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어느새 캘린더 마지막 장만 남은 12월,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아침 공기는 한층 더 차가워지고, 퇴근길 하늘은 예상보다 더 빨리 어두워지죠. 시간은 늘 같은 속도로 흐른다지만, 연말이 되면 유독 더 빨리 지나가는 것만 같습니다.
올해 초에 세웠던 다짐들, 읽고 싶다고 적어두었던 책 사이를 바쁘게 건너오느라 각자의 자리에서 꽤 많이 애쓰셨을 거예요.

이번 12월 둘째 주 뉴스레터에서는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올해 책숲에서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남은 12월을 어떻게 채워가면 좋을지 천천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차 한 잔 옆에 두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 다가오는 모임들


참여하실 분들은 링크를 타고 가셔서 참석 의사를 표시하는 댓글 달아주세요 😀
(마감된 모임에도 혹시나 취소자가 생길 수도 있으니 대기자로 등록해주세요! )
📖 지난 모임 이야기: 11월 29일 자유독서모임

11월 정기 독서모임 도서는 손무의 『손자병법』이었습니다. 건영 님의 발제로 진행된 이 책은, 단순한 전쟁의 기술을 넘어 삶의 태도와 관계의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하네요. 사실, 저희 회사 대표님께서 『손자병법』에 푹 빠지셔서 회의 때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를 외치시곤 합니다... 대표님 때문에 모임에 참석 안 한 건 아니고요 ㅎㅎ 조금 책이 힘들어 보여서 불참했습니다.;🤣 다행히 모임후기가 세 건이나 올라올만큼 뜨거웠다고 하네요. 그중 영준 님의 후기를 발췌하며 그날의 모임을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조용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버티면서도 모임까지 찾아와 준 여러분 덕분에, 책숲도 올 한 해를 무사히 건너오고 있으니까요.
영준님의 AI 작곡 작사 노래
🧱 벽돌책 챌린지 : 『사피엔스』

그동안 미뤄왔던 두꺼운 책을 함께 읽는 벽돌책 챌린지도 순항 중이네요. 지난 『코스모스』에 이어 이번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제목만 들어도 인문학적 느낌이 물씬 납니다. 이번 챌린지도 네이버 카페에서 사람들의 후기가 종종 올라오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소윤 님의 챌린지 글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벽돌책 챌린지는 이 책을 어디까지 읽었고, 그 사이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 이번 주의 인터뷰 : 사유의 결을 걷는 사람, 민성님
이번 뉴스레터의 주인공은 책과 영화 사이, 그리고 사유의 결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고 계신 민성님입니다. 책숲에 오게 된 계기부터, 한때 품었던 ‘영화감독’이라는 꿈, 그리고 요즘 민성님을 오래 붙잡는 문장과 생각들까지— 민성님이 들려줄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 준비 되셨나요? 그럼 천천히, 하나씩 펼쳐보겠습니다. 😊
1. 책숲에 오시게 된 계기부터 궁금해요. 처음 오셨던 날, “여기는 조금 오래 머물러도 좋겠다”는 느낌을 준 순간이 있었나요?

제가 자취를 하고 있는데, 문득 이 방구석을 어떻게라도 탈출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에 창원 독서모임 검색을 했던 것 같아요. 카페를 둘러보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가입하게 됐습니다.
가입한 후 처음에 단톡방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나 지켜봤는데, 영화 얘기를 많이 하는 걸 보고 조금 놀랬습니다. 일반적인 영화 얘기뿐만 아니라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같은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특히나 모임장님이 영화를 좋아하시고, 영화벙도 자주 여시는 걸 보고 오래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단톡방 들어가고 얼마 안 됐을 때, <그을린 사랑> 영화 벙을 하더라고요. 보고 나서 다들 결말에 기겁한 반응을 쏟아내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나요. 그 영화가 한때는 제 인생영화이기도 했었거든요.
2. 민성님만의 ‘읽는 리듬’이 궁금해요. 붙잡히는 문장, 오래 머무르는 문장… 어떤 순간에 ‘아, 이 책은 내 것이구나’라고 느끼시나요?

지금까지 저를 잡아끈 문장들을 돌이켜보면, 확실히 그때 제가 필요로 했던 문장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 나는 게, 제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떤 해답을 구하는 심정으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 불현듯 손길이 가는 책이 있었는데 그게 알랭드 보통의 『불안』이었습니다. 그 책 첫 페이지에 우리가 불안한 것은 사실 ‘사랑’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그때 말 그대로 그 문장에 ‘붙잡혔던’것 같아요. 제 머리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내용이었는데, 제 마음은 그게 해답인 것을 아는 느낌이었거든요. 그 이후로도 저는 제 마음이 제 머리보다 더 책을 잘 고른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3. 영화감독을 꿈꾸셨던 시절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때 민성님을 가장 강하게 움직였던 장면이나 감정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최초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디즈니에서 만든 <헤라클레스> 극장판 애니였거든요. 그런데 그때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의 목을 자꾸 베는 장면이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계속해서 목을 베어내지만 그럴수록 히드라의 잘린 부위에서 두 개의 머리가 자라나는데, 어릴 때 그 장면을 보면서 엄청 경악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어리석게 자꾸 칼질을 해대는 헤라클레스에게 그만! 그만해! 라고 속으로 외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그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품은 것도 우연이 아니란 생각도 들어요. 영화감독이 되는 길도 결국 끝없는 과제의 연속이거든요. 뭔가 하나를 완성했다고 치면, 더 큰 문제가 닥치고, 더 큰 뭔가를 해내야 하는, 아무리 베어도 두 개의 머리가 자라나는 이길 수 없는 히드라를 상대하는 기분이요. 어릴 때 저는 그런 저의 운명을 예감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4. 얼마 전,『모모』 독서모임에서 스토리 창작에 몰두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창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민성님만의 방식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창작이 일상을 바라보는 감각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궁금합니다.
창작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연스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걸로 제 팔자를 한 번 고쳐보겠다는 식으로 덤볐다면 지금은 생각을 많이 고쳐먹은 상태예요. 예전에는 이 악물고 쓸수록 소재나 아이디어가 저를 피해 도망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서 노느니 쓴다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계속 느긋하게 쓰다가 결국엔 안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되면 또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겠죠. 솔직히 재능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듭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써야 될 게 있는 이상 계속 써볼 생각입니다. 『금강경』에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 란 말이 있거든요. 이게 실천하기는 되게 어렵긴 한데, 그래도 제 마음가짐을 다잡는데 도움은 되는 것 같습니다.
질문의 마지막에 ‘창작이 일상을 바라보는 감각에도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자면, 예전에는 창작이 저를 지배해서 제 일상에 변화를 가져왔다면, 지금은 반대인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느긋하게 일상을 대하니깐 이젠 창작 작품이 그에 맞게 여유롭게 변한 느낌도 드네요.
5. 명상이나 사유의 시간을 자주 갖는 편이신가요? 그 시간이 민성님의 감정이나 생각을 어떻게 정돈 해주는지 알고 싶어요.
명상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각각 30분 이상 하고 있어요. 대신 사유의 시간은 적게 가지려고 하는 편입니다. 꼭 필요한 생각만 하려고 합니다. 제가 정말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지금도 그 버릇 못 고친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진 편입니다. 제가 한 그 쓸데없는 생각들만 아니었다면 똑같은 인생을 살았어도 훨씬 행복한 시간을 가졌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6. 취향이 깊고 단단하다는 인상을 주시는 분이에요. ‘취향이 쌓인다’는 건 민성님에게 어떤 감각인가요? 취향 덕분에 더 잘 이해하게 된 ‘나 자신’이 있다면요?
‘취향이 쌓인다’라는 느낌은 예전에는 그것을 양적인 개념으로만 여겼다면 요즘은 그것을 질적인 개념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실제로 질적으로 맞지 않는 취향들을 걸러내다 보니 양적으로는 취향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요. 대신 질적으로 제가 필요로 하는 독서만이 제 마지막 남은 취향으로 남아있는 느낌이에요. 영화도 꼭 봐야 될 만한 영화가 아니면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쌓아왔던 취향들이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나 자신’이라고 하면... 나 자신은 소중한 존재라는 거? 그렇기 때문에 타인도 소중한 존재라는 거? 이게 되게 뻔한 소리 같지만 옛날 성현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더라고요.
7. 일상에서 민성님을 가장 오래 머무르게 하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그 시간 속에서 스스로 조금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예전에는 영화감상이었다면 요즘은 독서인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인간 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책들에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제가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종교 관련 서적에 관심이 많은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었는데, 읽는 동안은 기분이 좋아도 실질적으로는 제 인생을 바꾸진 못했다면, 자기 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책들은 실제로 제 인생을 바꾸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 같아요. 외부적 상황만 따져봤을 때는 크게 변화한 게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똑같은 조건이라도 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거든요. 저에게는 그게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8. 책숲에서 함께한 시간 중 “아, 이 순간은 오래 기억되겠다” 싶은 풍경이나 대화가 있다면요?
이 질문을 보는 순간 떠오른 이미지는, 우습게도, 저번에 『모모』 모임 때 아름님과 민정님이랑 도서관 지하까지 커피를 사러 간 순간입니다. 뭐랄까, 제가 사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각 잡고 말을 할 때면 긴장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모모 모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은데, 그때 민정님이 모임 시작 전에 저를 불러주시더라고요. 커피를 사러 아름님이랑 셋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사소한 대화 몇 마디를 나눈 게 다였는데, 그때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그냥 기억이 남네요.
9. 마지막 질문입니다. 다음 인터뷰이로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그 이유도 살짝 함께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최민정님이요. 저번에 『이방인』을 다시 읽고 너무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요. 저도 『이방인』 책 좋아하는데, 사실 그 책이 되게 염세적이고 반항적인 인간을 다루고 있는 거라, 뭐랄까, 되게 밝고 말씀도 정돈되게 하시는 민정님의 또 다른 모습이 보여서 궁금증이 생겼달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부담되실 수도 있으니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저번에 『모모』 모임 때 사주셨던 커피가 기억이 나서 지목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2월이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마무리’란 말을 떠올립니다. "올해 목표, 다 지켰나?", "읽기로 해 둔 책은 몇 권이나 남았지?", "모임, 더 자주 나올 수 있었는데…" 같은 아쉬움도 슬쩍 고개를 들죠. 하지만 사실,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해도 충분히 좋은 해일 수 있습니다. 다 못 읽은 책은 내년의 첫 책이 되어줄 거고 끝내지 못한 문장은 다음 챕터로 이어질 것이고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는 또 다른 계절에 인연이 닿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올해의 마지막 한 달,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저,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구나.” 한 번쯤은 그렇게, 올해의 나에게 말을 걸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조금 더 본격적인 “연말 정리와 새해 계획”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그때까지, 따뜻하게 입고,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걸어가요.
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숲 운영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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