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홍수경 | 2024의 영화계를 움직일 키워드

🗽DJ 홍수경 FB | 뉴욕에 거주하면서 각종 영화 및 팝 컬쳐에 대한 글을 씁니다. 영어 이름 Janis Hong. 한국에서는 영화 잡지 기자로 일하며 한국 영화계의 대소사를 기록했고, 영어권 음악만 듣던 팝 덕후로 살았지만 뒤늦게 미국에서 케이팝 팬으로 거듭났어요. 최근에는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게임] 등의 작품 덕에 한국과 미국의 접점에 집중하면서 영화진흥위원회 북미주재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비용 절감을 꿈꾸는 진격의 AI

올해 할리우드를 정지시켰던 작가와 배우의 양대 파업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인공지능이었습니다. 오픈AI의 챗GPT가 세상을 뒤흔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와 배우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은 꽤 시의성 있는 대처였습니다. 반년 넘게 지속되었던 할리우드 파업이 드디어 종료되고 조합원의 승인을 거친 AI 관련 합의안도 비준되었습니다.

작가 조합이 통과시킨 AI 사용 제한은 문학 작품(literary materials)을 AI가 생성하거나 재생성할 수 없고, 인간 작가 없이 AI가 단독으로 시나리오를 생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I가 생성한 작품일 경우 반드시 작가에게 사전 고지가 되어야 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고용 회사의 동의 하에 작가가 창작 과정에서 AI 소프트웨어 사용은 가능합니다. 작가 대신 AI가 보상을 받거나 크레딧을 가질 수 없지만 개발 과정에서 활용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배우 합의안의 경우는 다소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연자의 디지털 복제를 생성하거나 활용할 경우 반드시 배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 주된 전제입니다. 디지털 복제를 허가하더라도 실제 활용 일수 동안 배우가 실제로 지급받는 임금이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문제는 유명 스타나 셀러브리티가 디지털 복제 허가로 실연과 비슷한 보상을 받는 한편, 덜 유명하거나 무명 배우가 복제 이미지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고 이들이 성장할 기회가 적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리쉬맨]이나 드라마 [카지노]는 배우의 젊은 시절을 동일한 배우가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최근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고 송해의 딥페이크와 목소리 AI를 통해 시청자에게 향수 어린 이미지를 전달했죠. 챗GPT같은 라지 랭귀지 모델 도구와 텍스트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DALL-E 시리즈, 여러 보이스 생성 AI 등은 이미 광고, 사진, 로컬라이제이션 분야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Gen-1’과 ‘Gen-2’를 개발한 런웨이 사의 AI 도구는 이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바위 장면에 사용되어 영화계를 놀라게 만든 적이 있습니다.

영화의 경우 ‘언캐니 밸리’를 느끼게 만드는 불편한 이미지가 몰입감을 방해하므로 아직은 AI 기술이 한정적으로 사용되지만, 광고와 게임 및 SNS 동영상 쪽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AI가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와 배우의 공동 파업은 자신의 일에 AI가 침범하는 것을 일단 막았지만, 콘텐츠 개발자가 오로지 AI 기술만 활용해 합성 영상 제작(Synthetic production)을 하는 것도 가능해진 현실입니다. 콘텐츠 소비자는 앞으로 인간과 AI 생성 작품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다른 이야기지만, 미국 연방 정부는 10월에 인공지능 관련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과 사용에 대한 행정 명령’을 발령했습니다. 국가 안보, 경제, 공중 보건 등의 영역에서 국가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AI 시스템을 교육할 경우 안전 테스트 결과를 포함해 연방 정부에 통지해야 합니다. 미국 시민의 노동력, 미성년자 정보 및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면서 미국이 AI 분야를 선도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투자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매우 포괄적이고 선언에 가까운 행정 명령이라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여러 법안이 추가되어야 하지만 ‘대책 없이 손 놓고 있지는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기엔 충분했습니다.

올해 톰 크루즈가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1]에서 해저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인공 지능을 파괴하기 위해 고도의 인간적인 액션을 선보이는 액션에 나섰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이 인류에게 혼란을 가져오는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AI 비즈니스가 가속화되는 2024년, 창작자들은 계속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탐구할 것 같습니다.

콘서트 필름과 극장의 공생

10월 12일 북미에서 개봉한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는 개봉주 4일간 오프닝 수익 9천 6백만 달러를 넘기며 역대 콘서트 영화 중 최고 오프닝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미 올해 투어 수익 만으로도 최고 기록을 세운 그가 콘서트 영화의 기록 및 수익 모델도 바꿨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는 12월 중순까지 1억 8천만 달러(=2,357억 1,000만 원) 수익으로 2023년 북미 박스오피스 11위에 올랐습니다. 비교를 위해 덧붙이자면, 12위는 [인디애나 존스와 운명의 다이얼], 13위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 1]입니다.

미국 거대 극장 체인 AMC 씨어터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중간 배급사 없이 직거래를 했고, 이 콘서트 영화는 극장 구독 프로그램에서 배제되어 19달러 89센트의 티켓 가격을 받았습니다.(테일러 스위프트가 태어난 ‘1989년’을 반영한 가격이었다죠.) 저는 개봉 첫 날에 미국에서 가장 큰 아이맥스 상영관에 남은 두 좌석 중 하나를 예약하는데 성공하며 괜히 뿌듯해 하기도 했어요. 실제 공연보다는 아마 일만 분의 일 정도 수월한 티켓팅이 아니었나 싶네요.

AMC 씨어터는 열혈 관객을 위해 테일러 스위프트 이미지가 프린트된 특별한 팝콘과 음료 세트를 판매했고, 대다수의 관객은 그 세트를 구매했습니다. 이 콘서트 영화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상영되었고, AMC 체인이 아닌 독립 극장은 소규모의 독립 배급사가 관리했습니다. 할리우드의 개입없이 진행된 이 계약에서 스위프트 가족이 콘서트 영화의 투자자로서 AMC 수입의 57퍼센트를 가져간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곧이어 AMC와 계약한 비욘세는 [르네상스: 필름 바이 비욘세] 개봉 전날 더 화려한 극장 입성을 위해 데스티니 차일드, 리쪼, 저넬 모내 등 지인들을 초청해 레드카펫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영화는 2천만 달러를 넘기며 12월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콘서트 영화, 혹은 콘서트 다큐멘터리는 팬데믹 직전부터 케이팝이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약진해온 수익 분야입니다. BTS의 첫 콘서트 [Burn the Stage: The Movie]는 4일 동안 북미에서 354만 달러를 넘기며 원디렉션이 세웠던 2014년 흥행 기록을 깼습니다. 올해만 해도 [BTS: Yet to Come], [KANGDANIEL: MY PARADE], [IU Concert: the Golden Hour], [NCT NATION: To the World in Cinemas], [Mamamoo: My Con the Movie] 등이 이벤트 시네마로 단기 개봉을 했고, 이번 주에는 여러 극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SEVENTEEN Tour ‘Follow’ to Japan: Live Viewing]이 라이브/딜레이 라이브 형태로 중계 상영됩니다.

케이팝 공연 다큐멘터리가 특별 상영 형태의 이벤트 시네마로 공개되어 왔다면, 테일러 스위프트와 비욘세의 극장 배급 계약을 목격한 유명한 뮤지션은 개봉 영화의 개념으로 극장에 입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테일러 스위프트만큼 오랫동안 견고한 팬덤(스위프티스)이 거느리고 있는 스타는 흔치 않을 것입니다. 당장 뒤를 이어 비욘세의 경우만 봐도 훨씬 저조한 박스 오피스 성적을 보여주고 있어요. 케이팝 공연 다큐멘터리를 주로 배급해온 배급사 트라팔가 릴리징은 콜드플레이나 빌리 아일리쉬 등 수퍼 뮤지션의 공연 다큐멘터리를 선보였지만 며칠 상영이 전부였죠.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영화의 차별점은 콘서트 뒷 좌석에서 무대의 거대 스크린을 보는 듯한 생생한 컨셉트로 만들어졌고, 어떤 인터뷰나 무대 뒤편 장면도 포함하지 않고 오로지 공연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이 콘서트 영화가 기대 이상의 수익을 창출해냈기 때문에 앞으로 음악계는 극장을 잠재적 수익 플랫폼 중 하나로 중요하게 생각할 듯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주도면밀한 그레이트 번들링

스트리밍 서비스의 구독자 수가 포화 상태에 달한 가운데, 올해 미국에선 스트리밍 서비스의 번들링이 큰 경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통신 네트워크 회사와 제휴해 가입자에게 특정 서비스의 할인 혜택을 주는 사례는 이전부터 있었죠. 디즈니처럼 계열사 서비스인 디즈니+, 훌루, ESPN+을 동시에 구독하면 할인 혜택을 주는 옵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회사가 손을 잡고 번들을 제공하는 것은 흔치 않는 일입니다. 통신 네트워크 회사 버라이즌은 넷플릭스와 맥스의 광고형 요금제 번들을 매월 10달러의 가격에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버라이즌은 이미 디즈니+ 프리미엄, 훌루와 ESPN+ 광고형 요금제 번들을 10달러에 제공하고 있는데요. 비록 대부분 광고형 요금제이긴 하나, 버라이즌 고객들은 월 20달러에 넷플릭스, 맥스 및 디즈니 스트리밍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10달러를 추가하면 애플TV+, 음악, 게임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옵션도 있죠. 콘텐츠를 즐기는 고객으로선 꽤 큰 구독료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최근 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협력해 [플라워 킬링 문]을 극장 배급한 애플은 애플TV+와 파라마운트+의 번들 상품 계획 예정이지만 아직 구체화된 행보는 없습니다.

아마존 프라임의 막강한 콘텐츠와 경쟁하는 유통 대기업도 스트리밍 서비스와 제휴하며 공생의 길을 모색 중입니다. 월마트의 구독 상품인 월마트+는 파라마운트+ 광고형 요금제를 제공하고, 수퍼마켓 배달 서비스인 인스타카트는 피콕(NBC유니버설)의 광고형 요금제를 제공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게 이런 제휴 전략은 구독자 증가보다 구독자 이탈 감소에 초점을 맞춥니다. 모바일 서비스나 생활용품 유통 서비스는 스트리밍 서비스에 비해 고객이 쉽게 해지하지 않는 서비스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입장에서는 광고형 요금제를 제공하면서, 보다 안정된 구독자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컨텐츠 생산량도 감소하는 가운데, 화제작이 없을 때마다 비용 절약을 위해 구독을 중단하는 기존 구독자의 소비 패턴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포스트 피크 TV와 글로벌 프로덕션

이외 추가로 기억해둘 만한 두 가지 키워드는 ‘포스트 피크 TV’와 ‘글로벌 프로덕션’입니다. TV 콘텐츠가 과도하게 쏟아졌던 ‘피크 TV’ 시대가 끝나고 신중하게 콘텐츠를 감수하는 ‘포스트 피크 TV’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우선, 제작비를 쏟아 부어도 한 시즌 만에 종료되는 미니 시리즈가 감소하는 경향이 체감이 되고 있습니다. 개발을 위해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드라마 대신 파업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버라이어티 쇼를 제작하는 경향도 눈에 띕니다. 앞으로 콘텐츠는 광고 수익과 2차 판권 수익을 기대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미국은 신기하게도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고 또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몇 달 간 미국 넷플릭스 1위는 [수츠]였습니다. [프렌즈]와 [오피스]가 어느 플랫폼으로 이동하든 꾸준히 시청을 하는 시청자들이 언제나 존재하죠. 끝없이 시즌제를 유지하며 구독자를 유지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이제 스트리밍 서비스의 주요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12월부터 ‘맥스’ 구독이나 디지털 판매로만 볼 수 있었던 DC 콘텐츠를 대거 넷플릭스에 공개하며 기존의 프리미엄 스트리밍 경쟁 관습을 깼습니다. 내년부터는 기존 인기 콘텐츠를 어디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더 치밀한 전략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글로벌 프로덕션’은 단순히 합작 콘텐츠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미국 제작진은 투자를 유치하거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미국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외국 감독이 미국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미국 감독이 외국 영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미국 영화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작 면에서 한국계 창작자에게 색다른 영감을 안겨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점점 콘텐츠 제작에 있어 국경의 구분이 무색해지면서 예상치 못한 시선과 감성을 전달하는 획기적인 콘텐츠가 등장하곤 합니다.

이 모든 경향에 대해 내년에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군요. 모두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각자의 분야에서 건승하는 2024년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 DJ 홍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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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h God – Jerskin Fendrix

팬데믹 이전부터 영국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떠오르던 괴짜 아티스트 저스킨 펜드릭스가 또 다른 영화계 괴짜 감독 요고스 란티모스와 만나 [가여운 것들]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클래식한 멜로디가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함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그러지거나 변형되는 독특한 음악이 폭주하는 빅토리아 시대 스팀 펑크 판타지 미학과 극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킵니다. 여성 버전 ‘프랑켄슈타인’의 삶을 비추는 원작 소설이 있지만, 원작자가 과연 이 정도의 익스트림한 영화를 상상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가여운 것들]의 개봉을 기다리면서, 제멋대로 유머 미학을 보여주는 일렉트로닉 뮤직 마술사 저스킨 펜드릭스의 (작품 중 비교적 평범한) 음악을 감상해 보세요. 차세대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미리 점 찍어 두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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