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규의 말줄임표 | 우리의 다정함은 영원히 반복될 거야

TMI.FM의 DJ 강남규 | 변화와 변혁의 시대에 공동체는 더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강남규 DJ는 느낌표도 마침표도 아닌 말줄임표로 전하는 이야기, 혹은 말줄임표로 읽을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주로 웹툰을 소개하는 [강남규의 말줄임표]입니다. 💬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주인공이 ‘관계 맺기’를 통해 어른이 되어 사회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방법이 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가장 완벽한 서사다. ‘사이다 서사’의 시대, ‘먼치킨 주인공’의 시대, ‘각자도생’의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단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런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런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드는 작가는 허5파6이다.

전작 [여중생A]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탓에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온라인 게임 속 관계에 의존해 살아가던 장미래가 우연한 계기로 또래들과 마냥 우정이라고는 할 수 없는, 하지만 어쨌거나 깊은 수준의 인간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오라존미]에서도 얼굴에 화상을 입어 따돌림을 당하다가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만화가 지망생 이영재, 예쁜 미모를 가졌고 만화가를 지망했지만 실력이 부족해 데뷔하지 못한 박수빈이 서로 위태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성장이 시작됐다.

2021년 12월부터 연재가 시작된 [푸쉬오프]도 마찬가지다. 소재부터 흥미롭다.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어머니에게 이끌려 어릴 때부터 그 공동체 안에서 자라난 다혜는 22세가 된 뒤에야 사이비 종교로부터 벗어난다.

이혼해 따로 살던 아버지가 다혜를 찾아와 그가 이룬 새 가정에서 함께 살 것을 제안하면서 다혜는 새 공동체를 만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이비 종교 공동체 안에서 세뇌와 학대를 받아가며 자랐으니 뒤늦게 만난 정상적인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영 쉽지가 않다. 사람과의 관계도 어렵고,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관념도 낯설다.

그런 다혜를 이끌어준 것이 동갑내기 의붓자매인 윤서다. 건강하고 쾌활하며 또래에게 인기도 좋은, 소위 ‘인싸’다. 취미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윤서는 다혜에게도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가까워진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

작품의 제목인 ‘푸쉬오프’는 바로 스케이트보드 기술 중 가장 기초적인 기술로서, 발을 굴러 보드를 앞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이다. 다혜의 스케이트보드 취미는 작중에서 성장의 중요한 장치가 된다. 다혜가 처음으로 ‘성장’을 갈망하게 되는 계기로서 말이다. 또 윤서는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다혜에게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푸쉬오프]의 기본적인 서사는 다혜가 또래들과 만나 관계를 쌓고 스케이트보드를 배우고 알바를 통해 자립하면서 사이비 종교라는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허5파6 작가의 전작들과 동일한 서사인데, [푸쉬오프]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어느 정도 사회에 적응한 다혜는 친구들과 힘을 모아 자신과 같은 처지의 또래들을 사회로 끄집어낸다. 특히 다혜보다 사이비 종교에 깊이 세뇌되어 있고, 다혜보다 무기력에 지배당하며, 다혜보다 더 세상 물정 모르는 한 살 아래의 예린의 사회화를 다혜는 온 정성을 다해 돕는다. 바로 이 점에서 [푸쉬오프]는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성장을 이루어가는 한편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이야기.

우리를 구원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담백하게 그려내는 [푸쉬오프]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일 것이다. 오지 않을 구원을 하염없이 기다리지는 말자. 다만 손 뻗어 서로를 돕고, 다정함을 나누며, 성장을 기다려주고, 다시 베풀자. 성장과 구원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 💬 DJ 강남규 facebook

📻 아이유 - 에잇(eight)_Prod.&Feat. SUGA of BTS

소소한 자부심이 있다면, 아이유라는 가수를 "Boo" 때부터 알았고, 그때부터 좋아하게 됐다는 겁니다. 아직 인기를 얻기 전부터 좋아했던 가수가 이제 잠실 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별 이유 없이 자부심을 주더군요.

성장, 아이유는 성장을 노래하는 가수입니다. 그 자신의 성장을 노랫말로 기록하는 드문 가수죠. 23세에 부른 "스물셋"과 25세에 부른 "팔레트", 28세에 부른 "에잇"은 각각의 시기에 아이유가 어떤 성장을 이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대중에게 알리는 사료(?)인데요. [푸쉬오프]를 이야기하면서는 특히 "에잇"을 함께 들었으면 합니다.

"스물셋"과 "팔레트"에서는 일관되게 ‘나’를 얘기합니다. 대중 앞에 던져진 ‘나’의 당황스러움("스물셋")과, 그로부터 2년간 성장한 ‘나’의 안정감("팔레트")이 두 노래의 주제입니다. "에잇"에 이르면 마침내 ‘우리’가 등장합니다. 노랫말 전반에서 상실감과 회한이 묻어나지만, 또한 ‘우리’가 만나 함께 춤을 추었던 기억을 꿈으로 그려내죠.

이 변화를 떠올리며, 또 한 번 나이를 먹은 새해의 1월에 "에잇"을 듣습니다. ‘나’가 ‘우리’가 되어 함께 성장하고, 누군가의 성장을 기꺼이 도와 더 큰 ‘우리’가 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DJ 강남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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