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ided by Zero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IT테크, 스타트업 그리고 자본시장에 대한 2차적 사고를 공유합니다.
지난주에 스트라이프(Stripe)가 오픈라우터(OpenRouter) 인수를 공식 확인했습니다.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는데 뉴욕타임스가 75억 달러로 보도했습니다. 그 중 15억 달러가 창업자들에게, 60억 달러가 투자자들에게 갑니다.
오픈라우터는 불과 석 달 전인 5월에 1억 1,300만 달러를 조달하면서 13억 달러 밸류를 인정받았었는데요. 창업자들이 이번에 받는 15억 달러는? 석 달 전 회사 전체 가치보다 큽니다.

오픈라우터는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2023년에 세워진 회사입니다. 하는 일은 모델 라우팅인데, 개발자가 API 하나로 60개 넘는 회사의 모델 400여 개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줍니다. 작업마다 어느 모델이 가장 싸고 적합한지 골라주는 방식이죠. 지금 하루에 10조 개가 넘는 토큰을 처리하고 개발자와 기업 1,000만 곳 정도가 쓰고 있습니다.
성장 속도를 보면 5월 시리즈 B 당시 주간 처리량이 25조 토큰이었는데, 2025년 말에는 5조였습니다. 반년도 안 돼 다섯 배가 된 셈입니다.
CEO 알렉스 아탈라(Alex Atallah)는 예전부터 오픈라우터를 AI 판의 스트라이프라고 설명해 왔습니다. 여러 시스템을 하나의 계층으로 묶어 특정 업체에 묶이지 않게 해준다는거죠. 아탈라는 NFT 마켓플레이스 오픈시(OpenSea) 공동창업자이자 CTO였다가 2022년 7월에 나왔고, 1년도 안 돼 오픈라우터를 세웠습니다.
참고로 오픈라우터는 올해 1월부터 결제 처리에 스트라이프를 쓰고 있었습니다. 고객이 인수 대상이 된 셈입니다.
자본과 지능
스트라이프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이 공개됐는데, 요지는 모든 사업의 밑바탕에 자본과 지능이라는 두 개의 디지털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개발자들은 매출 파이프라인을 관리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 수요에서 스트라이프가 나왔습니다. 앞으로는 지능 파이프라인을 관리할 방법도 필요해진다는 얘기죠.
스트라이프는 지능을 비싸고, 종류가 제각각이고, 계속 변한다는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금융 자본을 다루듯 단위마다 비용과 수익을 따져야 한다는 거죠. (이 작업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 어떤 모델로 처리하는 게 최선인가, 누가 언제 지불하고 그 지연의 시간 가치는 얼마인가)
사업을 자본과 지능으로 쪼개는 관점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AI 이전이었다면 금융 자본과 인적 자본이라고 불렀을 얘기죠. 사람의 지식과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표현이 바뀐 겁니다.
토큰이 AI로 뭔가를 만드는 회사들의 중심 통화가 됐고, 실제 경제적 성과는 희소한 컴퓨팅 자원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렸다라는 걸로요.
특이점?
특히 스트라이프는 세계가 올해 초에 특이점을 지났다고 봅니다. 확실한 기준은 아니다라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요.
근거는 신규 기업 설립 속도가 크게 뛰었다는 겁니다. 스트라이프한테 특이점은 무서운 일이 아니라 본업을 밀어주는 일인 셈이죠. 특이점이 핵심 사업을 가속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기도 했구요. 다만 테크크런치에서는 스트라이프가 특이점 때문에 오픈라우터를 산 건 아니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그럼 뭘까요 ? 스트라이프가 지금까지 크게 사들인 회사들은 전부 돈을 걷고 관리하는 쪽이었습니다. 오픈라우터는 반대편, 지출 쪽입니다. 그 시작이 AI 비용입니다.
올해 1월에 인수한 메트로놈(Metronome)과 이어서 보면 앞뒤 이야기가 맞습니다. 메트로놈은 요청 하나가 얼마이고 어떻게 청구할지를 처리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요청이 이미 특정 모델로 간 다음에 나오죠. 오픈라우터는 그 앞 단계, 어느 모델로 보낼지를 정합니다.
토큰 지출 관리에 뛰어든 회사가 스트라이프만은 아닙니다. 데이터브릭스가 자체 AI 게이트웨이를 만들었고, 리플링(Rippling)은 직원별 AI 지출과 투자수익률을 보는 도구를 냈고, 램프(Ramp)도 라우터를 상용화했습니다. 출발점이 다 다른 회사들이 같은 문제로 모이고 있습니다.
이번 인수전에서 스트라이프가 제친 상대가 데이터브릭스였습니다. 데이터브릭스 벤처스는 오픈라우터 투자자이기도 했죠.
비상장이 맞긴한가
서한에 공개된 스트라이프 자체 실적도 볼 만합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1% 늘었고 잉여현금흐름은 43% 늘었습니다. 연말까지 제품 열 개가 각각 순매출 1억 달러를 넘길 걸로 봅니다.
결제 본업의 수익성 덕분에 지분 희석 없이 다른 회사를 살 수 있다는 대목도 있는데, 실제로 발행 주식 수가 3년 전보다 줄었습니다. 잉여현금으로 회사를 사들이면서 주식 수를 줄이는 건 보통 상장 이후에나 보는 방식이죠. 비상장 회사가 상장사 흉내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규모로 보면 2025년 스트라이프 처리액이 1조 9,000억 달러로 34% 늘었는데, 전 세계 GDP의 1.6%쯤 됩니다. 포브스 AI 50대 기업의 88%가 스트라이프 위에서 돌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직 수익화 전 단계입니다. 지난 2월 임직원 주식 매각에서 인정받은 밸류가 1,590억 달러입니다.
또 중국
다만 이 인수에 껄끄러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CNBC가 7월 7일에 보도한 내용인데, 오픈라우터에서 미국 기업들이 쓰는 토큰의 46%가 중국산 모델이었습니다.
스트라이프가 이 통로를 사들이면서, 미국 기업 활동의 상당 부분이 비서구권 모델 공급자에게 흘러가는 플랫폼의 문지기가 된 겁니다. 규제와 컴플라이언스 쪽에서 골치 아픈 상황이 나올 수 있는 포지션이죠.
오픈라우터는 인수 후에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밝혔습니다. 제품과 미션, 기존 약속이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이죠. 회사가 블로그에서 밝힌 비전이 여러 모델이 함께 번성하는 건강한 AI 생태계, AI의 다양성이 강점이 되는 환경, 그리고 어떤 단일 모델도 관성만으로 기본값이 되지 않는 세계입니다.
결제 회사가 그 문지기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이 비전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스트라이프가 자본에 과금하는 회사에서 지능까지 과금하는 회사가 되겠다고 나선 이상, 그 저울을 누가 어떻게 쓰는지가 앞으로 볼 만한 대목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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