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레터#53 | 틈과 틈 / 장재열

어제 오늘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어요. 구독자님은 그때 무얼하고 있었나요? 저는 공교롭게도 두 번 다 실내에 있었습니다. (휴, 다행)

어제는 차에 있었고 오늘은 카페에 있었어요.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열대야가 머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음악을 떠올렸어요. 그거 뭐더라, 아이 진짜, 그거 뭐였지... 그리고 비가 그치고 깜쪽같이 갠 하늘을 보면서, 어우 습해, 차에 앉아 그 음악을 찾았어요. 소금과 10센치가 함께 부른 "위로"였습니다.

구독자님이 어제 오늘 어딘가에서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뭘 어쩌고 저쩌고 준비할 틈도 없이 쫄딱 젖은 뭐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해도,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을 겁니다. 

아열대에 돌입한 서울의 밤, 여러분께 작은 '위로'를 보내면서 6월 23일의 밤레터, 시작합니다.

당신에게 내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 장재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나도 이제 꼰대가 되는 건가 싶더라고. 팀 막내들을 보면, 그니까 나이로는 내가 걔네랑 더 가깝잖아? 근데 언젠가부터 50대 부장님들처럼 도통 이해가 안되는 포인트를 너무 잘 알겠는 거야. 하 진짜... 그냥 꼰대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 괜히 막 친한 척 해서 부담주느니 차라리 아무 말도 안 거는 게 낫겠지?”

그때 제가 물었어요. '가장 큰 거리감'을 느끼는 지점이 뭐냐고요. 그랬더니 거의 대부분 무기력한 것처럼 보인대요. 평소 회사에서 보면 거의 ‘스마트폰 절전모드’ 같대요. 저와 같은 80년대 생들이 “회식? 으아 진짜 싫어.” “오늘 할 일 다 끝났는데 왠 야근? 아오 최악이네.”같은 반발심과는 또 다른, 어딘지 묘한 느낌이래요. 

예의가 없거나 자기 실속만 챙긴다는 뭐 그런 게 아니라 ‘무기력’과 ‘소극적’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사실 이건 ‘내일(미래)’을 대하는 시선과도 맞닿아 있을 겁니다. 오늘 내가 기울인 노력이, 내일이 되면 얼마나 보상받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리소스를 얼마나 투입할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일 거니까요. 이건 우리가 ‘미래’를 얼마나 낙관적으로 보는지, 혹은 부정적으로 보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기성세대와 MZ세대 뿐 아니라, M과 Z세대 사이의 심리적 차이도 작지 않다고 할까요? 그럼 그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한 번 ‘생애주기에 따른 가치관 형성’에 포커스를 맞춰보죠. 인간의 성격 대부분은 3살 이전에 결정된다는 말을 들어보셨죠? 하지만 인간의 뇌는 만 23세까지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이 나잇대까지의 경험이 ‘가치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 지난 글에서 제가 내어드린 작은 생각거리를 기억하시나요? 어릴 때 한국에서 일어난 큰 사건사고들을 정리해보는 거요. 연령대 별로 한 번 살펴볼까요? 미리 가상의 세 인물을 준비했습니다. 1970년생 김부장, 1984년생 박과장, 1993년생 정주임입니다. 

먼저 1970년생 김부장님을 볼까요? 그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던 해에 태어났습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GDP 1000달러를 넘겼다는 뉴스가 들렸죠. 청소년기엔 88올림픽이 열렸고, 대학생 때는 엑스포가 열렸어요. 한국이 이른바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는 걸 보면서 만23세가 마무리됩니다. 아, 그때 모든 일자리는 정규직이었죠.

제 또래인 박과장은 어떨까요? 한국 경제의 최대 호황기에 태어났습니다. 유치원을 들어갈 때 쯤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봤고, 경쟁처럼 집집마다 자가용이 생길 때에 초등학교를 다녔지요. 물론 중학생이 되자 IMF가 터졌지만, '금모으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어른들을 보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집니다. 온 기업에 명예퇴직 광풍이 불었죠. 그리고 그때 생긴 결원을 ‘신입’으로 채우려는 기업들도 있었씁니다. 여러모로 어려웠지만, 그나마 취업문은 조금 열려있었습니다. 계약직 조건이 있었지만, 그래도 입사한 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했어요.

이제 1993년생 정주임 차례입니다. 일단 그가 보는 세상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어린이였을 때, 어째서인지 갑자기 '집이 작아졌다’는 걸 깨닫습니다. 갑자기 전학간 친구들이 많았을 수도 있어요. 중고생 시절에는 아빠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피자 배달 전문점을 시작합니다. 언뜻 회사 자리가 어디 구석진 곳으로 옮겨졌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만 23세가 되는데요. 그때 마주한 세상은 ‘정규직 전환이 없는 계약직'의 세계입니다. '3개월 단기 계약'이니 '파견직'이니 '공채가 사라진 채용'의 세상이 되어버린 거죠. 

제가 상담할 때 만난 어느 90년대생 내담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요, 새벽부터 하루 종일 해장국집 하셨어요. 일년에 하루도 안 쉬고 교대로 일했고요, 일요일에도 열었어요. 그런데 IMF때 망해버렸어요. 한참 고생하다가 다시 갈비집을 열었는데요, 그 가게는 이번에 코로나 터지면서 망했어요. 근데 노력이요? 노력하면 뭐가 달라져요? 우리 부모님, 진짜 고생하고 노력 많이 하셨거든요, 근데 지금 남은 게 없어요.”  

23세는 '후기 청소년' 시기입니다. 그때까지 한 개인이 겪은 경험이 그 사람의 가치관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고 해요. 그런데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한 사회의 공통적인 경험을 가진 세대는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밖에 없겠죠. ‘스마트폰 절전모드’ 같은 무기력과 소극성이 그저 몇 사람 만의 특징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M과 Z 세대는 어떻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요? 요 얘기는 다음 시간에 나눠보겠습니다. |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이런 얘길 들으면 솔직히 저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요. 나도 34살까지 계약직이었어, 대선에서 노무현 아저씨를 뽑았더니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더라고. 생각해보면 평생을 20평대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네, 나이 많은 프리랜서라서 전세 대출도 안나와, 블라블라... 근데 이게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쩝.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지옥을 견디는 세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저는 공동체의 세계를 상상하긴 해요. 따지고보면 밴드도, 아이돌 그룹도, 인디 레이블과 대형 기획사도, 뭐 스타트업도 죄다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다만 이런 조직, 팀, 그룹이 소통할 때 '공동체성'을 갖게 되겠죠.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말이 통해야 같이 살죠.

오늘의 마지막 곡은 리츄얼의 "조세핀"입니다.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드럼앤베이스 아티스트고요, 가장 최근(지난 주)에 런던에서 콘서트를 진행했습니다. (영국도 상황이 많이 나아졌나봐요)

여러모로 변덕스러운 날씨만큼 구독자님의 지금 상황도, 일도 마음도 번잡스러울지 모르겠어요. 그저 시원하게 샤워하고 음악 틀고 맥주든 쥬스든 한 잔 마시면서 멍때리자고 말하고 싶네요. 

오늘도 자신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밤을 보내세요.

에어컨을 켜고 자야겠다고 다짐하는 밤, 말 많고 고독한 디제이였습니다. 

📻익명의 고민상담소

때로는 복잡한 마음을 복잡한 대로 적어봐도 좋습니다. 

📻밤레터의 미드나잇 선곡표

같이 들어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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