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56 |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한 구독자님에게 / 박초롱

제 사무실은 '플랫폼P'라는 곳에 있는데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입니다. 출판사, 저자, 번역가, 디자이너 등 출판업 종사자들이 입주해있어요. 이제 1년이 되었어요.

얼마 전 이곳에서 6회에 걸쳐 입주자분들과 브런치 토크를 진행했습니다. 혼자 일하는 게 힘들진 않은지, 프리랜서로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출판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등등 혼자 하기 어려운 고민들을 터놓고 얘기해보는 자리였어요.

이 행사를 딴짓 출판사의 박초롱 대표와 함께 준비하고 진행했어요. 궁금했던 곳인데 덕분에 프리랜서와 사업자의 일과 삶에 대해 대화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초롱 대표에게 밤레터 독자님들을 위한 글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오늘은 바로 그 글을 공유합니다.

Khruangbin - Summer Madness (3:21) | 2020

일단 오늘의 음악도 들어야겠죠? 첫 곡은 크루앙빈의 음악입니다. 요즘 날씨에 걸맞게 "Summer Madness"란 제목입니다. (아 진짜 너무 더워요 ㅠㅠ) 크루앙빈이 직접 큐레이션한 곡으로 구성된 'Late Night Tales'라는 프로젝트 음반에 수록된 곡으로, 1974년 쿨앤더갱의 음악을 리메이크한 버전이에요. 끈적끈적하고 몽롱몽롱한 분위기가 매우 좋습니다? 😆 원곡도 함께 들어보세요. (참고로 'Late Night Tales'는 시리즈인데, 크루앙빈이 참여한 음반에는 산울림의 노래도 선곡되었답니다)

Kool & The Gang - Summer Madness (4:15) | 1974

클라이밍 선생님에게 불안을 없애는 방법을 물었어요 / 박초롱

일주일에 두 번, 클라이밍을 합니다. 제가 재밌어하는 건 로프 없이 3~5미터의 벽을 오르는 볼더링인데요. 늘 어려운 코스를 만나요. 홀드와 홀드 사이가 멀어 런지하듯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하기도 하고, 홀드에 발뒤꿈치를 걸어 몸을 일으켜야 하기도 하죠. 닿을 듯 말 듯 한 홀드에 손을 뻗을 때면 느닷없는 불안이 찾아와요.

‘안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꼭 떨어지고 맙니다. 망설이면 손을 제대로 뻗지도, 발에 힘을 제대로 주지도 못하니까요.

독립노동자로 산 지, 7년. 일에서도 이런 불안을 느낀답니다. 이 일로 계속 먹고살 수 있을지, 계속 내게 일을 맡기는 조직이 있을지, 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을 눈감기 전까지 해낼 수 있을지.

저는 ‘밥벌이에만 매몰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도 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매거진 <딴짓>을 두 명의 동료와 함께 7년째 만들고 있습니다. 딴짓 출판사는 단행본도 만들고 문화공간도 운영하고, 출판 워크숍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에세이나 인터뷰 글을 쓰는 걸로 밥벌이도 하고요. 이런저런 일을 바느질하듯 꿰매 밥 안 굶고 살고 있습니다.

조직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해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만큼이나 불안 속에 있죠. 지난 해에 일을 맡긴 클라이언트가 올해도 맡기리라는 보장은 없고, 제 마지막 책을 사주었던 독자가 제 신간을 또 사주리란 확신도 없으니까요.

아무도 제 이름을 몰랐으면 하는 마음과, 유명하지 않으면 밥벌이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이 함께 있어요. 그런 불안이 가득 차는 밤에는 채용 사이트를 뒤적거리기도 한다는 고백도 전합니다.

프리랜서 경력 20년 차인 한 선배는, 그런 리듬을 스무 번 정도 반복하면 불안이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그 선배만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저는 앞으로 십 년 정도 이 생활을 반복한다고 불안이 없어질 거라는 낙관을 하기가 어렵더군요. 아마 저는 일에 대한 불안을 없애진 못할 것 같습니다. 대신 불안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로 했어요. 클라이밍 선생님께 홀드를 잡기 직전의 불안을 없애는 방법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불안은 극복하기보다는, 안고 가는 거죠.”

불안한 건 당연한 거예요. 누구나 불안합니다. 부러 없는 척, 없앨 수 있는 척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음 홀드에 손을 던져보려 해요. 구독자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괜찮아요. 불안해도.

박초롱: 딴짓 출판사 공동 대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공동 운영자. <딴짓 좀 하겠습니다>, <우리 직업은 미래형이라서요>,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등을 썼다.

오늘 끝 곡은 거스의 "Don't Fear The Reaper"입니다. 호러 영화 <스크림>에 삽입된 곡인데, 이 노래도 1976년 블루 오이스터 컬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버전이에요. 개인적으로 '성공적인 리메이크'로 꼽습니다. '두려워말아, 베이비'라는 말을 완전히 다른 뉘앙스로 만들어버리니까요.

Gus - Don't Fear The Reaper (4:47) | 1996, Scream OST

저는 겁쟁이라서 호러 영화를 못봐요. 그래서 화제작인 <랑종>도 짤이든 예고편이든 리뷰든 뭐든 피하느라 바쁩니다. ㅋ "Don't Fear The Reaper"는 꽤 무서운 장면에 나왔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살짝 서늘한 느낌이라서 열대야에 듣기 좋습니다.

저도 불안함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는데요. 특히 늦은 밤 새벽 몇 시쯤에 매우 불안해집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들과 최악의 상황 같은 걸 떠올리면서 벌벌 떨어요. 심장이 쿵쿵 뛰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한숨도 많이 쉬죠. (순서가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ㅎ)

불안함을 끌어안는 거, 쉽지 않겠지만 왠지 그건 감각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클라이밍할 때 저 홀드에 닿을까 못 닿을까 가늠할 수 있는 건 여러번 실수했기 때문일 거에요. 그렇게 몸에 새겨진 감각은 사실 자기만 아는 것일 테고요.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몸이 알게 됩니다. 저도 한 20년을 이렇게 저렇게 해보니 저만 아는 감각이라는 게 생긴 것 같아요. 뭐, 조금은 익숙해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