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을 어떻게 팔아요?”

몇 년 전, 아침마다 누가 두드려 팬 것처럼 등이 아파왔습니다. 자세도 바꿔보고 리뷰가 좋다는 베개도 사봤지만 통증은 그대로였고요. 그러다 브런치 매거진에서 수면브랜드 하나를 알게 됐습니다. 저와 똑같은 증상을 오래 앓던 두 사람이 쓴 글이었어요. 제품 리뷰도 없고 가격조차 적혀 있지 않았어요. 대신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매트리스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빼곡히 기록해놨더라구요. 그리고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써두었죠. “체험관에 들러 직접 누워보시라”고요.
그 글을 쓴 두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이재원 대표는 주말도 명절도 없이 일하다 불면증과 공황장애로 무너졌어요. 약을 먹으며 하루 종일 천장만 보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박형준 COO는 다니던 회사가 두 번 연달아 문을 닫는 동안 잠을 잃었고요. 두 사람을 다시 일으킨 건 우연히도 같은 물건, ‘매트리스’였습니다.
2024년, 두 사람은 수면브랜드 슬립부스터를 만들었습니다. 제품을 내놓는 기준은 하나였어요. 등과 허리가 남달리 예민한 둘이 “직접 누워보고, 한 명이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내놓지 않는다”. 눈높이를 시중 최고가 제품 수준에 두다 보니 받아줄 공장부터 드물었고, 만들고 누워보고 폐기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창업 10개월 차까지 매출이 없어서 두 사람 다 월급을 못 가져갔고요. 그렇게 만족할만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버틴 끝에 지난 6월, 불경기 한복판에서 1,000번째 고객을 맞이했습니다.
그럼 슬립부스터 이재원 대표와 박형준 COO의 Day 0로 함께 돌아가 보시죠.
오늘의 인사이트 요약
1. 잠을 잃었던 두 사람
2. 타인의 미션과 나의 미션
3. 예민함이라는 무기
4.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
1. 잠을 잃었던 두 사람
*이재원 대표 = ‘이’, 박형준 COO = ‘박’으로 표기
Q. 먼저 재원님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스무 살의 이재원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 생존하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 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부족한 것 없이 자랐는데, 아버지가 일찍 퇴직하시면서 하필 크게 벌였던 주식 투자까지 실패했고, 어머니가 하시던 일도 잘 안 됐어요.
집이 어려워지면 나타나는 게 있거든요. 부모님이 엄청 싸워요. 화목했던 집이 갑자기 기울면서, 맨날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깼어요.
그걸 보면서 진로를 고민할 때 그냥 내가 혼자 알아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고3 때부터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스무살에는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바로 취업을 준비했어요.
Q. 군대를 다녀와서 처음 잡은 일이 휴대폰 대리점 판매였어요. 왜 하필 그 일이었을까요?
이: 그때는 진짜 생존이었어요. 제가 가진 스펙으로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게 휴대폰 대리점 판매였는데, 그렇다고 아무 데나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대리점이 몰려 있는 ‘성지’ 같은 데를 돌면서 상담을 일단 다 받아보고, 세일즈와 상담을 제일 잘하는 매장에 지원서를 넣어 들어갔어요.
Q. 거기서 판매 1등을 하면서 월 1,000만 원 넘게 버셨는데, 결국 그만두셨어요. 그만큼 버는 자리를 놓는 게 아깝지 않으시던가요?
이: 웃기게도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그게 어느 정도 충족되니까 ‘내가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그림이 잘 안 그려졌어요.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 너무 뻔한 미래에 가슴도 안 뛰고 재미도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를 그때부터 다시 고민해봤어요. 사실 저는 사업이라는 걸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절대 하지 말라고 한 게 주식이랑 사업, 두 가지였어요. 사업하면 무조건 망한다고요. (웃음)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려면 결국 사업을 해야겠더라고요. 대학을 안 갔으니 먹고살려면 어학이 중요하겠다 싶어서 원래는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어요. 그러다 마음 정리하러 간 제주도 여행에서 저보다 한 살 어린 친구를 만났는데, 사업 얘기를 하다가 친해져서 겁도 없이 첫 창업을 시도했죠. 물론 금방 망했고, 그러고 일을 제대로 배워보자 하고 들어간 곳이 스타트업이었어요.
Q. 스타트업에서 처음 맡은 자리는 CS 인턴이었어요. 대리점 판매 1등에서 다시 막내가 된 셈인데, 어떤 마음으로 일하셨어요?
이: 제가 원래 자존감이 진짜 낮았거든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 다들 좋은 대학 나오고, 영어도 잘하고. ‘왜 나는 저렇게 못 했을까’라는 열등감이 되게 많았어요.
그때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건 더 열심히 하고, 성과 내는 것에 더 집요하게 구는 것뿐이었어요. 그것만이 나를 증명할 수 있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죠. 그래서 주말과 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했고, 그런 태도를 대표님과 동료들이 인정해줬을 때, 솔직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Q. 그때 붙잡은 일이 리뷰콜*이었어요. 모두가 꺼리는 일을 일부러 파고드셨는데, 거기에 계산이 있었을까요?
이: 그게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선택은 아니었던게, 사실 그것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나도 기획하고 싶었죠. 나도 회사에서 중책을 맡거나 중요한 일 하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게 없고, 잘 모르는데 어떡하겠어요. 내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건 고객들 만나서 얘기 잘 듣는 거니까, 그거라도 잘해야지 했던 거예요.
근데 고객이 좋아하는 서비스를 만들려면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되잖아요. 이 사람이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기 전에 어떤 서비스를 이용했고, 그 경험이 어떠했는지. 그걸 제일 빨리 아는 방법이 리뷰콜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고 직접 이야기를 듣는 거였어요.
초창기 스타트업에서 그런 일은 보통 전부 CS 업무잖아요. 다들 기획 같은 더 멋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CS 업무는 잘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고객 분들을 직접 만나다 보니까, 나중에는 고객 입장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획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결국 그게 회사에 매출을 많이 가져다 주게 됐죠.
*리뷰콜: 제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용 경험과 후기를 듣는 일

Q. 커리어에서 좋은 성과를 많이 이루셨어요. 그때의 마음을 돌아보면 어떠셨나요?
이: 마음 속에서는 대학도 안나오고, 경험도 많이 없다보니 열등감이 높아서 항상 외통수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실수해서 삐끗하는 순간 나는 망한다.’ 성과가 안 나오면 ‘회사가 망하면 어떡하지’, ‘주변에서 나를 더 이상 찾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무도 저한테 그런 걸 강요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거기에 잡아먹혔어요.
성과가 잘 나와도 마찬가지였어요. ‘이거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닌가, 저 사람들이 잘난 건데 내가 묻어간 게 아닐까.’ 그러한 의심이 다른 회사로 이직해서도 계속됐어요.
그러다 불면증이 오고, 공황장애까지 왔죠. 어렸을 때는 부모님 싸우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이번에는 제 머릿속에서 맴도는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하게 된 거예요.
Q. 이번에는 형준님 차례로 넘어가 보죠. 형준님의 사회생활 출발점이 축구였다고요?
박: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키는 대로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시키는 대로 수능 치고.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우울증이 크게 와서 학교도 제대로 못 나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저를 다시 일으켜준 게 축구였어요. 보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학교에서 팀을 만들게 됐는데, 약체팀였는데도 불구하고 대회 준우승까지 하게 된거에요.
그때 그 기쁨이 너무 커서, 남들 토익 공부할 때 저는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이가 있어서 선수는 이미 글렀으니 지도자가 돼서 더 많은 사람이 축구를 즐기게 만들어보자 싶었죠. 그래서 취업 준비를 위한 첫 단계로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 게 사회생활의 시작이었어요.
근데 올라오니 당장 먹고살 길이 없잖아요. 경기 영상 분석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면서, 주말에는 K리그가 주최한 아카데미를 들었어요. 그렇게 해도 생활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작은 스포츠 스타트업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그게 제 스타트업 커리어의 시작이 됐어요.

Q. 다섯 명이 전부인 회사였다고요. 거기서는 어떤 일을 맡으셨나요?
박: 두 가지를 맡았어요. 하나는 지역아동센터에 나가서 스포츠 수업을 하는 일.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오는 방과 후 학교 같은 곳이거든요. 다른 하나는 그런 센터에 사회공헌을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한테 CSR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제안하는 일이었어요.
아이들 수업을 직접 짜서 코칭하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제가 짠 기획을 큰 회사가 받아들여 실제로 진행될 때가 제일 보람 있었어요. 그 무렵부터 스타트업에서 누군가의 문제를 푸는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그렇게 일에 재미를 붙여가던 참에, 다니던 회사가 두 번 연달아 문을 닫았습니다.
박: 상황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스스로한테 실망을 많이 했어요. ‘나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왜 내가 가는 회사는 다 잘 안 되지’.
그런 생각이 계속 들었고, 마음이 쓰이니까 시간이라도 갈아 넣자 싶어서 밤새 작업하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또 일하고. 그게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잠드는 게 힘들어졌어요. 자고 일어나도 의욕이 없고요. 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제일 약했던 시기였죠.
Q. 재원도 비슷한 시기에 바닥을 찍으셨습니다. 그때 잠이 어디까지 망가졌고, 어떻게 빠져나오셨나요?
이: 불면증이 오고 공황장애가 오고 우울증까지, 3단 콤보를 맞고 인생에 없던 바닥을 찍었어요. 돌아보면 잠을 무시하면서부터였어요. 주말도 명절도 없이 일했고,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도 안 자고 일했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새벽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못 자니까 몸이 먼저 무너졌어요. 이명이 들리고, 한쪽 귀가 안 들렸어요. 80킬로였던 몸무게가 70킬로까지 빠졌고요. 몸이 상하니까 정신도 금방 따라가더라고요. 결국 약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천장만 보던 시기가 왔죠. 그때 알았어요. 이게 생존의 문제라는 걸. 이겨내보려고 수면 환경 바꾸는 것부터 명상, 영양, 운동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근데 제 인생에서 매트리스가 문제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매트리스를 하나 바꾸고 잠깐 누웠는데, 금방 잠든 거예요. 자고 일어났는데 너무 개운하고. 저한테는 그렇게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인생에 없던 일이었어요. ‘잘 자고 일어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때 너무 크게 감명을 받았어요.
Q. 형준님은 그 시기에 잠이 어떠셨어요? 꺼내준 것도 결국 같은 물건이었다고요.
박: 회사 두 개가 연달아 망하고 나서 불면증이 크게 왔어요. 그전엔 얇은 토퍼를 깔고 잤는데, 아침마다 등을 두들겨 맞은 것 같았거든요. 정신적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자고 일어나면 몸까지 죽겠는 거예요.
극복해보려고 조명도 바꾸고 생활 습관도 손보고 다 해봤어요. 그러다 여행을 갔는데 그 숙소에서의 침대가 너무 편한 거예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매트리스부터 바꿨더니 수면의 질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혼자 살던 형편에 100만 원 가까운 매트리스는 큰돈이었지만, 누가 “10년 안에 산 물건 중 제일 잘 산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그 매트리스를 얘기했어요.
2. 타인의 미션과 나의 미션
Q. 슬립부스터를 보면 미션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그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 느낀 곳도 S사였나요?
이: 솔직히 그전까지 저한테 미션이라는 게 없었거든요. 하고 싶은 걸 해내겠다는 고집만 있었죠. 그게 왜 필요한지 처음 느낀 곳이 S사였어요. 월 매출 1억도 안 나오던 회사가 2년도 안 돼서 연 100억을 찍었거든요.
숫자가 좋아지면 나머지도 따라올 줄 알았어요. 회사에 돈이 도니까 팀원들 보상도 복지도 여유 있게 챙겨줄 수 있게 됐고요. 근데 사람들 마음은 생각만큼 한곳으로 모이지 않더라고요. 각자 맡은 일은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이걸 왜 같이 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달랐어요.
그때 알았어요. 보상이나 안정적으로 보이는 회사의 모습만으로는 사람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안 만들어진다는 걸요. 빠르게 크는 조직일수록 그 이유를 계속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게 ‘미션’이더라고요.
Q. 그다음에 합류한 데이팅 서비스 회사 큐피스트는 정반대였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달랐죠?
이: 그 부분에서는 완전히 달랐죠. 제가 큐피스트의 안재원 대표님을 멋있어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있어요. 진짜 자기 미션대로 사는 분이거든요. 본인이 좋아하는 서비스만 만들고, 그걸 누구보다 열심히 씁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결핍이 있는 분이라 그 마음을 서비스에 잘 녹여내는 거죠. 대표가 그 정도로 몰입해 있으니까 팀에도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요. 계속 좋은 결과가 나오고, 뭘 해도 1등이 되고요.

Q. 그 회사에서는 보상도 동료도 다 좋았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결국 나오셨어요.
이: 네, 진짜 다 좋았어요. 대표님은 제가 요구하기 전에 보상을 먼저 챙겨줬고, 팀원들도 너무 좋았고요.
근데 유일하게 딱 하나가 걸렸어요. 그 회사와 대표님의 미션이 제 미션은 아니었거든요. 큐피스트가 붙잡고 있는 문제는 결국 사랑이거든요. 안재원 대표님한테는 인생을 걸 만한 문제인데, 저는 거기에 마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저는 그 회사가 너무 궁금해서 들어갔던 거였고요.
1년쯤 지나 목표도 넘기고 팀도 자리를 잡으니까 더 분명해지더라고요. “이젠 내 미션을 찾아야 할 때구나.” 대표님이 더 좋은 조건으로 붙잡아 주셨는데도, 나올 때 진짜 “창업하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Q. 다시 형준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번의 폐업을 지나 형준님이 향한 곳도 S사였어요. 그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신 계기가 있었을까요?
박: 취직하기 전에 제 불면증을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습관도 바꿔보고, 의학 교수님들이 쓴 책이랑 논문, 칼럼까지 찾아 읽으면서 내가 뭐를 잘못하고 있는지를 한참 연구했거든요. 그러면서 수면이라는 카테고리에 관심이 생겼어요.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나니까 수면 제품을 만드는 회사까지 찾아보게 됐는데, S사는 그때 ‘저 회사에서 일하면 참 좋겠다’ 싶은 곳이었어요.
Q. 그래서 채용공고가 나와서 회사에는 바로 입사하셨나요?
박: 공동창업자분한테 어떤 포지션이든 좋으니 일해보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답을 못 받았어요. 몇 달 뒤에 채용 공고가 올라와서 지원해봤지만, 그때도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한 채 공고가 바로 닫혔고요. 마침 저랑 전혀 관련 없는 영상 편집 포지션 공고가 남아 있길래 거기에 지원해보기도 했었어요. 너무 가고 싶었던 회사였거든요.
그러다 두 달쯤 뒤에 연락이 왔어요. 마음을 접고 고향에 내려가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 하던 차에, 세일즈 포지션으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죠. 나중에 보니까 재원님이 세워 둔 체험관을 통한 고객 응대 중심의 판매 전략 때문에 세일즈 매니저가 많이 필요해진 거였고, 그 자리로 제가 들어간 거예요.
Q. 그렇게 간절히 들어간 회사를 결국 떠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나요?
박: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것도 참 좋았지만, 저는 제가 이 스타트업에서 판매하는 매트리스로 불면을 극복했던 경험이 워낙 컸기 때문에 사명감으로 일한 것도 있었거든요. 근데 대표님과 직접 이야기할 일이 많아지면서, 회사가 중요하게 보는 것과 제가 중요하게 보는 게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회사는 회사대로 챙겨야 할 게 있었겠지만, 저는 수면 문제를 푸는 쪽에 회사와 리더십의 시간과 에너지가 더 쓰이길 바랐거든요.
‘나는 정말 수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왔는데, 여기서는 그게 1순위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 고민이 쌓여서 결정한 거죠. 회사가 틀렸다기보다, 제가 있고 싶은 자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저처럼 미션 드리븐(mission driven)한 회사를 다니고 싶은 사람한테는 그 차이가 크더라고요.
Q. 그렇게 창업 이야기가 처음 나온 자리가 재원님의 결혼을 앞두고 열린 청첩장 모임이었다고요.
이: S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청첩장 모임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회사 얘기가 나오잖아요. “S사 요즘 어떠냐” 하다가 그 자리에서 회사 지표를 찾아봤는데, 성장세가 많이 꺾여 있더라고요. 반대로 그때 우리 경쟁업체였던 곳들을 검색해봤더니 망한 데가 하나도 없어요. 조금씩이라도 전부 다 성장했더라고요.
그걸 보다가 누가 그러는 거예요. “그때 진짜 수면에 열정 있었던 사람들끼리 뭉쳐서 했었으면 우리가 더 잘하지 않았을까.” 다들 100% 확신하는 거죠.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그 말이 계속 남았어요. 제가 거쳐온 회사들 다 재미있게 일했지만, S사는 유일하게 제 인생에 영향을 준 제품을 팔던 곳이었거든요. 와이프도 옆에서 그러는 거예요. “그거 당장 해. 안 할 이유가 뭐가 있어. 이미 해봤잖아.”
그래서 S사 출신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올렸어요. “저 진짜 진지하게 수면 브랜드 해볼 생각입니다.” 얼마 안 돼서 형준님한테 바로 답장이 왔어요.

Q. 형준님은 답장을 보내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어요?
박: 사실 그 모임 직전에 사고로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2주를 못 일어나고 계속 누워만 있었거든요. 퇴사하고 다음을 준비하던 시기라, 불안한 환경에서 지내다보니 또다시 불면증이 왔어요. 침대는 불편하고, 허리는 터질 것 같고. 나는 뭘 먹고살아야 되나 하다가 문득 깨달은 거죠. ‘지금 내 방에 누워 있는 것도 이렇게 불편한데,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저는 누군가랑 같이 일할 때 인성과 태도가 전부라고 생각하거든요. 재원님은 그 두 개가 다 있는 분이었어요. 배려가 있는 분,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강한 분. 그리고 피드백 수용성이 제가 봐온 사람들 중에 제일 좋은 분. 그 두 가지가 제일 큰 이유였어요.
Q. 재원님이 보기에 형준님은 어떤 동료였을까요? 정작 같이 하자는 말에는 망설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형준님은 제가 봐온 동료들 중에 제일 깊게 생각하고 실행하는 사람이에요. 뭔가에 꽂히면 애착이 진짜 강하고. 다른 데서도 일 제일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하면 형준님 얘기가 항상 나왔어요.
오히려 제가 걱정이 됐어요. 이게 잘 안 되면, 내가 마음을 줬던 친한 친구인데 관계가 깨지지 않을까. 제가 일할 때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박: 그래서 제가 물어봤죠. “그러면 재원님은 누구랑 창업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가까운 사람이랑도 못 하면, 누구랑 창업하겠어요 하면서 (웃음). 그렇게 같이 시작하게 됐죠.
3. 예민함이라는 무기
Q. 같이 창업하기로 한 다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브런치 연재였다고요. 제품보다 글이 먼저였네요.
이: 2024년 6월에 같이 창업하기로 하고 준비를 시작했는데, 저희에게는 아무런 브랜드 자산이 없잖아요. 그래서 무엇으로 사람들한테 우리를 알릴까 고민하다가 고른 게 브런치였어요. “각자 개인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왜 창업까지 오게 됐는지를 다 기록해보자.”
브랜드가 자리 잡기 전에는 그걸 파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고객한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에 신뢰가 어디서 나오겠어요. 그래서 어차피 얼굴 다 드러내고 하는 거, 우리 이야기도 시원하게 다 열어놓자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거죠.
박: 그때 재원님이 생각해 둔 브랜드 컨셉을 말해줬는데, 처음에 브랜드명을 ‘불면의 종말’로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그 키워드가 너무 좋았어요. 브랜드명이 되지는 못했지만요.
Q. 제품 기준이 굉장히 깐깐하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셨어요?
이: 기준은 명확해요. “수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이 다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은 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짜치는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마지막이 좀 웃기긴 한데, 값을 낮춘 제품도 나름의 장점을 얘기할 수는 있잖아요. 근데 우리 가족이 쓴다고 하면 도저히 권하지 못할 제품은 안 만들겠다는 뜻이에요.
박: ‘불면의 종말’이라는 주제로 공장들을 다니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제품 퀄리티를 봤는데, 맨 처음 간 곳이 저렴한 가격에 많이 팔 수 있는 저가형 토퍼 공장이었어요. 근데 ‘이런 제품으로 우리가 고객한테 불면의 종말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아닌 것 같은 거예요.
원래는 적당한 제품을 잘 만들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 키워드 수준에 맞추려다 보니 기준이 점점 높아졌고, 그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공장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죠. 운 좋게 지금의 공장을 만나서 요구 조건을 다 맞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Q. 결국 기준의 마지막 관문이 두 분의 몸이었다는 거군요. 둘이 좋다고 하면 진짜 좋은 것이다, 그 확신은 어디서 오나요?
이: 둘 다 매트리스 회사에서 제품 개발 과정에 참여해봤고요. 그리고 저희가 몸이 남들보다 굉장히 약한 편이에요. 건강해 보여도 보이는 것에 비해 굉장히 나약하고, 굉장히 예민해요.(웃음) 누가 보면 단점일 수 있어요. ‘저 사람들 너무 예민하다.’
근데 그게 제품을 만들 때는 진짜 엄청난 강점이 되더라고요. 저희 둘이 웬만해서 좋다고 하는 프로덕트면 진짜 좋은 프로덕트예요. 아무거나 좋다고 안 하거든요. 특히 매트리스는 맨날 쓰는 제품이니까요.
박: 개발 단계에서 조사도 정말 많이 했어요. 매장마다 다니면서 누워봤을 때 제일 좋았던 침대, 혼수용으로 사는 것 중에 제일 비싼 800만 원 이상짜리 제품들이랑 비슷하거나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죠.
이: 거기에 저희들의 개성을 조금 더 넣었어요. 고급 음식도 같은 재료인데 디테일 차이로 맛이 달라지잖아요. 제품도 똑같아요. 그 약간의 디테일이요.

Q. 그래도 파는 물건이잖아요. 가격이나 마진 앞에서 흔들리신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요?
이: 우리가 불편하면 타협 안 해요. 우리가 편해야 돼요. 우리는 수면 문제를 극복해봤던 사람들이잖아요. 우리 제품의 고객은 곧 우리예요. 근데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을 고객분들한테 어떻게 팔겠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도 쉽게 흉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박: 보통 제품을 개발하면 판매 가격을 먼저 세팅하고, 그 가격에서 가장 높은 수익성을 낼 수 있는 구성을 생각해서 개발하거든요. 저희는 얼마로 팔지가 안 중요해요. 우리가 편한지가 먼저예요.
그리고 우리한테 편해도 몇 개월 쓰고, 못 쓰는 물건이 되면 좋은 제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품도 같은 느낌을 구현하면서도 훨씬 싸게 만들 수 있거든요. 근데 그렇게 하면 6개월 뒤에 느낌이 바뀌었다고 고객 분들로부터 전화가 올 거예요. 저희 브랜드를 믿고 구매하신 분들한테 그러고 싶지 않아요.
Q. 좀 더 규모가 큰 회사였다면 이렇게까지 하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이: 이건 대표들이 직접 제품을 만드니까 가능한 거예요. 일반 직원들이 하려고 하면 못해요. 예산 올라가고, 유관 부서는 엄청 많고, 그 부서들 다 설득해서 가려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걸 붙잡고 싸워야 되잖아요.
박: 그리고 A라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품을 B가 더 좋게, 더 싸게 만들려고 하면 A가 보는 시선이 고울까요? 회사가 커질수록 그런 정치적인 면이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지금 둘밖에 없고, 앞으로도 창업자가 ‘이렇게 만들어야 돼’ 하는 제품을 만들 것 같아요.
Q. 개발하시면서 유독 애를 먹은 제품도 있었을 텐데요.
박: 토퍼요. 토퍼는 저희 메인 제품이 아니고,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제품도 아니에요. 개발 시간까지 치면 아직도 손해일 수 있어요.
쉽게 가면 적당한 소재를 조합해서 그냥 출시하면 그만인데, 제3자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데 재원님 마음에 미세하게 안 든다거나, 저한테 안 든다거나 하는 지점이 진짜 많았어요. 조합을 짜서 시제품을 만들고, 누워보고, 폐기하고, 다시 조합을 짜고. 그걸 7개월 했어요. 매트리스를 6개월 개발했는데 토퍼를 7개월 개발한 거죠.
일반 회사 같으면 돈도 안 되는 프로젝트가 왜 아직도 안 끝나냐고 할 일인데, 그 제품이 누군가한테 갔을 때 우리 브랜드의 안 좋은 인상으로 남는 게 저희는 되게 두렵거든요.
이: 근데 거의 모든 제품이 그래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고요.

Q. 처음부터 이렇게 만드셨다면 매출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초기에는 어떻게 버티셨어요?
박: 제일 힘들었던 게 창업 8개월 차, 제품이 나왔는데 매출이 없을 때였어요. 저희는 미리 예측해서 제품을 만들어 놓고 파는 구조인데, 앞선 매출이 없으니까 제품 만들 때 들어간 돈을 공장에 갚아야 되는 상황이 된 거죠.
이: 매트리스를 개발할 때 그동안 모아둔 돈은 다 썼고요. 공장장님은 원래 저희 같은 신생 업체는 잘 안 받아주시는데도 받아주시고, 고급 매트리스 소재까지 다 쓰게 해주셨잖아요. 그만큼 신뢰를 받았는데도 정작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대금 갚으려고 여기저기 컨설팅을 수주하고, 형준님도 다른 회사 일을 도와주고. 실질적으로 10개월 동안 거의 돈을 못 가져갔어요. 2025년 1월이 제일 힘들었을 거예요. 형준님은 그때 우울증도 왔었어요. 저랑 맨날 싸워서.(웃음)
Q. 버티는 동안 그만두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었을까요?
이: ‘우리 이거 제대로 하는 게 맞을까’하는 스트레스를 되게 많이 받았죠. 근데 그 와중에, 스마트스토어에 리뷰도 없는 사이트에서, 아무것도 없는 저희를 믿고 사주신 분들이 계셨거든요. 정말 저희 때문에 수면의 질이 좋아졌다고 메시지를 주시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기억나는 고객님이 한 분 있어요. 사업 초창기에 오신 분인데, 처음부터 날이 서 계셨어요. 제가 설명을 드려도 쌀쌀맞게 받으시고요. 속으로 처음에는 ‘저렇게 불만이 많으신데 왜 여기까지 오셨을까’ 했다가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믿고 이곳까지 왔다면, 그만큼 불면이 괴로우신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태도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상담했어요.
그랬더니 그제야 사정을 꺼내시더라고요. 우울증 약을 드시고 있고, 매트리스가 불편해서 소파에서 주무시는데 허리까지 아파 하루하루가 괴롭다고요. 제가 공부해둔 수면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드리고, 형준님이랑 만든 꿀잠 가이드북도 챙겨드렸어요. 그날 저녁에 전화가 왔습니다. “다른 데랑 더 비교해보려고 했는데, 그냥 대표님 믿고 사고 싶어요.”
몇 개월 뒤에 다시 연락이 왔는데, 우리 덕분에 수면제도 끊고 우울증 약도 끊었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사업을 접을 수 있었겠어요. ‘어떻게든 더 살려서 가보자, 더 달려보자’ 했죠.
Q. 회사가 더 커지더라도 놓지 않을 원칙이 있다면 하나만 꼽아주세요.
이: 고객들을 기만하지 않는 거요. 리뷰를 만들어내거나 커뮤니티에 입소문을 심는 방법,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거든요. 저희도 그렇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빨리 갈 수 있어요.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 다 해봤으니까요. 근데 그게 우리 고객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어요.
고객을 기만하지 않는다는 게 당연한 말인데, 막상 지키는 게 제일 어려워요. 경쟁이 치열할수록 그 유혹이 커지거든요. 근데 한번 발을 들이면 두 번째, 세 번째는 쉬워지고, 결국 뿌리가 무너진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저희가 이걸 계속 지키면 세 번째, 네 번째 멤버가 합류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요. 누가 굳이 그런 마케팅을 시도해보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죠. 그게 문화가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한 번 한 말을 끝까지 지키는 거요.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 경영자가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매트리스 하나만 만들겠다고 해놓고 갑자기 다른 걸 벌였다가, 잘 안 되면 조용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밖으로 하는 말과 안에서 내리는 결정이 다르면, 팀원들이 그 미션을 믿고 따라가기 어렵죠.
Q. 회사가 공식적으로 내건 가치도 하나 있다고요.
박: 저희가 오피셜하게 내건 유일한 핵심 가치가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만들자’예요. 제일 소중한 사람한테도 기꺼이 선물할 수 있는 퀄리티요.
이걸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이런 맥락이에요. 먼저 우리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을 것. 제가 봐도 부끄러운 걸 어떻게 소중한 사람한테 주고 돈을 받겠어요. 다음은 고객한테 부끄럽지 않을 것. 우리를 믿고 골라준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말 못 할 짓은 안 한다는 거예요. 제품 사양이든 효능이든 후기든요. 마지막은 세상에 부끄럽지 않을 것. 어디 내놓아도 밀리지 않는 품질이어야 브랜드를 만든 사람으로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브런치와 링크드인에 글을 올리고, 얼굴 다 까고 마케팅을 하는게 어떻게보면 일종의 선언이거든요. 저희가 저희 입으로 대중들에게 약속을 한 거예요. 선언을 해놓고 안 지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죠.
고객을 기만하지 않는 것, 품질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우리가 한 말을 지키는 것. 다 ‘부끄럽지 않은 제품’ 하나로 묶여요.
4.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
Q. 올해는 원자재 값이 올라서 가격을 올려야 했어요. 지켜온 약속과 생존이 부딪힐 때는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이: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는 게 저희 철칙이었던 건 아니에요. 초반에 형준님이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제품을 못 팔아서 망해버리면 그 브랜드를 누가 기억해주겠냐고요. 그냥 망하는 거고, 철학이고 뭐고 일단 살아남는 게 먼저라고.
근데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게 하는 게 경영자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저희는 크게 걸고 모험해야 하는 사업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이 길을 계속 걸어왔기 때문에, 경기가 안 좋아도 저희를 찾는 고객들은 점점 늘고 있어요.
박: 생존을 택하는 게 철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철학을 지키려고 생존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저는 생존이 먼저라고 봐요. 살아 있어야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 새 멤버가 합류하고 나서 서로 지향하는 것과 절대 하지 말 것을 공유했는데, 제가 그때 한 얘기가 ‘목숨은 소중하다’였어요. 회사의 목숨도, 개인의 목숨도요. 우리가 무너지면 이 철학을 이어갈 사람이 없잖아요. 회사가 잘 되게 하는 게 결국 우리 가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이: 생존을 핑계 삼아 기만 마케팅으로 돈을 버는 게 잘못된 거죠.
Q. 지금까지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고 오셨어요. 자금은 어떻게 운영해오셨나요?
이: 저는 초기 회사에서 전체 예산을 다 관리해봤거든요. 그래서 경영 원칙 같은 게 몸에 익어 있어요. 돈 안 쓰고 할 수 있는 걸 먼저 다 해보고, 잘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조금씩 태우는 겁니다. 판관비 비율을 정해두고, 현금을 언제까지 얼마나 모을지 잡아놓고 경영해요.
Q. 그래도 투자를 받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평생 안 받기로 하셨다고요.
이: 자본이 들어오면 속도는 더 낼 수 있죠. 좋아하는 제품 개발에 돈도 더 쏟을 수 있고요. 근데 세상에 공짜가 없잖아요.
돈을 넣은 쪽에서는 몇 년 안에 엑싯(exit)하는 걸 목표로 계획을 세우잖아요. 그러면 성과를 압박하게 되고, 조금씩 경영에도 관여하게 되고요. 저는 누군가 제 위에서 그러는 게 싫어서 창업을 한 건데, 나와서 또 속도를 남이 정하는 셈이 되잖아요. 저희 지금도 매달 성장하고 있어요. 근데 그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지, 누가 밀어서 가는 게 아니거든요.
투자자 눈치를 보게 되면 의사결정에서 매출이 앞자리로 올라오고, 그러다 보면 지켜온 철학까지 바뀔 수 있어요. ‘그래서 평생 투자 안 받고 우리 돈으로 하자. 없으면 없는 대로 하고, 있으면 제품 개발 더 하고.’ 그렇게 안 해도 데스밸리(death valley)는 한참 전에 지났어요.
Q. 얼마 전에 세 번째 멤버가 합류했어요. 앞으로는 어떤 사람과 함께하고 싶으세요?
이: 셋이 합의한 게 있어요. 첫째, 수면에 고통받아 봤고 그걸 해결해봤던 사람. 둘째, 고객 응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요. 고객에 대한 마인드가 없으면 회사 철학에 공감할 수가 없어요. 나만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고, 우리한테 제일 고귀한 일은 고객 만나는 것밖에 없거든요. 셋째는 AI를 다룰 수 있는 역량이요. 기획 고민에 쓰던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고객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요.
박: 적어도 10명이 되기 전까지는 마음이 정말 잘 맞는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품 개발에 같이 참여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공장이 시골에 있어서 1시간 반씩 운전해서 가야 되거든요. 기꺼이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누군가 직접 주도해서 제품을 개발하는 날이 오면, 그 사람 이름을 제품에 붙여주고 싶어요. 제 개인적인 소망입니다. ‘○○님이 개발한 베개’ 이렇게요. 저희는 창업자라 이름이 계속 슬립부스터와 같이 가는데, 직원분들은 아무리 좋은 걸 만들어도 그 빛이 저희한테 오기 쉽잖아요. 회사가 알려지는 만큼 기여한 사람도 같이 드러나면 좋겠어요.

Q. 5년 뒤의 슬립부스터를 그려보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이: 수면에 문제가 생기거나 잘 자고 싶어지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브랜드요.
최근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재작년에 저희가 정부 지원 사업을 도와드렸던 대표님이 계셨는데, 얼마 전에 주말 오전 예약을 하고 오셨어요. 뇌종양 판정을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두 달 뒤에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스트레스로 수면 장애가 와서 잠을 너무 못 주무셨대요. 방법을 찾다가 저희가 떠올랐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는데 참 감사하더라고요. 저희가 바라는 게 그런 자리예요. 수면이 문제가 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박: 1년에 2개씩만 만들어도 5년 뒤엔 제품이 10개는 될 거거든요. 수면이라는 키워드로 뭘 사려고 할 때 그 카테고리마다 우리 제품이 하나씩 걸려 있는 거죠. 국내에서 연 매출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해외에도 나갈 생각인데, 지금 추세라면 5년 안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그리고 돈이 좀 생기면 하고 싶은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수면 편집샵. 해외의 구하기 힘든 제품들까지 공수해 와서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요. 다른 하나는 제주도에 수면 리조트요. 숙소에서 정말 잘 자고, 다음 날 큰 에너지를 얻어 가는 데 도움되는 모든 게 들어 있는 공간. 고객분들께 추첨으로 숙박권도 드리고, 직원들이 소중한 사람과 함께 다녀올 수 있는 복지로도 쓰고요.
Q. 두 분께 성공은 어떤 상태인가요?
이: 솔직히 슬립부스터 하면서 성공과 골(goal)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형준님한테도 빈말이 아니고 계속 하는 얘기가 “죽을 때까지 하자”예요. 골이라고 하면 뭔가 멈추는 느낌이잖아요. 거기까지 가면 왠지 물러나야 할 것 같고. 근데 저는 진짜 죽을 때까지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아예 정해두지 않았어요.
박: 저는 단순해요. 세상에서 불면이 정말 사라지는 날, 그게 슬립부스터의 성공이에요. 평생을 바쳐도 닿기 어려운 자리겠죠. 성공을 이젠 멈춰도 되는 지점으로 본다면, 저희한테는 그런 지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으로는 창업 초기보다 회사가 많이 좋아졌지만, 이걸 성공이라고 봐야 될까 하면 모르겠어요. 성공이라는 말을 쓰려면 저희 기준에서 불면의 종말, 그러니까 미션이 실제로 이루어진 세상이 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저희가 이 회사를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뒤를 이어주는 사람들이 이 꿈을 계속 지켜 나가는 것까지요.
Q. 마지막 공통 질문입니다. 창업을 시작하던 Day 0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요?
이: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항상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해왔거든요.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 같아요. 철학도 그렇고, 바뀐 게 없을 거예요. 해줄 말이 있다면 하나예요. ‘조금만 더 자신감을 갖자.’
박: 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요. 후회하는 선택은 단 하나도 없어요. 해주고 싶은 말은, '믿음의 도약을 하라'는 거예요.
제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주인공이 각성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능력은 있는데 웹 스윙도 잘 못하니까, 베테랑 스파이더맨한테 물어봐요.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언제 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떻게 했냐. 그러니까 이렇게 답해요.
“그 ‘언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을 하는 거다. 믿고 뛰는 거다.”
미래를 모르니까 믿고 뛰는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그때는 자신이 좀 있었어요. 재원님도 여러 회사에서 성공했고 저도 제로(zero)에서 원(one)을 만드는 일을 해왔으니까, 상당히 빨리 될 거라고 봤거든요. 근데 슬립부스터는 생각보다 훨씬 느렸어요. 첫 매출을 내고 첫 월급을 가져가기까지가 되게 길었고, 그동안은 스스로를 계속 의심했죠.
지금은 아는 게 하나 있어요. 매트리스는 마음에 든다고 바로 사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고,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 그러니까 고객을 믿고 기다리면서, 그 고객한테 도움되는 일들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요. 지금 가는 길이 맞는 방향이니까, 믿고 가면 된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오늘의 슬립부스터 공동창업자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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