31일(토),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정기모임입니다. 본인의 좌우명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었어요.
일단 하고 봅시다. JUST DO IT
이 또한 지나가리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만큼만 살자.
사랑은 가슴으로! 행동은 실천으로! (괴테의말)
감정은 사라지고 상황은 남는다. 발끈하지말자.
소통이 없으면 고통이 있다.
2월 28일(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정기모임에서 인상 깊게 들은 말은, '받은 건 까먹지 말고, 준 건 까먹어라.'에요. 손해를 보고 살아야 마음이 편합니다.
9. 마지막으로, 다음 뉴스레터에서 만나보고 싶은 책숲의 한 사람을 추천해 주세요. “이 분 이야기는 한번 들어보고 싶다” 싶은 이유도 함께요.
차분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책숲의 손석희. 신창엽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봄바람에 벚꽃 잎이 지는 것은 아쉽지만, 그 자리에 돋아날 초록빛 잎사귀들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더욱 무성해질 것을 믿습니다. 이번 한 주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그리고 당신 곁의 책 한 권과 함께 평온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곧 책숲의 다정한 자리에서 다시 만나요!
책숲 운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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