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요조와 '밀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얼마 전 요조의 새 앨범 [이름들]이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앨범 소개글도 썼는데요, 앨범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요조와 얘기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음악가이자 책방무사의 주인이자 책의 저자이자 달리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앨범 발매를 핑계로 요조와 의식의 흐름 같은 대화를 오래 나눴습니다. 

우진: 페이스북 계정 이름이 '신요조'로 되어 있잖아요. 근데 생각해보면 본명은 신수진이고, '요조'는 아티스트명인데요. 신수진과 요조를 더한 게 '신요조'라면 거기서 요조를 빼거나 신수진을 빼면 뭐가 남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나면 이걸 물어보고 싶었어요.

요조: 옛날에는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요즘 특히 뮤지션으로서 회의하거나 얘기할 때 제가 '요조'라는 이름을 3인칭 대하듯이 쓸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요조지만, 요조는 제가 아닌 거죠. 요조 안에는 저도 있지만 스태프들의 어떤 부분도 포함되었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좀 철이 들면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우진: 철이 들었다는 건 뭐죠?

요조: 예전에는 그냥 내가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정말 조금도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같이 하는 거죠. 제가 혼자 곡 쓰고 가사 쓰고 다 한다고 생각했던 그때도, 사실은 매우 많은 사람들이 요조라는 뮤지션을 함께 만들었어요. 이제야 그런 부분이 보여요. 카메라 셀카 모드에서 바깥 모드로 전환된 느낌? 저는 점점 더 제가 좀 시시하고 별거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시야가 외부로 향하는 것 같아요. 음악 말고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고요. 타인들이 내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점점 더 실감하게 되요.

우진: 앨범 제목이 [이름들]이라는 것과도 연관된 얘기 같네요.

요조: 되게 신기하고 재밌는 건... 제가 진짜 남들 덕분에 노래하고 있구나, 확실히 깨달은 거예요. 저는 누군가 굉장히 재밌거나 번뜩이는 뭔가를 딱 얘기할 때, 혹은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저도 모르게 '나중에 내가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말이 툭 튀어나와요. 소설가들도 그렇대요. 일종의 직업병일텐데, 이번 앨범도 정말 그랬어요. 이렇게 노래가 된 순간이나 경험을 제공한 건 전부 타인들이었고, 그들 덕에 또 제가 계속 노래하고, 앨범도 내는 거죠.

그리고 이번 앨범에서는... 보편적으로 앨범의 어떤 외형 같은 게 있잖아요. 앨범 커버나 콘셉트적인 부분 같은 것들에도 제 의견을 그다지 내지 않고 스태프들에게 많이 의존했어요. 저는 음악 신(scene)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이 친구들이 전문가니까 그냥 하자는 대로 했어요. 아까 얘기한 대로, 이제 저는 제가 슬슬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져요. 그 대신에 시선이 자꾸 바깥으로 향하는 것 같고요. 

"내가 음악을 하는 명분은... 뭘까요?"

우진: 그럼 작가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그러니까, 음악을 만드다는 건 도대체 뭐하자는 일일까... 이런 생각 안해봤어요?  

요조: 얼마 전에 일 때문에 영월에서 몇 주를 보냈어요. 부부가 운영하는 숙소였는데, 그분들은 농사도 짓고, 뭘 계속 키우는 일을 하시더라고요. 그걸 매일 매일 보니까 제게는 그 일의 명분이 너무나도 뚜렷해서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이 되게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심지어 그 사장님이 자기는 음악을 안 듣는다고도 했어요. 왜냐면 거기 살면서 너무나 듣기 좋은 소리들이 많아서래요. 음악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느끼신대요. 그러면서 정말 놀라운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 중 하나는 바람이 나무를 스칠 때 어떤 나무를 스치느냐에 따라서 소리가 다르다는 거예요. 소나무처럼 이파리가 뾰족한 나무 사이를 지날 때는 파도 소리처럼 들리고, 이파리가 커다란 나무들을 지날 때는 입자가 크고 거칠거칠하고 투박한 소리가 나고요. 사장님은 자작나무를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제일 좋대요. 되게 경쾌하고 개구진 소리가 난다고요. 저로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얘기를 들으면서 진짜 나는 음악을 왜 만드는 걸까... 음악을 하는 명분이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음악하는 동안, 진짜 너무 힘들었을 때 저의 어떤 어떤 노래가 다시 살고 싶게 해줬고 되게 행복하게 해줬고... 이런 얘기를 해준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얘길 들으면 뭐랄까 내 음악에도 명분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너무 감사하고 그래요. 하지만 그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저는 사실 많은 날을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음악을 왜 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요, 되게 괴롭고 그런 것도 아니고 또 되게 행복하고 보람 있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요. 근데 어쨌든 그 확실한 명분이 뭐냐에 대해서는 제가 좀 대답을 못하겠어요.

영월에서 만난 두 분의 어떤 삶을 보면, 그분들은 명분이 너무 뚜렷하거든요. 우리가 이런 작물을 키우는 목적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또 가끔은 선물하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 이분들은 진짜 농약도 없이 엄청 피곤하게 정성들여 기르시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건강하게 해주는 데 명분이 있는 거죠. 그럼 이제 내가 음악을 하는 명분은 뭘까, 생각하게 되요.

그분들은 삶에 자신이 있어 보여요. 아무도 부럽지 않고, 너무나 떳떳하게, 자연에 거의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시거든요. 그런 당당함이 너무 근사한데, 어떤 작가나 뮤지션들에게도 그런 당당함이 보여요. 글을 써야 되는 어떤 확실한 이유, 음악을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작가들이 부럽죠. 이런 사명이 있고 이런 떳떳함을 가진 사람들은 진짜 좋겠다. 저는 없어요. 뚜렷한 사명감이나 명분이 없는 게 좀 유감이긴 하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 저도 그 중 하나로 막막한 앞날을 그저 이렇게 더듬더듬 하면서 재밌게 내 할 일을 하는 그것으로 됐다.

우진: 이번 앨범은 굉장히 오랜만에 나왔어요. 작업 과정은 뭐가 달랐어요?

요조: 아까 얘기한 것처럼, '언젠가 노래로 만들게'라고 툭 던져놓은 것들이 이렇게 모였어요. 이게 적어도 저한테는 약속을 지키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우리가 버릇처럼 하는 여러 약속들이 있잖아요. 다음에 밥 한 번 먹자. 올해 가기 전에 만나는 거다. 노래를 만들게... 라는 것도 비슷해요. 그런데 앨범 작업에 성공했으니 제가 약속을 지킨 셈이기도 하잖아요. 그때 혼자 기분이 좀 좋았어요. 그리고 진짜 뭐니뭐니해도 가장 달랐던 점은, 나의 우상이었던 (이)능룡 형하고 같이 작업 했다라는 사실이에요. 그게 좀 실감이 안 날 때가 많았죠. 진짜 내가 형이랑 앨범을 만들고 있구나. (*요조는 이능룡을 '형'이라고 부른다)

우진: 그 과정이 궁금한데요. 이능룡 프로듀서와는 어떻게 만난 거였어요? 그리고 프로듀서라는 존재가 딱 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또 어땠어요. 

요조: 시작은 아마도, 2018년 벨로주에서 열린 홍갑의 단독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제가 게스트로 노래를 두세 곡 불렀는데, 능룡 형이 대기실로 와서 너무 잘 들었고 너무 좋았다. 그런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굳이 대기실까지 와서 얘기해 준 부분이 너무 좋고 신났어요. 오래 전에 한 번 곡 작업을 해서 친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굳이 찾아와서 말해준 게 되게 고마웠죠. 그게 계기가 되어서 능룡 형이랑 제 앨범을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느슨하게 한번 던져봤더니 너무 흔쾌히 좋다고 하셔서, 그래서 그때부터 야금야금 일이 진행된 것 같아요.

저는 정말로 형이 하는 모든 작업이 좋았거든요. 이거는 뭔가 별로구나 이거는 좀 바꾸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안들었어요. 저는 계속 좋다 좋다 그랬는데, 형이 나중에 쓴 글을 보니까 내가 계속 칭찬만 해서 자기는 그것 때문에 더 용기를 내서 잘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니 이 형도 나랑 비슷하구나 싶었어요. 명분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어디서 뭔가 사소하게라도 비판을 받으면 당당하게 나만의 세계는 이거야, 내 음악은 이런 거야! 이렇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아... 음악 접어야겠다... 이렇게 바로 꼬리 내리는 기질 같더라고요. 제가 너무 좋고 너무 잘하고 있고 막 이렇게 말하니까 형은 그게 정말로 고마웠던 거예요. 

우진: 앨범 작업에서 아티스트와 프로듀서의 관계는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요조: 옛날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아티스트하고 프로듀서하고 사랑에 빠지면 그 앨범은 대박이 난다고요. 그 얘기가 저는 뇌리에 깊이 박혀 있는데, 실제로 사랑에 빠지거나 연애를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는 진짜 각별한 사랑의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많이 들어요. 능룡형하고 저는 오누이적인 사랑 같아요. 매번 형 집에서 작업을 했는데, 형의 애인 이름이 저처럼 '수진'이에요. 일하러 가면 일단 셋이 과일이나 빵 같은 걸 먹으면서 1시간 정도 구구절절 무슨 일이 있었고 동생이랑 왜 싸웠고 막 이런 얘기를 하다가 담배 하나 피우고, 그럼 이제 해볼까... 그렇게 작업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각별한 게 생겼어요. 아 그리고 이건, 어쩌면 저한테만 너무 너무 웃기면서도 좋았던 건데. 애인 분이랑 저랑 이름이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형이 뭘 하다가 '수진아~' 그러면 저랑 수진 씨랑 동시에 쓱 돌아보는 거에요. 그런 경험들이 전 너무 좋았어요. 되게 사소한 뭔가를 공유하는 것 같아서요.

우진: 책방 무사 얘기도 해볼까요? 책방 무사는 브랜드이기도 하고 프로젝트이기도 하고, 사업이기도 할텐데요. 요조에게 책방 무사는 어떤 의미일까요?

요조: 제가 뭐 사업 수완이 있는 게 아니니까, 제가 뮤지션으로서 해온 것처럼 책방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쨌든 책방에 자주 오는 사람들, 그러니까 단골 손님인데 이 관계도 뮤지션과 팬의 관계처럼 좀 긴밀하게 맺었으면 좋겠고요. 근데 좀 웃기잖아요. 책방하고 책방 단골하고 그런 관계를 맺는다는 게. 하지만 저는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맺을 수 있다면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만큼 책방이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밀도가 더 높아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니까요. 사이즈는 커지기 어려운 상황이니까 대신에 밀도가 좀 있어야 된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서 단골들이 엄청 많지는 않지만 그분들과의 어떤 긴밀한 관계 맺음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려고 하죠. 독서 모임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러 가고, 술도 먹고요. ㅋ

"저는 돈 대신 마음을 얻고 싶어요."

우진: 그런 밀도가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아마 앞으로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저도 그런 걸 만들고 싶은데,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좀 어렵죠.

요조: 근데 밀도를 높이면서 사이즈가 커진다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잖아요. 가능할까요?

우진: 사실 그런 의견에 대해선 부정적이에요. 밀도를 키우거나 규모를 키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쪽에 가까워요.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 같은 사람들, 아티스트이면서 사업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서비스 마인드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도 해요. 물론 제 생각이지만. 왜냐하면 스스로 내가 하는 어떤 일을 '서비스'라고 정의하면 그 대상을 '고객'으로 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게 '돈을 받고 고객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일'은 또 아니거든요. 좀 더 긴밀한 관계가 필요한 거죠. 그건 '서비스'와 '고객'이라는 개념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봐요. 

요조: 그러니까 확실히 우진님도 저도 쫀쫀한 밀도감 있는 일에 관심이 많은 거네요. 근데 아시겠지만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좀 어리석게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만 해도 책방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지, 또 유튜브는 왜 안하는지 이런 얘길 많이 듣거든요. 저한테 계속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수 있는데 왜 안 해... 이런 얘기들이 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해요.

영월 얘기를 계속해서 죄송하지만, 그분들도 정말 철저하게 밀도 중심의 삶을 사시는 거예요. 자기에게 필요한 건물만 딱딱 짓고 사는데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건물을 더 지어라, 손님을 더 받아라, 그래야 사이즈도 커지고 돈도 된다... 그분들은 시골 생활에 전문가가 되셔서 귀촌하시는 분들도 배우려고 연락을 하신대요. 하지만 사장님은 이 생활은 절대로 몇 번 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예 1년짜리 프로그램을 제안하시거든요. 그럼 그 1년짜리 코스는 몇 분이나 들으세요? 물었더니 딱 한 명이래요. 일주일에 한 번, 1년 동안 딱 한 명이요.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월요일에 한 명, 화요일에 한 명... 이렇게 해야 돈이 될 것 같은데... 근데 사장님은 이래요. 그러면 내가 여기 완전히 붙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언제 놀고, 내 생활은 언제 하느냐고요.

저도 유튜브를 하려면 할 수 있고, 막상 해보면 재밌을 것 같기는 해요. 또 책방도 좀 더 키워서 사람도 많이 오면 뭔가를 더 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면 좋은 것도 있겠죠. 그치만 어쨌든 이런 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떤 상황을 좀 벗어나는 일이다보니까, 나의 루틴이자 나의 생활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렇게 유지하고 있는 건데, 사람들은 좀 답답해하는 경우도 있는 거죠. 

우진: 한편으론 사람들이 그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네가 좋아하는 거 오래 하면 좋겠어라는 마음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돈은, 네, 어쨌든 돈을 벌어야 지속할 수 있으니까 대체로 그 걱정으로 조언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의 루틴을 지키면서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책방 주인이든 음악가로서든. 

요조: 저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요. 물론 비즈니스의 중심에는 어쨌든 돈이 있으니 그걸 중심으로 사고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저는 그 중심이 이제 관계에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이란 얘기를 듣겠지만, 저는요. 사실 이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돈 대신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은 거고, 마음을 얻으면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실제로 이득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이건 순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되게 약삭빠른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요. 

우진: 뭘 만드는 사람에겐 대체로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사업을 하든 창작을 하든 0에서 1을 만든다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향이 다르겠죠. 저는 요조님 같은 사람들에게 줄곧 '어떻게 하면 계속 할 수 있을까' 묻는데요, 아마도 논리적인 계획보다 그 마음이 궁금해서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할 만큼 설명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하는 일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그런 마음이요. 거기서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뭔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조: 글쎄요. 저는 아까 인터뷰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우진님이 '가짜 희망'이란 말을 하셨는데 저는 진짜 제가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해요. 희망을 주긴 주는데, 그 희망이 가짜여도 돼, 라는 생각이요. 그게 저의 역할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먼저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는 지금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게 그것 같고요. 세상이 필요로 하니까 내가 한다, 그런 느낌이에요.

예술을 하는 노동자로서, 사람들이 예술에 뭘 기대할까 생각해보면, 물론 시대마다 달랐겠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예술에 희망적인 걸 찾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출판계에서 '힐링' 같은 단어가 엄청 유행했는데, 책방을 하다 보면 그런 키워드가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거든요. 미움받아도 괜찮아,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처럼 뭔가 어화둥둥 해주는 그런 키워드가 중요해지는 흐름이 보이는 거죠. 그래서 저도 그런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저의 마음은 진심이지만 그런 희망이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몰라요. 그래서 어쩌면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걸 수도 있죠.

이번 앨범을 낼 때 제가 생각했던 타이틀은 '이름들'이 아니고 '강한 긍정'이었어요. 물론 까였습니다. ㅋ 너무 어렵다는 이유였어요. 왜 '강한 긍정'이었냐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내가 곡을 만들 때 항상 타인들이 도움을 줬고, 나는 그걸 언젠가 노래로 만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던졌고, 결국엔 그 약속을 내가 지켰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강한 긍정'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태도였어요. 뮤지션으로서 되게 강하게 긍정하고 있는 어떤 태도의 일면을 이 앨범이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이렇게 강하게 긍정하는 건 부정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하자 그러면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 근데요, 전 솔직히 큰 흐름을 못 바꿀 것 같아요. 망가진 지구를 되돌릴 타이밍을 놓쳤다고도 생각해요. 그치만 사람들한테 그렇게 말하진 않죠. 어차피 지구는 망할테니 굳이 이것저것 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종말이나 기다리자... 내면의 저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왜냐면, 아까 얘기한 대로, 저는 그게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잘하자, 더 잘하면 결국 이뤄질 거다, 잘 될 거다... 그런 얘기를 해요. 이건 거짓말이지만 진심이기도 해요. 다 포함이 되어 있어요. 강한 긍정은 사실 부정하는 것이지만, 그 상황에서 더 강하게 긍정하고자 하는 어떤 마음이기도 해요. 그래서 '강한 긍정'을 제목으로 짓고 싶었는데, '이름들'이 됐어요.  

우진: 지금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요조: 그렇죠, 지금이 중요하고요. 또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절망적인 미래를 그냥 기다리자는 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너무 아까운 얘기에요. 인간은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존재니까, 진짜 절망적인 날이 닥쳐도 이것저것 해보다가 멸망을 맞이하는 게 더 의미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본 뒤에 망해버리자, 그런 마음도 있는 거에요.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망할 거지만요. 

우진: 지금에 집중하는 건, 오히려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거지, 이런 고민을 계속 하다보면 역할을 찾고, 그게 동기가 되기도 하죠. 요조에게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뭔가요. 정말 현실적인 것들도 있고 비전이나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까는 모른다고 했지만 그래도 명분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요조: 진짜 현실적인 차원에서 지속성이라는 게 가능하려면, 저한테는 일단 상호적인 뭔가, 관계라는 키워드가 저한테는 진짜로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진: 저는 이런저런 관계에서 내가 뭘 해볼 수 있지,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지, 어떤 위치에 있지... 이런 고민을 많이 해요. 뉴스레터를 보내면서도 내가 사람들하고 뭔가 함께 해볼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하고요.

요조: 내가 뭘 할 수 있지? 라는 게 체념과 포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 어떤 다짐과 각오로서 고민하는 거잖아요. 얼마 전에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소설집을 읽었는데, 거기에 우리는 미래를 기억해야 된다는 말이 나왔어요. 기억이란 과거를 기억하는 건데 어떻게 미래를 기억하지? 논리적이지 않게 느껴지지만,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글을 보면 '미래를 기억한다는 건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인지 질문하는 게 아니라 나는 뭘 할 수 있는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되묻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이게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의 행동이라면 저는 되게 멋진 태도인 것 같아요. 

"저는 저에 대한 험담도 너무 궁금해요."

우진: 좀전에 키워드라고 했어요. 요조를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요조: 저의 키워드는... '어쩌다가'에요. 여태까지 저는 '어쩌다가'라는 말의 작용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저는 '어쩌다가'라는 말을 좀 믿기도 하고 동시에 좀 불안해하기도 하는데요. 앞으로도 뭐 '어쩌다가' 어찌저찌 살아갈 거다, 라는 낙관적인 면도 있지만, 아까 우진님이 이제 50대가 코 앞인데 큰일났다고 했잖아요. 저도 이제 마흔을 넘긴 시점에 계속 '어쩌다가'를 믿어도 될까, 이런 불안이 있죠. 이게 나의 P 기질 때문일 거다, J 성향이면 앞으로 내 인생의 어떤 방향이나 계획을 착착 세팅해 놓기도 할텐데 나는 진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전혀 감도 안 오고요. 

우진: '어쩌다가'를 본인의 키워드로 생각하게 된 시점이 있어요?

요조: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책방을 시작하고 인터뷰를 하면 물어보잖아요? 어떻게 책방을 열었냐, 어떻게 뮤지션이 됐냐, 어떻게 글을 쓰게 됐냐... 그때마다 제가 반복적으로 '어쩌다가'라는 단어를 말하는 거죠. 그래서 내 인생은 '어쩌다가'라는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구나, 앞으로도 그렇겠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우진: 근데 저는 왠지 MBTI 같은 데 관심 없을 줄 알았어요. MBTI가 뭐에요?

요조: 얼마 전에 ISFP로 나왔는데 회사 동료들이 다들 아니래요... ㅋㅋㅋ 지금은 앨범을 내서 눈앞에 닥친 일들을 쳐내다보니 사람이 좀 현실적으로 변한 거지, 옛날부터 INFP가 맞다고.  

저는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려주는 모든 것들, 네... 사주, 별자리, 타로, MBTI 같은 거에 관심이 많아요. 딱히 그걸 믿거나, 매우 신뢰하는 건 아닌데요. 그냥 그게 너무 재미있어요. 나에 대해 말해주는 어떤 거요. 저는 어디선가 누군가 저에 대해 험담을 할 거 아니에요. 저는 그 험담도 너무 궁금해요. 너무 듣고 싶은 거에요. 생각해보면 자기 험담 듣기가 진짜 어렵지 않아요? ㅋㅋㅋ 내가 없는 곳에선 나에 대해 나쁜 얘기도 할 수 있겠지만 내 앞에서는 감출 거잖아요. 분명 내 욕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뭐라고 욕할까 진짜 너무 궁금하고 들어보고 싶은 거예요. 

우진: 궁금할 순 있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ㅋㅋ 어쩌면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있는데 애정은 없는 거 아니에요? 

요조: 듣고보니 개인에 대한 애정은 있는데 집단에는 애정이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을 따로 따로 놓고 보면 개개인의 서사가 있고 매력이 있고 어떤 지혜로움도 있잖아요. 그런데 집단으로 모아놓으면 어쩌면 그렇게 못나지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 집단스러운 모든 게 좀 싫어요.

대신 저에게는 소년이 된 어른을 보는 행복이란 게 있어요. 진짜 나이와 상관없이 꿈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기면서도 약간 울어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행복해서요. 우리가 3-40대가 되면 세속적이지 않을 수 없는데, 망상처럼 돈 많이 버는 얘기와 부동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자기가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얘기를 진지하게 하면, 저기에 소년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죠.

우진: 저도 '나는 커서 뭐가 될까' 이런 생각하면 막 웃기고 신나요. ㅋㅋㅋ 

요조: 커서 뭐가 되고 싶으세요?

우진: 글쎄요. 사실은 좀 추려보긴 했어요. 포토그래퍼가 되고 싶다. 찌질하고 못난 캐릭터 전문 배우가 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도 있고, 탭댄서도 있어요. 그러면서 클래스101을 찾아보는 거죠. ㅋㅋㅋ 대학에 갈까, 이런 생각은 못하고 대충 3개월 정도에 끝내는 코스를 알아보는 거죠. 

요조: 저는 자신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원래 이래' 라는 식으로 자기를 설명하는 건 어떤 가능성을 제약하는 것 같아요. 재미가 없어요. 나는 뭐 하지? 앞으로 어떻게 되지? 이런 게 우리 삶을 훨씬 더 재미있게 할 거고, 그런 얘길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요. 근데 우진님. 인터뷰가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아요?

우진: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인터뷰는 핑계였고... 그냥 요조님을 만나 흐르는 대로 대화하고 싶었어요. 꽤 오래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얘기한 건 처음이니까요. 저는 즐거웠어요. 인터뷰 정리는... 네, 뭐, 어떻게든 됩니다. ㅋㅋㅋ

에필로그: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

(인터뷰 시작 전, 약간의 서먹함과 쑥스러움 사이 어디쯤)

요조: 우진님은 되게 많은 아티스트들이나 관계자를 만나잖아요. 다들 일이나 작업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 같은 게 있을텐데 저는 그게 너무 부족해요. 앞으로의 음악은 어떻게 될거야, 사람들은 이러이러한 걸 좋아해... 이런 식으로 세상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는 시선 같은 거요. 저는 그게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우진: 일단,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요조: 좋은 소식이요!

우진: 아뇨, 나쁜 거 먼저 들으세요. ㅋㅋㅋ 나쁜 소식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에요. 

요조: 아아... 좋은 소식은요?

우진: 좋은 소식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죠.

요조: ㅋㅋㅋ 그게 뭐에요. 

우진: 아무도 모르니까 뭐든지 해 볼 수 있는 거죠. ㅋㅋㅋ

📻 요조 - Unknown Horses | 이름들 (2022)

이 비디오는 뮤직비디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어째선지 현실과 비현실이 섞이거나 흐릿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형식이 이 음악이나 앨범에 담긴 메시지를 되려 정확히 전달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이 앨범에 담긴 '이름들'의 주인이 모두 이 영상에 있어서 쫑파티나 뒷풀이 같기도 합니다. 촬영 비하인드도 한 번 읽어봐주세요. 재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쓴 앨범 소개글도 첨부합니다.

※ 다정한 세계, 요조의 [이름들]

대체로 작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 요컨대 스토리를 말하는 사람으로 이해된다. 덕분에 그가 외부 자극에 얼마나 예민한지가 예술적 감각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 감각을 잘 풀어내는 것은 또한 기술의 영역이므로, 예술가는 감각과 기술의 밸런스를 성실히 수련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따라서 내게 좋은 작가는 잘 듣는 사람이고, 요조는 그러한 작가 중 하나다. 알다시피 그는 꽤 오랜 시간 한겨레에서 인터뷰 코너를 운영했다. 거기서 그는 잘 들었다. 요조는 임경선 작가와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묶기도 했다. 거기서도 그는 잘 들었다.

그럼에도 ‘듣기’는 구사하기 어려운 고급 기술이다. 쓰기와 말하기보다 훨씬 어렵다. 잘 듣는 일은 상대방을 바라보는 일, 내뱉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극을 응시하는 일이다. 이 느낌과 그 느낌의 거리를 가늠하는 일이다. 당연히 그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아니 귀를 크게 열고 매우 조심스레 애써야 가능하다. 중요한 것들은 늘 어렴풋하고 흐릿한 곳에 있다. 말이 되지 못한 것들, 단어로 수렴될 수 없는 기쁨과 슬픔, 욕망과 좌절, 혹은 후회와 질투 같은 모순들이 웅크리고 있다. 듣기는 그 흐릿한 장소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이고, 작가는 거기서 발견한 것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는 사람이다.

나는 [이름들]을 들으며 요조가 사람들의 틈을 바라보는 장면을 생각한다. 잠깐. 좀 더 정확히 말하자. 이 노래를 통해 요조가 만난 사람들의 어떤 틈을 엿보는 게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은 그 틈을 바라보는 요조의 옆모습이거나 뒷모습이다. 요조가 거기서 무엇을 찾았는지 나는(그리고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온전히 요조의 것이므로. 나는 그저 그의 옆이나 뒤에서 문득, 내게 전해지는 어떤 흔적을 감지한다.

그러니까, 다정함.

요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발견한 무언가로 이 앨범을 만들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들과 함께 만든 것에 가깝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오른 팔을 ‘토미’라고 부르는 장애인 코미디언에게 “토미”라는 노래를, 팬이라고 하면서 정작 요조가 만들지도 않은 노래를 언급한 사람에게는 바로 그 세상에 없던 노래(“이 정도로”)를 전하는 일이야말로 애초에 그들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이능룡은 이 다정한 결과물을 세심한 소리로 옮긴다. 그의 표현대로, 이 작업은 ‘크고 작은 시도를 성실하게’ 이룬 결과다. 어떤 소리는 선명하지 않고, 어떤 부분은 쨍한 것 또한 그 결과다. 우리는 ‘흐릿한 장소’야말로 가장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우리 삶은 사실, 수많은 실수와 낭패와 자조와 좌절로 구성된 우연한 세계에 가깝다. 여기서 우리는 약간의 상냥함과 다정함 덕분에 살아남는다. 운이 좋다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상냥한 듣기와 다정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 [이름들]은, 적어도 내게는, 다음 세계로 안내하는 표지판 같다. | 차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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